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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망작
작품등록일 :
2020.10.12 15:10
최근연재일 :
2021.12.2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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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1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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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4. Chapter 16. Episode 67

DUMMY

‘그’는 칠흑만이 가득한 흑암 속에서 눈을 떴다.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경험이다.

기억하기도 힘든 과거.

그는 사람이기를 포기했고, 이후 굳이 잠을 자지 않아도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에 지난 수백 년 동안, 그는 잠들지 않고, 계속 눈을 뜨고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렇기에 이 잠에서 깬다는 오랜만에 느끼는 감각은 그리 특별할 게 없음에도 조금 신선하게 느껴졌다.

[역시 무리를 한 모양이군.]

그의 육신은 피곤을 느끼지 못한다. 현재 그를 구성하고 있는 몸은 모두가 거짓.

골(骨), 육(肉), 혈(血), 경(經).

인간의, 아니 생물의 신체를 구성하기 위한 필수적인 재료. 그중 무엇하나 존재치 않는 그의 육체에 피로감 따위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영혼은 있었다.

어제 진행한 의식. 그것은 이미 수백 년을 살아오면서 마력과 신력을 다뤄온 그에게도 부담을 주기 충분했다.

그렇기에 그는 굳이 잠을 잔다는 행위를 모방했다. 잠깐이나마 자신의 영혼을 쉬게 하도록.

이제 완전히 각성한 ‘그’는 서서히 어제 자신이 만들어놓은 풍경을 돌아보았다.

어둠을 제하고 보자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허리께에서 찰랑거리는 검붉은 액체다. 추악한 인간들의 핏물과 뇌수로 만들어진 그것은 점성 때문인지 호수나 연못이 아닌, 흙탕물로 가득한 늪처럼 느껴졌다.

이어서 그의 눈동자에 그 형상을 새기는 것은 거대한 신상(神像).

인골로 골조를 만들고, 인육을 사람의 생피로 반죽해 살을 만들고, 힘줄로 그 살을 엮어낸 저주받을 마물. 그것의 형상은 꼭 개구리나 두꺼비와 같은 양서류를 최악의 저주를 담아 모독적으로 뒤틀어놓은 것만 같았다.

그 신상의 꼭대기. 한 사람이 있었다.

얼굴에 가면을 쓴 것을 제외하고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작은 체구의 여성.

‘그’가 새로운 계획을 위해 충동적으로 준비한 두 번째 사냥개.

‘그’는 두 눈이 자신의 사냥개의 모습을 보았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충분히 미인이라고 할 법한 여인의 알몸. 하지만 지금 그의 눈이 살피는 건 그런 하찮은 것이 아니었다.

그가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그녀를 사냥개로 다시 태어나게 만들 때 시행한 대법의 진행 상황.

[아직 ‘변화’까지 오지는 않았군.]

하긴 그녀에게 가한 것은 오직 1차 시술뿐. 그녀의 육체를 재탄생시킬 대법은 아직 몇 차례 추에 시술이 필요하다.

‘적어도 한 번 정도는 더 대법을 시행해야 변화가 있겠지.’

이것은 그나마 그녀에게 한 시술이 간단한 것이기에 나오는 결론. 그녀가 아닌 ‘진짜 사냥개’는 완성하기까지 좀 더 오랜 시간이 필요로 하리라.

‘피곤하군.’

그 현실을 인식하자 피로감이 엄습했다.

그의 뇌리에 어제 ‘최고의 사냥개’에게 진행했던 주술 의식이 떠올랐다. 모든 종류의 신비에 익숙해진 그로서도 실로 오랜 시간을 들여서 완성한 대법. 그것과 같은, 혹은 그보다 복잡한 의식을 앞으로 몇 차례나 진행해야만 한다.

‘어쩔 수 없지.’

마음 같아서야 느긋하게 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이 ‘사도야행’이라는 기간이 그리 길지 못했다.

그렇게 속으로 한숨을 쉰 그는, 문득 자신이 누군가를 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블레어는 어디 있지?]

그는 이 새 사냥개에게 그녀의 선배가 어디 있는지 물었다.

대답은 말로 돌아오지 않았다.

사냥개는 그저 묵묵히 손가락을 뻗어 이곳의 출구를 가리킬 뿐.

