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할 때까지 환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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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탄지
작품등록일 :
2020.11.10 03:20
최근연재일 :
2020.12.16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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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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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8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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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7화

DUMMY

“후우.. 후우.. 너무 일찍 왔나?”


그녀는 아직 오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짜증이 올라 왔다.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해보려다가 찌질이처럼 보일까봐 마냥 기다렸다.


“하..”


족히 두 시간은 기다렸는데 아직도 오지 않고 있었다..


“아.. 먹튀... 밴..”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다.


“어?!”


문득 날짜와 장소는 정했지만 시간은 정하지 않았다는 게 떠올랐다.


“아. 이 멍청한 놈..”


“여보세요? 언제 나올 거야?”


전화를 해서 변명할 틈을 주지 않았다.


“어? 예?!”


“오늘 만나기로 했잖아.”


“아.. 그게 지금 일어나서..”


“그럼 지금 씻고 나와. 만나기로 했잖아.”


“어...”


“알았지? 약속했잖아. 씻고 나와.”


“네.. 네..”


억지로 대답을 받아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찌질이처럼 보일까봐 일부러 토요일까지 단 한 통의 연락도 하지 않은 게 패착이었다.


“그래도 뒤늦게 알아차렸으니 다행이다.”


하마터면 혼자 지레 짐작하고 집으로 돌아갈 뻔 했다.


“역시..”



“어디야? 버스? 알았어.”


다시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녀가 지금 오고 있다.


됐어.


“나? 지금 역 출구 앞에 있는데?”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이제 곧 만난 다는 생각에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니 역 출구 앞에 있다고 무슨 색 옷?”


이상하게 자꾸 내가 어디 있는지 무슨 옷을 입고 있는지 물었다.


“검은색 후드티에 모자 쓰고 있는 사람이 나인데?”



갑자기 전화가 끊어졌다.


“여보세요? 뭐야?”


전화를 다시 걸어보았지만 차갑고 낯선 여자가 말했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몇 차례나 더 전화를 걸었다. 여전히 낯설고 차가운 여자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으!!!”



분노가 치밀었다. 처음부터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이정도로 짜증이 나지는 않고, 그냥 당연히 원래 있었을 일이라고 생각하고 발을 돌렸을 텐데.


기대가 컸고 거기다가 나오겠다는 확답까지 받았으니 더 화가 났다.


휴대폰을 주먹으로 꽉 쥐었다.


“후우..”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기는 싫었다.


쉼 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5분정도 쉬었다가 다시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왜 안 받았어?”


“그.. 그게...”


“장난으로 눈앞에 보이는 사람 옷차림을 말했는데, 갑자기 왜 전화를 끊어? 우리 만나기로 약속했었잖아?”


“그.... 무슨 옷 입고 있으세요?”


‘얘 까먹었었네. 내 생김새까지.’


내가 누군지 잊어버리지 않을 정도로 연락을 했어야 했다.


“나? 초록색 티에 검은색 바지.”


“어...”


“나 지금 아까 거기 아닌데..”


“그럼.. 지하철 안 화장실 쪽으로 올 수 있으세요?”


또 누구인지 얼굴을 확인하고 튀려는 게 분명했다.


“거기 말고 에스컬레이터 앞으로.”


그렇게 말하고 끊었다. 처음에는 화가 나서 그 화를 전부 토해내 주려고 했다.


“여기서 왜 몰래 훔쳐보고 있어? 누구인지 확인하려고? 나야. 기억 안나?”


“아.. 예... 안녕하세요..”


몰래 숨어서 확인하고 가버릴 거라고 생각해서 미리 숨어 있었다.


소심한 건지 아니면 겁을 먹은 건지 묘하게 귀여웠다.


“음료수 마시러 가자.”


“아..”


“가자. 응?”


“네..”


예전 같으면 이런 예쁜 여자에게 말도 걸지 못했을 것이다. 예쁜 여자가 아니라 보통의 여자에게도 당연히 말도 걸지 못했었다.


하지만 남추로 살면서 여자들에게 말을 걸고 번호를 따면서 내 멋대로 하자는 마인드로 살다보니 내 성격이 180도 바뀌었다.


사람들 앞에서 말도 술술 나왔다. 그러다 보니 자신감은 더 쌓였고 자신감이 넘쳤다.


아이러니다. 잘생긴 외모가 아니라 오히려 흉측하고 못생긴 얼굴이 나에게 자신감을 갖게 해주다니.



근처 커피숍으로 갔다.


그녀는 하늘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아주 잘 어울렸다.


이래 보여도 나도 옷에 꽤나 신경 써서 나왔다. 백화점에 가서 옷을 입어봤지만 어울리는 건 없었다.


옷을 잘 입어도 오히려 못생김만 부각됐다. 그래서 아주 무난하게 검정바지에 검정 후드티를 입었다. 이게 그나마 나은 옷이었다.



그녀는 마치 납치라도 당한 사람처럼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몇 살이야?”


“예? 스물 한살..”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내 눈에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인 것처럼 보여 너무 사랑스러웠다.


너무 귀여워 웃으며 고개를 돌리다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어쩌면 내 얼굴이 보기 역겨워서 고개를 숙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라고.”


“예?!”


“이름이 뭐야?”


“이.. 이름이요?”


그녀는 주저 했다.


“이름 알려줘”


“김.. 김 수연이요.”


“수연이.. 난 남추야.”


“아.. 네..”


귀여웠다.



이름과 나이를 묻고 나자 할 말이 딱히 없었다.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수연이가 먼저 나에게 질문을 할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데이트 할래?”


직진이다. 직진.


“예?!”


놀랐는지 수연이의 눈이 토끼처럼 커졌다. 그리고는 다시 시선을 피하고 말을 더듬었다.



“그....”


