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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다시 사는 탑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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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본듯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11.18 11:43
최근연재일 :
2020.12.10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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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3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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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DUMMY

색색들이 옷들이 정렬되어 있는 매장 안. 론다가 말했다.


“내가 얘기했죠. 각오 단단히 하라고.”


그녀의 눈은 민재에게 고정되어 있다. 정확히는 민재의 양손. 그의 두 팔에 빼곡히 들린 쇼핑백들에게 향해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전부 3시간 동안의 쇼핑이 만든 결과였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저 많은 짐을 민재가 혼자 어찌 드누...”

“할머닌 가만히 계세요. 손녀딸이 공짜로 노동하는 거 본 적 있으세요?”


공짜라는 말에 합죽이가 된 순자였다. 그녀는 인중을 씰룩이더니 힘겹게 시선을 거두었다. 에잉 하는 소리가 작게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어진 순자의 말.


“저기 저, 백들만 보고 그만 가자꾸나.”


이만 가자는 얘기는 절대 아니었다.


민재의 팔이 후들거렸다. 가방들이 진열되어 있는 전시관. 저길 둘러보기 위해 또 얼마나 기다려야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20분? 제발 20분이었으면. 민재는 애써 싱긋 웃어보였다.


“저는 괜찮아요! 보던 거 보세요!”


쇼핑백들에 파묻혀 반쯤 가려져 있던 얼굴이 드러났다. 다음날 찾아올 근육통이 문득 두려워지는 민재였다. 뻐근해지는 어깨와 팔. 민재는 이럴 때 하면 좋은 게 뭔지 알고 있다.


고통에 집중하기보단 행복한 상상을 하는 것.

이를 테면 맛있는 음식. 감동적이었던 음식을 떠올리면 된다.


그는 2시간 전에 먹었던 바나나 브레드를 떠올렸다.

반을 가르자 뿜어져 나오던 그 김. 부스러지며 나타나던 살결, 바나나의 달큰한 향.


절로 침이 삼켜졌다.


“그거 진짜 맛있었는데.”


민재가 중얼거렸다. 겨우 앉을 자리를 찾은 민재가 무너지듯 스러졌다. 쩝쩝거리는 입이 한동안 계속됐다.


“미식의 도시답다고 해야 하나...”


빵 하나를 먹는 데도 새로움을 느꼈다. 씹자마자 통으로 씹히던 바나나와 다크초콜릿. 물컹이던 식감은 뜨겁게 흐물거리다가 쌉싸름한 맛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거기까지는 평범했다. 이후 찾아온 향만 아니었으면 그랬을 것이다.

민재를 놀라게 했던 그 향, 그건 분명 메밀가루였다.


“단순히 간식차원이 아니었어.”


수많은 단골들을 가지고 있는 뉴욕시티의 베이커리다웠다. 집어든 빵마다 비장의 무기가 하나씩은 터져 나왔다. 미묘하게 강낭콩의 향이 묻어나왔던 호박파이, 커민 가루와 아보카도가 일품이었던 치킨샐러드 샌드위치...


“벌써 배고프다...”


그러나 이미 먹어버린 음식일 뿐이다. 민재는 상상을 그만두었다.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가셨던 허기가 벌써 기어오르는 듯했다.


민재는 쇼핑 삼매경에 빠진 가이드, 론다를 바라봤다. 그녀가 데려갈 다음 목적지는 얼추 예상이 됐다.


론다가 말했던 그곳.

쉐이크 쉑.


민재가 처음 밀크쉐이크에 감자튀김을 찍어먹어 본 곳이다. 둘의 조합이 은근히 괜찮다는 것을 그는 그때 깨달았다.


그것 말고는 민재가 쉐이크 쉑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하나다. 쉐이크 쉑의 아버지, 대니 마이어.

그는 뉴욕 외식업계의 황제로 불렸다.


“아는 맛이긴 한데 뭔가 더 있을 것 같단 말이지.”


햄버거라곤 지겹게 먹었을 뉴요커가 꼽은 곳이다. 더욱이 론다는 미식가다. 그녀가 쉐이크 쉑의 버거가 마냥 맛있어서 그곳을 선정한 것 같지는 않았다.


“뭔가가 분명히 있어.”


때마침, 론다가 손을 흔들었다. 노비, 아니 짐꾼을 부르는 손짓. 출동할 시간이었다.

민재가 화사한 웃음을 꾸며댔다.


“예, 가요!”




***




일요일 오후, 메디슨스퀘어파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빌딩들로 둘러싸인 공원은 회색빛들 사이에서 유일한 녹음을 뿜어댔다.


3개의 구획을 이어붙인 좁은 공원부지, 그 안의 자그마한 분수대. 그리고 쉐이크 쉑.


쉐이크 쉑의 버거를 맛보기 위해 사람들은 공원의 입구부터 줄을 서고 있었다.


