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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다시 사는 탑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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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본듯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11.18 11:43
최근연재일 :
2020.12.10 23:53
연재수 :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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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7,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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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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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화

DUMMY

달짝지근한 향이 화사하게 퍼져갔다. 기존의 과일향에 샴페인이 품고 있던 미미한 오크향이 잠자고 있던 감각을 깨웠다. 봄을 입 안에 머금고 있는 느낌. 콧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너무 좋은데요? 특히 이 견과류, 맛이 정말 고급스러운 것 같아요. 많이 달지도 않고-. 나중에 한 번 만들어봐야겠다.”

“그러게. 근데 유민씨. 나는 술이 더 맘에 든다? 봄이 찾아온 느낌이야.”

“나도 먹고 싶은데...”

“어린애는 더 자라고 마셔.”

“우씨, 프랑스인들은 제 나이 때부터 와인 마신다 했거든요?”

"그거 오해입니다. 우리도 14살 쯤 돼야 마십니다.“


아우성이 몰아쳤다. 조용히 와인을 머금고 삼키던 순자는 잔향을 느끼다가 조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노인의 음성이 깔렸다.


“식전주는 가벼이 드시는 게 좋지.”


얼굴에 피어난 주름들. 하지만 추하거나 보기 싫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은 정순자라는 사람이 지나온 세월의 흔적이었다.


사람들은 검은 보석과도 같은 그녀의 눈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느낌이 어떠신가? 괜한 첨언을 드리자면 입안에 남은 향, 고거에 집중하시게나. 다음 접시가 올 때까지 기대감을 심어줄 터니까.”


순자의 말에 모두가 코끝에 신경을 집중했다. 코끝, 콧대, 미간, 입천장.


봉곳이 솟아오르던 향이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뭔가... 좋네요. 이렇게 향에 집중하는 건 오랜만인 것 같아요.”

“음식을 먹는 행위는 오감을 일깨우는 행위인 게지. 눈으로 보고, 향을 맡고, 차가운 것을 느끼고, 와삭거리는 소리를 듣고, 그리고.


그녀가 민재를 바라봤다.


“응축된 것을 맛보고. 이 작은 것에도 놀라울 정도로 세심한 배합이 들어갔구먼. 원장선상께선 줄곧 이런 대접을 받으셨나 보우. 복도 많으시지.”


왜 진즉에 안 불렀냐는 눈초리였다. 원장이 웃으며 부인했다.


“아뇨. 민재 학생 요리가 훌륭한 건 맞는데요. 코스는 저도 처음입니다 선생님. 선생님 오신다고 힘 좀 썼나 본데요?”


능청스런 목소리와 약간 아래로 향해 있는 그의 눈동자는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눈빛이었다. 잠시 둘이 시선을 맞추다가 다가오는 민재를 바라봤다.


그 사이 민재는 다음 그릇을 내놓았다.


커다란 그릇 둘. 그 안에는 각각 다르게 담긴 내용물이 들어있다. 검은 것과 하얀 것이 극명한 색의 차이를 보여준다.


“형 이건 뭐예요?”


어린 목소리가 호기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물었다. 민재가 답하려던 찰나, 프랑스인이 화색을 띄며 말했다.


“타페나드하고 생선 파테?”


그는 번들거리는 검은 덩어리를 보며 고인 침을 삼켰다.


타페나드. 프랑스 남동부에서 주로 먹는 이 스프레드는 검은 올리브와 케이퍼 등을 넣고 한데 으깬 음식이다. 보통 빵에 발라 먹는데, 프로방스 지방에서는 집집마다 그 레시피가 조금씩 다르다.


민재는 먼저 티스푼으로 검은 덩이를 푹 뜨더니 빵에 발랐다.


노르스름한 겉면, 스푼이 닿자마자 까슬대는 소리가 들렸다. 덩어리진 것들이 얇게 펴 발라지는 순간.


“저는 그린올리브를 좀 섞고, 케이퍼를 줄이는 대신 콜리플라워하고 당근, 샐러리를 추가했어요. 아삭하면서 포슬거리는 식감이 재밌으실 거예요.”


스푼은 멈추지 않았다. 옆에 있던 하얀 덩어리들. 그것이 검은 것들의 위로 덮어졌다.


꾸덕진 질감 속 깃털 같은 생선의 살결들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흑백이 조화롭게 섞여댔다.


“그리고 이건 브랑다드 파테라고 하는데요. 참치크래커 아시죠? 그거하고 비슷한 요리에요. 대구 코다리를 우유에 삶고 생크림 등을 섞었고요. 이 검은 거하고 흰 거를 취향껏, 같이 발라드시면 돼요. 근데 검은 건 웬만하면 조금만 넣어 드세요. 좀 짜거든요.”


