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 안의 엑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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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서
작품등록일 :
2020.10.16 00:57
최근연재일 :
2020.11.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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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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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니시(3)

DUMMY

임진왜란과 관련된 모든 드라마와 다큐멘터리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왜란으로 인한 조선의 피해이다.

모든 전쟁은 조선의 영토 안에서 이루어졌고, 당연히 인명 피해 외의 모든 피해는 조선이 일방적으로 당해야만 했다.

전 국토가 황폐해져서 경작지가 3분의 1로 줄어들었고, 인구수도 감소했다. 특히 전쟁 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일본으로 끌려갔으며 심지어 그들 중 일부는 포르투갈 상인에게 팔려서 유럽으로 갔다는 기록도 있었다.

문화적인 부분에서도 도자기를 만드는 도공들이 일본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현시대에서 도자기로 유명한 나라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일본이 되어버렸다.

이런 내용은 TV프로그램을 보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알게되는 상식과도 같았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왜군이 죽은 시체에서 귀를 자를 때 쓰는 가짜귀가 도착하지 않았다고 해서 촬영이 지연되지 않았던가.

현우는 이런 모든 불행을 막을 수 있는 시작이 바로 탄금대 전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가 하는 얘기 그대로 전해주세요.”


놋그릇에 담긴 물은 한 잔 마신 후 현우는 고니시와 대화를 시작했다.


“당신은 천주교도입니다. 맞습니까?”


고니시는 죽고싶다는 말을 한 후 결심을 굳혔는지 묵묵부답이었다. 현우는 계속해서 말했다.


“천주교도는 하나님의 자식. 왜 수많은 조선인들을 학살하는 이 전쟁을 시작했습니까?”

“······.”


하나님의 자식이라는 말이 나오자 눈썹이 꿈틀거리는 고니시. 현우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자살하는 사람만이 지옥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생명. 그것을 신의 뜻이 아닌, 인간의 뜻으로 빼앗고 짓밟는 것 역시 지옥으로 가는 큰 이유가 됩니다. 그것을 모르셨습니까?”

“으음···.”


고니시의 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비록 천주교도라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버지의 영향에서 시작된 얕은 신앙이었다.

이런 내용을 들은 적이 없고, 오직 성경과 예식을 치르는 데에만 집중했던 일본 영주들의 천주교 신앙의 수준에서 들으면 너무나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당신에게 죽은 수많은 영혼들이 연옥에서 기다릴 겁니다. 천국과 지옥이 엇갈리는 그곳에서 그들이 당신을 저주한다면, 고니시 장군 당신이 갈 곳은 지옥밖에 없습니다. 가족들이 아무리 기도를 해도 당신을 구할 순 없을 겁니다.”


고니시는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자신을 고문할 것이라 생각했다.

부산성과 동래성 그리고 충주로 향하면서 거친 수많은 마을들.

놀랍게도 그들은 자신을 환영하기까지 했었다. 통역병과 조선 침략을 위해 투입했던 간자들의 말에 의하면 조선의 높은 세율 때문이라고 했다.

고니시는 어느덧 이 전쟁을 조정의 착취에 질린 조선 백성들을 구해내기 위한 전쟁이라고까지 생각했다. 그래서 고니시 휘하의 부대들이 거쳐간 조선지역은 가토군이 지나간 지역에 비해 피해가 훨씬 적은 편이었다.

만약 자신을 고문하며 왜 조선을 침략했냐고 묻는다면 그런 얘기를 해줄 생각이었다.

너희들을 지지하는 조선의 백성은 없다. 우리는 위대하신 태합 전하의 이름으로 조선을 해방시켜주러 온 것이다라고.

하지만 눈앞의 조선 소년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대의보다는 내 자신의 구원에 관한 이야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고니시는 흔들리고 있었다.


“너, 너는 천주교도냐···.”


통역병의 말에 현우는 그저 엷은 웃음만 보일 뿐 답이 없었다. 그것이 오히려 고니시를 더 다급하게 만들고 있었다.


“당신의 주군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이지요? 그 분의 미래를 알고 있습니까? 그 분 역시 언젠가는 죽을 것이고, 그로 인한 당신의 운명을 당신은 알고 있는지요?”


현우는 최대한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고니시에게 말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단어가 현우의 입에서 나오자 고니시는 다시금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알고싶으십니까?”

“알고··· 싶다···.”

‘헉?’


고니시의 입에서 나온 말은 놀랍게도 조선말이었다. 현우와 통역병이 놀란 얼굴을 보며 고니시는 마음을 진정시킨 듯 천천히 말했다.


“조선··· 말은 조금··· 알고 있다. 아버지 덕분이지. 명나라를 상대로 무역을··· 하셨지만 그래도 우리의 무역 상대로는 조선도 있었다.”

“우리 말을 잘 하시는 군요. 잠시 나가주세요.”


