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독점 집착하는 EX급 교장이 되었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플래터]
작품등록일 :
2020.10.13 16:04
최근연재일 :
2021.01.20 16:55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98,073
추천수 :
4,022
글자수 :
180,513

작성
21.01.20 16:55
조회
1,565
추천
90
글자
12쪽

30. 취리히

DUMMY

원작에서 회귀자를 가리키는 명칭들은 많았다.


세상을 다시 걷는 자.

모래시계를 뒤엎는 재앙.

가장 고독한 존재.

지난 세계의 결말을 직접 목격한 인간.


그 모든 것이.

‘오직 작중에서 ‘딱 두 인간’에게만 쓰였던 수식어들이지.’


별의별 미친 강자들이 튀어나오는 원작에서도.

고작 둘뿐이었던 회귀자.

그중 한 명이 내 눈앞에 있었다.


“······.”


금발 미소년의 눈썹이 아주 잠시 구부려졌다.

그리고는 처음에 보였던 무미건조한 얼굴에 표정이 깃들었다.

그것은, 참 보기 드물 만큼 우울한 미소였다.


“죄송합니다. 아직 해외의 예절이 익숙하지 않아서. 처음 뵙는 분께 반말이나 지껄였군요.”


유럽인임에도 유창한 한국어였다.

아마 회귀자의 지식으로 ‘10개국 번역’ 스킬을 선점해둔 덕분이겠지.


“저는 취리히라고 불러주십시오.”


어설프게 허리를 굽혀 한국식으로 인사한 녀석이 간절하고 퀭한 눈으로 날 보았다.


“실례지만, 그쪽도 회귀자 맞죠?”

“그건 왜 물어?”

“제발 저 대신에 세상 좀 구해주세요.”

“······.”


내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고 있을 때.

녀석이 대뜸 내 어깨를 꽉 쥐더니 코앞까지 우울한 면상을 들이밀었다.


“저는 가망이 없는 놈입니다. 여러 번 살아도 어차피 실패만 할 뿐이죠.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것은 죽고 반복하는 것뿐인데, 그조차도 이젠 의미가 없어요. 난 세상 절대 못 구해요.”

“······이거 놔. 어깨 아파.”

“놓으면 세상 구해주실 거죠?”

“······.”


새삼스레 참 다행이다.

원작의 주인공이 이 자존감 낮은 회귀자가 아니어서.

만약 취리히가 주인공이었다면 읽으면서 얼마나 고구마를 처먹었을지 상상도 안 간다.


‘이놈도 원래 이런 성격은 아니었는데.’


작중에서의 서술대로라면, 취리히는 1회차만 해도 활약 넘치는 인싸 그 자체였다.

눈부신 외모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배려심, 지도력까지 있었으니까.

하지만 반복되는 사망 회귀로 인한 실패가 그를 완전히 망쳐놓았다.


‘아무리 이 악물고 노력해도 이 녀석은 세상을 구하지 못했으니까. 그것도 무려 9번이나.’


연이은 ‘구원’에 실패하고 무력감에 젖어버린 10회차의 회귀자.

그것이 취리히였다.

내가 고개를 휘젓고 확고하게 말했다.


“나는 회귀자가 아니야.”

“거짓말. 분명히 알아볼 수 있어. 나에게는 ‘회중시계 탐지’라는 스킬이 있으니까. 이 스킬은 나처럼 시간을 거스른 자가 아니면 감지되지 않아! 그러니까 당신은 분명 회귀자······.”

“그건 마녀의 강력한 저주에 걸렸기 때문이야. 내가 회귀하는 시간은 짧고, 횟수도 앞으로 300회로 정해져 있어. 취리히, 너처럼 수십 년 단위로 사망 회귀하지는 못해.”


나는 설득력 있게 취리히의 고집을 꺾은 것을 곧장 후회했다.

우울한 회귀자의 관심이, 나에게서 내가 업고 있는 김서혁으로 옮겨갔으니까.


“잠깐. 그런데 당신이 업고 있는 그 키 큰 소년, 범상치 않군요. 설마 산신의 일족입니까?”


······씨발, 설마 한눈에 알아볼 줄이야.

이 자식, 도대체 감지랑 탐지 계열 스킬 레벨이 얼마나 높은 거야?