“이게 다 줄이에요?”

“놀랍죠?”


이쯤 되니 본점은 맛이 다르려나 하는 기대가 들었다. 롤러코스터 대기줄에서 볼 법한 풍경이었다. 일찌감치 상황을 예측한 론다는 순자를 차 안에 있게끔 했다.


못 보던 챙이 넓은 하얀 모자를 쓴 론다가 말했다.


“최근에 뉴욕 타임즈에서 미국 10대 버거로 선정됐거든요. 힙스터들이라면 꼭 가야 하는 곳이라나 뭐라나. 저기 지붕 보이죠?”


론다의 손가락을 따라간 곳엔 직삼각형으로 된 지붕이 보였다. 담쟁이 식물들이 하얀 지붕을 뒤덮고 있었다.


“언론에서는 저걸 보고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지붕 같다고 하고 있어요. 되도 않는 비유긴 한데 뭐, 맛은 확실하니까.”


말을 아끼는 눈치였다.


민재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초여름이지만 콘크리트가 가득한 뉴욕시티답게 더위가 살인적이다. 사람들은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이 더위에 이 대기 줄이라니, 게다가 다들 웃고 있다. 쉑쉑 버거의 맛을 이미 알고 있는 민재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광경이었다.


고작 그 버거 하나에 이만한 인파는 너무 과하지 않나?


“방금 꼴랑 버거 하나 가지고라 생각했죠?”

“예? 아... 네. 티 났나요?”

“나도 처음에 그 생각했어요. 근데 여기 미국이다? 미국인들은 버거에 환장해요. 핫도그, 피자, 햄버거. 이 사람들한테는 소울 푸드야 이게.”


그 말을 듣고 바로 수긍이 갔다. 한국에서도 소문난 김치찌개집이나 백반집 같은 곳은 웨이팅이 있기 마련이다.


“기대가 되긴 하네요. 가만 보면 지금 기다리는 것 자체가 먹는 행위의 일종인 것 같아요. 패티가 그릴에 구워지는 냄새, 사람들의 말소리. 내리쬐는 태양. 다람쥐들.”


그렇게 말하고는 민재는 입을 벌린 채 주변을 빙둘러보았다. 깨달음을 얻은 표정이 잠시 머물렀다. 내뱉어지는 짧은 마디.


“아.”

“에이, 재미없어. 내가 알려주려 했는데.”

“여기 데려오신 이유가 이거죠?”


론다가 혀를 찼다. 못마땅한 표정과 대비되게 기특하다는 음성이 그녀의 두툼한 입술에서 나왔다.


“브랜드라는 건 결국 이미지죠. 쉐이크 쉑은 그걸 영리하게 활용한 사업체에요. 여기서 질문 하나. 식당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이미지는 뭘까요?”

“맛 아닐까요? 맛있는 집이라는 이미지.”

“땡. 절반만 맞는 말이에요. 거기에 살을 붙여야죠. 나는 저곳에 가면 맛있는 경험을 할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주는 것. 그게 핵심이에요.”


맛있는 경험. 환상.


민재는 알 것 같으면서도 알쏭달쏭한 기분이었다. 맛있으면 맛있는 거지 맛있는 경험은 또 뭐란 말인가.


론다가 설명을 덧붙였다.


“어떤 체험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해야 하나? 이해했어요?”

“조금은요. 이 웨이팅 라인마저 서비스의 일종이군요.”

“정확해요. 재밌지 않아요?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기다리는 것을 즐기고, 그걸 하나의 문화로 여긴다는 게. 쉐이크 쉑은 버거만을 팔지 않아요.”

“버거를 먹는 경험을 판다.”


민재는 혼잣말하듯 말했다. 론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빙고. 오늘 교육은 여기서 끝. 우리 차례 왔네요.”


김이 서린 안경 아래, 히죽거리는 입을 하던 남자가 종이봉지를 들고 줄에서 이탈했다. 이윽고 민재와 론다를 덮치는 패티의 향.


후끈거리는 열기가 둘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




2005년. 미슐랭이 처음 뉴욕에 당도한 해이다. 19년 한국의 미쉐린이 쓰리 스타 식당을 선정했듯, 이 시기 뉴욕에서도 쓰리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은 엄연히 존재한다.


그 중 미슐랭의 쓰리 스타 뿐만아니라 뉴욕 타임즈의 포 스타까지 받은 레스토랑이 있다.


르 베르나뎅Le Bernardin.


원래 민재의 계획대로라면 오늘 저녁은 그곳에서 방탕하게 즐길 예정이었다. 미슐랭 쓰리 스타를 10년 넘게 지켜온 레스토랑의 저력이 무엇인지 민재는 줄곧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계획은 론다의 존재로 무너졌다.

