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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헌터명가 서자는 죽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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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DUMMY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을 닦은 강율은 접근 방식을 달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럴 경우에는 조언을 듣는 게 답이었다.


그가 아는 선에서 부담 없이 물어볼 수 있는 이는 정해져 있었다.


“너, 멍청이야?”


돌아오는 대답은 그리 곱지 않았지만.


강율을 억지로 앉힌 아세리아는 한숨부터 푹 쉬었다. 그녀가 들은 게 맞다면 그가 마법을 익히는 방식은 사도에 가까웠다. 그것도 원론적이다 못해 원색적인.


“너는 마법을 뭐라 생각하는 거야. 복권 긁기? 주사위 굴리기? 마구잡이로 룬을 배치한다고 될 리가 없잖아.”


“몇 개는 됐는데······.”


“아가리.”


탁상에 공책을 펼친 아세리아는 원을 그렸다.


“잘 봐. 비전도 그렇듯 마법이라는 것도 결국 마력의 수발을 위해 개량된 학문이야. 가령, 불을 피운다고 생각해 보자고. 과연 방법이 하나만 있을까?”


“기름을 이용할 수도 있고, 마찰을 일으킬 수도 있겠지. 정 안 되면 벼락이 떨어지면서 남긴 잔불을 건져도 될 거고.”


“맞아, 원하는 현상을 어떠한 방법으로 발현할 건지 정해야 비로소 길이 보이는 거야. 사실, 이건 기초 중의 기초야. 구태여 설명할 것도 없어.”


“왜?”


“불을 피우기에 적합한 방법을 찾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니까. 중요한 건 그걸 어떻게 가공하느냐야. 마법의 수준은 여기에서 정해진다고 할 수 있어.”


쉽게 말해 룬-자체 구조 술식-을 다듬는 작업이 마법의 핵심 개요라 할 수 있었다.


룬은 정교하고 세련될수록 효율적인 면모를 보였다. 보다 적은 양의 마력으로, 보다 다채로운 기적을 일으킬 수 있으니까.


“알다시피 비전은 마법사들도 익히고 있어. 다른 직종과 다른 건 룬뿐이지. 그래서 그게 마법사의 경지와 성향을 대변해 주기도 해.”


강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면 아세리아는 하우스트와 다르게 얼음과 한기를 다루는 데 능숙한 마법사였다.


“마법사가 여러 학문에 두루 능통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야. 누구보다 넓은 안목을 가져야 하니까. 어떤 분야에서는 생소한 기술이, 다른 분야에서는 당연하다는 듯 쓰이니까.”


“시점의 전환이 중요하다는 거네.”


“워낙 배워야 할 양이 많으니까, 다방면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이들은 극히 드물어.”


강율은 나지막하게 탄성을 터뜨렸다.


“···놀랐어.”


새침데기 같은 인상이 강한 아세리아였다. 그래서 남을 가르쳤는데 소질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네 입은 욕하는 데만 쓰는 게 아니었구나.”


“뭐?”


“난 불만을 토해내는 데만 활용하는 줄 알았거든.”


“미안하게 됐네. 시아처럼 애교가 많은 성격이 아니라서.”


밉살맞게 어깨를 으쓱인 아세리아가 강율을 쿡, 하고 찔렀다. 시큰거리는 옆구리를 쓰다듬은 강율이 돌연 떠오른 물음을 던진 건 그때,


“크흠, 그런데 너는 어떻게 마법을 익힌 거야?”


알면 알수록 의문이었다.


언니인 아델리아는 기사. 그러니까 육탄전의 스페셜리스트였다. 달리 말하자면 비전을 익혔다는 건데, 그녀의 동생인 아세리아는 정작 마법사가 되었다.


거기에다─


“슈미츠가가 마법으로 유명한 곳은 아니잖아?”


따로 과외를 받는 기색도 없고, 다른 교관이 참견하지 않아도 꾸준히 성과를 보였다.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알 바 아니잖아. 나한테 관심 있어? 뭘 그렇게 꼬치꼬치 물어봐.”


소름이 돋는다는 듯, 제 팔을 쓸어올린 아세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 맹렬한 거부 반응에 강율은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나도 상처받을 때가 있어.”


“사내자식이 이런 걸로 기죽기는. 아무튼 너 같은 경우에 사용할 수 있는 한 가지야. 대개 신생 가문이 자주 사용하는 방법인데, 그리 추천하지 않아.”