그걸로 민재는 빵을 베어 물었다. 크림의 고소한 향이 담백한 생선살과 만나 부슬거렸다. 그리고 찾아오는 짭짤한 맛.


“으음...”


순자는 우물거리다 말고 침음 비슷한 것을 흘렸다.


23살이라 했나 저 아이.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고작 두 요리였지만 기대했던 것 그 이상, 아니 기대하지 않은 것을 보여주었다.


더욱이 이 타페나드. 숨은 진주와도 같은 존재였다. 짠맛의 다양한 층위를 보여주고, 여러 식감과 향, 산미까지 느껴지도록 했다.


절대 저 나이의, 교육받지 못한 요리사는 내놓을 수 없는 결과물. 순자는 결론을 내렸다.


이 아이, 천재구먼.


“좀 드시다가 말씀해주세요. 저는 다음 것...”

“민재 학상.”

“예?”


끝이 조금 떨리는 목소리였다. 순자는 민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푸근한 미소와 함께.


“같이 들고, 다 먹은 다음, 같이 준비하지. 같이 먹자고 차린 건데 혼자 빠지면 못 써.”


그녀는 민재가 앉았던 의자의 쿠션을 두드렸다. 주름진 손이 부드러운 궤적을 그렸다.




***




북적한 실내. 훈훈한 열기가 휘돌고 있었다.


사람들은 차를 마시는 중이었다. 각각의 종이컵에 담긴 것은 디저트, 크림브륄레였다.


차가운 커스터드 크림을 종이컵에 채우고 그 위로 백설탕을 뿌려 달군 수저로 한 번 태우듯 녹였다. 간단한 조리법이지만 기본기가 바탕이 되어야만 제대로 된 맛을 보여줄 수 있다.


뜨거운 설탕막을 뚫고 들어가면 서늘한 커스터드 크림이 터져 나온다. 몽글거리면서도 대조적인 온도차를 느끼게 해주는 디저트. 끝을 장식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마무리였다.


깔끔하면서 기본을 보여준 코스였다. 사람들은 행여 흘릴까봐 조심스레 떠먹었다. 없어져가는 것이 아까운지 밍기적대고 있는 손길들. 뻔한 대답이 나올 것이지만, 민재가 모두에게 물었다.


“맛있게 드셨어요?”


말할 것이 뭐 있냐는 듯 감탄한 음성이 나왔다.


“내가 몇 년 동안 먹은 것들 중에 최고였어. 어떡하니. 나 이렇게 집 들어가면 내 요리 못 먹어. 입이 막 황송해서 내가 한 게 초라해지잖아.”

“그러니까요. 웬만한 식당들은 명함도 못 내밀겠어요. 민재씨 나중에 레스토랑 차리면 꼭 말해줘요. 아, 말 나온 김에 싸인 좀 해줄 수 있어요? 유명해지면 나 모른 척 할 수도 있으니까...”


먹다 말고 가방에 수첩을 찾으러 가는 여자였다. 민재는 구름을 떠다니는 기분을 느꼈다. 요리할 때의 즐거움은 주방에 있을 때보다 비워진 접시와 먹은 이들의 표정을 볼 때 더욱 큰 법이다.


“나는 그 닭볶음탕이 짱이었어요! 다음에 또 해주면 안 돼요?”


꼬마가 말했다. 코코뱅. 와인에 닭을 넣고 끓인 프랑스식 닭볶음탕. 메인으로 내놓았던 것이다. 다들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순자의 생각은 달랐다. 그녀가 단언하듯 말했다.


“나는 양파수프가 제일이었네.”


메인 이전에 나왔던 수프였다. 커다란 보온병에 담긴 것이었지만 풍미가 흩어지지 않고 살아있던 그것.


“깊은 풍미에는 그에 걸맞은 정성이 들어가야 하지. 이 노인네가 볼 땐 가장 많은 시간과 과정이 들어간 것 같더구먼. 브로스를 직접 만들었니?”

“아... 네. 아무래도 양파가 너무 흐물흐물해질 것 같더라고요. 육수로 승부를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 나이에, 저 경력에, 저 정도의 계산이라니.


이건 재능을 떠나서 맛 자체에 몰두하지 않고선 불가능하다. 이 아이는 원석이다. 적절한 가공이 들어간다면 아주 빛이 날 원석.


