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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다시 사는 탑셰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어디서본듯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11.18 11:43
최근연재일 :
2020.12.10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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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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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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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8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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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화

DUMMY

“...장민재 지원자, 장민재 지원자.”


깨고 보니 보이는 다섯의 사람들.


민재는 멍한 얼굴로 자신을 부른 사람을 보았다. 최형식 셰프. 경희대 조리과학과 교수였던 사람.


그가 민재에게 물었다.


“요리를 왜 좋아하죠?”


민재는 눈을 비볐다. 숙취로 고생하고 있어야 하는데 눈앞의 상황이 너무 비현실적이다.


“예?”

“이 친구, 너무 긴장했네.”

“그냥 속에 있는 마음 편하게 얘기해요. 우리 안 잡아먹어.”


4명이 돌아가면서 웃고 있다. 최형식 교수만 빼고.

그가 다시 한 번 물었다.


“요리를 왜 좋아하냐고 물었습니다. 대답하시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지만, 답을 해야 할 것 같다. 민재가 얼떨떨해 하며 답했다.


“좋아했죠.”


순간 의아함이 번지는 얼굴들.


“좋아해서 16년을 몸담았습니다. 어디 레스토랑 셰프까지 됐는데 현실은 시궁창이더군요. 남들 쉬는 날엔 쉬지도 못하고, 연기 들이키느라 폐렴 걱정에 잠 못 이루고.”


꿈인가 보다.

그가 신세한탄을 하듯 나불대기 시작했다.


“스타지stagie(주방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막내, 다른 말로 노예) 때는 너무 좋아서 주7일 18시간 근무도 버텼습니다. 다 소용 없더군요. 인생, 다 돈이더라고요. 오너셰프가 아닌 이상 양송이버섯 하나 고르는 것도 내 맘대로 못 했습니다. 사장은 지 지갑사정만 생각하지, 손님 입으로 들어갈 음식은 안중에도 없고-.”


그가 허심탄회에 방점을 찍는다.


“돈만 있으면 다시 요리합니다. 하지만 내 나이 39살이에요. 모은 돈이라곤 6천이죠. 영혼까지 대출 끌어 모으면 치킨집 하나 차릴 순 있긴 하겠죠, 근데 닭 냄새만 주구장창 맡으려고 그 개고생을 했겠습니까. 요리. 좋아했어요. 지금은 너무 밉습니다.”


면접관들은 이제 미친놈을 바라보는 얼굴이다.

찌푸려지는 인상들. 턱을 괴고 있는 손들. 꿈이라기엔 지나치게 생생하다.


면접관 중 하나가 말했다. 의문이 가득한 목소리다.


“내가 지금 자네 지원서를 보고 있는데.”


그의 말 한마디가 민재의 귀에 무겁게 꽂힌다.


“자네 나이 23살 아닌가? 84년생.”




***




기이한 면접을 마치고 민재는 조리대학 본관을 나왔다.

아직까지 꿈이 깨지 않는 것을 보아,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거나.


“이거 설마.”


이 상황이 현실이다.


흐느적거리듯 걸으며 민재는 볼을 꼬집었다. 통증이 찌릿하고 찾아온다.


“진짠가?”


그제야 민재는 깨달았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이 바람, 겨울의 차가운 공기, 질척이는 눈들.


그리고 보이지 않아야 할 아버지.


“아부지!”


민재가 달려 나가더니 아버지, 장만득을 껴안았다.

당황하던 만득은 손을 어찌할 줄 모르다가 민재를 토닥였다. 한동안 그의 울음이 계속됐다. 영문을 모르겠는 얼굴. 오열하는 아들.


만득이 입을 열었다.


“고생했다. 고생했어.”


울음소리가 더 커졌다.


민재는 꿈이라면 깨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아버지는 10년 전 봄,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민재야. 내는 면접결과 상관 안 한다. 최선을 다 했지 않나. 나는 그거면 만족하디.”

“예?”

“니 원래 대학 안 갈려 했다 아이나. 군대 갔다오고 주방일 하던 아가 갑자기 대학 간다케서 놀랐는데, 내는 니가 어떤 길 가도 응원한디. 알았제?”