“그래도 듣고 싶은데.”


멈칫한 아세리아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녀가 펜을 들어 올린 건 얼마 뒤. 새하얀 공책 위로 53가지의 문자가 쓰였다.


“룬?”


“태초의 룬이야. 기본 중 기본이지. 대부분의 마법이 여기에서 파생돼. 가문마다 추가되거나, 삭제되는 룬은 있겠지만 그래도 이 틀에서 시작되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는 거지.”


“그러면 내가 배운 비전에 부합되는 룬도 조합하면 찾을 수 있겠네?”


“불가능해.”


“왜?”


“경우의 수가 무량대수에 가까우니까. 그중 태반은 활용의 여지도 없는 쓰레기고. 왜 가문에서 수십, 수백 년 동안 사람을 갈아 넣는다고 생각하는 거야?”


“시행착오 또한 다음 단계로 가는 토대가 된다는 거네.”


“맞아, 대규모 실험 같은 건 설령 실패로 끝난다 해도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으니까. 물론 그 기록을 볼 수 있는 이는 한정되겠지만 말이야.”


“명가 출신 마법사가 강한 이유가 있었네.”


“그러니 개인이 독학으로 마법을 익힌다는 건 미친 짓이야. 시간을 허공에 버리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여태껏 아세리아의 의견을 수용한 강율이었지만, 그것만큼은 부정하고 싶었다. 아니,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는 여러 룬이 얽히고설키기 시작했으니까.


족히 수천, 수만에 달하는 마인드맵이 쭉쭉 뻗어나갔다.


결과가 나온 건 얼마 뒤.


자리에서 일어난 강율이 자세를 잡았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금방 익힐 수 있는 거였다면 마법사들이 고생 안 한다니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네가 잘하는 사격술에나 집······.”


강율이 사라진 건 그 순간. 눈이 깜빡이는 것보다 빠르게 앞으로 쏘아진 그의 족적 위로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비전이 아니라 마법에 의한 현상.


무엇보다 놀라운 건 어떠한 전조도 느껴지지 않았다는 거다. 위력을 줄인 대신, 실용을 극한까지 추구한 형태.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아세리아가 검지로 바닥을 가리켰다.


“어, 어떻게 한 거야?”


“그냥.”


“하, 인생.”


이마를 짚은 아세리아는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


쿠르스타 백작가의 성세는 예전만 못했다. 기실 이름만 백작가일 뿐, 규모는 자작가에 크게 못 미쳤다.


백여 년 전, 일어난 차원 대전에 참전한 가주가 가문의 모든 비밀을 끌어안고 죽은 결과였다.


다행스럽게도 비전의 일부가 남아 있어 어떻게든 형태를 갖추었지만, 그 안에 담긴 비기만큼은 어찌할 수 없었다. 일인전승으로, 오직 당대 가주만이 익히도록 내려왔으니까.


자연스레 나락의 길을 걷게 된 건 당연지사.


하지만 쿠르스타가라고 마냥 안주했던 건 아니다. 무려 백여 년. 대를 거듭해 비원을 전달하니, 작게나마 결실을 볼 수 있었다.


벤텔이 그 증거였다.


쿠르스타 백작가 사상 역대급 천재.


태어났을 때부터 정점이 약속된 벤텔이었으나 그는 거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보다 강한 상대와 겨루었다. 경험과 체험으로 부족한 비전을 채우기 위해서.


입학식도 참석하지 않고, 북부 저 먼 곳에 있는 B급 헌터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벤텔은 끝없는 갈망 속에서 자신을 완성시켰다.


쓰러진 동급생이 못마땅한 건 그 때문일지도 몰랐다.


완전한 비전, 넘치는 지원을 받았음에도 수준 차이는 명확했으니까.


“정말, 쓰레기라 아니할 수 없네. 아니, 나태한 건가? 어느 쪽이든 구제불능이라는 건 변함없지만.”


1학년 내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이들이라기에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결과는 보이는 대로.


싱거웠다.


고작해야 생도는 생도라는 걸까.


수석 자리를 차지한 유일환과도 한 번 붙어보고 싶었으나 고작 C급 미궁, 그림자 구덩이에서 치명상을 입고 몸져누웠다는 소식을 듣고 흥이 식었다. 그런 녀석과 싸운다고 해서 얻을 게 있을 리 만무할 터.


