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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다시 사는 탑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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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본듯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11.18 11:43
최근연재일 :
2020.12.10 23:53
연재수 :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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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7,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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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8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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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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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3화

DUMMY

“...민재, 민재!”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민재는 고개를 퍼뜩 들었다. 주변은 시끌벅적하고, 누런 조명이 인파들 사이를 쏘다니고 있다. 아늑한 컨트리풍의 아메리칸 펍. 민재가 말했다.


“어?”

“정신 어디다 팔고 있는 거야. 뭐 시킬 거냐고.”


테이블에는 바닥을 보이고 있는 맥주잔들이 놓여있었다. 주말은 다시 찾아왔고, 민재는 한 주를 마무리하기 위해 뉴욕시티의 펍으로 왔다.


“그래. 그제부터 어디 나사 하나 빠진 사람 같아, bro.”

“나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은데.”


물론 그 혼자 술을 마시러 온 것은 아니었다.

제이미, 마이클, 캐롤.


캐롤은 시니컬한 웃음을 흘리고는 빙글거렸다. 음흉한 눈이 나직이 위아래를 오간다.


“그 여자애 때문이지?”


그제야 둘의 표정도 비슷해졌다. 민재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인상을 찌푸리더니 대화를 돌렸다. 마침 웨이터가 옆으로 다가왔다.


“저는 버드와이저로 할게요.”

“버드와이저?”

“왜. 실패하지 않는 선택이잖아.”

“브루펍 와서 버드와이저 시키는 건 좀 그렇지 않냐?”


제이미는 못마땅하게 민재를 쳐다봤다.


브루펍. 업장만의 고유한 맥주를 만들어 파는 곳이다. 직접 맥주를 양조하는 만큼 시중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맛을 즐길 수 있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대개 브루펍에 오면 시키는 것은 그 펍만의 맥주다.


이른 바 하우스맥주 같은 것.


“하우스맥주는 이미 마셔봤잖아. 그 IPA는 시트러스(귤, 오렌지 등의 청과류 과일)향이 너무 강하더라. 그리고 버드와이저는 전미 판매량 1위 맥주 아냐?”

“1위라고 다 맛있는 건 아니지.”

“나는 그 대중성 1위 맥주 맛을 몰라서 마셔봐야겠어.”


그 말에 모두가 놀란 표정이 되었다.


“저는 술을 잘 안 마셔봤거든요. 게다가 사실 한국에서는 맥주가 그렇게 대세인 주종은 아니에요.”


적어도 이맘때쯤은 말이지. 민재는 그 생각을 머릿속에만 둔 채, 서버에게 버드와이저를 시켰다.


“아 So-ju?”


잠깐 생각을 하던 제이미가 말했다. 그는 그 맛이 기억났다는 듯 미간을 구겼다.


“내 취향은 아니었어. 위스키도 아닌 것이 인공화학배합물의 향을 풍기니...”

“그걸 우리는 알코올램프 향이라 하지.”

“맞네. 딱 그거네.”

“어, 그거. 뭐튼 소맥이라고- 소주하고 맥주를 섞어 마셔. 거기 들어가는 맥주도 한국산 맥주라.”

“쏘맥. 서로 다른 술을 섞으면 색다른 맛이 나오기는 하지. 한 번 마셔보고 싶네. 그건 무슨 맛인데.”

“글쎄. 우선 제이미 네가 경험하지 못한 맛이란 건 분명할 걸. 나중에 말아줄게.”


그 사이 주문한 맥주들이 나왔다.

먼저 민재가 시킨 버드와이저. 그가 컵에 입을 대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탄산이 입안과 식도를 찔러 들어갔다. 라거 특유의 부드러운 목 넘김. 민재는 맥주거품이 묻은 입술을 훔치며 떠오르는 향을 느꼈다. 황금빛이 휘몰아쳤다. 노을이 출렁이는 듯 맥아의 향 넘실거렸다.


“좋은데? 1위할 만 하네.”

“부가물 라거치곤 괜찮지.”

“부가물?”


제이미가 혀를 차더니 말했다.


“주조 과정에서 밀 말고도 옥수수 같은 걸 넣은 거야. 맥주의 맛과 향은 줄어드는 대신 단가가 낮아지지.”

“아. 그런 것 치고는 막 나쁘진 않은 것 같아. 내가 술을 몰라서 그런가.”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맥주. King of Beers. 버드와이저.”


마이클도 자신의 앞에 놓인 버드와이저를 들이켰다. 그가 리듬을 타면서 맥주를 음미했다.


