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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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맨션
작품등록일 :
2020.10.12 23:01
최근연재일 :
2020.12.30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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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9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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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2)

DUMMY

[오늘 오전 지명수배 중이었던 박 씨가 사망했습니다. 박 씨는 경찰에 쫓기는 도중 5층 건물에서 떨어져 사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남양주 그의 별장에서 유서가 발견되었다는 점을 고려해 보았을 때, 사고가 아닌 자살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박재우가 죽고 그의 별장에서 유서가 발견되었다. 사실상 유서라고 하기보다는 그가 최근 2년간 행했던 자신의 행적이 낱낱이 적혀 있었다.


그와 십수 년을 함께 존재했던 ‘불행’이라 불리는 마음의 짐이 A4용지 5장에 걸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26년간 삼일가에 충성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충성하는 것처럼 보이려 부단히 노력했다. 그 결과 이상철 회장은 물론 이세진 부회장에게도 신임을 얻었다. 그 신임에 종지부를 찍으리라 다짐했다. 그래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켜 완전한 신임을 얻고, 삼일이 가장 빛나는 시기에 그녀를 조종하여 삼일가를 망하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시계, 생각보다 부작용이 너무 컸다.

뉴스에 나오는 사고사 중 100여 건이 사실 우리 임상시험의 부작용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물론 아무도 모르게 내 선에서 모두 처리했다. 삼일 전자 측에서 부작용의 심각성을 받아들이게 되면 이 프로젝트는 중단될 테니. 중단되면 잠깐은 주가에 타격을 입겠지만 삼일처럼 큰 대기업은 또 금방 살아난다. 프로젝트의 중단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했다.



그래서 2년 전 더 이상의 연구개발을 할 수 없다고 선언하는 이철 박사를 죽여버렸다.


물론 재수 없게 개미 새끼 한 마리에게 걸리기는 했지만 그 역시 세진과 같은 권력욕이 있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말이 잘 통했고, 저 아래층에서 우리의 눈과 귀가 되어주고 있다.


아!

근데 사실 그 개미 새끼보다 더 걸리는 놈이 하나 있었다.



2년 전의 일이었다.

이철 박사가 묵고 있는 로얄호텔 2024호.


나는 2년 전 이철 박사를 죽였다. 프로젝트의 성공에 미쳐 있었던 나는 내 손으로 처음 사람을 살해한 것이다. 주변 CCTV는 부하직원을 통해 모두 처리했고 자살로 위장하기 위해 유서를 남기고 자해의 흔적도 남겨두었다. 그때 전화가 왔다.



“예. 박재우입니다.”


“박 실장님 어디세요?”


“잠깐 밖에 나와 있습니다. 이세연 부사장님.”


“이철 박사가 어제부터 연락이 안 되서요. 분명 어제 세진이가 이철 박사를 만난다고 했었는데··· 혹시 세진이는 지금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저도 어제 통화했던 것이 끝이라 지금은 어디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하··· 아무튼 저 지금 이철 박사가 묵고 있는 호텔 로비에요. 아무래도 좀 찜찜해서···”


“로얄··· 호텔?”


“예. 실장님도 세진이 위치 좀 알아봐 줘요.”


“예··· 알겠습니다.”



‘젠장. 빨리 나가야겠군.’



이세연 부회장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된다. 호텔 뒷문을 통해 나와서 돌아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빨리도 신고했네.’



마음이 급했다. 분명 나에게도 연락이 올 텐데 내가 이 근처에 있다면 의심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시속 200km/h를 유지하며 빗길을 달렸다. 비가 많이도 내리는 날이었다.



퍼억-



“이건 또 뭐야···!!!”



언뜻 보니 사람을 친 듯했다.


여학생이었다.


내 안에 남아 있던 일말의 양심이 나를 붙잡으려 했지만 이런 사사로운 일에 휘말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외진 곳이라 그런지 딱히 사람도 없었고 애초에 도난 차량이었기 때문에 모자를 쓴 내 모습은 쉽게 들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뒤에 저 멀리서 어떤 차가 달려왔다. 그 사람의 블랙박스에 나의 사고가 찍혔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곳을 피하는 것이 급선무라 우선 그냥 모른 척하고 달렸다.


후에 그 차량에 대해 알아봤지만 그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고 경찰에게서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그렇게 그 사건은 기억 속에서 잊혀 졌다. 그런 사사로운 일을 기억할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그렇게 2년이 지난 지금, 이 프로젝트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요즘 좀 이상했다. 피험자들이 수면 시계를 사용하는 빈도가 확연히 줄었다. 그들의 동선을 파악하고 뒤에서 조사했지만 딱히 누군가와 접촉 했다거나 하는 사실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또 하나의 불행이 닥쳐왔다.