“넘기세요. ‘그건’ 세상을 구하는데 필요합니다.”

“불가능해. 내 학생이야.”

“무력을 써서 빼앗으라는 소리군요.”


취리히의 얼굴이 우울한 미소마저 사라지고 도로 무표정해졌다.

흰 오른손이 백색 검을 들었다.

아까 흑색 창을 가르며 튀었던 파편과 가루들이 흰 검날에 붙어 반짝인다.


‘저놈이랑 붙으면 상대도 안 된다.’


녀석이 검을 든 것만 봐도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제아무리 자존감이 크게 낮다고 해도 10회차 회귀자.

지금의 나로서 취리히는 감히 상대조차 안 되는 강자였다.


‘아무리 지금 내가 회귀할 수 있더라도 손가락을 부러뜨리기 전에 죽으면 끝이야.’


다급해진 내가 검을 휘두르기 직전인 취리히에게 소리쳤다.


“엄마!”

“······!”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연이은 실패를 맛본 이 회귀자 놈은 극도로 유리멘탈이란 것이다.

그리고 원작을 읽은 나는 녀석의 멘탈을 무너뜨리는 역린을 알고 있었다.


“네 엄마!”

“······!”


취리히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날 베기 위해 뻗었던 칼날이 멈칫했다.


“네 엄마는 목이 잘려 뒈졌어!”

“이, 인광아······!”


깜짝 놀란 솔이가 어쩜 그렇게 끔찍한 소리를 할 수 있냐는 듯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그보다 놀라운 것은 취리히의 반응이었다.


“······!”


백색 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한 취리히가 쪼그려 앉아 엄지를 뜯었다.


“어,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같은 단어의 반복.

그리고는 내가 미안해질 만큼 어린애처럼 울기 시작했다.


“넌 실패했어. 넌 패배자야. 망쳐놨어. 세상을 구하지 못해.”


녀석이 내뱉는 음울한 문장들은 듣는 사람마저 기분이 착 가라앉을 정도였다.


”회귀해봤자 바뀌는 거 없어. 넌 쓰레기. 넌 패배자. 엄마도 못 구하는 패륜아. 미안해. 내가 미안해. 엄마. 역시 나 말고 다른 회귀자가 있어야지만······. 아니, 애초에 나 같은 게 회귀자로 선택받지 않았더라면······!”


와작와작 씹어대는 엄지에서 피가 나오고 살점이 벗겨진다.

이렇게 좌절에 빠져버린 취리히는 한동안 자괴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무력 상태가 된다.

덕분에 한숨 돌렸지만, 해가 뜰 때까지 김서혁을 지키려면 이 녀석이 꼭 필요한데.

······제기랄, 멘탈을 회복시키려면 결국 ‘그 방법’뿐인가.


“솔아.”

“으, 응······?”

“네가 잠시 이 녀석 엄마인 척 좀 해줘. 무릎 위에 재우고 토닥이면서 자장가만 부르면 돼.”


그리고.


“이, 인광아······.”

“알아, 당연히 해줄 거지?”

“······아니.”


나는 처음으로 솔이가 정색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난 엄마 싫어. 나한테 하, 함부로 그런 거 시키지 마······.”


평상시답지 않은 단호함이었다.


‘저, 저렇게까지 싫어할 일인가.’


그러고 보니 전에 솔이 상태창에 쓰여 있는 비밀을 엿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마 가족에게 심각하게 ‘폭행’당한 경험이 있다고 했던가.


‘······그게 설마 어머니 관련이었나.’


갑자기 기운 없고 슬퍼 보이는 솔이를 바라보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저 애를 동정해서일까. 배려해주지 못한 미안함일까. 아니면.

나도 겪은 바 있는 같은 경험에 대한 미묘한 공감 때문일까,


“······그럼 어쩔 수 없네. 류이한.”


내가 쳐다보자 류이한이 괴악하게 얼굴을 구겼다.


“나, 나보고 지금 저 녀석 엄마 노릇을 하란 거냐? 그런 악취미적인······!”

“뭔 헛소리야? 얼른 세 발짝 뒤로 물러나라고.”


불행히도 녀석은 내 말을 듣지 않고 두 발짝만 물러났다.