통역병을 내보낸 현우. 다만 갑자기 조선말을 하는 고니시의 의도는 예측하기 힘들었다.


“네가 하는 말은 분명 우리의 미래를 말하는 것.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

“사실대로 말해다오. 우리의, 아니 태합 전하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


어쩌면 자신을 전장터로 끌어들인 것은 신립이 아닌 이 소년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소년의 분위기는 묘했다.

한 마리의 호랑이 같은 신립이나 날카로움이 묻어나는 김여물 등과는 다른 특이한 분위기가 현우에게서 느껴졌다.

어쩌면 도요토미의 미래를 말하는 것이 허무맹랑해 보일 수 있었겠지만 고니시는 묘하게 이 소년에게 흥미와 신뢰가 생겨나고 있었다. 종교를 말할 때부터.



“뭐라구? 소서행장이 조선말을 할 줄 안다구?”

“예, 그런 듯 했습니다···.”

“으음···. 너는 물러나 있거라. 그리고 절대 이 이야기는 밖으로 새어나가서는 아니될 것이야.”


몇 번이나 통역을 맡은 병사에게 이른 김여물은 고니시가 잡혀있는 천막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의 눈에 천막 안에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멀찌감치 떨어진 거리라서 대화 내용이 들리진 않았지만 현우가 말할 때마다 당황하고 땀을 흘리는 고니시의 모습이 보였다. 왜군의 선봉 1대장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김여물이 도착했을 때 대화는 거의 끝나있었고, 현우는 살짝 웃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여전히 당혹스러워하는 고니시를 놔둔 채 천막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이야기를 나눈 것이냐?”

“아직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김여물 장군이 궁금하시다면 말씀드리지요.”

“장군이라니! 누가 들으면 큰일날 소리다.”

“이번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장군께서 큰 공을 세우신 것도 사실이구요. 그렇다면 장군직은 따놓은 당상 아닙니까?”


사극톤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말하는 현우. 김여물은 장군이 될 거라는 말이 듣기싫진 않았는지 어물거리다가 결국 고니시와 나눈 대화에 대한 내용을 듣지 못하게 되었다.


“장군! 이제 우리는 이제 이동해야 합니다.”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 아직 순변사 장군도 도착하지 않았거늘.”

“한양으로 향하는 왜군이 고니시군 하나 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장군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임진왜란 당시 가토군의 병력은 고니시군보다 많았던 걸로 알고 있었다. 기적적으로 고니시군에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임진왜란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느낄 것이다. 가토는 고니시와는 비교도 안 되는 잔인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두 부대 모두 한양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고니시와 가토는 경쟁 관계입니다. 이 상황에서 고니시가 패했다는 사실을 가토가 알게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확실한 공을 세우려고 서울로 진격할 것입니다. 그것을 미리 막아야 된단 말입니다.”

“알았다. 우리쪽에서도 이미 척후병을 보냈었으니 그들이 돌아오면 곧바로 가토라는 녀석을 잡으러 가자꾸나.”

“예!”


임진왜란 당시 한양이 점령됐을 때. 그 날의 기록은 처참하기만 했다.

경복궁은 노비 문서를 탈취하려는 노비들에 의해 불에 탔고, 거리에는 약탈이 가득했다.

오히려 약탈을 하러 온 고니시 군이 그들을 통제해야했을 정도로 한양은 아비규환이었다고 한다.

돈이 있는 양반이나 부자들은 이미 임금을 따라 북쪽으로 도망을 쳤고, 버림받은 처지가 되어버린 백성들은 실망감에 난동을 부렸었다.

그런데 그런 백성들이 가토와 맞닥뜨리게 된다면?

약탈과 방화, 살인 등은 보나마나 뻔한 상황이었다. 아마도 백성들은 잔혹하게 죽어나갈 것이고, 어쩌면 한양의 백성 절반 이상이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현우는 다급해졌다.


“장군···.”

“현우야, 서두르지 마라. 모든 일에는 과정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란다. 그리고 지금 병사들도 너의 계책에 따라 움직이느라고 지쳐있지 않느냐? 저들에게도 휴식을 취할 시간을 주어야 한단다. 그리고 병력의 이동은 신립 장군 혼자만의 결정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닌게야.”


다급해하는 현우의 어깨를 김여물이 두들기며 진정시켰다. 그리고 얼마 후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장수들이 신립의 본영에 도착했다.


“장군! 경하드리옵니다! 이런 대승이라니요? 조정에서 이 소식을 듣는다면 기뻐하실 전하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하옵니다. 장군!”

“허허. 이종장 장군. 다친 곳은 없으시오?”

“전혀 없사옵니다. 다시 한 번 경하드리옵니다!”

“고맙소.”


이종장에 이어 변기 그리고 곳곳의 장소에 전투를 이끈 장수들이 축하 인사와 함께 찾아왔고, 마지막에 훈융진에서 매복만 하고 있던 이일이 돌아왔다.


