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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다시 사는 탑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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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본듯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11.18 11:43
최근연재일 :
2020.12.10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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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9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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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DUMMY

대흥동. 대전프랑스문화원 분교.


2월의 하늘은 구름 하나 없이 창백했다. 오전 10시라는 이른 시간. 민재는 천안에서 대전으로 내려왔다. 근 3개월 동안,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곳을 방문했다.


새하얀 바탕의 콘크리트 벽면과 붉은색 프레임으로 분절된 통유리창.


민재는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프랑스문화원이라는 이름답게 곳곳에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소품과 가구들로 가득했다.



“민재 왔냐.”

“안녕하세요 원장님.”


커피향이 퍼지는 가운데, 백발의 남자가 민재를 반겼다. 이리저리 삐져나와있는 장발의 머리가 자연스러운 멋을 연출했다. 얼핏 보면 남루하다고 할 법한 옷가지. 하지만 그것마저도 어딘가 예술가의 멋스러움처럼 느껴졌다.


꾸벅 인사를 한 민재는 자신의 지정석으로 다가가 가방들을 내려놓았다. 먼저 등에 매고 있던 가방. 그 속에서 나온 것은 토플책들이었다.


“오늘도 정시에 왔구나. 안 힘들든?”

“어차피 차 몰고 왔는걸요. 여기서 공부하면 집중도 잘 되고요.”


CIA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들이 있다. 6개월 이상의 주방조리경력. 일정 이상의 국제공인시험 성적. 즉, 언어능력.


회귀 이전 호텔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들 중 몇이 외국인이었고, 민재는 한국인들보다는 그들과 어울려 지내곤 했다.


자연스레 접할 기회가 많았던 영어. 그러나 회화실력과 시험성적은 별개다.


“그래. 보기 좋구나. 아, 오늘 점심이니?”


원장이 물었다. 그는 민재가 가져온 꾸러미에 시선을 두었다. 두터운 쇼핑백들에 담긴 음식들. 혼자 먹기엔 지나치게 많은 양이었다.


“네. 오늘 딸린 입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넉넉히 싸왔어요.”


이곳에 오고 나서부터 민재는 원장과 함께 점심을 했다. 가끔 프랑스어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있거나 원장의 손님이 오면 그들이 끼는 정도.


오늘은 손님이 유독 많을 예정이었다. 프랑스어 단체수업도 있을뿐더러 특별한 손님이 온다.


“맞다. 오늘 정선생님 오신다고 했었지. 내 정신 좀 봐라. 내가 이렇게 깜빡한다.”


정선생.


그 이름을 듣자마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민재가 천안에서부터 대전까지 매번 뻔질나게 들락날락한 이유는 다 그 정선생이라는 인물 때문이었다.


“민재 네 음식이 그렇게 맛있다고 얘기했더니 선생님께서 기어코 온다고 하시더구나. 서울에 계신 분이 점심 먹으러 왜 대전까지 오시겠다는 건지 원. 할튼 여행도 좋아하시고 삶의 여유가 있으신 분이다. 미식에 조예도 깊으시고.”

“미식가신가 봐요?”

“미식가시지. 내가 어지간한 프랑스요리는 섭렵했다 생각했는데 그 분 모시고 레스토랑 같은 델 가면 나도 깜짝깜짝 놀라. 표현이며, 지식이며. 게다가 그 철학은.”


팔걸이 소파에 느긋한 자세로 앉던 원장은 에스프레소를 홀짝이다 말했다.


“...내가 괜한 부담 준 거 아닌가 모르겠다. 그냥 친할머니 점심 대접한다고 생각해라. 선생님도 그게 편하실 거니까.”

“네 물론이죠. 아무 생각 없어요.”


거짓말이었다. 민재는 오늘 혼신을 다 해서 음식들을 준비했다.


CIA 유학자금을 대줄 후원자. 정선생.

베일에 싸인 그 존재를, 민재는 미래로부터 들어 익히 알고 있었다.


임대업의 큰손. 2,000여 채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막대한 부호.


이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지. 민재가 짙은 미소를 지었다.




***




최 준.

세계 3대 요리학교 르 꼬르동 블루 본원 출신, 20대 중후반에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의 헤드셰프에 올랐던 천재.


2016년, 그는 요리잡지 레 퀴진에서 자신의 성공스토리를 풀어놓았다.


[조선족인 제 어머니는 중국대사관에서 청소부로 일하셨어요. 운이 좋은 케이스였죠. 다른 이주노동자들에 비해 좋은 급여와 근무조건에 있으셨고, 덕분에 제 교육환경도 나쁘지 않았으니까요.]


매스컴에서 여러 번 다뤄졌던 그의 가정환경이 이야기의 서두였다.

