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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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맨션
작품등록일 :
2020.10.12 23:01
최근연재일 :
2020.12.30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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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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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우(2)

DUMMY

1980년 영인대 경호학과.


우리나라 최고의 경호학과이자 대통령부터 시작해 대한민국 정재계 거물들의 경호원은 대부분 이곳 영인대 출신이다.


그 시절 두 명의 에이스가 있었다.



“강일우, 박재우.”


“···”


“이 새끼들 또 튀었어?!?!?! 이놈들을 그냥!!!” 그들의 취미는 수업 땡 까먹기. 수업에 성실하지 않아도 경호학과 그 어떤 교수들도 두 사람에게는 관대했다. 그들은 독보적이었으니까.


태권도 4단 유도 5단 검도 5단 합기도 5단 특공무술 1단 도합 22단을 소유한 경호학과 학생은 영인대 설립 이래 박재우 한 명뿐이었으며, 그보다 검도 2단이 모자라지만 특공무술 2단을 보유한 강일우 역시 전례 없는 케이스였다.

두 사람은 영인대 경호학과의 공동 수석이자 영인대의 대표 얼굴이었다.



여느 때처럼 경호학과 김 교수가 분노한 그 시각, 일우와 재우는 영인대 앞 골목에 있는 떡볶이집에 와있다.



“야 일우야.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왜 대학 와서 처음 알았을까?”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행운이지. 행운은 잡는 사람에게 기회가 오는 거고.”


“암 그렇고말고.”


“이모 여기 1인분 추가요!!!”


“그나저나 일우 너는 왜 우리 과로 전과한 거냐.”


“왜 했냐니. 너 만나려고 했지 인마.”


“새끼 장난치지 말고. 컴퓨터 공학과 계속 다녔으면 더 대우받으면서 좋은 직장 다닐 수 있잖아. 특히나 요즘 들려오는 썰에 의하면 미래에는 AI가 사람을 대체한다던데 정말 그렇게 되면 그쪽 수요가 높지 않겠냐.”


“흠··· 그렇담 그동안 따 놓은 나의 현란한 자격 스펙이 아깝달까.”


“그것도 그렇지만 그게 이유가 되진 않지. 경호원은 어찌 보면 돈 많고 빽 있는 사람들 시다바리니까.”


“내가 어렸을 때부터 왜 그렇게 자격증들을 따댔는지 말 한 적 있나?”


“아니. 말해준 적 없다.”


“그 시절 힘이 없던 내가 너무 싫었어.”


“무슨 소리야?”


“나 어렸을 때 우리 아버지. 툭 하면 술 처먹고 들어와서 우리 어머니 괴롭혔거든. 나랑 내 형도. 그래서 하루는 어머니가 도저히 못 참겠다며 집을 나가셨는데 교통사고 나셨어.”


“···”


“그날 돌아가셨고.”


“미안하다. 일부러 물어본 건 아닌데···”


“오래전 일인데 뭘.”


“그래도.”


“아무튼 그때부터 나는 내가 강해져야겠다고 생각했어. 다시는 내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아서.”


“강일우의 악바리 근성에 그런 사연이 있었군···”


“처음에는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내가 주변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더라고. 양아치한테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까 몸이 근질근질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


“그 기분이라면 나도 잘 알지. 나쁜 새끼들은 아주 다 혼줄을 내줘야 해.”


“누군가를 지킨다는 거. 굉장히 어렵지만 의미 있는 일이야. 나는 그걸 내 숙명으로 삼고 싶어.”


“멋있다. 너란 사람.”


“그리고 컴퓨터 공학 거 알아먹지도 못하는 외계어들만 보고 있자니 눈이 너무 아프더라!”


“핑계도 참. 아무튼 넌 정말 대단한 놈이다. 강일우!!!”


“22단 보유자 박재우만 할까!!!”


“하하하하하핫.”



둘은 초등학교 시절 이후로 누군가에게 ‘질투’라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사전적 의미로 남을 부러워하는 감정, 또 그것이 고양된 격렬한 증오나 적의. 즉 ‘질투’란 남이 뛰어난 것이나 운이 좋은 것을 불편해하는 감정을 말한다.


질투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그 감정을 숨긴다. 그들은 대게 자존감이 낮고 자존심이 세기 때문에 자신이 남을 부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둘은 너무 뛰어났다.

