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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다시 사는 탑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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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본듯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11.18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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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0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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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6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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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11화

DUMMY

“그렇다고 사석에서조차 나를 셰프라고 부르진 마라. Just Ray. or Carter. 나는 이 주방에서만 너희를 인도하는 강사이지, 밖에서도 그런 건 아니니까. 나는 너희와 똑같은 존재다. 요리를 하는 사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야.”


살짝 습한 느낌을 주는 주방. 레이는 자신에게 집중된 37쌍의 눈을 보며 말했다.


“나는 미슐랭 투 스타를 받은 프렌치 레스토랑 레 세보이Les Savoy에서 6년간 헤드셰프로 지냈다. 누벨 퀴진, 클래식. 이 둘이 내 전문이었지. 총 23년을 요식업에 몸담았고, 지난 2월 이곳, CIA에 왔다.”


그는 학생들의 눈을 차례대로 보기 시작했다. 첫 수업인 만큼 기합이 잔뜩 들어간 뻣뻣한 눈빛들이었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레이는 잠시 공백을 주다가 말을 이었다.


“주방의 살인적인 근무시간이 싫었다.”


순간 학생들의 표정이 의아하게 변했다. 그 중 민재의 표정은 달랐다.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대강 예상이 됐기 때문이다. 회귀 이전 민재가 가졌던 고민들이 레이의 얼굴에서 읽혔다.


“결혼을 했고, 딸이 태어났지. 셰프의 삶은 고되다. 나는 근 20년간을 하루 14시간씩 일을 하고 주에 하루만 쉬었어. 한 레스토랑의 수장이 되어서도 이 생활은 변치 않았다.”


많은 경우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헤드셰프가 주방의 많은 부분에 참여하게 된다면 저런 살인적인 근무시간이 나오게 된다. 그들은 주 5-6일, 심하면 휴일 없이 주방에 출근하기도 한다.


“나 혼자를 챙기기도 버거운 나날들이었다. 그런 나에게 가족이 생겼고-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지금 이곳이 그 선택의 결과다. 나는 쓰리 스타까지 가는 여정을 포기했지. 대신에 한 가지를 얻었다.”


레이는 금강석과도 같이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족과의 시간.”


그리고 민재의 얼굴에도 씁쓸한 웃음이 스쳐갔다. 어머니가 암 투병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이제는 다시 벌어지지 않을 사건. 민재는 그때 경력과 병원비를 위해 하루 반나절 이상을 생선을 손질하고 굽고, 삶고, 졸이는 데 썼다. 그래서 그는 잘 안다.


레이 카터. 저 강사 셰프가 말하고 있는 선택.

저건 많은 셰프들이 직면하게 될 현실들 중 하나이다.


“이 이야기를 셰프 꿈나무들에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학교를 다니면서 자신이 내린 선택에 회의감이 들 수 있고 그건 당연한 과정이다. 조언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나를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아라.”


그래서 민재는 왠지 이후에 나올 두 번째 이유가 무엇인지도 그냥 알 수 있었다. 선례로서의 존재.


요리는 모든 셰프에게 삶의 전부가 될 이유가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그리고 훗날, 학교를 떠나고서도 이와 같은 고민을 마주할 수도 있다. 그때는 나라는 셰프도 있었다는 것을 떠올려주었으면 좋겠다. 그럼 이만.”


레이의 시선은 잠깐 두 아이의 엄마, 캐롤라인에게 머물다가 사라졌다.


그가 거두절미한 말들로 자기소개를 마치더니 주방 문 쪽으로 향했다.


“모두 따라오도록. 오늘은 할 일이 많아.”




***




스토어룸Storeroom.


CIA는 요리학교다. 매일 수천의 요리재료들이 들어오고 반출된다. 대량으로 수입되는 재료들은 항목별로 나뉘어 관리된다.


430kg 버터, 37종의 밀가루, 150종의 치즈.


