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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다시 사는 탑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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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본듯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11.18 11:43
최근연재일 :
2020.12.10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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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5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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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0화

DUMMY

천만장자가 청한 악수를 민재는 멍하니 바라봤다.


진짜 과거로 오긴 했구나.


다시 한 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선택들이 모여 미래를 바꾸고 있다. 후원자를 얻고, CIA에 입학하고, 원래라면 먼발치에서 바라봤을 사람을 대면하게 된 이 순간.


제이미는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의 민재를 멀뚱히 쳐다봤다. 그가 머리를 긁적였다.


“동양권에서는 처음 만나면 악수를 안 한다고 했던가? 기분 나빴으면 미안해. 아, 그런데 오해는 하지 말고. 편견이 있는 건 아닌데 문화적 차이란 게 있으니까. 나는 제이미 쿱이야. 너는?”

“잠을 못 자서 그런지 잠깐 멍했네. 제이미라고 했지? 나는 편하게 민재라고 불러줘. 민재. 민재 장.”


분위기가 한결 풀어졌다. 제이미는 널찍한 미소로 화답했다.


“장? 프랑스... 중국, 아니지. 한국 사람이구나?”


민재가 어떻게 알았냐는 듯 눈썹을 들어 올리자 제이미는 실실 웃었다. 운율이 느껴지는 그의 말투가 말했다.


“숙모가 LA한인타운에서 불고기집을 하시거든. 물론 숙모는 2.5세여서 정작 한국문화는 잘 모르시는 것 같지만, 이거 하나는 배웠지. 안녕하세요.”


제이미는 어색한 한국어를 하더니 허리를 굽혔다. 고개만 빼꼼 위로 쳐든 자세. 제이미는 민재를 올려다봤다. 칭찬해달라는 두 눈망울이 초롱초롱 댔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언론을 통해 떠돌았던 이미지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차갑고, 딱딱한 카리스마를 뿜던 사업가가 이런 대형견 같은 이미지일 줄 누가 상상했겠는가.


“잘 하네. 나도 너희 나라 인사말은 잘 아는데, 한 번 해줄까?”


그의 친근한 모습 덕에 민재도 금방 긴장을 풀고 대화에 임할 수 있었다.

이후 약간의 농담들이 오갔다. 주로 말이 많았던 것은 제이미였다.


“처음은 늘 두근거리는 것 같아. 이 나이 먹고 uniform을 입어야 한다는 게 좀 답답하긴 한데, 내가 진짜 요리학교에 왔구나 싶기도 한다니까. 아, 아시아에서는 교복을 많이들 입는다고 하던데...”


“RA(기숙사 반장) 진짜 깐깐해 보이더라. 걔들은 1인 숙소를 쓴다매? 기숙사비도 면제라고 하니까 나중에 한 번 해봐야겠어.”


“저녁은 뭐 나올 것 같아? 국제학생들을 위한 맞춤 음식들이 나온다고는 하는데, 개인적으로 영국요리는 안 나왔으면 좋겠어. 알잖아. 구글에 역겨운 음식 치면 나오는 그 사진. 정어리 파이 같은 게 나오면... 좀 끔찍할 것 같아. 그건 내 입맛에도 재앙이거든.”


하며, 제이미는 몸서리를 쳤다. 민재도 정어리 파이의 충격적인 모습은 익히 알고 있었다. 밀가루반죽들을 뚫고 원을 그리듯 대가리를 내밀고 있는 정어리들.


맛은 예상되지만, 저건 무슨 맛일까 싶은 비주얼이었다. 그 잊을 수 없는 이미지를 떠올리며 민재가 말했다.


“...그렇게까지 얘기하니까 한 번 먹어보고 싶어지는데.”

“내가 언제 만들어줄까? 나 그런 건 자신 있어.”

“아냐. 생각해보니까 먹으면 탈 날 것 같네.”


민재가 고민하다 끝내 좌우로 머리를 흔들었다. 느물거리는 제이미의 눈빛을 보아하니 해달라고 했다간 후회할 게 뻔했다.


“보기만 해도 쏠리는 비주얼이긴 하지. 근데 민재 너.”


제이미가 침대에 벌러덩 눕더니 말했다. 큰 키 탓인지 발목이 침대 끝에 걸쳐져 있다. 털이 수북한 허연 발목이 까딱까딱 움직였다.


“맥주 좋아하냐? 오늘 일정 끝나고 한 잔 어때.”


그의 손목이 같이 까딱거리기 시작했다.




***




제이미 쿱.