운동을 잘하는 학생들은 항상 다른 학생들에게 칭송받았으며, 대학에서는 학생들뿐 아니라 교수님들까지도 그들을 인정했다. 너무나도 잘난 두 사람이었기 때문에 질투는 그들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래서 진심으로 서로를 응원해 줄 수 있는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



“일우야 취업 준비 잘 돼 가냐.”


“그냥 여기저기 원서 내 보고 있는 거지 뭐.”


“하긴. 나도 마찬가지다. 어디 연락 온 데 있어?”


“사실··· 삼일 그룹 회장 개인 경호원···”


“월 기본급 700만 원 보장이라는 그 보직?!”


“역시 너도 알고 있었구나. 거기 운 좋게 3차 실기까지 붙어서 최종만 남겨두고 있는데··· 한 명 뽑는 자리라 솔직히 확신이 없다.”


“···그렇군. 최종은 그냥 회장님이랑 대화 나누는 자리 아니냐.”


“그렇다고 들었는데 1:1 면접이고 시간도 다 달라서 경쟁자가 몇 명인지, 누구인지도 모른대.”


“축하한다. 응원할게.”



삼일 그룹. 우리나라 시총 1위 기업이며 삼일이 무너지면 우리나라가 무너진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누구나 입사하고 싶은 기업이다. 그런 기업 회장님의 개인 경호원 자리라니.


평소 같았으면 이 좋은 날 재우는 일우의 3차 실기 합격을 축하하고 최종 합격을 응원한다며 자주 가던 곱창집으로 데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박재우의 모습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진심이 아닌 눈동자.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나 느끼는 하찮은 감정. 그 감정들을 박재우가 느끼고 있었다.


일우는 그런 재우의 모습을 보고 의아했으나 이내 같은 취업준비생 입장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



일우와의 만남을 뒤로하고 집에 돌아온 재우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본다.



“왜 하필 너냐 강일우···”



사실 며칠 전 재우 역시 3차 실기시험에 합격했다. 수소문 끝에 얻은 정보는 3차 실기에서 딱 두 명만 합격했다는 소문.


그런데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한 명이 하필 강일우라니!



박재우는 강일우를 진심으로 좋아했다. 그와 함께 보낸 4년은 허리가 꼬부라진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거라고 생각했었고, 영원히 서로를 응원해줄 수 있는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일우가 자신의 경쟁자라 한다. 사실 일우는 부모 두 분이 세상을 떠났지만 하나 있던 형의 사업이 성공해서 먹고 살만하다고 했다.



아니.


사실 자신의 기준 매우 부유하다.

형과 둘이서 서울 강남 한복판 40평대의 집에 살고 있으니.



스스로가 뛰어나 자존감이 낮아 본 적은 딱히 없었지만 지금 자신이 서 있는 8평 남짓한 단칸방이 조금 더 초라해 보이는 밤이었다.



“이번 한 번만 나한테 양보해주면 안 되냐. 월 700··· 없어도 넌 살 수 있잖아. 강일우.”




***



최종 면접날 아침이 밝았다.

재우는 이날 면접을 위해 샀던 네이비 컬러의 정장을 옷장에서 꺼냈다. 몇 달간 체육관에서 일하며 모은 돈을 들고 백화점에 가서 꽤나 비싼 브랜드 정장을 한 벌 구매했다. 최고의 기업 회장님을 만나는 만큼 최고의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고의 사람으로 보이려면 자신뿐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들도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강일우보다 무엇 하나라도 뛰어나야 했다.



따르릉-



“응. 수연아.”


“어 자기야~ 준비 다 했어?”


“준비 다 마치고 이제 나가려고. 후. 떨린다.”


“자기는 원래 실전파니까 이번에도 틀림없이 잘하고 올 거야! 그리고 자기는 인상이 좋아서 어르신들한테 먹히는 얼굴이라구.”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수연아.”


“왜 또 목소리가 기어들어 가실까~? 긴장하지 말고 아자아자 화이팅!!!”


“귀엽긴!!! 나 잘하고 올게. 딱 기다리고 있어. 반지 낄 준비!!!”


“하여튼 맨날 말로만 감동시켜 아주!!! 끊는다!!! 쪽!”



뚝-



3년 사귄 여자친구 수연. 이렇게 좋아하고 사랑하는 여자를 일생에 다시 만날 자신이 없다. 수연의 부모님도 재우가 마음에 들었다. 그들은 두 사람이 빨리 결혼하기를 원했으나 재우는 번듯한 직장이 있는 상태에서 멋지게 그녀에게 청혼하고 싶었다. 이번에 취직에 성공하면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할 것이다.



