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독점 다시 사는 탑셰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어디서본듯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11.18 11:43
최근연재일 :
2020.12.10 23:53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14,713
추천수 :
471
글자수 :
137,811

작성
20.12.01 21:26
조회
453
추천
18
글자
11쪽

16화

DUMMY

“점심 먹으러 가?”

“게일?”


의외의 인물이었다. 금발의 짧게 친 머리, 180이 넘는 키. 짙은 송충이 눈썹.


그는 딱딱한 표정으로 민재를 바라봤다. 퍼런 눈이 어딘가 경직되어 있다. 큰 덩치와 송충이 같은 눈썹이 더 해지니 사나운 느낌을 준다.


옆에 있던 제이미가 민재에게 속삭였다.


“어제 일로 뭐라 하는 거 아냐?”

“어제? 뭐라 할 게 있었나?”

“왜, 네가 막 쏘아 붙였잖아. 미식학 수업 때.”

“쏘아 붙인 것 같진 않았는데...”


내가 쏘아붙였었나?


민재는 눈을 굴렸다. 아무리 봐도 그 정도 가지고 쏘아붙였다 하는 건 지나치다. 민재는 제이미와 눈을 맞췄다. 으쓱이는 어깨.


그리고 돌아가는 고개. 민재가 짧게 답했다.


“어. 코리안 퀴진 가려고. 점심 먹었어?”

“어 뭐. 대충.”

“빨리 먹었네. 뭐 먹었는...”

“어제 있잖아. 너...”


굵직한 목소리가 빠르게 치고 나왔다. 성급한 발도 같이 튀어나왔다.

민재는 자동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동시에 론다가 강변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나라에, yellow인 내가 허점이라도 보이면 순식간에 물어뜯길 것이라는 위기감을 안고 살았죠.]


론다가 했던 그 말. 인종차별에 대한 언급.


민재는 목이 뻣뻣해지는 느낌이었다. 제이미도 무언가 이상한 것을 느꼈는지 살짝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왜, 뭐. 어제 뭔데.”

“아, 아니 별건 아니고 어제 되게 인상적이었다고.”


게일은 말을 더듬거렸다. 그의 몸이 쭈뼛댔고, 시선처리는 어색하다.


인종차별적 발언을 시전하기엔 부조화하다 싶은 신호다. 괜한 긴장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민재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밀어진 손. 민재가 악수를 청했다.


“너도 인상적이었어. 토론 이어나가는 거 쉽지 않았을 텐데, 말 잘 하더라.”

“나야 뭐, 그런 얘기하는 거 좋아하니까. 그, 다른 건 아니고 민재 너 스킬개발수업 때 볼 때 조리기술도 뛰어난 것 같더라고. 그래서 혹시 가능하다면 부탁할 게 있는데...”


옆에서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제이미도 뭔가 자신이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가 예의 그 친화력을 보이며 친근하게 다가갔다.


“민재가 요리를 잘 하긴 하지. 주말엔 한국음식도 해줬는데, 그때 너도 부를 것 그랬다 야.”

“나도 좀 아쉬웠어. 저번 주말엔 봉사활동 하느라 좀 바빴어서... 갔던 애들이 자꾸 얘기하더라. 그 이름이 뭐였더라? 보쌈... 그리고 ssomac?”

“쏘-맥. 천상의 맛이지. 우리 방 놀러와. 내가 제조해줄게.”

“누구 맘대로.”

“...허드슨 홀 주방으로 와. 저 쫌생이 놔두고 우리 둘만 마시자.”


제이미가 궁시렁 댔고, 민재가 웃었다. 덩치만 이렇지 게일은 전반적으로 순한 인상의 사내였다.


“한국음식 먹고 싶으면 얘기해. 얼마든지 해줄 수 있어. 근데 방금 부탁이라 했지 않았어?”

“아, 음 부탁. 그게... 우리가 주말마다 자유롭잖아. 그래서 매주 뉴욕 시티로 미식투어 다니는 애들도 있고.”

“그렇지?”

“나는 이번 주부터 조리수행을 하려고.”


게일의 입술을 모아졌다. 굳은 다짐이 언뜻 드러났다.


“The classic. 이번에 원 스타 받은 레스토랑이야. 거기서 무보수 스타지를 하려고.”


당연한 말이지만 CIA의 주말은 학생 자율에 달려있다. 개인시간에 무엇을 할지는 본인이 알아서 하고 책임 또한 본인이 진다.


과제나 공부할 분량이 상당한 편이기에 이를 병행하면서 다른 일을 하기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로하다.


민재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수업 시작한 지 얼마 됐다고, 이 젊은 학생은 학교 외부에서도 가르침을 얻으려 하고 있다. 어딘가 망치 한 대가 그의 머리를 친 것만 같다.


“...게일 너 부지런하구나?”


게일이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놀면 뭐하나 싶어서. 사실 민재 너 보고 결정한 게 커.”

“나?”

“너 주방경력 1년이라 했잖아.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일한 거지?”

“...아닌데.”