“데이트 하자. 응? 하자! 영화 보자!”


“어..”


“가자 지금. 일어서.”


“아.. 네..”


내 생각이 맞았다. 수연이는 거절을 못한다. 조금 조르거나 조금만 압박하면 거절하지 못하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려온다.



지금 수연이에게 일어난 일은 전부 거절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심지어 나도 이 외모를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는데, 남이면 오죽하겠냐? 아마 남추도 그랬을 걸?’


오히려 남추는 자기 자신을 증오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니까 가상세계에 빠져 인생을 허비했겠지.’


나도 마찬가지다. 단지 아이돌이 아니라 스포츠 배팅이라는 게 다를 뿐 실상 남추와는 별반 다를 바 없이 살았었다.


“재미있지?”


“아.. 예..”




귀여워. 실상은 어떻든 겉보기에는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다음 주에는 놀이공원가자.”


“어...”


“알았지? 응?”


“그..”


“다음 주 토요일에 놀이공원 가는 거다? 약속했다?”



내가 몇 번을 물으며 압박하자 수연이는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네..”


“수연아 집이 어디야?”

“네?”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는지 수연이의 눈은 또 토끼처럼 동그래졌다. 귀여웠다.


“집주소가 어떻게 되냐고.”


“그건 왜..”



“아니 집 주소가 어떻게 되냐고 수연아.”


내가 재차 묻자 내 생각대로 수연이는 집주소를 알려줬다. 신분증을 달라고 해서 확인했다. 내 생각대로 수연이가 알려준 주소는 진짜였다.


“다음번에는 집에 대려다줄게. 오늘 재미있었어. 잘가.”


“네..”






“이야호!!!!”


너무 좋았다. 설마 내가 저렇게 예쁘고 귀엽게 생긴 애랑 데이트를 할 수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심장이 아직도 두근거렸다. 사실 센척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심장이 뛰고 너무 좋아서 기쁨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거절 못하는 여자라.. 크흐흐.. 최고다. 남추야 네가 여러모로 내게 도움이 되는 구나.”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용기가 있으면 언젠가는 거절을 못하는 미인을 얻게 된다.


수연이는 소심하고 내성적이며 부끄럼이 많고 거절을 잘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남추 같이 생긴 사람을 만나지.”


아까 수연이와 카페에서 대화를 하고 영화를 볼 때도 사람들은 우리를 쳐다봤다.


“신기했겠지. 현실에서 미녀와 괴수를 볼 일이 없었을 테니까”



나는 거기서 우월감을 느꼈다. 네들이 말도 못 걸어 볼 사람과 나는 영화를 보고 있다는 우월감이었다.


그동안 예쁜 여자들에게 말을 걸고 전화번호를 물어 굴욕감을 주는 것으로 내 자존감과 자신감을 채우고 있었다.



실제로 수연이라는 미녀와 데이트를 한 시점에서 내 자신감과 자존감은 하늘을 뚫고 올라갔다. 신이라도 된 느낌이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신일지도.”


인간 세계로 내려오기 전에는 개의 모습으로 나를 위장하고 있다가 인간세계에 내려와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는 신일지도 모른다.



그냥 기분이 좋았다. 잘생긴 외모와 우월한 신체를 갖은 사람으로 환생했다면 이정도로 기분이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금수저 물고 태어난 게 아니라 흙수저로 자수성가했다는 느낌이 이런 느낌이겠지..”


물론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게 짱이다. 하지만 성공만 한다면 어떤 수저를 물고 태어나든 상관이 없다.


“큭큭. 모르고 가도 산으로만 가면 되지.”


침대에 누웠다. 오늘 있었던 일이 믿겨 지지 않았다. 입 꼬리는 자꾸 지 멋대로 올라가서는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와 대박이다.”


노가다를 해서 돈을 모아 아이돌의 앨범을 사는 이해안가는 짓을 하려고 했던 이유는 빨리 남추의 소원을 들어줘서 다른 사람으로 환생하기 위함이었다.


처음에는 하루라도 빨리 남추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노가다를 뛰는 것도 고행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믿음으로 남추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미친 사람처럼 일했다.


“캬~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는데. 설마 내가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수연이와 함께라면.


“거절을 못하니까 조금만 조르면 다해주는 건 확인 했는데.. 상한선이 어디까지일까?”


아무리 거절을 못한다고 해도 일종의 상한선은 있을 것이다.


“결혼 해달라고 부탁하고 애원하면 또 해주는 거 아니야?”


“상한선이 없나? 남추처럼 생긴 애랑 데이트를 하는 거 보면?”


문득 아무리 해도 받아들일 수 없는 수연이의 상한선이 궁금했다.


“다음번에는 뽀뽀를 해달라고 해볼까? 크흐흐.”


너무 좋았다. 생각만 해도 너무 좋았다.



“밴을 걱정하고 차라리 졸업 시켜주기를 바랐는데 쿨하게 환전해주고 배팅을 계속하게 해주네. 크크크.”



그러다가 문득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게 다시 생각해보니 납득이 되지 않았다.


특히 내가 거울을 봐도 남추의 얼굴은 심각했는데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거절을 못한다고 해도 이게 말이 되나?”


그런 생각이 들자 다른 의미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니야 생전 처음 겪는 일이라 생소하고 낯설어서 괜히 불안해하는 거야.”



그렇게 생각해도 불안함이 쉽사리 잠재워지지 않았다. 꿈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의심해야 한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꿈같은 일이 일어날 확률은 거의 없다. 아니 없다.


머릿속으로 시계를 거꾸로 돌리며 내게 일어났던 일을 생각했다.


“졸업.. 밴.. 먹튀... 뭔가 하나 빠진 것 같은데.”


뭔가 생각이 날듯 말듯 하면서 나지 않았다.




“승부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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