[그 녀석 설마 나간 건가?]

이번에도 대답은 없이 그녀는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그런 면에서는 전혀 변하지 않았군.]

마음가짐을 달리 먹은 것 같긴 하지만, 여전히 제어하기 참으로 힘든 사냥개다.

‘그렇기에 내가 녀석을 다시 찾아온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1차 의식만을 끝낸 이상, 녀석을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만약 완전한 사도라도 마주친다면 녀석이 ‘무엇’인지 곧바로 파악해낼 테니까.

[녀석을 데려오도록.]

그렇게 명령하자, 작은 사냥개는 신상에서 뛰어내리더니 늪으로 깊이 잠겨 들어갔다.

이윽고 입구 근처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건 조금 전과는 달리 기묘한 옷을 차려입은 사냥개의 모습. 사냥개는 그대로 천천히 출구로 걸어갔다.

‘조금 불안하기는 하군.’

저 사냥개는 블레어와는 달리 들키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정신적으로 아직 불안정하다.

‘마음 같아서야 따라가고 싶다만.’

유감스럽게도 그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할 일이 많았다.

이제 블레어 녀석을 위한 두 번째 의식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 ***


‘뭐냐 이 감각은?’

가슴이 울렁거리는 감각을 억누르며 에스텔은 눈앞에서 웃고 있는 상대를 노려보았다.

창백하다 못해 핏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의 피부는 에스텔의 마력검 특유의 푸른빛에 비쳐 요사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그 칼날이 있는 곳은 얇고 가는 목으로부터 고작해야 한 치 앞.

가늘다. 에스텔은 그렇게 생각했다.

마법사는 물론, 그저 힘센 장정이 조르기만 하더라도 금방 부러질 것처럼 가녀리다.

반대로 거기에 닿아있는 마력의 칼날은 어떠한가?

연약한 녀석의 육체와는 대조적으로 그것은 파괴 그 자체다. 강철 따위는 어렵지 않게 양단해버리며, 특수한 합금이나 강력한 결계를 제외하면 손쉽게 갈라버리는 무기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웃고 있어?’

그녀에게 목숨의 위협을 받는 이 사람의 탈을 쓴 짐승은 웃고 있었다. 마치 이런 것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나는 어떻지?’

에스텔은 왠지 자신의 몸 상태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긴장감 때문인지 땀에 젖은 손바닥이 기분 나쁠 정도로 축축했다. 심장은 전력 질주를 했을 때처럼 쿵쾅거리고 호흡은 거칠었다.

‘대체 뭐냐 이 감각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전에 만났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그녀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다.

본디 마법조차 사용할 줄 모르던 이 자는 사도의 힘마저 잃고 완전히 몰락했다. 아마도 지금의 저 살인귀는 기습 없이는 훈련받은 병사 하나 처리하기 힘들 터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자신은 훨씬 강해졌다.

그녀의 검기는 훨씬 날카로워져, 이제는 누구에게도 쉬이 지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거기에 완전 마력검까지 자유롭게 다루게 되었으니 마력을 다루는 능력 역시 압도적으로 성장했다.

그저 일반인과 최상위 마도기사.

비교하는 것조차 무의미한 상황이다.

‘그런데 왜 내가 불안해하는 것이냐? 왜 지금 당장이라도 녀석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충동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냐?’

마치 동굴 속에서 헤매다 겨울잠을 자는 곰을 발견한 사냥꾼처럼.

“흐흥~. 성장해서 그런가, 감이 좋아진 모양이네~?”

그런 에스텔의 머릿속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블레어의 입가에 새겨져 있던 비릿한 미소가 그 깊이를 더해갔다.

“하지만 아직 우유부단하네~. 그래서는 사냥을 못 하겠는거얼~?”

“닥쳐라!”

에스텔을 조롱하며 그녀를 직시하는 블레어의 눈동자. 에스텔은 그것이 왜인지 꼭 인간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두근-!

심장이 뛰었다. 저 눈을 보자 블레어를 향한 살의는 어째서인지 커져만 갔고,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속삭임이 들려왔다.

‘죽이지 그래?’

누가 말하는 걸까?

머릿속 음성의 정체를 그녀는 알지 못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녀의 이성이 조금씩 바스러져 간다는 것뿐.