“미국에선 보통 바에서 맥주 달라고 하면 버드와이저 줘.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도 이거고.”

“내 아버지는 어릴 때 버드와이저에 탄산수 섞어서 마셨다고 했어. 그게 10살 때라 하셨을 걸.”

“맥주를 10살 때요?”


캐롤이 말했고, 민재가 놀라며 물었다.


“그때는 금주령이 있었던 시기거든. 무알콜 만든답시고 이것저것 시도를 많이 한 것 같아. 혹자는 어릴 때부터 버드와이저를 그렇게 먹은 세대가 지금의 매출 공신이란 얘기도 있고.”

“입맛 길들이기가 있었다는 거네요.”

“뭐, 그렇지. 익숙한 맛과 향이란 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거니까. 그나저나 민재 너.”


캐롤은 모카 스타우트를 들이켰다. 유리잔을 꽉 채운 흑맥주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날라 다니더라?”

“네? 뭐가요?”

“수업 때 말이야. 매번 어떻게 그렇게 완벽, 완벽이야. 주방경력 1년이라매. 1년만 있으면 나도 너만큼은 할 수 있는 건가?”

“아니죠. 휴고 못 봤어요? 걔 3년차라고 뻐기던 거. 하루가 멀다 하고 지적 받는데 3년. 처음에 민재가 동양인이라고 업신여기던 거 생각하면 진짜 우습다니까.”


제이미는 잘 나가는 친구를 바라보듯 초롱초롱한 눈으로 민재를 바라봤다. 민재는 피식 웃더니 말했다.


“익숙해지면 저보다 더 잘 하실 수 있을 거예요.”


16년을 근무해야겠지만. 민재는 한 모금을 다시 적시더니 앞에 놓인 웨지감자를 먹었다. 그가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음식에 대한 불평을 했다.


“여기 안주는 좀 아쉽네요. 튀긴 건 웬만하면 맛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디나 예외는 있는 모양이에요.”

“그게 여기 단점이지. 그래도 맥주는 끝내주지 않냐? 아, 내가 브루펍에서 버드와이저 마시는 애한테 괜한 걸 물었다.”

“야, 다른 것도 마실 거거든. 말 나온 김에 한국음식 해줄까요?”


민재가 말했고, 모두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세 쌍의 눈. 민재가 제이미를 쳐다봤다.


“네가 저번에 얘기했었잖아? 술은 음식이 있어야 완성된다고.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줄게. 내일 점심에 소맥 어때.”

“오 좋지.”

“한국 술엔 한국음식이니까...”


민재가 고민하다가 결정했다.

내일 할 것은.


“김치하고 보쌈 해줄게요. 소맥하고 보쌈, 이 조합이 꽤 쥑이거든요.”




***




요리학교의 기숙사는 주방의 풍경조차 다르다. 3쌍의 양문형 냉장고. 널찍한 조리대와 버너, 대형오븐.


정작 수업에 치여서 이 찬란한 주방을 이용하는 이들은 적지만, 그 위용은 대단하다.


“자, 얼추 됐고...”


오늘 허드슨홀의 주방을 이용하는 사람은 민재였다.


커다란 냄비. 닫힌 뚜껑으로는 김이 풀풀 새어나왔다. 1시간 동안 삶아낸 삼겹살은 뜸을 들이면서 더욱 간이 배고 부들부들해질 것이다.


“김치도 다 담았어요.”


수지는 옆에서 김치를 담아냈다. 민재가 그녀에게 말했다.


“나 혼자 해도 된다니까요.”

“고마워서 그래요. 이 기회에 사람들하고 친해지면 되죠.”


수지가 밝게 웃었다.


회귀 이전 그대로였다. 저 미소도, 저 고집도.

수지는 여전히 사람을 챙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자신을 도와준 민재에게 보답을 한답시고 그녀는 요리를 돕겠다고 나섰다.


“나는 거의 한 게 없는 것 같은데요 뭐. 손이 어떻게 그렇게 빨라요? 거기다 오늘 메뉴들도 신박해. 저는 배추나 무 말고 다른 김치를 할 수 있는지 몰랐어요. 김치에 콜라비라니...”


그녀가 옮겨낸 김치는 총 3종이었다.


콜라비 깍두기.

양배추김치.

수박 즙을 넣은 비트물김치.


김치는 발효가 생명이다. 아무리 잘 만든 김치라도 적당한 숙성기한이 없으면 겉절이에 불과하고 깊은 맛이 나지 않는다. 어제 펍에서 김치를 해주겠다고 호언장담했던 민재는 그 사실을 깨닫고 아차 싶었다.