“하하핫. 그래. 파이팅이다. 박재우!!!”



들뜬 마음으로 자신의 단칸방을 나서는 박재우.

오늘은 왠지 운수가 좋을 것 같다.




***



빵빵-



차가 막힌다. 들려오는 뉴스에 의하면 요 앞 사거리에서 사고가 났다고 한다. 이대로 가면 분명 지각하게 될 것이다.

면접 시간은 오전 11시. 지금은 오전 10시 30분. 면접 시간까지는 30분. 중요한 자리에 헐레벌떡 들어갈 수는 없으니 5분 전에는 도착해야 한다. 면접 장소까지는 차로 10분. 걸으면 50분 걸릴 것이다. 그렇다면 뛰면?



20분.



20분이면 가능하다.



차를 버리고 달린다. 얼마 하지 않지만 나름 소중했던 중고차를 버리고 갈 수 있는 이유는 그만큼 놓치고 싶지 않은 자리이기 때문이다.



아니. 이 정도 월급과 이 정도 복지를 보장해주는 경호원 자리는 내 인생에 다신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행운은 잡는 사람에게 오는 것이다.

고로 오늘 나는 꼭 이 행운을 잡아야 한다.




***



드디어 회사 앞에 다다랐다. 현재 시각 10시 50분. 지금 속도로 계속 뛰었을 때 남은 거리를 시간으로 계산해보면 약 2분. 면접 시간보다 8분 일찍 도착할 수 있다.



“가자~!!!!!!!!!!!”



빠앙-

퍽-



‘아··· 안 되는데··· 가야 하는데··· 면접 봐야 하는···’




***



눈을 떠보니 이미 면접 시간을 2시간이나 지나버린 오후 1시였다.



“오빠!!! 괜찮아?!?!?! 어떡해··· 흐흑···”


“다행히 충격에 의한 소량의 뇌출혈 외에는 큰 이상이 없습니다. 하루 이틀 입원했다가 퇴원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



눈을 뜨니 여자친구 수연이 자신을 보며 울고 있다. 걱정되어 한걸음에 달려왔는지 양말이 짝짝이다. 한쪽은 하얀색, 한쪽은 검정색.



수연을 보니 머리가 멍해졌다.



‘이 여자 내가 꼭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오빠.”


“미안해. 수연아···”


“우리 결혼하자.”


“뭐···?”


“결혼하자. 나 사실 그렇게 크진 않지만 부모님이 내 명의로 해주신 집 있어. 오빠가 괜히 미안해할까 봐 말 안 했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어. 매일 매일 오빠가 보고 싶고 오빠 챙겨주고 싶고 오빠한테 힘이 되어주고 싶어.”


“···”


“나랑 결혼해 줄래?”


“수연아···”



그날 나는 내 생에 처음으로 여자 앞에서 울었다.

쪽팔리고 뭐고 그런 감정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그냥 내 눈앞에 이 여자가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지켜주고 싶었고 평생을 함께하고 싶었다.


이제는 정말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우가 나 대신 일우가 삼일 경호원으로 합격했다는 사실을 들어도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에게는 이미 살아가야 할 이유가 생겼고 일우는 자신의 소중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



사고가 난 지 며칠이 지난 화창했던 어느 날.

뺑소니 사고였기 때문에 조사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고 했다.



“박재우씨, 잠시 서로 와주실 수 있습니까?”




***



“범인이 잡혔나요?”


“아직은 확실한 건 아니지만 범인의 차로 추정되는 차가 주변 가게 앞 CCTV에 찍혔습니다.”


“보여주세요.”


“예. 어디 보자··· 여기 이 사진입니다. 확대해 보면 10하 0151이네요.”


“아 예··· 잠깐. 뭐라구요?!”


“10하 0151. 아는 번호입니까?”



모르는 게 이상했다.

일주일 전에도 내가 탔던 차니까.

너무나도 익숙한 번호니까.



10하 0151.


한때 친구라 믿었던 강일우의 차 번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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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김기자(1) 20.12.20 3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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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전야제(前夜祭) 20.12.18 14 0 12쪽
68 해국(2) 20.12.17 12 0 12쪽
67 해국(1) 20.12.16 20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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