그의 맥주사랑은 유명했다. 이미 그의 업부터가 맥주를 주조하고, 판매하는 것이지 않는가. 맥주에 대한 그의 사랑은 청소년 시절부터 유별났고, 그것은 훗날 자신만의 맥주를 만드는 데까지 이어졌다.


CIA는 그가 거쳤던 많은 학교들 중 하나이다. 그는 와튼스쿨을 돌연 중퇴하더니 독일에서 VLB(맥주양조장인 양성과정)를 수료하고, CIA에 왔다.


경영학, 맥주주조, 요리.

언뜻 연결이 되지 않는 행보에 많은 이들은 제이미에게 요리학교까지 다닐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해 많이들 물었다. 그런 그들에게 제이미는 이렇게 답하곤 했다.


“맥주는 술이고, 술은 음식하고 같이 있어야만 완벽해지는 거야.”


제이미는 말했다. 그는 민재와 함께 걷고 있다.


“...그래서 이곳에 온 거라고?”

“어. 내가 맥주주조 배웠을 때 했던 게 뭔지 알아?”

“뭔데?”

“화학수업을 들었어.”


맥아, 효모, 홉.

이것들은 맥주에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재료들이다. 이들을 삭히는 과정에서 맥주의 맛과 향, 선도가 결정된다. 보리의 분쇄를 어떻게 하는지부터 숙성 도중 산성도를 조절하는 정도까지.


요리가 그렇듯, 맥주제조 또한 모든 것이 과학으로부터 출발한다.


“CIA도 과학에 근거한 수업들을 하잖아. 음식을 맛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는 그 맛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알고 싶어.”

“...대단하네.”


민재가 제이미의 열의에 순수한 감탄을 터뜨렸다.


사실 회귀 이전, 민재는 술을 즐겨 마시던 사람은 아니었다. 저녁 늦게 끝나고 아침 일찍 시작되던 일과. 민재는 술을 마실 시간에 1분이라도 더 자는 것이 현명하다 생각했다.


더욱이 술은 미각을 둔하게 만든다.

오늘 마시는 술은 내일 내놓는 접시에 반드시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 민재의 철칙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학생, 많은 시간. 젊은 몸. 젊은 혀.


술은 음식이 있어야 완성된다는 제이미의 말. 그것을 뒤집으면 음식은 술이 있어야 완성된다는 말이 된다.

민재에게 있어 술은 이전 삶에서 즐기지 않았기에 모르는 영역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그는 생각했다.


옆에 있는 이 남자와 함께한다면.

적어도 맥주에 대해서 조금은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하며, 민재는 첫 번째 실습수업을 듣기 위해 K-9 주방의 문을 열었다.

입학한 지 3일째 되는 지금. CIA의 첫 실습수업이 곧 시작된다.




***




다양한 피부색들. 오전 6시의 주방.


수업이 시작되기 30분이나 남았지만 꽤 많은 학생들이 주방에 도착해 있었다. 그들 중 대다수는 학생이라기엔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이었다. 20대 후반. 개중에는 30대 후반도 껴있다.


“우리보다 빨리 온 사람이 있었네. 역시.”


제이미는 민재에게 속삭였다. 그는 여러 학교를 전전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빠른 출석의 중요성을 안다. 특히 주방은 성실성이 주요시되는 현장. 수업 전 보이는 발 빠른 참석은 좋은 인상을 남기는 데 도움이 된다.


민재도 그런 제이미의 생각과 일치했기에 둘은 30분 일찍 주방으로 왔다. 하지만 그들보다 빨리 온 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의외였다.


“그러게. 다들 본격적인 것 같은데. 표정들이.”


전쟁에 임하는 느낌이었다.


둘은 속삭이다가 주방에 있는 인원들에게 인사를 했다. 앞선 날들에서 얼굴을 익혔던 사람들이다. 대략적인 자기소개를 주고받았기에 서로에 대한 인적사항들은 아는 상황.


레게머리를 하고 있는 흑인 남자가 손을 흔들었다.


“어, 왔어?”


마이클. 그는 변호사였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잘 나가던 로펌에 있던 그는 자신의 직업에 회의감을 느끼고 CIA에 들어왔다.


“여.”


그리고 옆에 있는 사람은 캐롤라인. 걸걸한 입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응급실에 근무하던 전문의였다. 마이클과 똑같이 30대 중반에 두 아이를 가진 여성. 그녀는 도박에 가까운 결정으로 이곳에 왔다.


“먼저 오셨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빨리 나올 걸 그랬다.”


제이미가 붙임성 있게 다가갔고, 민재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반갑게 둘을 맞이했다. 그들은 서로의 조리복을 살펴보며 옷매무새를 다듬어주었다.