그렇게 서서히 에스텔의 입가에 살기 가득한 웃음기가 떠오를 무렵, 귓가에 시원한 바람이 한 줄기 불어 닥쳤다.

‘이건?’

이타콰의 북풍.

본래라면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드는 재앙일 테지만, 위력을 낮춘 지금은 상쾌한 바람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머리가 맑아졌어?’

단순히 시원한 바람에 머리가 식은 것일까?

‘아니 뭔가 달라.’

에스텔이 갑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에 고심할 때쯤 북풍의 주인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괜찮아, 누님?”

빅토리아, 한 때 이타콰의 사도였던 소녀는 한쪽 손에 작은 얼음 조각을 띄워둔 채, 에스텔의 옆에 섰다.

“어떻게 된 거지?”

갑작스럽게 사라진 머릿속 목소리에 살짝 혼란스럽다는 듯이 질문을 던지는 에스텔. 그런 에스텔의 말을 들은 빅토리아는 잠시 블레어를 노려보더니 에스텔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거. 사람이 아니야.”

돌아온 것은 답변이라고 할 수 없는 기묘한 선문답. 그 말에 에스텔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나도 저것이 사람답지 않다는 건 알고 있······.”

“그런 뜻이 아니야.”

빅토리아의 발화가 끝나기 무섭게 그녀의 손끝에 떠올랐던 조그마한 얼음이 비수가 되어 블레어의 손을 꿰뚫었다.

깊게 박히기 이전에 녹아내렸기 때문인지 생긴 것은 아주 작은 상처뿐. 그 상처의 틈으로 본래라면 붉은 피가 흘러나와야 했겠지만······.

“저건?!”

거기서 흘러나온 것은 인간의 피가 아니었다.

점성이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 색상은 푸르렀다.

마치 원해의 표면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처럼 푸르게 느껴지는 액체. 거기에 그 액체에서 풍기는 냄새 또한 피비린내와는 전혀 다른 향이었다.

‘생선 비린내?’

에스텔은 자신의 코를 어지럽히는 익숙한 냄새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왜 저자의 체액에서 어시장에서나 맡을 법한 냄새가 풍긴단 말인가?

“말했잖아, 누님.”

그런 에스텔을 향해 살짝 한숨을 쉬는 빅토리아.

“저건 사람이 아니라고.”

조금 전과는 달리 에스텔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빅토리아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흐응~. 예상외인걸? 어떻게 알았으려나~?”

빅토리아가 이를 알아챈 것이 의외인 것일까?

처음 만난 이래 저 소녀에게 관심조차 두지 않던 블레어의 눈동자가 빅토리아를 향했다.

“나도 처음에는 몰랐지. 네가 누님한테 대놓고 그런 짓을 하기 전까지는.”

“그런 짓?”

그 말을 듣자마자, 에스텔의 뇌리에서 갑작스럽게 속삭이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마치 깊은 곳 어디선가 직접 말을 걸어오는 것과 같은 음성. 인간의 것이 아닌 좀 더, 심연에 가까운 무언가가 부르는 소리.

‘하지만 어떻게?’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질 않고 그런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야하~! 너도 사도였었구나~. 히히히. 아예 관심이 없었는데 조금······ 재미있어졌어~.”

잠시 빅토리아를 바라만 보던 블레어는 자신을 꿰뚫은 얼음을 보면서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에스텔은 보았다.

아주 잠깐이지만, 블레어의 두 눈동자가 인간의 것이 아닌 두족류 혹은 어류의 것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아아~. 재미있네~. 재미있어~. 너희들 모두랑 오랫동안 즐기고 싶을 정도로 정말로 재미있어. 히히히힛!”

그의 웃음이 다시 짙어져 가자, 에스텔의 머릿속에서 다시 속삭임이 들려왔다

당장 녀석을 죽여라.

그렇지 않으면 네 녀석이 죽는다.

그 속삭임은 분명히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녀의 생존 본능에 열렬히 호소하고 있었다.

‘크윽!’

그 충동에 전력으로 저항하려던 순간.

“하지만 안 되겠네~. 만나려던 사람이 와버렸잖아~.”

땅이 울렸다.

정확히 말하면 지면이 울린 것은 아니다. 진동을 일으킨 것은 이 건물, 그 자체.

“뭐, 뭐야? 설마 무너지는 거야?!”