“게다가 이 훈향. 굉장히 유별해. 사소하지만 중요한 조리과정이 있을 터인데... 옳거니. 양파를 덖는 과정에서 토치로 불을 입혀서 태우고, 덮는 것을 반복했구먼.”

“헐.”

“...우리 돈이라도 쥐어 주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제가 좋자고 만든 건데요.”


이쯤은 해줘야 후원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겠지.

민재가 씨익 웃었다. 순자는 그런 민재의 미소를 곡해하더니 잔잔한 미소를 띠웠다.


그 후 이어진 건 어느 정도의 수다였다. 이른 오후의 느긋함. 실내를 메우는 색소폰 소리.


만족한 얼굴들은 서로 작별인사를 하며 문밖을 나섰다. 민재와 순자, 원장을 제외하고.


원장이 대화의 포문을 열었다.


“오길 잘 하셨죠?”

“고럼. 예기치 않은 기쁨을 발견... 경험했구먼.”

“민재 학생은 유학 준비 중에 있어요. CIA 아시죠. 유학물 한 번 먹으면 아마 날라 다닐 겁니다.”

“내 듣기론 거기 들어가는 학비가 만만치 않다고 하던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순자였다. 원장이 웃었고, 민재는 콩콩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기에 바빴다.


민재가 태연하게 말했다. 현실을 고민하는 젊은이의 얼굴이었다.


“부모님한테 말씀드리긴 했는데, 좀 곤란해 하시긴 해요. 정 안 되면 국내 대학교 들어가거나 출장뷔페업체 같은 데 취직하려고요. 어차피 요리하는 건 똑같으니...”

“그럼 못 쓰지!”

“예?”

“흠흠, 그것도 좋은 선택이지만 더 좋은 길을 내비두면 안 된다 이 말이야. 유학, 충분히 고민하고 내린 결정 아니더냐?”


순자는 무릎을 쓸어내리며 말을 고민했다.


어떻게 서두를 던져야 쓸꼬.


고민은 짧았다. 욕망을 건드리는 것. 저 아이의 마음은 충분히 느꼈으니 그것을 밖으로 꺼내주기만 하면 될 것이다.


“그, 우리 민재는 요리를 무어라 생각하누?”

“선생님, 우리 민재요?”


원장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순자가 눈을 좁혀 원장을 흘기다가 민재를 바라보았다. 이어지는 우리 민재의 대답.


“글쎄요. 아직 요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그가 거짓말 아닌 거짓말로 연막을 친 뒤 평소 그가 생각해왔던 것을 풀어놓았다.


요리란 무엇인가. 요리는.


“과학이죠.”


예상치 못한 답에 원장과 순자가 입을 벌렸다. 민재는 확고부동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분. 모든 요리는 수분에서 출발하더라고요. 요리는 재료에 담긴 수분을 어떻게 더하고, 빼고, 보존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풀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해요. 질감, 풍미, 맛들의 조화.”


이 무슨 23살의 학생에게서 나올 말이던가.


“그게 다 그 치열한 고민들로 만들어지는 거겠죠. 유학 가려는 것도 그거 때문이에요. 앞서 치열하게 고민한 사람들의 지식과 경험을 듣고, 제 것으로 만들려고요.”


순자는 더 이상 근질거리는 입을 주체할 수 없었다.


“유학!”


말해놓고 아차 싶었지만 엎질러진 물이다. 순자는 답지 않게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노인네가 힘을 보탤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구나! 민재 너만 괜찮다면...”


됐다.


민재는 주먹을 저도 모르게 움켜쥐었다. 테이블 아래 감춰진 그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원장이 당황하며 민재에게 황급히 덧붙였다.


“선생님 진정하세요. 민재야 이상하게 듣지 마라. 정선생님은 재능 있는 요리사들을 여럿 후원해주시는 분이야. 미식뿐만 아니라 요식업의 인재양성에도 힘쓰시지.”

“그래.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뭐든 도와주고 싶구나. 재정적인 부분은 이 할미가 얼마든지 해결해줄 수 있어.”

“그게, 너무 갑작스러워서...”


민재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며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화룡정점을 찍는 순간이었다.


“일단 제 부모님하고 얘기 나눠봐야 할 것 같아요. 그래도 될까요?


작가의말

이번 화 레시피입니다. 변형을 주었기에, 민재가 한 요리는 본 레시피대로 한 것이 아닙니다.


https://www.greatbritishchefs.com/recipes/cod-brandade-recipe


타페나드는 정말 맛있습니다. 엔초비 파스타에 케이퍼를 넣어 먹는 걸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케이퍼의 그 짠맛. 사랑에 빠지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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