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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다시 사는 탑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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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본듯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11.18 11:43
최근연재일 :
2020.12.10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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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7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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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DUMMY

학생들 중에는 조리경력이 5년 넘은 사람들도 있다. 더 나은 학벌. 더 나은 봉급을 위해 온 사람들. 그들조차 사소한 지적들을 받았지만 민재는 달랐다.


완벽. 레이는 그 한 마디만을 읊고는 다음 평가를 위해 자리를 옮겼다.


고개들이 일제히 민재를 향해 돌아갔다. 부러움, 질투, 향상심. 각각에 담긴 감정은 달랐지만 그 시선들이 최종적으로 다가간 곳은 민재 앞에 놓인 접시였다. 손질된 야채. 완벽이란 평가를 받은 결과물은 모범사례나 다름없다.


“크...”


옆을 바라보니 쌍따봉을 날리는 제이미가 있었다. 제이미는 먼저 양파는 썩 괜찮게 썰었군이라는 평가를 받은 참이었다.


민재는 가볍게 웃어 보였다. 당연한 결과였다. 조리 생활만 몇 년인데, 이런 기본적인 칼질 평가에서 미끄러질 수 없는 노릇이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민재는 그 다음 주자를 바라봤다.


이수지.


회귀 이전 민재에게 칼질을 가르쳐준 그녀가 바로 옆 테이블에 배치되었다. 민재가 알기로 이 시절 수지의 조리경력은 전무하다 할 수 있었다. 식당에서 6개월 웨이터와 접시닦이를 병행해본 게 전부. 그런 그녀가 어떤 결과물을 내었을지 내심 궁금했던 민재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괜찮은 수준이야. 전반적으로 모양들이 살아있어. 특히 이 뚜르네. 유선형 모양이 일정하군. 다만, 양파를 썰 때 수직으로 썬 부분들이 존재한다. 시범에서 나는 반원을 따라 각도를 조절하면서 칼질을 했지. 해당 부분은 차차 반복될 내 시범들과 도서관의 비디오 영상들을 보면서 개선해나가도록.”


한 번 본 시범.

그녀는 레이의 시범을 보고 그의 칼질을 베끼듯 실행했다. 이건 재능이기 이전에 지능의 문제다. 손을 어떻게 놀리고, 야채를 어떻게 쥐어야 하는지에 대한 빠른 파악. 역시 천재는 달랐다.


수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민재는 흘끗 그런 그녀를 바라봤다. 스치듯 지났던 그녀의 얼굴이 다시 한 번 민재의 눈에 들어왔다.


달걀형 얼굴, 고양이 눈. 홀쭉한 볼과 광대.

서양에서 바라보는 전형적인 동양의 미가 그녀의 얼굴에 담겨있다. 돌아보는 고개에 시선이 마주칠 뻔 했고, 민재는 빠르게 회피했다.


모든 평가가 끝날 때까지 민재는 의식적으로 고개가 돌아가는 것을 막았다.

수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스톡은 아직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어디까지 했었지. 아.”


레이가 떠듬거리다가 말했다. 찜솥 안에는 액체가 가열되고 있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지 않고 몇 초에 한 번씩 옅게 기포가 올라오고 있는 갈색의 액체.


레이는 그 위에 뜬 기름을 걷으면서 교육을 계속했다.


“토마토 페이스트. 송아지의 뼈에는 콜라겐의 성분이 풍부하다.”


과학적인 사실로 체계를 잡아주는 수업.

왜 이때 이 재료를 넣는지에 대해 명확한 근거를 제시해준다. 민재가 그토록 바라왔던 지식의 보고는 바로 이곳 CIA에 있었다.


“왜 송아지를 쓰냐고? 송아지는 성체가 된 소에 비해 훨씬 촘촘한 결합조직을 가지고 있다. 그 뼈들이 품고 있던 콜라겐은 젤라틴성분으로 바뀌고 그 안에 담긴 뼈와 미르포아의 모든 맛들이 응축되지.”


그가 주걱으로 스톡을 한 번 저었다 올렸다. 끈끈한 점성이 후드득 묻어나오다 떨어진다.


“스톡은 젤라틴이다. 콜라겐이 젤라틴화 되는 과정을 도와주는 것이 바로 토마토페이스트의 산이야.”


주방은 육향의 비린내와, 야채의 향, 온갖 향신료가 섞여 용광로처럼 후끈거렸다. 다들 땀을 삐질 흘리면서도 불평 하나 내놓지 않았다.


제이미는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한 번 먹어봐도 됩니까?”

“물론이다.”


레이는 스푼으로 떠서 제이미에게 건넸다. 호호 부는 입. 끈덕진 것이 들어가자마자 제이미의 표정이 묘해졌다.


“어때?”