평균 저장되는 양이 이 정도다. 이들은 서양요리에 흔히 쓰이는 재료들이기에 하루가 멀다 하고 비워지고, 다시 채워진다. 달걀, 우유, 소뼈. 이런 것들은 소비되는 즉시 채워지기에 각 재료마다 하나의 저장고가 따로 마련되어있다.


“이곳은 너희들이 다룰 재료의 모든 것들이 있는 곳이다. 방대한 넓이 탓에 처음은 헤맬 수 있다. 한눈팔지 말고 나를 따라오도록.”


레이의 당부와 달리, 학생들은 별천지라도 온 듯 혼이 빠진 모습이었다. 그건 민재도 마찬가지였다. 민재는 생각했다.


천국. 여기는 천국이다.


지금 보고 있는 밀가루 저장고만 해도 환상적이었다. 그가 모르는 브랜드가 허다하게 늘어져있고, 그 양도 어마어마했다.


저 많은 종류의 밀가루를 한 번씩이라도 써보면 그만큼의 경험이 쌓이는 셈이다. 요리학교가 아니고서야 쉽사리 얻을 수 없는 기회. 민재의 눈동자가 탐닉하듯 재료들을 핥았다.


뒤에 따라오던 한국인 남학생, 승현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밀가루 종류가 이렇게 많을 필요가 있나?”


그 말에 주위에 있던 학생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승현은 주춤거리다가 소신 있게 말을 이어나갔다.


“강력분, 중력분, 박력분. 3종류면 충분하잖아. 미국이나 호주도 당장 세 분류로 나누고 있고. 10종류 정도면 이해하겠는데 37종은 좀 과한...”


발걸음이 멈추고, 레이는 뒤를 돌아봤다. 기어들어가던 목소리가 더 작아졌다.


“좋은 의문이다. 모든 요리사는 늘 질문하는 존재여야 하지. 밀가루를 왜 37종류나 마련해놓았을까. 의견 있는 사람 있나?”


레이가 물었다. 모두에게 하는 질문. 먼저 앞서 자신의 궁금증을 털어놓았던 승현이 말했다.


“제빵 과정 학생들이 다양한 밀가루를 접하게 하기 위해서일 것 같습니다. 셰프.”


승현은 간신히 레이에게 눈을 맞추더니 말했다. 민재가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합리적인 추론. 허나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다.


“밀의 생육환경.”


민재가 말했다.


“습기가 많은 환경에 자랄수록 밀은 품고 있는 단백질이 낮아지고 글루텐은 높아집니다. 그에 따라 맛, 향, 질감, 색, 제분과정이 달라지죠. 파스타면을 만드는 데도 이 차이는 명확합니다.”


민재를 바라보는 레이의 눈에 흥미가 서렸다. 그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곤 팔짱을 꼈다. 설명을 계속해도 좋다는 몸짓이었다.


“달걀만을 넣고 반죽을 할 것인지, 물을 첨가할지부터가 달라지죠. 그 중 안테그랄레. 한국에서는 그 통밀가루로 국수 면을 만들곤 합니다. 신선한 통밀가루로 즉시 만들어낸 중면은 정말이지...”


민재는 잠시 말을 멈추다가 옅은 콧김을 내뿜었다.


혀에서 굴러지는 까끌거리는 감촉과 향이 상상되고, 그 입 넘김이 그려졌다. 과거 한창 꽂혔을 땐 휴일 점심마다 만들어먹었던 비빔국수. 민재의 특제 양념이 끼얹어진 통밀가루의 면은 가히 환상적이라 할 수 있었다.


“맛이 죽여주죠.”


그 말로 레이의 눈썹이 들어 올려졌다. 만족스러운 눈매가 학생들을 훑었다.


“민재가 잘 말해주었다. 빵, 피자, 파스타. 밀가루의 태생은 접시의 종목을 결정짓는다. 밀가루의 종류가 과하다 생각할 순 있지만 파스타와 피자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그 생각은 달라질 거다. 입자의 자그마한 차이도 요리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좌우하지.”


그는 벽을 따라 진열되어 있는 밀가루들 중 하나를 가리켰다. 레이의 손가락이 옴폭하게 밀가루 포대 속에 들어갔다.


