회귀없이 야구만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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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직구
그림/삽화
k-young
작품등록일 :
2020.09.29 14:25
최근연재일 :
2020.11.1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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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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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암스트롱(2)

DUMMY

“여기 X자로 고정된 인대가 보이죠? 5개월 전 사진과 비교해 보면······.”

이세명 박사는 손에 쥔 자료를 지난겨울 것과 비교했다.

그 차이를 내가 알 리 없다.


“어떻습니까?”

“보세요. 눈으로 보기에도 단단하게 고정돼 있잖아요? 팔꿈치 뼈도 그대로고.”


이세명 박사 말을 들으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그래도 안심되는 답을 듣고 싶었다.


“얼얼한 느낌은 뭘까요?”

“투수가 공을 던지는 건 말이에요. 온몸에 무리가 가는 겁니다. 특히 어깨와 팔꿈치가 그렇죠.”


그의 말대로 피칭은 극한 노동이다.

공을 던지는 동작들은 모두 인체역학에 역행하는 것이다.

내가 투구 수를 아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건가요?”

“던지다보면 부상이 생길 순 있죠. 하지만 의학적으로 이렇게 깨끗한데도 걱정이 된다면······.”


이세명 박사가 말끝을 흐렸다.

왜 저럴까? 괜히 불안하게 말이다.

“······.”


“금강 선수의 상태는 지금보다 더 좋아질 수 없습니다. 몸에 조금만 이상이 생기더라도 위축될 겁니다.”

“심리적으로 위축된다는 말씀인가요?”

“전 재활 전문의입니다. 심리적인 문제를 말한 게 아니죠. 근육과 인대 등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의 말은 내게 희망과 걱정을 동시에 줬다.

나는 필요 이상으로 부상 재발을 염려하고 있다

만약 그걸 극복한다면, 더 강한 공을 던질 수 있다는 얘기도 될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나도 야구 좋아하거든요. 금강 선수가 던지는 걸 TV에서 봤어요. 걱정 말고, 자신감을 가지세요.”

이렇게 말하는 이세명 박사의 눈이 빛났다.


***


병원에 다녀온 뒤 나는 훈련량을 늘렸다.

웨이트 트레이닝 강도를 더 높였다. 물론 스트레칭 시간도 함께 늘렸다.


“웬일이야? 평소 무게보다 10~20%를 더 드네? 전에는 무게를 늘려보자고 해도 절대 안 하더니.”

김용 트레이너가 놀라서 물었다.


“응. 이제는 해도 될 것 같아서.”

“시즌 중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는 거 아냐? 풀타임 선발로는 첫 시즌이잖아?”


지난겨울부터 김용 트레이너는 역기 무게를 증량하자고 수차례 권유했다.

극한의 상황에서 힘을 짜내는 근력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해온 만큼만 했다.

무거운 걸 드는 것보다, 계획대로 꾸준히 운동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용 트레이너는 지금 내 오버페이스를 걱정하고 있다.


“형, 사실 말이야.”

“응?”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내 말을 기다렸다.


“나, 힘이 좀 남았어.”

“응? 뭐?”

“형이랑 운동할 때도 그렇고, 등판하는 날도 늘 힘이 남았다고.”


금강불괴의 팔을 얻고도, 나는 늘 불안했다.

순간순간, 전력을 다할 때도 있었다.

그래봐야 공 한두 개였다.


가끔은 힘이 빠진 것처럼 느낄 때도 있었다.

지나고 보면 그게 아니었다. 더 짜낼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내 힘을 다 써도 될 것 같았다.

의사가 그러라고 할 정도로 몸 상태가 좋다고 하니까.


“뭔 소리야? 힘을 다 쓰지 않은 거라고?”

“아무튼 그래. 당분간 이 무게를 유지해야겠어.”


김용 트레이너는 내 말을 믿지 않은 것 같았다.

말을 안 믿으면,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내 웨이트 트레이닝을 두 시간 동안 지켜본 그가 말했다.

“이거 완전히 사기 캐릭터네. 이걸 어떻게 들어?”

“전에도 대충한 건 아니었어. 자세를 정확히 잡고 하느라 나름 애썼지.”


나는 모처럼 땀을 흠뻑 흘렸다.

피로감과 성취감으로 온몸의 근육들이 알싸해지는 것 같았다.


“구속도 더 빨라지려나?”

“작년 한국시리즈에서 던진 155㎞가 내 최고 구속 같아. 그런데 혹시 모르지. 더 빨라질 수도.”


“와, 그럼 160㎞도 던지는 거 아냐?”

김용 트레이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형도 참, 오버하기는.

160㎞가 어디 애 이름인가?

마일로 환산하면 100마일이다.

메이저리그에서도 꿈의 구속이라며 열광하는.


“160㎞? 생각만 해도 황홀하다. 평생 딱 한 번만 던져봤으면 좋겠네.”

“지금 웃은 거야? 너 웃는 거 처음 봐.”