더구나 슬슬 이 지루한 고행을 끝마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던 참이었다.


비전서에서 말한 경지에는 아직도 도달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완벽하게 익히면 뇌성이 동반하면서 경천동지할 힘이 솟는다고?’


웃기지도 않은 소리였다.


그렇게 강한 비전이었다면 선대가 왜 차원 대전에서 전사했겠는가.


초대가 제 위업을 부풀리기 위해 자행한 허풍이라는 건 누가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자신 있게 확신할 수 있었다.


비로소 자신의 대에서 비전, ‘전벽괴법’을 완성했다고.


몇 번이고 검토하고 수정을 해도 보완할 부분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이제 세상으로 나가기만 하면 되었다.


보여주는 거다.


다우구스류 못지않은 비전이 아스키 제국에 또 있었다는 걸.


준비 운동도 되지 못한 동급생을 짓밟으며 훈련장을 나선 벤텔의 눈에 익숙한 남자가 들어왔다. 짧게 깎은 은발에 푸른 눈동자. 냉막해 보이는 그 사내는 필레아 사관학교의 부회장이었다.


“뭐야, 홀덤 선배임까. 저번에 말했던 건 잘 풀렸슴까?”


“상상 이상일 걸? 부회장이 아니라 어쩌면 생도회장이 될 수도 있는 길이 열렸으니까.”


“생도회장?”


그 단어에 벤텔은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필레아 사관학교의 생도회장 출신은 졸업하고 나서, 하나같이 거물이 되었다. 이게 무엇을 뜻하겠는가.


‘출세가도의 상징.’


벤텔에게는 그 무엇보다 가지고 싶은 명패였다.


“그래, 나르헤시아가 추천한 녀석과 네가 겨뤄서 이기는 쪽이 생도회장이 되는 거야.”


“그런데 상대가 누굼까? 이미 얻어터진 녀석이 나오면 김이 팍 샐 것 같은데.”


“지구인이야.”


“뭐라고 하셨슴까?”


“지구인이라고. 이름은 강율이라고 하던데 말이야. 알고 있어?”


“하.”


순간, 벤텔의 어깨 위로 샛노란 번개가 치솟았다 가라앉았다.


지구인.


원수라면 원수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상대가 연관이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감정이 일어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가문이 차원 대전 때문에 풍비박산이 났으니까.


“직접 본 건 아니지만 강하다고 하더라고.”


“저도 몇 번 들은 적 있슴다. 총기를 사용하는 솜씨가 범상찮다고 하더군요.”


그래 봤자 장난감에 의존하는 애송이였다.


같잖을 노릇이었다.


“나르헤시아 선배, 그렇게 안 봤는데 생각보다 안목이 형편없네요. 아니면 쿠르스타가를 경계하고 있는 거려나요?”


의심이 강하게 들었다. 쿠르스타가는 한때 다우구스가의 아성에 도전하기도 했으니까. 제 손으로 경쟁자를 끌어올려주기 싫다는 거겠지.


그 말에는 홀덤도 일부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정황이 명명백백했으니까.


“아마도 그럴 공산이 크겠지. 듣자하니 두 사람이 제법 친한 사이라던데.”


비릿하게 웃은 벤텔이 송곳니를 드러냈다.


“잘근잘근 짓밟는 맛이 있겠슴다. 이번 기회에 나르헤시아 선배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


“이기는 거야, 문제도 아니지만 귀찮네요.”


“생도라면 누구나 바라는 자리다. 왜 그리 거부하는 거지?”


저번에 나르헤시아에게 제안을 받았을 때 넌지시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쳤지만, 사실 강율도 탐이 나긴 했다. 생도회장이 되면 따라오는 특전이 적지 않았으니까. 후일 북부에 진출할 때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테고.


하지만─


“생도회장이 된 후에 생도회 일원들이 태업하면 상당히 짜증날 것 같거든요. 아시다시피 저는 지구인이지 않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필레아 사관학교가 출신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곳은 아니지만, 그 구성원은 또 달랐다.


“뭣하면 생도회 일원을 네 입맛대로 편성하는 건 어떻지? 일단 나부터가 그랬으니까. 물론 그로 인해 생기는 문제는 네가 책임져야겠지만.”


“그 말,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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