그리고 게이트 틈에서 떨어진 벼락에 감전된 류이한 그대로 잿더미가 됐다.


“꺄아아아아아아악!”


솔이가 그 끔찍한 죽음에 놀라 뒤로 쓰러져 혼절했다.

나는 새까만 잿가루가 되어버린 류이한을 구슬프게 손으로 쓸었다.


‘류이한 이 새끼는 다음 회차부터는 말로 하지 말고 그냥 바로 걷어차야겠네.’


아무래도 저 게이트 너머에서 흑창을 계속 던져오는 존재가 상당히 빡쳤나 보다.

자신의 주특기인 ‘검은 벼락’을 벌써 던져올 줄이야. 잔인한 놈.


‘자기 주인을 빼닮아서 성격 급한 호전광이란 건 알고는 있지만.’


고작 인간에게 자기가 던진 흑창이 단칼에 갈라졌으니 자존심이 상했을 테지.

하기야 이 세계에 설마 자기 창도 박살 내는 회귀자가 있는 줄은 전혀 몰랐을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건 좀 심하잖아.’


게이트가 완전히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일은 강자라고 해도 본인에게 미치는 피해가 적진 않다.

새삼 곧 저 게이트를 열고 여기로 찾아올 녀석들이 어떤 괴물들인지 실감이 났다.


‘저 녀석을 막으려면 취리히가 필요해.’


나는 업고 있던 기절한 김서혁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좌절해 자해하고 있는 회귀자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무릎을 꿇고 속삭였다.


“안녕, 취리히. 내가 사실 네 엄마야.”


취리히가 혀를 깨물고 자살을 기도했다.

맥을 짚어보니 살아는 있었지만, 딱히 깨우지는 않기로 했다.

이번 회차는 완전히 엉망이군.


“이거나 먹어.”


내가 점차 열려가는 중형 게이트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쳐들었다.

그러자 하늘에서 우르르쾅쾅 분노한 천둥소리가 울렸다.

나는 상공으로부터 쏟아져 내리는 새까만 벼락을 올려다보며 치켜든 중지를 꺾었다.


***


“이, 인광아······.”


내가 고개를 돌리자 솔이가 울고 있었다.


“지, 진짜야······? 서혁이는 산신의 일족이라는······, 인간이 아닌 다, 다른 종족이었고······. 다, 다른 세계 존재들이 서혁이를 탐을 내서 우리 아카데미로 쳐들어온다는 게······?”

“그게 아니라면 저 게이트를 뭐로 설명할 수 있겠······.”


내가 류이한을 발로 걷어찼다.


“끄악! 너, 이 새끼 왜······!”


그때 갑작스레 하늘에서 10미터가 넘는 긴 창이 류이한의 가랑이 사이로 꽂혔다.

좋아, 이번에도 제대로 과거로 돌아왔다.

내가 김서혁을 업었다.


“가자. 일단, 먼저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


이전 회차에서 회귀자가 걸어오는 길은 파악해뒀다.

그래서 이번에는 좀 더 빠르게 모자와 코트를 뒤집어쓴 취리히를 만날 수 있었다.


“······당신도 회귀자입니까?”


아까보다는 조금 여유가 있는지 취리히의 첫 마디가 존대에서부터 시작됐다.

나는 미리 경고하기로 했다.


“흑창이 내려와도 절대 검으로 가르지 말고 그냥 피해. 그게 적을 자극할 테니까.”

“이야, 말하는 게 딱 회귀자인데요? 역시 맞죠?”

“됐고, 일단 따라와.”


몸을 숨길 동굴이 있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여긴 그런 게 없다.

우리는 일부러 좁은 바위틈 사이로 피신했다.

여기라면 저 게이트 너머의 존재가 우릴 노려 흑창을 날리지 못할 것이다.

얼굴이 조금 발개진 잠옷 차림의 솔이가 중얼거렸다.


“이, 인광아. 여, 여기는 좁고 어두워서 자칫하면······. 꺅! 지, 지금 내 손 만지고 있는 거 인광이 너야······?”

“아, 실수로 엉덩이로 깔고 앉았네.”

“······.”


류이한의 대답에 솔이의 상기된 볼이 급격히 원래 색깔로 돌아왔다.