김용 트레이너의 목소리가 커졌다.


내가 웃었다고?

이렇게 힘들게 운동하면서?

게다가 우락부락한 이 남자 앞에서?


“형. 됐고, 내 하체 밸런스나 잘 봐줘.”

“왜? 스트라이드 줄인 것 때문에?”

“응.”


“보폭을 늘린 게 아니라 좁힌 거니까 문제없을 거야. 오히려 변화로 인한 상체 움직임을 봐야지.”

김용 트레이너는 내 골반을 유심히 관찰했다.


“내가 이래서 전문가를 고용한 거라니까.”

내 말을 들은 그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


한 달이 흘렀다.

나는 부산 해머스를 상대로 올 시즌 10번째 등판을 하게 됐다. 5월의 마지막 등판이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부산에서 해머스와 파이터스의 주말 3연전이 시작됩니다.]

[해머스는 김민석, 파이터스는 금강 투수가 선발로 나섭니다. 김민석이 금강의 강북고 1년 선배죠?]

[네. 고교 선후배의 맞대결입니다. 지금까지는 선배가 앞섰지만, 올 시즌은 좀 다르죠?]


다르다.

나는 올 시즌 9차례 등판해서 6승2패를 기록했다.

평균자책점 1.82로 전체 5위다.

외국인 투수를 제외한 국내 투수 중에서는 1위다.


김민석은 KBO리그 8년 동안 102승을 거뒀다.

국가대표 레벨은 아니지만, 해머스의 에이스였다.


그리고 2년 전, 나를 마지막으로 비웃은 사람이다.

공 하나를 던지지 못해 머뭇거리던 그 시범경기.

야유 사이에서 그의 목소리가 유난히 잘 들렸다.


“폼 그만 잡고, 이제 좀 던져라!”


고교 때부터 익숙한 비웃음이었다.

그때 난 오기 같은 걸 느꼈던 것 같았다.


이미 내 팔은 너덜너덜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그때 박살났을 것일까?


고교 시절부터 난 그에게 계속 졌다.

고교 2학년 때까지는 나도 야구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도 3학년 에이스에 비할 순 없었다.


프로에 와서는 아예 비교도 안 됐다.

아마 김민석은 평생 날 평생 이길 줄 알았겠지?

아니 평생 상대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그가 틀렸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이제 입장이 바뀌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김민석의 시즌 성적은 3승4패, 평균자책점 3.95.

적어도 올해는 내가 탑독이다. 그는 언더독이고.


그걸 김민석에게 똑똑히 보여주고 싶었다.


- 형, 뭐해?

“뭐하기는. 경기 준비하지.”


- 혹시 기본을 잊은 건 아니지?

“뭐래? 무슨 기본?”


- 상대는 김민석이 아니잖아. 해머스 타자들이지.

“그렇지. 누가 뭐래?”

- 전력 분석표 안 보고, 김민석만 보고 있잖아.


음······.

그랬나? 그러면 안 되지.


김민석은 1회 초를 실점 없이 막았다.

1회 말은 내 차례다.


해머스 1번 타자는 장준우다.

높은 공과 낮은 공을 모두 잘 대처하는 타자다.

대신 스트라이크 존 좌우를 찌르는 공에 약하다.


● 해머스 우타자 장준우

-타율 0.343 / 출루율 0.411 / 홈런 5개

-우투수 타율 0.351 / 우투수 홈런 3개

-강점 : 낮은 코스 상위 8% / 패스트볼 상위 3%

-약점 : 높은 코스 하위 31% / 변화구 하위 60%

-통산 상대 전적 : 27타수 7안타


난 묘하게 장준우와 꽤 많이 상대했다.

불펜 투수는 특정 선수와 자주 만나기도 한다.

장준우는 오른손 타자여서 해머스의 다른 선수들보다 상대할 기회가 많았다.


통산 피안타율 0.259로 그리 나쁘지 않았다.

내가 한참 빌빌거릴 때 만난 타자치고는 내게 약했다.


빠른 공을 잘 치는 장준우에게 과거 내 느린 공은 타이밍을 잡기 더 어려웠을 수 있다.

게다가 그는 커브를 잘 받아친다. 예전의 나는 슬라이더 투수였다.


전혀 위력적이지 못한 내 투구와 장준우의 날카로운 스윙은 대체로 엇박자였다.


기록을 보니, 그와 27번을 만나는 동안 볼넷을 하나도 내주지 않았다. 삼진도 잡지 못했다.

장준우는 공을 다 때려냈지만, 소프트한 타구였다.


지금은 어떨까?

패스트볼과 커브볼로 무장한 올해의 금강과는?


슈우우욱~.

“스트라이크.”


나는 슬로커브로 시작했다.

타자 머리 위에서 낙하하기 시작해 무릎 높이까지 다다르는, 시속 91㎞의 공.


[아~! 금강 투수. 커브로 오늘 경기를 시작합니다.]