16년 일하긴 했다. 2019년이 됐을 때 예전에 일했던 곳이 나중에 쓰리 스타를 받기도 했고.


떨떠름해진 표정들이 모두에게 떠올랐다. 각기 다른 감정이었지만, 잠시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게일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민재를 쳐다봤다. 무슨 괴물을 바라보는 표정이다.


“...그런데 그렇게 잘 한다고?”

“그냥, 어떻게 그렇게 됐네. 스타지 하는데 내가 필요한 거야?”

“거기서 얘기하더라고. 경력은 괜찮은데 학교 입학한 지는 얼마 안 돼서 테스트를 한 번 해보고 싶다고. 그 테스트를 민재 네가 도와줄 수 있는가 해서.”

“아.”


아주 드물지만 있다. 무보수로 스타지(노비)를 부리면서 테스트를 하는 업장이.

게일은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민재에게 물었다.


“와서 오믈렛을 만들어보래. 내가 제일 자신 없는 게 에그egg요리거든. 오믈렛은 여러 번 연습해도 잘 안 돼서...”


조리경력이 길다 하더라도, 조리사는 조리사에 불과하다.

자신이 맡은 메뉴만을 주구장창 만들기에, 그는 그 종목에 대한 달인이 될 수 있어도,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이건 민재 또한 마찬가지다. 해왔던 것만을 했기에, 그는 기본기가 탄탄할지언정 창의성이나 다양한 레시피를 아는 측면에서는 떨어진다.


“오믈렛이라.”


하지만 오믈렛이라면 다르다. 기본 중의 기본. 그가 자신 있는 것들 중 하나다.


게일은 초조한 심정으로 민재를 바라봤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만연한 표정. 마치 과거의 자신을 보는 듯하다. 어떻게든 더 배우고 싶은, 그런 열정이 게일의 얼굴에서 엿보였다.


그래서 민재는 생각했다.


“그래. 알려줄게.”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는 그 노력에 맞는 걸 주어야 한다.


“오믈렛 하나는 내가 기가 막히게 만들긴 하지.”


그리고 그 열정은 회귀 이후 오랜만에 민재의 가슴 속에 작은 불을 지핀 것만 같다.




***




수업이 끝난 저녁. 허드슨 홀의 주방은 오늘도 바쁘다. 오늘은 세 명이 주방을 쓰고 있다.

민재와 게일, 제이미.


민재가 제이미에게 물었다.


“넌 왜 여기 있냐?”


제이미의 표정이 눈에 띄게 섭섭한 사람의 것으로 변했다. 쳐진 어깨와 눈. 그는 과장된 몸짓으로 한숨을 들이켰다. 웅얼거림이 낮게 깔렸다.


“아 왜. 나도 가르침 좀 받아보자. 너 요리만 해줬지 뭐 알려준 적은 없잖아.”


민재가 멈칫했다. 내가 그랬었나?


아니다. 얘기는 했었다. 민재는 가끔 저녁마다 요리를 해주면서 각종 팁들을 알려주었다. 정작 그는 술을 마실 생각에 집중을 안 한 듯 했지만.


“나는 늘 얘기했던 거 같은데. 아, 오늘은 술 마시지 마. 요즘 네가 소맥 얘기 여기저기 퍼뜨리는 통에 RA 눈에 불 키고 있더라. 같이 있다 걸리면 나도 벌점 받으니까 혼자 매점에서 마셔.”

“...치사한 자식.”

“뭐?”

“아니 너무 좋다고. 나 달걀 좋아해. 완전 킬러야.”


태세변환이 빠른 제이미 그렇다 치고 게일이 남아 있었다. 민재는 게일을 바라보곤 팬을 버너 위에 올렸다.


“우선 오믈렛을 할 때 중요한 게 뭔지 알아?”

“코팅팬 아냐,,.?”


게일은 당연한 거 아니냐는 듯 바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오믈렛. 이 달걀요리는 절대로 더 익혀서도, 덜 익혀서도 안 되는 요리이다.

겉면은 뽀얀 노란 빛을 자랑하되, 그 안은 크리미하면서도 보들보들한 식감을 유지해야한다.


그만큼 세심한 조리기술을 요구한다. 조리사의 기술을 알고 싶다면 꼭 시켜봐야 하는 요리가 오믈렛이다.


“코팅팬은 왜?”

“그야, 겉면이 타면 안 되니까...”


게일은 말을 늘이며 민재의 눈치를 살폈다. 분명 알고 있는 것을 이야기 했는데, 뭔가 틀린 답을 말한 것만 같다.


“그것도 하나의 방법인데 거기 주방에 코팅팬이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지. 내가 들고 있는 팬, 자세히 봐봐.”

“...논코팅 팬이네?”


논코팅 팬. 이 팬에다가 기름을 두르고 달걀을 올렸다간 익히기는커녕 눌러 붙기 십상이다.

민재는 버너에 불을 올리고 팬이 달아오를 때까지 기다렸다. 팬에서 연기가 스멀스멀 기어오르기 시작할 즈음.