“장군~ 하하핫. 승리하였습니다! 우리가 승리하였습니다. 하하하핫.”

“이일 장군. 수고하셨소.”

“하핫. 이르다할 뿐입니까? 적군 패잔병을 끝까지 쫓아 이렇게 전공품까지 가져왔습니다. 조정에 장계를 올릴 때 쓰시지요? 하하핫.”


왜군인지 조선군인지 모를 목을 수십 두 베어서 온 이일. 족히 봐도 20두가 넘어보이는 숫자였다.

어쩌다가 왜군이 훈융진쪽으로 도망쳤는지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어쨌든 이일의 얼굴을 보니 반갑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가토의 군대를 막으러 떠나야지.


‘어? 씨발. 이게 뭐야?’


그저 신기하다는 생각으로 이일이 잘라온 왜군의 수급을 살펴보던 현우는 그들 중 절반 이상이 귀를 뚫었다는 것을 알아냈다. 나머지 절반은 귀에 장신구조차 없는 깨끗한 귓불이었다.

그러고보니 이상했다. 그제서야 주변을 둘러보며 현우는 경탄을 금치 못했다. 그곳에 서있는 조선군들 중 대다수가 귀를 뚫어서 장신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복장은 걸걸했지만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귀걸이라도 걸치고 있는 조선군들의 모습. 현우는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런 개자식이. 그럼 아군을?’


그런 현우의 마음을 알아챘는지 김여물이 조용히 현우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곤 고개를 저었다. 나서지 말라는 신호였다.


“장군!”

“어허, 장군이라는 말은 하지말라니까.”

“하지만 이일 장군은···.”

“알고 있다. 아마 시체에서 잘라낸 것이겠지. 저 분께서도 지금 필사적이신 게야. 전투에서 패한 장수에게는 죽음 뿐이다. 운이 좋아 죽지 않는다 하더라도 멀리 떨어진 곳으로 귀양을 가게 되실 게야. 아군을 죽인 것도 아니고. 또한 저 수급들은 도주하려던 조선병사의 것일 수도 있지 않느냐. 어쩌면 이런 예상치 못한 승리에 이 장군께서 더 조급해지신 것일 수도 있고···.”

“······.”


어쩌면 자신이 낸 계책으로 이긴 승리 때문에 죽었을 수도 있는 병사들. 그런 생각을 하자 현우는 순간 토가 나올 지경이었다.

천막 밖으로 달려간 현우가 구역질을 하는 사이 다행히 전공 행사는 끝이 났고, 조선군은 왜군 포로의 진술에 따라 용인으로 방향을 정하고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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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연재 시작합니다(수정) 20.10.17 126 0 -
28 이순신을 찾아서(1) 20.11.13 58 0 12쪽
27 용인 전투, 두 번째(4) 20.11.11 62 0 15쪽
26 용인 전투, 두 번째(3) 20.11.10 63 0 13쪽
25 용인 전투, 두 번째(2) 20.11.07 76 0 14쪽
24 용인 전투, 두 번째(1) 20.11.06 88 1 14쪽
23 팔문둔갑(八門遁甲)(2) 20.11.05 97 1 12쪽
22 팔문둔갑(八門遁甲)(1) 20.11.04 110 2 12쪽
21 홍의장군(紅衣將軍)(5) 20.11.03 114 1 12쪽
20 홍의장군(紅衣將軍)(4) 20.11.01 117 1 11쪽
19 홍의장군(紅衣將軍)(3) 20.10.31 127 3 12쪽
18 홍의장군(紅衣將軍)(2) 20.10.30 129 3 13쪽
17 홍의장군(紅衣將軍)(1) 20.10.29 136 2 11쪽
16 익호장군(翼虎將軍)(3) 20.10.28 137 3 13쪽
15 익호장군(翼虎將軍)(2) 20.10.27 151 3 13쪽
14 익호장군(翼虎將軍)(1) 20.10.26 169 4 12쪽
13 용렬한 군주 20.10.25 181 4 12쪽
12 용인 전투 20.10.24 180 4 12쪽
» 고니시(3) 20.10.23 187 3 12쪽
10 고니시(2) 20.10.22 190 5 13쪽
9 고니시(1) 20.10.21 199 4 12쪽
8 조령대첩(鳥嶺大捷) 20.10.20 210 4 12쪽
7 모래바람(2) 20.10.19 203 2 12쪽
6 모래바람(1) 20.10.18 222 3 13쪽
5 첩자(2) 20.10.17 229 5 10쪽
4 첩자(1) 20.10.16 241 4 13쪽
3 여긴 어디? 나는 누구?(2) 20.10.16 251 4 12쪽
2 여긴 어디? 나는 누구?(1) 20.10.16 286 3 16쪽
1 김반장 20.10.16 334 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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