그 진동에 당황한 빅토리아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에스텔은 다른 의미로 놀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이전에 느낀 적이 있는 진동이었다.

보어헤스 백작과의 강제 결혼식 날, 그녀의 앞에 떨어져 내려온 구원자가 만들어냈던 진동.

그레고르가 빅토리아의 힘이 아닌, 본인의 둔갑술과 사도의 능력으로 비행한 뒤 착지했을 때의 소리.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문밖 복도에서 발소리가 가까워져 왔고, 낡아빠진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레고르!”

“형씨!”

복도 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에게 반가움을 표하려던 에스텔과 빅토리아.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온 이, 그레고르는 인사조차 하지 않은 채 블레어에게 다가가 그의 목을 붙잡았다.

뼈와 관절이 뒤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나마 최소한의 이성으로 사도 강림은 해제한 상태였지만, 뒤틀린 그레고르의 손 형상은 그가 부분 둔갑으로 인간이 아닌 생물의 힘을 끌어내고 있다는 것이 분명했다.

아마도 지금 저 손은 강철조차 아무렇지 않게 우그러뜨릴 강력을 지니고 있을 터.

“햐핫! 좋네, 좋아~! 많이 바뀌었네, 그레고르!”

그 악력에 목이 졸리면서도 블레어는 당황하지 않고 웃음만을 지어갔다. 인간의 것이 아닌 괴이한 눈을 뜬 지 오래인 채로.

‘대체 왜 저렇게 화를 내는 거지?’

그런 그레고르의 모습에 당황한 에스텔은 슬쩍 그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 이유가 지나치게 분노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블레어를 사람으로 보고 있지 않기 때문인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길게 묻지 않겠다.”

마치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는 소리로 입을 여는 그레고르를 보며 에스텔은 처음으로 그런 감정을 떠올려 버렸다.

“오드리를 어떻게 했지?”

그가 왠지 조금 무섭다고.


*** ***


‘아, 하핫!’

목이 부러질 것 같은 압박감을 느끼면서도 블레어는 전혀 분노하지도 공포에 질리지도 않았다.

지금 그레고르는 그가 원하던 모습으로 되어가고 있었다.

자신과 같은 존재. 그와 같은 사고 패턴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이.

그것이 그레고르가 블레어를 꺾은 이래 그가 바라던 그레고르의 변화 방향이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한걸~.’

블레어를 죽이려던 그는 지금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저 두 계집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두 눈은 아직 자신과 같은 외도가 아닌 사람에 가깝다.

‘저 장난감들을 눈앞에서 가지고 놀아주면 조금 바뀔까~?’

그것 역시 재미있는 일이겠지.

저 장난감들이 부서질 때 자신처럼 변해가는 그레고르를 떠올리니 블레어는 흥분감으로 피가 한쪽으로 쏠리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할 수 없겠지~.’

감옥에서 나온 그는 아직 완성되질 않았다. 사도는 물론이거니와 눈앞에 있는 이 두 장난감 상대로도 우위에 설 수 없을 터.

‘그러니 지금은 다른 장난감을 떠올려야겠지~?’

마침 다른 장난감은 ‘할배’의 손에 있었다.

“오드리~? 그게 누구더라~?”

그가 웃으면서 말하자 목에서 압박감이 조금 더해졌다.

“키키키키. 성질이 급해졌네, 그레고르~. 그래도 덕분에 생각났으니까 고마워라~. 어디 보자. 작은 계집애였지~? 너랑 첫 싸움 때 내가 잡았었던? 흐흥, 어쨌더라?”

“······말해라.”

듣고 싶은 말이 나왔음일까? 블레어는 자신의 목을 통해 들어오는 압박감이 조금 약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되지~.’

조금 등을 밀어줘야 할 시간이다.

“가지고 놀았어~.”

“······뭐?”

“내 마음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가지고 놀았어. 그때 정말 재미있었는데 말이야~.”

“······.”

“조금씩 망가질 때마다, 선배~ 선배~ 구해줘요~라고 말해댔다~. 히히히힛. 아, 하지만 그래도 나중에는 그렇게 못 말했어. 내가 더는 못 가지고 노니까~. 인간을 번식용으로 쓰는 마물에게 줘버렸거든~. 야핫! 진짜 진짜로 재미있었는데~.”