김현수. 우리의 임상 피험자 김현수가 자신이 그 뺑소니 사건의 범인이라며 자수를 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그의 블랙박스 영상을 앞으로 돌려보면 분명 내 모습이 찍혀 있을 것이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조용히 살 거면 끝까지 조용히 살지···’



알 수 없는 분노감에 휩싸였다. 그는 내 앞길을 가로막으려 한다. 이철도 죽이고 이 프로젝트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같잖은 놈 하나 때문에 내 인생을 망칠 수는 없다.



그래서 김현수를 죽였다.

골치 아픈 일은 더이상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한 사람을 더 죽였다.

수면시계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부터 끈질기게 진실을 좇던 중안일보의 한방만 기자. 최근에 다시 그 사건을 파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강현재 패거리와 함께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죽여버렸다.

물론 이번에는 내 손에 피를 묻히지는 않았다. 부하 직원을 시켰으니.



이제 내 앞길에 방해가 되는 주요 인간들은 대부분 제거했다.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다. 26년간 꿈꿔온 복수 계획은 이제 거의 끝을 보인다.



그리고 방금 거울을 봤다.



그런데 낯설다.


무서웠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은 더이상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결국 괴물이 되었다.

죽어 마땅한 괴물이.」




유서는 SNS를 통하여 빠르게 세상에 퍼져 나갔고 삼일가에 대한 모든 진실이 밝혀졌다. 세진 역시 범죄자는 맞지만 박재우에 의한 또 하나의 피해자라며 안쓰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박재우는 세간의 범죄자가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영원히 그렇게 기억되다가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잊혀 질것이다.




***



“에효. 인간 범죄자는 살아서 벌을 받아야 하는데.”



세연과 해국은 여느 때처럼 영혼의 저택 1층 카페에서 아침을 맞이한다. 박재우의 소식을 접한 세연은 죄를 지어 놓고 죽어버리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며 투덜댄다.



“벌을 받을 것이다. 인간의 생을 마감한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니까.”


“하긴 뭐. 나도 여기 있는데.”


“그러고 보니 세연이 너도 이곳에 온 지 꽤 오래되었구나.”


“이제 갈 때가 되었죠.”


“막상 곧 간다고 하니 시원섭섭하구나.”


“아저씨도 솔직히 나 그리울 거 같죠?”


“허허허. 나는 언제든 널 볼 수 있다. 네가 그립지 않겠느냐.”


“뭐··· 그것도 그러네요.”



두 사람 역시 이별을 준비한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어땠니.”


“···좋았어요.”



세연은 처음 이곳을 왔던 그 날을 떠올린다. 무영과 동생에게 배신당하고 자신이 가장 힘들었을 때, 해국이 먼저 손을 내밀어주었다.



‘저도 아저씨와 함께 일하고 싶어요.’



“그때 아저씨한테 그렇게 부탁했던 게 제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되었어요. 아저씨 아니었으면 저는 아직도 저 침대에서 하루하루 자책하면서 울고 있었겠죠.”


“나도 너에게 고마운 것이 많구나.”


“아저씨가 나한테?”


“내 아들 현재를 갱생시켜주었잖니. 하하하.”


“역시 아들 바보라니까.”


“현재는 어떻느냐.”


“네? 갑자기···”


“내 느낌이 맞다면 세연이 너도 현재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은데.”


“아, 아저씨도 참!!!”


“하하하. 미안하다. 또 괜한 소리를 했구나.”


“미안해하실 필요는 없어요. 아저씨 말이 맞는데요 뭘. 큿흠.”


“하하하하하. 역시 내 촉은 죽지 않았어.”


“쫌!!!”



두 사람에게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서로가 알고 있다.



“아저씨.”


“그래 세연아.”


“내가 강현재씨를 가질 자격이 있을까요.”


“세연이 너 같은 며느리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그럼 이제 아버님이라고 부를까요? 아버님~”


“아이고 며느님~”


“아 이러니까 이상하다. 그만해요.”


“하하하하.”


“근데 아저씨는 언제까지 이 일 하실 생각이에요? 솔직히 봉사나 다름없는데 이제 강현재씨가 위험해질 일도 없고···”


“세연아.”


“네.”


“늙은이에게도 사랑은 존재한다.”


“풉.”


“내 아내가 이곳에 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남편 노릇 하나 제대로 못 했는데 마지막은 함께 해야 하지 않겠냐.”


“남자들은 꼭 떠나고 나서 후회하지.”


“차마 반박할 수가 없구나. 허허···”


“제가 잘 챙겨드릴게요.”


“뭐?”


“아저씨 아내 분. 내가 깨어나서 잘 모실 거라구요. 아저씨는 걱정 붙들어 매세요. 가장 아름다우신 상태로 아저씨한테 보내드릴테니.”


