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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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ia176
작품등록일 :
2020.10.17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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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5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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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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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삭 (3)

DUMMY

"여긴, 어디지···?"


주위는 시멘트의 벽. 흡사 취조실과 같은 모양새였다.

천장에 달린 형광등만이 빛을 뿜는 고요한 방.

난 당혹할 틈도 없이 빠르게 주위를 쳐다봤고, 갈색 나무로 된 문 하나를 발견했다.


"어머, 그러고 보니 네라스는···?"


방금까지 내 가슴 앞에 있었던 검은 고양이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무엇도 없이 침묵만이 감돌고 있을 뿐이다.

난 교회의 술법인가 생각했고 일단 문을 벌컥 열었다.


"어라, 이게···?"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는다. 힘을 주어봐도 꼼짝하지 않는다. 난 더 세차게 문을 잡았지만, 팔 힘만 빠질 뿐이었고 난 몸을 추스리며 사태를 생각했다.


"뭐, 이렇게 된 이상 누가 됐든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명백한 공격 의사라고 밖엔 판단할 수 없겠지. 난 내 팔을 갈무리했고 칼을 뽑아 들었다.

그때였다. 세계의 모습이 유전한 것은. ···아니 그건 정확히 말하자면 내 앞에 남자 한 명이 나타났단 얘기일 뿐이었지만.


"뭐야! 움직이지 마! 지금 내 손엔 이 흑단검이 들렸고, 네가 날 여기 가둔 진범이라면 넌 나한테 엄청나게 목이 긋겨대서 사망할 테지만, 만약 그렇지 않고 관게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억울한 일 당해서 죽는 것도 몹쓸 일일 테니까 너희 어머니가 슬퍼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남한테 아무렇게나 당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철저히 소명하도록 해!"

"이야, 이거 곤란하군요. 잠시 칼은 거두어 주실 수 없을까요. ···아아, 예 일단. 항복하는 거지만, 전 말씀 드리자면···."


갈색 머리카락을 앞머리 기른 미남자. 흡사, 경찰 제복 비슷한 걸 입은 그 남자는 시원히 미소를 지은 채, 두 팔을 들었다.


"어머, 말하다 말고 왜 중단하는 거니! 어서 이어서 말해!"

"예에, 말씀드리자면, 그러니까 잠시 조사차 알현하게 됐다고 할까요. 저희로서도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거지만."


반팔의 제복 차림인 남자. 위협스런 기척은 찾을 수 없었고 난 검을 거둬들였다.

중앙에 있는 하얀 책상 앞에 남자가 앉았고, 나도 따라 엉덩이를 착석하며 남자를 쳐다봤다.

조사라, 뭘 조사하겠다는 거지. 그것도 나한테? 하지만 남자가 잘생겨서 난 척 보며 다음을 기다렸다.


"일단, 여기 이 설문지에 내용부터 기입을···."

"어머, 아직 자기소개 한 번 해놓지도 않고, 나한테 펜을 들라는 거야? 이름부터 시작해서, 소속기관까지 전부 다 털어놓도록 해!"

"아하, 그게 참. 곤란한 거지만, 밝히기가 어려운 거니."

"어머, 정말 파렴치한이구나!?"


자기도 찔리는 게 있었는지, 남자가 쿡 괴로운 듯 신음하곤 미소지었다.

좋았어. 이 기세를 이용해서 난 일어섰다.

정당한 상대에게 정당한 걸 주는 거야말로, 최고가 되려는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삶의 태도일 테니까.

난 무엇 하나 밝히지 않는, 정체불명의 사람을 일별하기로 하며, 내 [쾌월잔향]을 들었다.


"이대로 내 시간을 더욱 뺏는다면, 그땐 정말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자 빨리 날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도록 해!"

"아아, 참 죄송하고 곤란스런 일이지만, 그건 불가합니다. 저흰 당신의 능력에 관심이 있는 거여서요."

"어머, 내 능력? 날 알고 있는 거야? 그럼 당신은 교회 사람?"

"아···, 그건 아니지만요."


그 말을 끝으로 남자의 분위기가 변했다.

여전히 친절한 미소지만, 주위에 서린 압박감과 짓누르는 공기.

그 윤선희와 아스모데우스에 비해선 낮더라도, 충분히 강한 바람이 맴돌았다.

그 앞에서 난 내 민첩해진 얇은 양팔의 감각을 확인했고.


"어머, 지금 나랑 한번 해보자는 소리?"


[쾌월잔향]에 [염옥의 불꽃]을 두르며 [심안]을 사용했다.