민재가 물었다. 제이미는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지 한참을 고민했다. 그가 찾는 단어. 그걸 알고 있는 민재는 대신 그의 감상을 말해주었다.


“중립적인 맛이지?”

“맞아. 중립적인 맛. 묘합니다 셰프. 잘 끓이고 있는 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레이는 드물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대답들이 한 사람에게서 나오고 있다. 민재라는 학생. 레이는 그를 응시하면서 말했다.


“중립적인 맛. 좋은 표현이군. 잘 끓여진 스톡은 애매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중립적인 맛을 자랑한다. 그렇기에 제이미의 감상도 맞다 할 수 있다. 묘하다 싶은 이 맛이 다른 재료들과 섞여 재료들이 가진 맛을 흡수하고 배가시켜주는 역할을 해준다. 이 맛을 잘 기억하도록.”


모두들 한 번씩 스푼을 들어 맛을 보기 시작했다. 곧 민재가 했던 표현이 무엇인지 수긍하는 얼굴들이 떠올랐다.


“여기서 스톡을 더 졸이면 글라스glace 상태가 된다. 데미글라스 소스의 글라스가 바로 이것이다. 빌 스톡을 더욱 졸이고, 소스를 만드는 것. 간단한 과정이지만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맛과 명칭은 극명하게 달라지지. 한 가지 과학상식을 덧붙이자면 이 글라스는 웬만한 프로틴파우더보다 단백질 함유량이 높다.”


그 말에 제이미의 눈이 반짝였다. 그가 민재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저거 운동할 때 먹으면 딱이겠다, 조금만 달라고 해볼까?”

“좋은 생각인데. 건조기 돌려서 파우더로 만드는 거야.”

“아예 굳혀서 프로틴 바로 만들어도 좋고.”

“...진짜 그럴 생각은 아니지?”


농담으로 했던 말에 한없이 가라앉은 목소리가 돌아왔다. 민재는 제이미를 쳐다봤다. 욕심이 드글거리는 눈. 그 아래 무언가가 들썩였다.


조리복 속에 숨겨져 있던 제이미의 대흉근이었다. 자유를 부르짖는 단추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




2주가 지났다.


실천이 없는 지식은 죽은 지식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듯, 실습은 요리공부에 있어 중요하다. 스톡. 짧게는 2시간, 길게는 반나절 이상의 시간을 쏟아 부어야 되는 그 과정을 학생들은 계속해서 반복했다.


“타임thyme 좀 줄 사람!”


학생들 중 한 명이 고함을 질렀다. 현재 주방의 상황은 전쟁통에 가까웠다. 살이 익는 듯한 열기와 쇠들이 부딪히는 소리, 높은 고성들.


“타임 좀 줄 사람 없어?!”


주변에 있을 허브 하나를 구하는 데도 소리를 질러야 할 정도다. 도움을 요청하는 학생은 주변을 둘러보고 싶었지만, 칼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눈을 떼면 바로 살이 잘려나간다.


“자 타임. 여기 놓을게.”


민재가 끼어든 것도 그 때였다. 민재는 조리대에 타임 네 줄기를 놓더니 다시 자리에 복귀했다.


이 부산스러운 환경, 지겨우리만큼 익숙했다. 그렇기에 민재는 누구보다 여유가 있었다. 그는 이미 남들이 하고 있는 과정을 마쳐놓고는 놓친 게 있는지 살필 정도였다.


레이의 눈에도 그런 민재가 들어왔다. 그는 팔짱을 끼며 생각했다.


가르칠 게 없군. 주방경력이 1년이라고 했나.


기초를 가르치는 수업. 많은 수의 학생들이 여기서 지독하게 헤맨다. 주방은 위험하고 고되다.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그 열기에 압도되어 종종 정신을 못 차리곤 한다.


물론 조리경력이 있는 학생들일 경우, 지루함을 표했다. 그들은 이미 이 과정을 졸업을 했으니까.

하지만 그들도 조금씩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쥬드. 조리모를 똑바로 써라! 머리카락 망이 폼이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두피가루 몇 점으로 맛에 차별성을 주고 싶은 게 아니라면 그 빗자루 같은 거 당장 집어넣어!”


실수는 보통 위생과 관련해서 벌어졌다. 한 번 맛보았던 스푼을 다시 쓴다던가, 조리대의 얼룩을 제때 제거하지 못한다던가 하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흠들. 당연히 이것들은 감점대상이다.


그 와중에 민재는 달랐다. 그는 어떤 방면에서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남을 챙겨줄 만큼의 여유를 보였다.

레이는 방금 타임을 건네주었던 민재를 떠올렸다.


“주방은 하나의 공동체다! 나 하나 잘 되는 것이 능사가 아니야! 누군가 도움을 요청할 땐, 없는 시간이라도 쪼개서라도 그 사람을 도와줘야 하는 거야!”