블레어는 미친 듯이 웃으며 그레고르에게 구체적인 과정을 설명했다. 그 내용이 이어질수록 뒤에 다른 ‘장난감’들이 분노하거나 헛구역질을 했지만. 그런 것 따위야 그의 관심 밖이었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그레고르의 눈.

분노를 넘어서 차갑게 식어가는 그의 두 눈동자.

“······그래.”

그리고 그의 말이 모두 끝났을 때, 그레고르의 표정은 더는 읽을 수 없게 되었다.

‘자, 어떻게 움직일까?’

이제야 그를 ‘이해하기’ 위해 목을 꺾어버릴까? 아니면 자신의 후배와 똑같이 만들어주겠다고 나설까?

속으로 블레어가 웃음을 지어 보일 때쯤.

그레고르는 손을 놓아버렸다.

“거짓말이군.”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은 블레어에게 그레고르는 조금 풀린 표정으로 말했다.

“완전히 거짓말이야.”

블레어는 그레고르의 입에서 나온 말에 눈동자가 떨리는 것을 느꼈다.

심적인 충격을 입었기 때문인지, 두족류의 것처럼 변해가던 두 눈 역시 완전히 인간의 것으로 돌아온 지 오래다.

“야핫!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려나~?”

“진실이라면 넌 나한테 설명하지 않았을 테니까. 아마 걔가 무사히 살아있는 것처럼 굴면서 나한테 나중에 시체를 보여줬겠지.”

그게 내가 이해한 너니까.

그레고르는 분석 뒤에 그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 말을 듣고 블레어는 처음으로 기쁘게 웃었다.

마음에 들었다.

방향성은 다르지만, 처음으로 자신을 이해한 행동을 하는 것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제법이네~.”

그렇기에 블레어는 제안했다.

“이번엔 진짜로 알려줄 테니까 너 우리 편이 되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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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연재 주기 변경 안내 20.11.16 173 0 -
88 Act4. Chapter 20. Episode 88 21.12.26 43 0 14쪽
87 Act4. Chapter 20. Episode 87 21.12.19 58 0 13쪽
86 Act4. Chapter 20. Episode 86 21.12.05 43 0 12쪽
85 Act4. Chapter 20. Episode 85 21.11.28 47 0 12쪽
84 Act4. Chapter 19. Episode 84 21.11.21 51 0 12쪽
83 Act4. Chapter 19. Episode 83 21.11.07 55 0 13쪽
82 Act4. Chapter 19. Episode 82 21.10.31 44 0 13쪽
81 Act4. Chapter 19. Episode 81 21.10.24 57 0 12쪽
80 Act4. Chapter 19. Episode 80 21.10.17 45 0 13쪽
79 Act4. Chapter 19. Episode 79 21.10.10 49 0 13쪽
78 Act4. Chapter 18. Episode 78 21.10.03 46 0 15쪽
77 Act4. Chapter 18. Episode 77 21.09.26 51 0 14쪽
76 Act4. Chapter 18. Episode 76 21.09.19 57 0 13쪽
75 Act4. Chapter 18. Episode 75 21.09.12 50 0 13쪽
74 Act4. Chapter 18. Episode 74 21.09.05 59 0 14쪽
73 Act4. Chapter 18. Episode 73 21.08.29 47 0 16쪽
72 Act4. Chapter 17. Episode 72 21.08.22 47 0 14쪽
71 Act4. Chapter 17. Episode 71 21.08.15 48 0 16쪽
70 Act4. Chapter 17. Episode 70 21.08.08 50 0 14쪽
69 Act4. Chapter 17. Episode 69 21.08.01 58 0 13쪽
68 Act4. Chapter 16. Episode 68 21.07.25 48 0 15쪽
» Act4. Chapter 16. Episode 67 21.07.18 57 0 17쪽
66 Act4. Chapter 16. Episode 66 21.07.11 55 0 16쪽
65 Act4. Chapter 16. Episode 65 21.07.04 64 0 15쪽
64 Act3. Chapter 15.5. Episode 64 21.06.27 54 0 16쪽
63 Act3. Chapter 15. Episode 63 21.06.20 53 0 18쪽
62 Act3. Chapter 15. Episode 62 21.06.13 63 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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