만든 즉시 먹어야 하는 김치. 반면 지금의 미국은 푹푹 찌는 여름이다. 달아야 할 무가 달지 않고, 한국의 배추는 기대할 수 없는 상황. 민재는 어떻게든 타협점을 찾아냈다.


“맛은 괜찮았어요?”

“좋았어요. 근데 왜 이런 것들을 한 거예요?”

“Nappa cabage가 한국배추하고 비슷하다고 해서 사보긴 했는데요.”


민재가 구석에 방치되어있는 배추를 바라봤다. 소금에 절여진 채로 쭈글쭈글해진 배추. 아깝다는 시선이 조금 머무르다 사라졌다.


“영 한국배추보단 못 하더라고요. 혹시 몰라서 여러 대안들 마련해놓은 거였어요. 한국에서 전형적으로 먹는 김치보다는 이것저것 변형을 줘서 이국적인 걸 최대한 줄이는 게 목적이었죠.”

“여긴 외국인들이 많으니까요?”

“네. 걸렸던 건 보쌈하고의 조화인데 이건 소스를 입히면 되는 거니까.”

“흐음.”


수지가 민재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녀의 긴 속눈썹이 깜빡 깜빡댔다.


“왜요?”

“수업 때마다 그렇고, 민재 씨는 이미 완성된 요리사인 것 같아요. 대안을 준비한다는 거, 쉽지 않잖아요.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의 요리를 추구한다. 완전 모범적인 셰프의 자세이지 않나...”


그 말에 민재는 숨을 멈췄다. 이상해진 민재의 표정을 본 수지는 물었다.


“...칭찬으로 한 말인데, 칭찬으로는 안 들렸어요?”

“아, 아뇨. 고마워요. 언제 누구한테 들었던 말인 것 같아서요.”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의 요리를 추구한다는 그 말.


수지가 회귀 이전에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었다. 그 말을 한 장본인이 자신을 향해서 똑같은 문장을 읊었다. 기분이 묘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분도 민재 씨를 보고 똑같이 생각했나보네요. 아 맞다. 마늘보쌈 한다고 했었죠. 괜한 참견일 수도 있는데.”


수지는 말하기를 망설였다. 민재는 어깨를 으쓱였다. 뭘 망설이냐는 몸짓이었다.


“마늘소스는 좀 아리지 않을까요? 꿀에 절인다고 해도 생 거를 다져서 그대로 쓰면 소화에도 안 좋을 것 같아요. 다진 마늘을 자작한 물에 삶는 방식으로...”


민재가 은근한 미소를 띠었다. 그 미소를 본 수지는 자신이 했던 걱정이 정말로 괜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이미 방법이 있었구나.”


그녀가 얄밉다는 듯 살짝 흘겼다. 민재는 크게 웃었다.


“말씀하신 방법을 쓸 거예요. 날카로우신데요. 그걸 바로 캐치하시고. 역시...”

“역시? 왜 말을 하다 마세요.”

“재능 있다고요. 대신 한 가지를 더 첨가할 겁니다.”


민재는 오븐의 문을 열었다. 터져 나오는 후끈한 열기. 그 안에는 둥글게 뭉쳐진 은박지가 있었다.


“2시간 동안 구운 마늘.”


은박지를 벗기고 나니 껍질이 벗겨지지 않은 채 구워졌던 마늘이 드러났다. 민재는 그것의 껍질을 까고 흑갈색의 내용물을 체에 걸러냈다.


“이 마늘 퓨레를 섞을 거예요.”


졸이듯 만들어낸 마늘 소스가 푸드 프로세서에 담기고, 퓨레와 약간의 오일이 끼얹어졌다. 적은 양이지만 이 퓨레는 물에 삶으면서 사라졌던 마늘의 향을 더해주고, 구운 마늘 특유의 향도 첨가해줄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두 개의 요리들.


고추장과 고춧가루, 하바네로 고추 하나. 적당한 맵기를 조절해 만든 불소스에 보쌈고기가 졸여지고, 멘쯔유(일본식 다시간장)와 생강, 레몬, 페퍼가루 등을 넣어 만든 소스에 파채가 투하된다.


완성된 삼색의 보쌈들과 3종의 김치들.


그때, 주방의 문이 열렸다.

한국의 소주와 맥주를 사온 학생들이 기대에 부푼 얼굴로 들어왔다. 그들의 코가 벌름거렸고 동공이 확장됐다.


그들의 입 안 가득, 침이 흥건히 고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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