“아주 든든하네 이 녀석. 참 잘 키웠어.”


“키우긴 뭘 키워요. 내가 혼자 이렇게 멋진 여자로 자라난 거지. 아저씨가 뭐 내 아빤가···”



띠링-



해국의 핸드폰으로 알림이 온다.

굳어지는 해국의 표정.



“왜 그래요?”


“세연아.”


“네?”


“때가 되었구나.”


“무슨 때··· 으으윽···!!!!!”



숨막히는 고통.

몸 전체를 휘감는 뜨거운 열감.

일주일 전 강현재가 겪었던 같은 종류의 고통.


영혼세계와 영원히 작별한다는 신호다.



“아, 아저씨···”


“그동안 수고했다. 나의 환상의 파트너.”


“고마웠어요. 정말로···”



미소로 화답하는 해국.



“아아아아악···!!!”



외마디의 비명과 함께.



번쩍-



돌아왔다.

현실세계로.




***



삐삐삐삐-



“선생님 1701호 환자 의식 돌아왔습니다!!!”



17층을 울리는 알람 소리.



세연이 깨어났다.



“이세연씨. 정신이 드십니까.”



여러 사람의 웅성거림.

힘겹게 눈을 뜨는 세연.

의사와 간호사. 뉴스가 나온 후 기삿거리를 찾아 하이에나처럼 달려든 기자들. 많은 사람이 세연을 둘러싸고 있다.



“세연아. 내 딸 괜찮느냐.”



소문의 속도는 어찌나 빠른지 이상철 회장과 그 아내의 모습도 보인다.

다시 눈을 감는다.



“이세연씨. 이세연씨 괜찮아요?!?!?!”



그리고 세연의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온 한 남자.

요 며칠간 이곳 17층에서 그녀가 눈 뜨기만을 기다려왔다. 그리고 그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세연을 사랑한다는 것을.



세연의 시선이 남자에게로 향한다.



“겨우 며칠 못 봤는데 당신이 미치도록 보고 싶었어.”


“···”


“그리웠어. 정말로.”


“···”


“사랑한다고 이세연씨. 내가 이세연씨 정말로 많이 사랑한다고. 나 이제 이세연씨 없으면 안 될 것 같다고!!!”



갑작스러운 사랑 고백에 당황하는 주변 사람들. 그리고 주변 사람들보다 조금 더 당황하는 세연의 아버지와 어머니. 하지만 그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세연의 대답만을 기다리는 남자.

강현재.



“아직 말 못 하겠으면 무리하지 않아도 돼···”



현재는 세연의 손을 꼭 잡는다.



세연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서히 입을 연다.



“누구세요···?”



···!!!



그녀는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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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와 벌(2) 20.12.29 12 0 12쪽
79 죄와 벌(1) 20.12.28 15 0 14쪽
78 조우 20.12.27 43 0 13쪽
77 뜻 밖의 조력자 20.12.26 21 0 14쪽
76 朋友有信(4) 20.12.25 29 0 11쪽
75 朋友有信(3) 20.12.24 14 0 12쪽
74 朋友有信(2) 20.12.23 34 0 12쪽
73 朋友有信(1) 20.12.22 35 0 12쪽
72 김기자(2) 20.12.21 15 0 12쪽
71 김기자(1) 20.12.20 37 0 12쪽
70 현실로 돌아왔다 20.12.19 20 0 13쪽
69 전야제(前夜祭) 20.12.18 14 0 12쪽
68 해국(2) 20.12.17 12 0 12쪽
67 해국(1) 20.12.16 20 0 13쪽
66 박재우(5) 20.12.15 12 0 12쪽
65 박재우(4) 20.12.14 13 0 13쪽
64 박재우(3) 20.12.13 16 1 12쪽
63 박재우(2) 20.12.12 15 0 12쪽
62 박재우(1) 20.12.11 28 0 11쪽
61 55번 피험자 이세진(5) 20.12.10 15 0 11쪽
60 55번 피험자 이세진(4) 20.12.09 13 0 12쪽
59 55번 피험자 이세진(3) 20.12.08 22 0 12쪽
58 55번 피험자 이세진(2) 20.12.07 12 0 11쪽
57 55번 피험자 이세진(1) 20.12.06 44 0 12쪽
56 54번 피험자 박혜원(6) 20.12.05 21 0 11쪽
55 54번 피험자 박혜원(5) 20.12.04 16 0 12쪽
54 54번 피험자 박혜원(4) 20.12.03 13 0 12쪽
53 54번 피험자 박혜원(3) 20.12.02 13 0 11쪽
52 54번 피험자 박혜원(2) 20.12.01 2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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