그가 말했다.


“히팅 포인트. 이 작업을 하면 논코팅팬도 충분히 코팅팬처럼 사용할 수 있어.”


팬에서 나오는 연기는 수분이다. 논코팅팬에 남아있던 수분이 기화되는 과정.

민재가 그 팬 위로 기름을 붓더니 휘휘 굴렸다. 금세 팬이 기름으로 흠뻑 젖었다.


“그런 다음 기름을 두르고 닦아내면 돼.”


민재는 타올로 팬을 닦아냈다. 그 후 상온에 두었던 버터를 투하한다.

녹아드는 버터에 부어지는 달걀 물. 잘게 썬 야채들과 차이브가 보석처럼 박힌다.


민재는 한동안 포크를 휘적거렸다. 달걀이 오묘한 패턴을 그려내며 익어간다.


“포크를 쓰는 이유는 알지?”

“기포를 없애려고 그러는 거잖아.”

“맞아. 빠르게 포크를 놀려야 해. 이 상태에서 팬도 같이 흔들고.”


덩어리진 것들이 제법 형체들을 쌓아올렸을 때, 민재는 모양을 잡아내기 시작했다. 우아한 곡선이 만들어졌고, 흰 접시로 내려앉았다.


완벽에 가까운 모양과 색깔.


“오오...”

“내가 했던 몇 가지만 기억하면 돼. 그러면 이런 오믈렛을.”


포크가 오믈렛을 갈랐다.


“먹을 수 있지.”


크리미한 속이 범람하듯 흘러나왔다. 숟가락들이 달려들었다. 촉촉하고 부드럽다. 턱을 닫자마자 푹신한 구름을 씹는 기분이다. 그 안의 속이 혀를 감싸고, 버터의 고소한 향이 들이닥친다.


“하...”


오믈렛을 머금은 얼굴 전면부가 녹아내리는 듯하다. 제이미와 게일은 흐물흐물해진 표정으로 접시를 내려다봤다.


“자, 이제 한 번 해봐. 할 수 있지?”


게일이 고개를 끄덕였고, 민재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옛날 생각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 오믈렛은 수지에게 배운 것이다. 그녀가 가르쳤던 것을 지금 이 순간,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학생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나중에 수지한테도 가르쳐줘야 하나.


묘한 감정에 휩싸이던 그때, 민재는 팬을 노려보는 게일과 그 옆의 제이미를 바라봤다. 남일 보듯 두 주먹을 질끈 쥐며 응원을 하고 있는 제이미. 민재가 악독한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야.”

“...뭐, 뭔데.”

“너도 해봐.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이런 거 보고 같이 배우는 거지. 너도 옆에 버너에 서.”


까딱이는 고개. 민재는 제이미를 보며 생각했다.

맥주를 가르쳐줬으니 이건 보답이다.


“오믈렛 모양 잡힐 때까지 여기 주방 못 나간다. 너.”


절대 그를 골리는 게 재밌어서 그런 게 아니다.


작가의말

이번 화 오믈렛 레시피의 출처입니다.


다니엘 불뤼 - 셰프 다니엘, 맛에 경영을 더하다.


사실 오믈렛은 모양만 신경 안 쓰면 어렵지 않은 요리입니다.

취향에 따라 속을 달리 해도 돼서 범용성이 많은 메뉴이죠. 앞으로 오믈렛은 두어 번 등장할 예정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다시 사는 탑셰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중단 공지 +4 20.12.11 398 0 -
공지 제목변경 공지 20.12.04 118 0 -
공지 도움을 준 자료들입니다. +1 20.12.01 375 0 -
25 25화 +3 20.12.10 402 19 11쪽
24 24화 +4 20.12.09 372 19 11쪽
23 23화 +4 20.12.08 395 17 12쪽
22 22화 +1 20.12.07 414 12 12쪽
21 21화 20.12.06 416 14 11쪽
20 20화 +2 20.12.05 443 16 11쪽
19 19화 +1 20.12.04 453 14 13쪽
18 18화 +2 20.12.03 442 18 12쪽
17 17화 20.12.02 440 16 13쪽
» 16화 20.12.01 454 18 11쪽
15 15화 +2 20.11.30 478 17 13쪽
14 14화 20.11.29 491 13 12쪽
13 13화 20.11.28 482 14 11쪽
12 12화 20.11.27 501 16 12쪽
11 11화 20.11.26 521 16 14쪽
10 10화 +3 20.11.25 561 19 12쪽
9 9화 +1 20.11.24 591 19 11쪽
8 8화 +1 20.11.23 643 21 12쪽
7 7화 +2 20.11.22 685 23 13쪽
6 6화 +2 20.11.21 759 21 12쪽
5 5화 +1 20.11.20 783 23 12쪽
4 4화 +2 20.11.19 844 25 12쪽
3 3화 +4 20.11.18 915 27 16쪽
2 2화 +2 20.11.18 961 23 11쪽
1 1화 +4 20.11.18 1,223 31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어디서본듯'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