···하지만, 역시 확인 불가인가.

난 등록 불가라는 메시지에도 오늘 아침도 남자들을 불러대서 내 팔에 엄청나게 목 긋기게 해버려서 참을 수 있었고, 집중했다.


"그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협조를 구할 필요가 있는 거니까요."


허리춤에서 까만 곤봉을 쳐든 남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여서, 난 내 몸이 한껏 화락 들뜨는 걸 느꼈고, 더 내 단도를 빨리 고쳐 쥐었다.


"좋아! 하지만, 내 단도 공격에 버텨내지 못하면 절대 내 협조는 구할 수 없을 테니까. 어디 한 번 겨뤄볼까?"


그 말과 동시에 내달렸다. 날쌔게 박찬 허벅지와 휘두르는 팔의 감각.

[광화]까지 발동시키며 난 만반의 태세를 취했고, 난 남자에게 얽혀들어 갔다.

그렇게 싸움은 시작되었다.



···싸움은 너무나도 손쉽게 끝났다.


"큭!"


[심안 LV.99]까지 사용하며 난 남자를 엄청 쳐다봤다.

그래도 남자는 정말 나보다 고수인지, 보지도 못한 동작으로 날 현혹시켰고.

그 결과. 난 지금 이렇게 등에 팔이 묶인 채였다.


"윽···!"


허리 뒤에 팔이 묶인 채, 남자랑 밀실에 단둘이 있는 상황. 적잖이 난 위협감을 느꼈지만, 난 움직일 수 없었다.

그저 강제로 의자에 엉덩이를 착석된 채, 남자가 날 쳐다보는 시선을 받을 뿐.

여전히 가슴 앞엔 설문지가 내밀어져 있었고, 난 물끄러미 바라봤다.


"어머, 가슴 사이즈 같은 건 대체 왜 묻는 거니. 이 변태 조사관아!"

"에에. 아하. 상부의 지시니까요. 그보다 역시 팔이 묶여 있으셔야 작성하실 수 없을 테니. 구두 구술 해주시면, 제가 대필하는 것으로···."

"어머, 가슴 사이즈부터 시작해서, 친한 친구, 좋아하는 음료수까지, 이런 개인적인 사생활 침해 행위는 경찰 신고하면 금방 사형일 테니까, 당장 그만두도록 해!"


그래도 조사관은 내 앞에서 미소만 지을 뿐. 바뀌는 건 없었다. 오히려 책상 서랍에서, 우윳빛 액체가 든 유리병을 꺼냈고, 일어선 조사관은···.


"설마, 그걸 나한테 먹이려는 거야?"

"예, 역시 그편이 편하실 거라 생각합니다만."

"어머, 그게 뭔지도 설명 안 해놓고, 함부로 남의 몸에 이상한 걸 투여하려고나 하고. 너 정말."

"죄송하게 생각한답니다."

"흐으으···."


갑작스레 납치돼서 그래도 참고 있었지만, 난 아찔히 위기감이 덮쳐오는 걸 느꼈다.

대체 저게···? 아직 최고가 되기도 전인데, 이상한 약물에 몸을 유린되긴 싫었고, 난 강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닿을 리도 없는, 마음속의 구조 요청.


그래도 난, 네라스를 비롯해서, 아스모데우스를 떠올리며 마음속의 입술로 외쳤고. 그때였다.


"큭 조사 공간에 변동이···!"

"어머나···?"

"히야앗···! 주인···!"

"네라스!"


지축이 흔들리는 듯한 굉음.

여기저기서 돌 먼지가 쏟아져 내리며 파괴의 전조를 알렸고, 동시에 닫혔던 갈색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들어온 건, 그리운 까만 고양이와···!


"아아, 감히 나의 소환자를 지금 침해하겠단 말인가."


얼음 같은 눈빛을 띤 채, 반팔 제복 남자를 쏘아보는 아스모데우스의 모습.


"아스모데우스!"

"큭. 이 정도의 영압이라면 역시···."


눈엔 미소를 띤 제복 남자는, 한 손을 쳐들곤 무언가의 기기를 조작했다.


"그 죄 죽음으로 받지 아니하고선 제값이 아니겠지."


그것과 동시에 아스모데우스가 오러블레이드를 파동친 것은 동시.

채찍처럼 나아가던 칠흑빛의 검기는 그러나, 닿은 순간 남자가 사라진 허공을 공허하게 퉁겼을 뿐이었다.


"추적은 어렵지 않지만, 공간이 붕괴하고 있다. 일단은 본래 장소로."