“예, 셰프!”


여럿이 동시에 외쳤지만, 그럴 여유 자체가 없는 사람들이 허다했다.


오늘 학생들이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메리칸 바운티 수프. 매 수업마다 레시피가 달라지고, 이제 막 입문한 학생들은 익숙해질 새가 없다.


“저거 좀...”


불안한데.


민재도 그 사실을 알기에 걱정 어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심코 엄지의 살점을 가르거나 좁은 복도를 걷다 온몸에 멍을 입힌다. 그 중 최악으로 손꼽히는 위험은.


화상.


민재의 눈은 허둥지둥 대고 있는 수지에게 꽂혀있다. 과거에 그녀가 했던 말이 유독 거슬렸다.


[아, 이거요?]


손바닥에 새겨져 있던 흉터. 수지는 별것 아니란 투로 말했었다.


[훈장이죠. 나 요리학교 다녔을 때 진짜 덜렁이였거든요. 과제 제출시간 맞춰보겠다고, 팬 두 개 쓰다가 데였어요.]


그리고 그녀의 버너에는 프라이팬 두 개가 놓여있다.


[이거 때문에 3주를 쉬었죠? 그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학교 측이 내 편의 봐줘서 이론수업만 듣고 진도는 맞출 수 있었는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죠. 손은 아프지 마음은 허하지. 요리하러 왔는데 요리를 못 해봐요. 눈물이 찔끔 났었어요. 아니, 막 울진 않았고요. 아주 쪼-금. 요만큼 났던가?]


그녀는 재밌는 과거를 떠올리듯 웃고 있었다. 누가 아픔을 좋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민재는 그때 들었던 양가적인 감정과 함께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이 불길한 예감이 맞는다면, 수지는 저 팬의 손잡이를 잡다가 손바닥에 2도 화상, 혹은 그 이상을 입게 된다.


은박지. 고무. 하다못해 천이라도.

민재의 입에 여러 단어들이 맴도는 순간. 우려하던 상황이 벌어졌다.


수지는 눈을 채소들에 고정한 채 오른손을 뻗었다. 민재의 몸도 자동적으로 뻗어나갔다. 일촉즉발의 순간. 손이 공중을 더듬거리고, 달려 나간 민재가 수지의 손목을 낚아챘다.


의아한 얼굴이 민재를 바라봤다.


“너, 아니 수지 씨. 방금 손 데일 뻔 했어요.”


수지는 달아오른 팬을 바라봤다. 멍해있는 눈동자. 반 박자 늦게 화들짝 놀라는 그녀였다.


“바빠도 손하고 눈은 같이 움직여야 돼요. 그리고 팬 잡을 땐 은박지 뭉쳐서 손잡이로 쓰고요.”

“네... 네. 알았어요.”


빠르게 위아래로 움직이는 머리. 민재가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고마워요!”


하는 수지의 음성이 높게 울렸고, 옆의 조리대에 있던 제이미의 눈이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그 눈이 의미하는 명확했다.


“야.”

“왜~?”

“너. 팬. 채소 탄다.”

“BLIMEY!”


소심한 복수, 민재가 코웃음을 흘리곤 다시 조리에 집중했다.




***




평가의 시간.


어떤 이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어떤 이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 웃음꽃을 만발한다. 민재는 여지껏 한 번도 안 좋은 평가를 받은 적이 없다.

그리고 오늘, 접시에 나온 결과물대로라면 그가 긴장할 이유는 없다.


민재는 심각한 얼굴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과거에 대한 개입.


CIA에 왔을 때부터 찜찜했던 것이었다. 자신의 존재는 과거에는 없었고, 분명 어떤 식으로든 수지의 인생이 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오늘은 그 첫 단추가 끼워진 셈.


손바닥의 화상은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 것인가.


요리사에게 흉터는 일상적인 것이다. 그러나 첫 흉터가 가지는 의미는 다르다. 앞으로의 결심과 조심성이 새겨지는 순간. 그것이 뒤로 미루어졌고, 민재는 이 상황이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인지 헷갈렸다.


“몰라. 여기까지 와서 이런 고민하는 것도 웃기다.”

“뭐?”

“아냐. 그냥 혼잣말이야.”


제이미가 민재의 한국말을 듣고 갸웃거렸다. 대충 얼버무린 민재는 애써 자신을 납득시켰다. 레이가 그런 그에게 말했다. 과제용 수프를 한입 떠먹은 숟가락이 깨끗하게 놓였다.


“이번 수프도-.”


늘 짜릿했던 레이의 평가.


“완벽하다.”


그 평가가 오늘은 귀에 꽂히지 않고 웅웅거리는 듯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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