퉁퉁 부은 눈이 만득을 올려다봤다. 콧물을 훌쩍이면서 민재가 물었다.


“아부지. 무슨 소리예요. 나 대학 붙고서 안 갔잖아요. 조리사는 기술직이라 해서 경력 쌓는답시고 뷔페부터 시작했지. 나중에 대학 안 간 거 후회했죠. 요리에 학벌이 그렇게 중요한 줄 누가 알았겠어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인맥이 중요하더라고요.”

“...민재 니, 말투가 와 그라노? 그리고 나 모르는 사이에 어디 일 더 했나. 아 참 이상하네. 면접 보러온 아가 무신 합격은 합격. 김칫국 들이키지 마라.”


어디 아픈 아들을 바라보는 것 같은 만득의 눈. 현실감각이 돌아온 민재는 두 손으로 볼기짝을 때렸다. 얼얼해지는 감각이 추위에 마비된 피부 위로 퍼진다.


민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 아부지. 혹시 오늘이 무슨 날이에요? 아니, 저 몇 살이에요?”

“23살이다 이 문디야. 지 나이도 까먹으면 우짜는데. 니 면접 죽 쒔제? 민재야. 면접결과가 어떻게 되던 내는 상관 안 한다. 니 나이 아직 짱짱하다 아이가. 23살. 별 거 없다. 좋은 경험했다 생각해라.”


이걸로 확실해졌다.


민재는 과거로 회귀했다. 와인을 마시고.






자동차가 고속도로를 달렸다. 만득은 정면을 바라보면서도 힐끔힐끔 민재의 눈치를 훔쳐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민재는 생각에 잠겨 있다.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과거로 돌아왔다...”

“니 뭐라 했노?”

“아, 아니에요!”


민재가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아버지에게까지 미친놈 취급을 받을 수 없다. 이게 꿈이 아니라면, 적응해야 한다.


민재는 우선 지금 상황을 정리한다.


아버지가 살아있다. 어머니도 살아 계실 것이다.


면접은 망했다. 대학은 못 붙는다고 봐야 한다.


“그래도 상관없지 않나?”

“니 자꾸 뭐라 그라는데.”

“혼잣말이에요. 죄송해요.”


찝찝한 만득의 눈을 뒤로하고, 민재는 휴대폰 액정을 바라봤다. 오랜만에 보는 폴더폰. 그 촌스러운 디자인에 떠오르는 날짜.


[2005년 12월 2일]


흉터가 없는 손이 보였다. 민재는 생경한 광경을 바라보듯 손을 이리저리 움직여봤다. 부르트지도 않고, 데인 흔적도 없는 멀쩡한 손이었다.


요리사의 손이라 할 수 없는 손.


요리를 계속 해야 하나?


이번에는 속으로 생각한 민재가 고민했다. 면접에서 패기 있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돈만 있으면 다시 한다 했던 그 말.


사실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과거의 것들을 되돌릴 수 있는 시간.


이 상황이 현실이라면, 많은 것들을 바꿀 수 있다.

아버지의 죽음부터, 어머니의 암투병, 자신의 요리 인생까지.


살면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던 민재였다. 만득의 죽음 이후 그의 회사가 보유하고 있던 어음이나 부채를 감당할 수 없었던 민재는 상속포기를 했었다.

발붙일 집 하나 없이 쫓겨나고 빚쟁이들한테 시달리던 삶. 어머니는 고된 노동 끝에 병을 얻었다.


그런데 그 비극이 시작되기 전으로 돌아왔다.

주방일로 혹사당했던 몸이 멀쩡하다. 어머니 아버지도 건강하시다.


다르게 살 수 있다.

내 요리를 할 수 있다.


민재는 환희에 차올라 눈을 질끈 감았다. 좌석에 몸을 파묻으며, 그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만끽했다.




***




민재와 만득은 집으로 돌아왔다.


천안. 주공 아파트.

문을 열자마자 음식냄새가 민재를 반겼다.


앞치마로 물기를 닦던 민재의 어머니, 김선화가 주방에서 나왔다.


“면접 우찌 됐...”


선화는 만득의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아들을 유심히 지켜보는 그의 눈은 걱정으로 가득했다. 민재는 말없이 걸어오다가 선화를 껴안았다.