하여간 이번에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본론부터 갈 것이다.


“취리히 스위스.”

“제 이름을 알고 있다니. 역시 저와 같은 회귀자가 맞나 보군요!”


그렇게 이름 괴상한 회귀자와 오해 섞인 대화를 시작하려 하고 있을 때.

상태창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이는 세 줄의 문장이었다.


《중형 게이트가 열리기 직전입니다.》

《산신의 일족의 주인이 결정되는 시간은 아침 해가 뜨는 순간입니다.》

《곧 ‘주인 결정전’이 시작됩니다!》


오늘 아침까지 어떻게든 김서혁을 지켜야 한다.

그래야 이 녀석의 자퇴를 막고, 나는 산신의 일족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러므로 취리히와의 대화를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배신해.”

“예?”

“배신하라고.”


반복되는 사망 회귀 속에서 나의 목표를 이루려면.

저 자존감 부족한 회귀자를 반드시 내 편으로 만들어야만 한다.


“이번 회차에서 네가 따르기로 한 녀석을 모시면, 너는 결코 마왕을 살해하지 못해.”


내가 언제 말한 적이 있던가?

이 원작이 언젠가 맞이하고 마는 결말 말이다.


“그 주인공 녀석은 결국 마왕한테 항복하거든.”


작가의말

사람 이름이 어떻게 취리히 스위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8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집착하는 EX급 교장이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27화가 수정되었습니다 +1 21.01.05 345 0 -
공지 몽실이 +12 20.12.30 1,573 0 -
공지 팬아트 +1 20.12.27 1,688 0 -
공지 추천글 써주신 분들 감사합니다!(2020.12.19) 20.12.17 354 0 -
공지 다시금 자유연재로 전환합니다(2020.01.29 변경) +7 20.11.15 2,721 0 -
» 30. 취리히 +58 21.01.20 1,566 90 12쪽
29 29. 회귀(300回) +39 21.01.15 1,361 93 14쪽
28 28. 산신의 일족 +43 21.01.11 1,522 95 12쪽
27 27. 김서혁[2021.01.05 수정] +22 21.01.04 2,073 121 15쪽
26 26. 첫 마법 수업 +90 20.12.30 2,151 129 16쪽
25 25. 아카데미 불법 마개조 도구 박스 +44 20.12.27 2,185 131 13쪽
24 24. 성장 +60 20.12.22 2,455 134 17쪽
23 23. 역(逆) 살인 게임 +50 20.12.18 2,617 146 11쪽
22 22. 요정 +44 20.12.16 2,447 111 10쪽
21 21. 마왕성(魔王城) +30 20.12.14 2,640 126 11쪽
20 20. 주인공과의 채팅 +48 20.12.11 2,679 129 13쪽
19 19. 디엠 +30 20.12.09 2,670 124 13쪽
18 18. 바냐크라 +37 20.12.07 2,782 152 16쪽
17 17. 미래시(未來示) +20 20.12.03 2,859 123 15쪽
16 16. '교장' +23 20.12.01 2,940 128 13쪽
15 15. S급 몬스터 +20 20.11.28 2,982 121 10쪽
14 14. 임신 +28 20.11.25 3,494 132 14쪽
13 13. 류이한 +45 20.11.23 3,200 138 11쪽
12 12. 룸메이트 +37 20.11.20 3,303 145 15쪽
11 11. 오서후 +26 20.11.18 3,349 134 13쪽
10 10. 수석 장학생 +25 20.11.16 3,365 138 15쪽
9 9. 대련장 +16 20.11.15 3,528 118 10쪽
8 8. F급 이능 +23 20.11.10 3,748 138 15쪽
7 7. 애살검(愛殺劍) +26 20.11.08 3,879 142 15쪽
6 6. 그 아카데미 밑에는 +33 20.11.02 4,011 143 16쪽
5 5. 반 아이들 +39 20.10.27 4,274 154 15쪽
4 4. 주인공의 스승 +15 20.10.26 4,617 136 14쪽
3 3. 유솔 +34 20.10.21 5,153 173 14쪽
2 2. 첫걸음 +28 20.10.18 5,661 174 12쪽
1 1. 부실 아카데미 +53 20.10.17 8,213 204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플래터]'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