"주인!"

"어머, 알았어 하인들아!"


난 아스모데우스의 손을 잡았고, 이윽고 주위 공간이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휘황한 공간 이동의 장면. 그 속에서도 난 어쩐지 오빠처럼 느껴지기도 한 든든한 아스모데우스의 팔을 붙잡고 있었고, 이어서 주위가 일변했다.


"···제대로 왔구나."


털썩 하고 쓰러지려던 날. 아스모데우스가 껴안듯 붙잡아줬다. 이윽고 난 아스모데우스의 등에 업혀졌고, 그대로 난 남자 등에 찰싹 밀착한 채 집을 향해갔다.


"히얏···, 주인! 이런 상황에선 역시 쉬셔야 하는 겁니다. 살인은 좀 더 나중이에요!"

"어머, 역시 그런거겠지만 대체 아까 걘 뭐였지. 날 납치해서 내 신상명세를 가로챌려고나 하고 있고···!"


난 바다처럼 넓은 아스모데우스의 등에 내 육체를 착 밀착한 채, 편하게 집을 향했고, 정말 형제처럼 든든한 아스모데우스의 널따란 등짝에 감탄하며 말했다.


"어머, 근데 아스모데우스! 넌 아까부터 의견 하나 없이, 계속 걷기만 하고 있니! 너도 뭔가 적들에 대한 정체라던가 추측이라던가 말해봐! 이 마왕 마왕아!"

"아니, 이러고 있으니, 간만에 예전 기억이 떠올라서 말이다."

"어머, 예전 기억?"


난 채근하듯 아스모데우스를 다그쳤지만, 그 이상 아스모데우스는 입을 열진 않았다.

기쁜 듯, 아련한 듯. 슬프게도 보인 아스모데우스의 옆얼굴.

난 내 허벅다리를 엄청 안전하게 감싼 아스모데우스의 손길 편함을 느끼며, 집에 도착했고 남은 일을 생각했다.


아직 저녁때까진 시간이 있는 거지만, 정체불명의 무리 때문에 나다니긴 꺼려졌고, 난 일단 몸부터 쉬기로 했다.

꽤나 아까에 비해선 마음도 진정됐지만, 그래도 더 식힐 필요가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충분히 휴식하도록. 나는 지금부터 잠시 공격자의 정보를 조사하러 갈 참이지만, 그래도 이 집에 결계정돈 구축해두는 게 좋겠지."


그렇게 말하고서 아스모데우스는, 검은색의 역 십자가를 꺼내 들더니 방 한가운데 지면에 꽂았다.

1.5m 크기, 금속 재질의 십자는 엷은 황금빛을 내더니, 투명히 녹아 사라졌고, 아스모데우스는 떠나갔다.


"히야앗···! 이 정도의 결계라면 확실히 아스모데우스 씨와 동급의 상대가 아니고선 침범하긴 어려운 걸 테니까요!"

"어머, 그래? 그럼 아스모데우스도 나한테 꼭 필요한 애였다는 거지. 정말 잘 됐어. 업혔을 때 감촉도 좋았구, 앞으로도 내 승용하인으로 이용하면 될 테니까! 네라스 너도 아스모데우스를 본받아서 주인을 태우고 거리를 뽈뽈 돌아다닐 수 있도록, 호랑이한테 배워서 체격 커지는 법을 배워오도록 해! 이 소형 고양이야!"

"히야앗···! 그렇게 말씀하셔도 이미 다 큰 체격을 키울 방법은 없는 거니까요! 썰매라면 어떻게 끌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그래서야 이 행성의 통상적인 고양이를 넘어서는 근력 수치의 행동이니까,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건 뻔하다구요! 주인!"

"어머, 이 바보야! 남의 눈을 신경 써서 주인의 편의조차 신경 써주질 못하는 바보 같은 행동은 필요 없는 거니까. 지금 당장 고양이 썰매원이 될 준비를 하도록 해! 네라스!"

"히야앗!"


한창을 네라스와 투닥거린 난, 네라스가 마침내 [마계화의 꽃의 싹]의 물을 주러 떠나갔을 때, 따라가 보며 화분의 상태를 확인했다.

제법 싹이 올라서 줄기가 올라오고 자란 모습을 보이고 있었고, 그래도 꽃은 언제쯤 피는 걸까.

난 알 수도 없이, 정말 아스모데우스가 업혀 다니기 좋은 남자애란 걸 알고서, 화락 내 가슴을 껴안아 보았고, 그렇게 창밖엔 기분 좋은 오후의 햇살이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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