이미 알려진 이야기. 또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구나 싶었던 순간.


최준은 여태껏 세상에 보이지 않았던 것을 꺼냈다.


[...저에겐 둘도 없을 기회였죠. 수백 번은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때 그 분을 만나지 않았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됐었을까 하고요.]


편모가정, 이주노동자의 자녀로 자란 그가 르 꼬르동 블루의 살인적인 학비를 어떻게 마련할 수 있었는지는 늘 논란의 거리였다.


가장 많이 얘기가 나왔던 것은 스폰서의 존재. 그 날은 그가 스폰서의 정체에 대해 밝히는 날이었다.


[하루는 어머니하고 동료 분들한테 도시락을 싸드렸던 날이었어요. 이건 자랑인데, 그때도 제 손맛은 유명했거든요. 입소문이 퍼졌었죠. 귀티가 줄줄 흐르는 할머니가 대뜸 나타나더니 너만의 요리를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어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하고...]


선생님. 최준 셰프가 정선생과 처음 만나던 때였다.


그는 집으로 정선생을 초대해 어머니와 함께 저녁을 같이 했다. 이어졌던 건 유학 제의였다. 큰돈과 기회가 제시됐고, 그것을 거절할 사람은 없었다.


그 길로 최준 셰프는 프랑스행 비행기로 몸을 실었다. 그게 아마 작년, 그러니까 2004년 겨울이었을 거다.


“반쯤은 도박이었지...”


민재가 중얼거렸다.


꿈같은 이야기. 신화나 다름없는 그 이야기를 믿기에는 사례가 너무 특수했다. 하지만 그 이후, 세 명의 셰프가 연달아 동일인물을 언급했다.


그 경험담에서 꾸준히 언급되었던 단어는 ‘선생님’.

이는 한때 요식업계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흥미로운 가십거리라 여겼던 것을, 민재는 잊지 않고 있었다.


그 기회가 나한테로 왔다.


민재의 눈이 불타올랐다. 투지가 가득한 눈. 허기가 지는 지금 이 시간에 어울리는 굶주린 눈빛이었다.


“그런데 민재야. 뭐 그리 많이 싸왔냐? 6명이 먹기엔 좀 양이 많은 것 같던데?”


원장이 냉장고를 바라봤다. 소형냉장고가 꽉 찰 정도의 양. 그 안에는 민재가 싸온 가지각색의 반찬통들이 들어차 있다.


“특별한 손님 오신다고 하셔서 힘 좀 써봤어요. 프렌치하면 코스잖아요?”

“그렇지.”

“약식으로 준비했어요. 원장님이 샴페인 하나 예비해두셨다고 하셨을 때 딱 이거다 싶었죠. 그 샴페인, 아페리티프로 내주실 거죠?”


아페리티프. 식전주라고도 한다.

프랑스인들은 넷 중 하나가 매주 한 번씩은 식전주와 함께 약식으로나마 코스 요리를 즐긴다. 아페리티프는 그 코스의 시작을 알리는 요리이자 식욕을 돋우는 역할을 한다.


긍정의 표시를 한 원장이 말했다.


“덕분에 호강하겠구나. 버너 준비해달라고 했던 게 그 이유냐?”

“네. 메인은 뜨거워야 될 것 같아서요. 말은 이렇게 해도 가정식이라 막 거창하진 않아요.”


민재가 수줍게 웃었고, 위층에서 사람들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오전 프랑스어 수업을 들었던 사람들이었다. 20대 여성, 중년여성, 10대 초등학생 그리고 프랑스인. 들뜬 얼굴들은 민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우 배고파. 저 여기 올 때마다 너무 설레잖아요. 오늘은 또 어떤 요리가 나올까 하고요.”

“어머 유민씨도? 민재 음식이 조금 맛있어야지. 나 두 달 새에 2kg나 쪘다니까.”

“아줌마 그건 민재 형 잘못이 아니라...”

“민재야 오늘도 잘 먹을게?”

“잘 먹습니다. 민재.”


티격태격하는 사람들, 어눌한 발음.

모두가 입맛을 쩝쩝 다셨다. 원장은 테이블 배치를 바꾸면서 말했다.


“다들 들으셨겠지만, 오늘 손님이 더 오실 예정입니다. 괜찮으시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 한 사람만 빼고.


“우리 먹을 것도 부족할 텐데...”

“얘도, 원래 맛있는 음식은 나눠 먹어야 더 맛있는 거야.”

“그래도요. 민재 형 요리는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단 말이에요. 아줌마는 저번에 싹싹 긁어드셨으면서.”


째릿하는 눈을 피하며, 중년 여성이 말했다.


“그래서, 뭐 도와줄까?”