“특히 이 브랜드의 더블제로밀가루로 만든 피자도우는 끝내준다. 나중에 이탈리아 퀴진 수업을 들을 때 진면목을 경험해보도록.”


레이는 뒤를 돌고는 문고리를 잡았다. 멈춘 그의 몸. 그가 망설이다 말했다.


“크흠. 민재가 말했던 한국의 국수는 나도 한 번 먹어보고 싶군. 나중에 한 번 가져올 수 있겠나? 굳이 나를 의식해서가 아니라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레이는 부끄러운지 눈을 문고리에 고정하고 있었다. 몰려드는 눈동자들. 민재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예, 셰프. 언제 한 번 만들어 오겠습니다.”




***




스토어룸 탐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또 다른 문고리를 쥔 레이는 학생들에게 물었다.


“본 수업의 이름은 무엇이지?”

“스킬개발1 수업입니다. 셰프.”

“그래. 스킬개발1 수업. 이 수업은 칼질을 배우고 스톡을 만드는 과정을 익히는 과정이다. 그리고 스톡에는.”


레이가 양문을 열었고, 털이 곤두서는 추위가 학생들을 덮쳤다. 선반들마다 우겨져있는 상자들. 살점이 얄팍하게 붙은 뼈들이 그득하다.


“각종 뼈들이 들어가지. 이곳은 빌스톡(소뼈로 만든 스톡)을 만드는 데 쓰이는 소뼈를 저장하는 곳이다. 스킬개발1수업에서는 매일 수백KG의 소뼈가 사용된다. 이 모든 뼈들은 스톡이 되기 위한 운명인 셈이지. 이 뼈들로 만들어진 스톡은 다른 수업에 쓰이거나, 주변의 레스토랑에 팔린다.”


CIA의 시스템은 독특하다. 수입된 식자재는 수업의 재료로써 사용되지만 더불어 다음 수업을 위한 발판이 된다. 스톡은 요리를 만드는 데 쓰이고, 그렇게 만들어진 요리들은 다른 학생들의 식사가 된다.


학생들이 수업에서 만든 요리가 점심, 저녁으로 제공된다는 것. CIA로 들어오는 모든 식자재는 이 시스템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실습을 위한 재료일지라도, 손실을 최대한으로 줄일 수밖에 없다. 손실은 곧 창출될 가치의 축소로 이어지고, 효율은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하다.


“빌스톡 1갤런당 16달러보다 조금 높게 팔리지. 로스(버려지는 재료.)가 많아질수록 다음 학기의 학비가, 다음번의 기수가 지불해야 할 등록금이 더 많아진다. 내가 했던 말을 꼭 기억하도록.”


그렇게 말하고는, 레이는 학생들을 바라봤다. 병아리 같은 눈으로 멍청히 바라보는 학생들. 레이가 처음으로 씨익 웃었다.


“차례대로 나와서 4인 1조를 이뤄라. 한 바켓씩 들어서 K-9주방으로 운반해.”


학생들은 물론이고 민재는 잊고 있었던 사실을 깨달았다. 수업은 엄연히 진행 중에 있었다. 그들은 관광차원으로 이곳으로 온 것이 아니었다.


“남는 손들은 야채저장고로 향한다.”


악동 같은 미소가 레이의 얼굴에 피어올랐다.


스톡에는 뼈 이외의 것들이 들어간다.

미르포아, 스톡을 끓이는 데 필요한 각종 야채와 향신료들. 그것들을 학생들이 옮겨야 한다는 사실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




“스톡은 모든 프랑스 요리의 기본이다.”


레이는 말했다. 그는 대형 파이프관으로 연결된 찜통 앞에 서있다. 쭈르르 나열돼 있는 소뼈들. 학생들 중 몇은 팔을 주무르고 있었다.


“스톡은 소스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지. 소스는 프렌치의 근간이고 정수이다. 그렇기에 스킬개발1 수업을 허투루 듣는다면.”