뉴요커가 가이드 하는 미식 투어. 그 투어는 기존의 계획을 수정할 만큼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미슐랭 원 스타의 The Carnival. 식사는 막바지에 치닫고 있었다.


“아, 배불러. 더는 못 먹을 것 같아.”


론다가 배를 두들기며 한탄 아닌 한탄을 했다. 그녀는 망설이는 눈으로 서버가 내민 쁘띠 프루 상자를 바라봤다. 아기자기한 색을 뽐내는 한입 케이크들. 그것들이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못 보던 새에 위가 많이 작아진 게야? 민재 너도...”

“저는 더 먹을 수 있어요.”


투지를 불태우는 눈빛과 다르게 턱 끝까지 먹을 것이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앞서 브로드웨이 공연을 관람하기 전 둘은 끊임없이 음식들을 먹고 또 먹었다.


“진즉에 적당히 먹지 그랬누. 탈 날 것 같으면 얘기해라. 이 할미가 가스 활명수 챙겨왔다.”

“그걸 어떻게 챙겨오셨대? 나요 나. 그거 마실래요.”


그러다 다시 고개를 젓는 론다였다. 그녀가 속트름을 하더니 말했다.


“취소. 나 그거 마셨다간 백퍼 토할 거 같아요. 잠깐 화장실 다녀올게요.”


론다가 자리를 벗어났고, 민재와 순자가 남았다.

순자는 쁘띠 프루를 꾸역꾸역 먹어대고 있는 민재를 바라봤다. 미련해 보이는 저 엉뚱한 모습도 순자의 눈에는 특별해 보였다.


시선을 느낀 민재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가 말했다.


“너무 예의 없었나요?”

“아니다. 한창 먹을 때인데 더 들어라. 더 시켜주련?”

“아뇨!”


민재가 올라오던 것을 삼켰다.


“충분한 것 같아요. 여기가 원 스타 받은 곳이라고 했었죠?”

“그래. 어떻더냐.”

“실험적인데 안 다듬어진 느낌이랄까... 아뮤즈 부쉬부터 메인까지 전부다 육류여서 헤비하긴 했어요. 그래도 다양한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건 좋네요.”


닭, 거위, 메추리, 비둘기, 양, 소, 돼지. 한 코스에 등장한 동물만 해도 7종이었다. 중간 중간 채소가 섞여 있었지만 가니쉬(고명)에 불과했다.


The Carnival이라는 이름에 충실한 육식주의자를 위한 만찬,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코스라는 점은 분명했다.


“거기다 여기, 뉴욕주에서 공수한 재료들만 쓴다고 했던 것 같은데...”

“미국은 로컬 푸드에 대한 관심이 많은 나라다. 요새 그런 운동이 좀 많아지는 것 같더구나.”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무얼?”

“식자재를 근처 지역에서 나는 것만으로 공수한다는 거요.”


생각을 하던 순자가 간단하지 않냐는 투로 말했다.


“선택인 게지.”

“선택...”

“민재 네가 그걸 물은 이유부터 듣고 싶구나. 어떻게 생각하니?”

“글쎄요. 저는 잃는 것이 많은 선택이라 봐요.”


민재는 마지막 남은 쁘띠 프루를 입에 털어 넣었다. 젤리 같은 질감이 입안을 튀어 다니다가 순식간에 녹아 없어진다.


와, 이건 또 어떻게 만든 거지. 민재가 생각에 잠기려다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죄송해요. 이거 식감이 되게 특이하네요.”

“괜찮다.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은 선택이라고?”

“네. 접시 하나에 들어가는 재료들만 해도 수십 가지잖아요. 처음 나왔던 푸아그라 마카롱만 해도 그래요. 거위 간을 뉴욕주에서 어떻게 공수한 것이며, 거기에 발생하는 비용은 또 어떻게 충당한 건지. 상상만 해도 지끈거리네요.”


순자가 눈을 끔뻑였다. 의외의 대답이었다.


“민재야, 예전에 일했던 곳에서 네가 식자재 관리를 했었니?”

“아, 아뇨. 그냥 생각했을 때요.”


조리하는 행위 이외의 것을 보는 시야를 벌써 가지고 있다니. 알면 알수록 즐거움을 주는 아이다.


그녀가 예의 그 푸근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사업적 손실이라. 푸드 코스트도 무시할 수 없지. 하지만 주위를 보거라.”


주름진 손이 쭉 뻗더니 주변을 가리켰다. 만석에 가까운 사람들. 비어있는 의자가 거의 없다.


그녀가 사업가의 눈을 하며 민재를 바라봤다. 순자는 말했다.


“이 사람들은 그 코스트들로 발생한 가격을 기꺼이 지불하고자 온 사람들인 게야. 고객층이 확실한데 그게 왜 문제가 되겠니?”


또 다른 질문이 민재에게 들이밀어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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