민재는 빵을 한가득 꺼냈다. 바게트 빵. 미리 잘라놓은 것들을 내놓으며 민재가 말했다.


“근처 하나부동산 아시죠?”

“아, 그 김씨?”

“네 저번에 전자레인지 들였다고 하시더라고요. 이것들, 겉면만 바삭하게 구워 와주세요.”

“전자레인지로 그게 가능해?”

“네. 버터도 가져왔으니까 그거 한 번 바르시면 돼요. 어떻게 하냐면요...”


딸랑.


문이 열리고 현관종이 청아한 소리를 내었다. 모두의 시선이 문에 집중됐다.


고동색 코트, 목을 감싼 베이지색 머플러. 짧은 숏컷. 노년의 여성이 선글라스를 벗었다. 서글한 눈매가 드러났다.


그녀가 두리번거리더니 민재를 발견했다.


“아이고 되다. 다들 모여 계셨구만. 반갑소. 아 학상이 그... 장민재?”


정선생. 민재가 찾던 VVIP가 왔다.




***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둘러앉은 테이블, 가운데에는 겉면이 바삭하게 구워진 바게트가 바구니에 담겨져 있다.


버터와 밀가루의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침을 삼키면서도 누구 하나 선뜻 손을 내밀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직 민재가 자리에 앉지 않았기 때문에.



“갑작스레 온 객인데 끼어들게 해줘 고맙소. 나는 정순자요. 정선생, 할머니. 편한 대로 부르시게나.”


고개를 숙이는 정순자에게 원장이 말했다.


“선생님이 갑자기 오시긴 했죠.”

“원장선상도 참. 내가 못 올 데라도 온 것처럼 얘기하시는구만?”

“잘 오셨어요. 귀한 분 오신다고, 이것까지 준비했습니다.”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던 원장이 와인 병 두 개를 꺼냈다. 탄산이 피어오르는 샴페인과 붉은 와인 하나.


“어이구, 아페로 아닌가?”

“예. 좋은 샴페인을 선물 받아서요. 다른 분들은 아페리티프가 처음이시죠?”


끄덕이는 고개들, 원장이 각각의 잔에 붉은 와인을 조금씩 따랐다. 단, 미성년자에게는 오렌지주스가 따라졌다. 부풀어 오른 볼을 무시하며 그가 말했다.


“과거 로마에서는 와인에 꿀을 타먹었습니다. 중세에는 허브 같은 것을 넣어서 약용으로 와인을 먹기도 했죠. 그 중에 프랑스는.”


바닥을 얕게 깔았던 붉은 와인에, 샴페인이 부어졌다. 거품이 일어나며 섞이는 물. 로제 와인에서 볼 법한 루비색이 영롱하게 퍼져나갔다.


“크렘 드 카시스라는 까막까치밥 열매를 발효시킨 술을 와인에 섞어 마십니다. 달큰한 과일향이 은은하게 올라오는 게 식전에 마시기에는 딱 좋을 겁니다.”


미색의 조명이 붉은 기가 감도는 액체를 투영했다. 핏물과 같은 색깔과 열매의 향. 산뜻하게 부글거리는 탄산.


민재가 일회용 접시를 내려놓더니 말했다.


“그냥 아페로만으로도 좋지만요.”



접시에 담긴 건 견과류였다. 피칸 호두와 아몬드, 캐슈넛.


여기에 코코넛오일과 각종 파우더. 생오레가노와 소금 설탕 등을 넣어 살짝 볶고 레몬즙을 뿌렸다.

향과 맛을 배가 시킨 첫 요리.


“입이 좀 심심하면 아쉽죠. 곁들여 먹을 것도 준비했어요. 뭐하세요?”


민재가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기분 좋게 낮게 깔리는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먹어요, 우리.”


그 말만을 기다렸다는 듯 분주한 손들이 접시로 달려들었다. 치아가 설탕껍질을 부스러뜨렸고 견과류를 와그작거렸다. 곧바로 와인을 넘기는 목 넘김들.

행복한 표정들이 떠다녔다.


민재는 흐뭇한 눈길로 사람들을 쳐다봤다. 그 와중에도 그의 눈은 유난히 한 사람에게 머물러 있다.

정선생, 아니 정순자. 이 모든 것의 출발점.


그녀를 만족시킬 코스는 이제부터였다.


작가의말

이번 화 레시피입니다.


https://www.myrecipes.com/recipe/spicy-herb-roasted-nuts


실제로 견과류들을 한 번 볶으면 정말 맛있죠. 설탕막을 입혀서 구워먹으면, 존맛탱입니다. 와인이나 막걸리 안주로도 좋아요. 간단한 소금간이 있으면 맥주안주로도 금상첨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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