[저 궤적 보세요. 느리지만 아주 큰 포물선을 그리며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했습니다.]

[회전이 엄청났습니다. 타자 입장에서는 히팅 포인트가 딱 점 하나뿐인, 까다로운 공이죠.]


장준우는 타석에서 물러섰다.

그리고 빈 스윙을 빙빙 돌렸다.

그는 내 커브를 처음 봤을 것이다.


게다가 보통 커브보다 더 느린 아리랑볼.

그게 어디 그냥 공인가?

아리랑 고개에서 넘어진 내 한이 서린 공이다.


장준우 머릿속에 커브가 남아 있을 때, 다음 공을 던져야 한다.


슉-.

부웅.

“스트라이크 투.”


2구는 바깥쪽 낮은 패스트볼이었다.

장준우는 그걸 노린 모양이었다.

지체하지 않고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러나 타이밍이 늦었다.

내 공은 시속 151㎞였다.

공이 포수 미트에 박힌 뒤 그의 배트가 돌았다.


[2구는 패스트볼입니다. 초구와 무려 60㎞의 속도 차이가 났어요.]

[지금까지 제가 본 속도 차 중에서 가장 큰 거 같은데요. 금강 선수, 대단합니다.]

[한 달 전부터 커브 구사 비율이 높아졌거든요. 지난 경기부터는 슬로커브도 가끔 던집니다.]


주도권을 잡았을 때 승부를 마무리해야 한다.

서두르는 건 아니다.

정신은 똑바로 차리고 있다.


결정구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바깥쪽 하이 패스트볼.


슉-.

부웅~.

“스트라이크 아웃.”


[삼진! 헛스윙 삼진입니다.]

[시속 152㎞였어요. 어떤 공이 들어올지 알았다고 해도, 치기 어려운 공이에요.]

[장준우가 로볼 히터인데요. 저렇게 하이 패스트볼이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면 속수무책이죠.]

[금강 선수가 슬로 스타터였거든요. 최근에는 1회부터 150㎞ 이상의 공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출발이 좋았다.

스트라이드를 줄인 새 투구 폼이 이제는 내 것이 된 것 같다.


완전한 톨 앤드 폴(Tall and Fall) 유형은 아니다.

그래도 내 몸에 맞는 수평 이동과 수직 이동의 밸런스를 찾은 것 같다.


스트라이드를 20㎝ 정도 줄였다.

릴리스 포인트는 평균 12㎝ 높아졌고, 일정해지고 있었다.


덕분에 커브를 던지는 궤적이 좋아졌다.

손에 척척 감기기 시작하면서 회전력이 높아졌다.

슬라이더 투수였던 나는, 한 달 만에 커브볼러로 변신했다.


레퍼토리가 바뀌었지만, 스타일은 여전했다.

투구 수를 아끼며 1~3구 내에 승부를 보려는 성향 말이다.


딱!

이번에는 실패했다.

나는 해머스 2번 타자 리카르도 마차도에게 중전 안타를 맞았다.

초구에 던진 시속 118㎞ 커브가 가운데로 몰렸다.


- 형답지 않게 방심했네?

동윤이가 살살 약을 올렸다.


“방심할 수도 있지. 3시간 내내 집중하냐?”

- 와~. 이제 여유가 넘치네.


“괜찮아. 초구 던져서 단타 맞은 건데.

- 그럼. 볼넷보다 훨씬 낫지.


“확실히 외국인 타자들이 커브는 잘 치네.”

- 그러게. 체인지업이 나을 뻔 했어.

“초구부터 체인지업을?”

- 뭐 어때? 역으로 가는 거지.


잘 생각해보니 동윤이 말이 맞다.

체인지업의 리스크는 밋밋하게 들어갔을 때다. 장타 허용을 조심해야 한다.

마차도는 정확한 타자다. 대신 장타력이 아주 뛰어나지는 않다.


체인지업부터 시작할 걸 그랬나?

동윤이 덕분에 한 번 더 생각할 기회를 얻었다.

짧게 수다를 떨면서 긴장도 풀었고.


해머스 3번 타자 김태형을 2루 땅볼로 잡았다.

왼손 타자인 그의 몸 쪽으로 커브를 먼저 던졌다.

이어 바깥쪽 패스트볼이 볼 판정을 받았다.

3구도 바깥쪽 패스트볼. 스트라이크였다.

볼카운트 2스트라이크-1볼에서 던진 체인지업을 김태형이 잡아 당겼다.


느린 땅볼이 구르는 사이, 마차도는 2루로 뛰었다.

2사 2루.


이제 해머스 4번 타자 박강덕과 상대할 차례다.

신인이었던 나에게서 시즌 59호와 60호 홈런을 때린, 내게 트라우마를 안긴 박강덕 말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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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돈보다 공(1) +2 20.10.16 1,181 21 12쪽
19 두 번째 기회(2) +3 20.10.15 1,228 21 12쪽
18 두 번째 기회(1) 20.10.14 1,240 2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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