그가 찜통의 몸통을 쳤다.


퉁.


쇠가 울리는 소리와 함께 몇 학생들이 움찔댔다.


“앞으로의 수업은 따라갈 수 없다.”


이후 시작된 것은 소뼈를 넣고 한 솥 끓이는 과정이었다. 어느 것 하나의 예외 없이 정확한 계량에 의해 진행되는 과정.


레이의 말이 이어졌다.


“6주 동안 매일 55KG의 소뼈를 들게 될 거다. 한 가지 팁을 주자면, 무릎을 반드시 구부리고 팔의 힘만으로 물건을 들려 하지 마라. 많은 수의 레스토랑은 산재를 적용하지 않을뿐더러, 미국의 병원비는 조리사의 봉급으로 감당할 수 없어. 어깨, 허리건강은 본인이 챙기는 것이 좋다.”


작업할 때의 사소한 팁부터.


“미르포아를 손질 할 때 유의해야 할 점은 손을 둥글게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르포아를 건질 때 본인의 살점까지 같이 건져내고 싶지 않으면 내 말을 새겨듣도록.”


기본적인 칼질까지.


수첩에 기입하고, 녹음기까지 가져온 학생도 있다. 하지만 민재는 애써 지루한 심정을 감추며 눈을 빛냈다.


회귀 이전에는 수없이 행해왔던 작업. 특히나 호텔에서 일했을 때는 새벽마다 이것의 배는 되는 양을 스톡으로 끓였다. 소뼈를 굽고, 찜기에 담고, 거품에 올라오는 불순물을 제거하고, 다시 그것들을 건져내는 과정.


레이 셰프를 제외하고는 여기 있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민재의 경험을 따라올 수 없다. 그 경험은 천재의 빛나는 재능도 한수 접어주어야 한다.


교육받지 못한 천재는 감이 좋은 범인에 불과하다. 수많은 반복을 통해 기워 올린 공든 탑은 어떻게든 그 나름의 가치를 발하는 법이고, 민재는 그 탑을 상당히 긴 시간동안 쌓아왔다.

그는 자신할 수 있다.


3KG의 고기 한 덩이를 썰어봐라 하면

민재는 10g의 오차로 정량을 썰어낼 수 있다.


더욱이 오늘 수업은 기본 칼질과 스톡을 끓이는 수업.

뭉뚱그린 감보다는 근거가 있는 노하우, 곧 정확한 레시피를 가늠하는 데이터가 중요하다.


“그 다음은 장민재.”


가르침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테스트. 스톡을 만들다말고 칼질에 대한 실습이 이어졌다.


“앞서 말했듯, 매 수업마다 미장 플라스를 검사할 거다. 미장 플라스는 조리사의 기본이자 주방에서의 하루를 준비하는 첫 시작이라 할 수 있지.”


레이는 찬찬히 민재의 아일랜드에 놓인 미장 플러스를 보았다.


미장 플라스. 하루 서비스를 준비하는 데에 필요한 재료, 팬, 접시들을 준비해놓는 상태. 사전 지시 받은 그대로가 민재의 앞에 정갈하게 펼쳐져 있다.


“미장플라스, 완벽하다.”


군더더기 없는 준비상태. 민재의 미장플라스는 지적할 건더기가 없었다.


“칼질과제도...”


그 다음 레이는 민재가 완료한 칼질과제를 살폈다.


페이잔느, 바르네, 뚜르네,

감자 하나를 써는 데도 방식에 따라 30가지가 넘는 명칭이 존재한다. 학생들은 여러 수업들 동안 그 칼질들을 익히고, 평가받는다.


레이는 민재의 접시를 바라봤다. 어느 것 하나 정석이 아닌 것이 없다. 곡선, 크기, 단면의 결. 레이는 직감했다.


이 학생은 준비된 인력이다. 당장 현장에 나가도 될 만큼.


그래서 레이는 평했다. 그가 오늘 민재에게 받았던 강렬한 인상. 그 모든 것이 한마디로 압축됐다.


“완벽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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