“네커치프(목에 두르거나 머리에 쓰는 천)는 꼭 챙겨야 한다고 했어요. 오늘은 첫 수업이라 별말 없을 텐데, 그 다음부터는 아예 수업에 못 듣게 하는 셰프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민재가 말했다. 일전에 들었던 이야기였다. CIA를 다녔던 사람이 민재에게 했던 이야기. 그 중 복장에 대한 규정은 특별히 엄격한 감이 있어 유독 기억에 남았다.


조리모, 네임택(명함), 네커치프. 사소하게 놓칠 수 있는 것도 수업을 듣는 학생은 반드시 착용해야 했다. 착용하지 않으면 수업을 들을 수 없거나 감정 대상에 해당된다.


너무 지나친 것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런 것 하나가 모여 청결을 만들고, 마음가짐을 형성하는 법이다. 강제는 습관을 만들고 습관은 일상을 적신다. 일상이 된 규칙은 주방을 지배한다.


라고,

그녀는 이야기했다.


민재는 홀로 주방을 둘러보고 있는 여성을 쳐다봤다. 민재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주었던 장본인.


수지 리.


곱게 묶어 올린 머리는 조리모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본래라면 보였을 꽁지머리가 없었다. 이때의 그녀는 단발로 머리를 친 상태였다.


수지는 곧은 자세로 고개만 움직여 주방의 풍경을 눈에 익히는 중이었다. 그녀의 시선에 따라, 그녀의 목선의 움직임에 따라 민재의 시선도 움직였다.


“뭐야, 뭐야. 나 촉 되게 좋아.”


제이미가 팔꿈치로 민재를 툭툭 건드렸다. 그는 이미 확신에 찬 목소리로 민재를 찔러댔다. 둘러보니 마이클과 캐롤의 표정도 제이미와 비슷하게 음흉한 표정이다.


민재는 헛기침을 하고는 제이미의 네커치프를 꽉 죄었다. 켁켁 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같은 한국인이라 그래요. 같이 얘기하면 좋을 것 같아서.”

“우리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얼굴로 말하시던 건 뭐에요.”

“쟤 말고도 이번 기수에 한국인들은 많잖아.”


차례대로 마이클, 캐롤이 말했다.

그의 말대로 2005년은 CIA에 오는 한국인들이 점차 많아지는 해였다. 3주마다 시작되는 AOS과정. 이번 AOS과정 기수는 37명이다. 그 중 5명이 한국인.


“아직 한국인은 수지 밖에 안 왔잖아요. 두 분은 모국 출신 사람들 보면 동질감 안 느끼세요?”

“별로.”

“민족성에 얽매이기엔 시대가 시대인지라.”


캐롤이 허스키한 목소리로 부정했다. 다크서클이 진한 그녀의 눈이 시니컬하게 민재를 쳐다보다가 거두어졌다. 미세하게 남겨진 피식하는 웃음소리.


민재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저는 시대에 뒤쳐진 사람으로 하죠.”

“그렇게 챙겨주고 싶으면 이리 오라고 하지 그래. 내가 불러줘?”


민재의 팔이 허우적대고 캐롤이 숨을 힘껏 들이마시던 찰나.


주방의 문이 열렸다.


초록색 이름표가 걸어왔다. 강사 셰프였다. 땅딸막한 키, 전반적으로 각진 얼굴이 굵직한 선을 그려냈다.


그는 주방에 있는 인원들을 보더니 제법 만족한 얼굴이 되었다. 무언가 말이라도 꺼낼 줄 알았던 그는 예상을 깨고 구석으로 향했다.


따로 마련된 오래된 의자가 녹슨 경첩의 소리를 냈다. 그대로 등을 기대고, 눈을 감는 남자.

아무래도 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그는 입을 열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렇게 주방에 있는 학생들 모두가 그의 눈치를 보며 소곤댔다. 시간이 흘렀고, 민재를 포함해 서른일곱의 학생들이 모두 모였다. 수업 시작 2분을 남긴 상태.


남자의 실눈이 벽시계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2분. 1분. 30초. 10초.

4. 3. 2. 1.


그는 자리에 일어나 말했다.

굵고 각진 목소리가 주방에 울렸다.


“모두들 반갑다. 나는 레이 카터다. 너희들의 첫 실습수업을 책임질 셰프이지. 모두들 이 K-9 주방에서는 나를 셰프라고 부르도록.”

정어리파이.PNG


작가의말

작중 나온 정어리 파이입니다.


처음 본 순간을 잊지 못하겠네요. 안 먹어봤지만 먹어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러면서도 또 먹고 싶지 않은... 예. 그냥 안 먹는 걸로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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