고개를 빼꼼 내민 선화가 만득을 바라봤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선화에게 만득은 검지를 들어 올려 관자놀이에 대고 빙글거렸다.


뜻을 알 수 없는 제스처. 그녀가 문신한 눈썹을 들어올렸다.


“뭔데. 니 아 두고 뭐 하는 짓이고? 니는 쫌 놔라. 숨 막힌다 이 자슥아!”

“잠깐만요. 이렇게 조금만 있을게요.”

“하이고, 안 푸나!”


그녀는 버둥대다가 포기했는지 민재의 등을 두드려줬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감정의 변화가 있었던 게 분명했다. 이럴 때 하면 좋은 말을 선화는 알고 있다.


“고마 하고, 밥 묵자. 국 식는다.”


오랜만에 먹는 집 밥.


민재는 환하게 웃더니 힘을 꽉 준 팔을 풀었다. 그는 선화의 뒤를 졸래졸래 따라가 식탁에 앉았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집안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턱.


그리고 놓이는 밥. 흰 쌀밥에 윤기가 자르르하다. 민재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떡 삼켰다. 상다리가 휘어질 듯 반찬들이 가득하다.


그 중 민재의 시선이 꽂힌 곳은 국그릇이었다.


미역국. 기름이 떠다니는 국물에 국물용 멸치가 제거되지 않은 채 둥둥 떠다닌다.


간만에 보는 충격적인 비주얼. 정겨웠다.


민재는 실실 웃어댔다. 회귀 이전에는 더 이상 먹을 수 없었던 미역국이다. 선화는 어릴 적부터 미역국을 이렇게 먹었다 주장했지만 비린내가 가득한 미역국은 언제나 고역에 가까웠다.


지금은?


없어서 못 먹지.


멸치들과 찐한 눈 맞춤을 하던 민재가 숟가락을 들었다. 푹 떠지는 국물과 멸치 대가리. 후루룩 거리는 소리가 한동안 이어졌다.


정신없이 퍼먹는 민재를 본 김선화 여사가 말했다.


“오마야. 니가 뭔 일이고. 싫다고 안 묵고 뻐팅기던 게 눈에 선-한데.”

“에이, 제가 언제요. 이거 너무 맛있는데?”

“면접 보고 오더니 아가 좀 맛이 갔네. 내 음식은 내가 묵어도 맛없다. 흰소리 하지 마라.”

“그래. 니 어매 음식 맛없다.”


만득의 팔뚝에 빨간 손자국이 남는 순간. 민재는 귀에 걸린 웃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 순간. 가족끼리 둘러앉아 따뜻한 밥을 먹는 이 순간.


좋다.


퍼먹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던 만득과 선화가 서로 눈을 맞추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선화가 물었다.


“그라서 민재 니, 앞으로 뭐할끼고?”

“유학 가려고요.”


우물거리는 소리에 발음이 불분명하다. 만득과 선화는 순간 자신들이 잘못 들었나 생각하여 다시 물었다.


“만다꼬?”

“미국으로 유학 갈래요. CIA.”

“CIA? 거는 또 어데고. 그리고 미-국?”


민재 니 미칬나?


말을 삼킨 선화가 못마땅하게 민재를 째려봤다. 민재가 입에 남아있는 것을 삼키더니 말했다.


“저 요리할 거예요. 이번에는 제대로.”

“그라지 말고, 그냥 니 아부지 회사 물려받는 게 안 낫겄나?”

“저 공부에 흥미 없는 거 아시잖아요.”

“공부를 무슨 취미 붙여서 하는 줄 아나. 공부도 잘하는 아가 와 요리를 하겠다고 지랄인지 하이고.”

“요리 해드릴게요.”

“뭐?”


밥그릇을 싹싹 긁어대던 민재가 말했다. 그의 눈이 빛난다.


“제 요리, 드셔보시고.”


그가 얼마 남지 않은 미역국을 들이켰다.

입안으로 들어오는 마지막 남은 국물용 멸치.


미처 제거되지 못한 잔뼈가 미역과 함께 씹히는 가운데, 민재는 말했다.


“유학 얘기 해봐요. 어무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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