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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다시 사는 탑셰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어디서본듯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11.18 11:43
최근연재일 :
2020.12.10 23:53
연재수 :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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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7,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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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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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1화

DUMMY

“그런데 스타지를 할 때는 뭐가 중요해?”


제이미가 생각에 잠겨있는 민재에게 물었다. 민재가 턱을 매만지던 손을 떼었다. 그가 눈을 위로 치켜떴다.


“뭐가 중요하냐고? 글쎄...”


스타지. 주방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막내. 한국의 경우는 최저임금 때문에 거의 없다시피 한 문화지만, 외국은 무보수로 스타지들을 부린다. 규모 있는 미슐랭 스타 식당의 경우는 적게는 둘 셋, 많게는 수십의 스타지를 보유하기도 한다.


“YES맨이 돼야 하지.”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는 것. 주방의 구조는 수직적이다. 아무리 개방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는 주방이라도 군대식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주방에서 일방적인 명령하달은 지켜져야만 한다. 레시피는 절대적이고, 그 과정에서 누락이나 변경이 있을 경우 손님에게 나가는 접시는 달라지니까.


“개인의 창의력 같은 건 없다고 봐야 해. 라인쿡이 되어서도 마찬가지긴 한데... 이건 주방 분위기하고 개인 하기 나름이라.”

“그냥 주구장창 예스 셰프만 외치면 되는 건가?”

“대충? 그래도 시키는 것만 해도 많은 걸 배워. 셰프의 레시피들 중 일부를 스타지로서 돕기도 하거든.”


한 접시를 만드는 데 20가지가 넘는 조리 과정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스타지를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숙련된 조리사들을 쓰기엔 조리과정이 너무 과하게 복잡하며 사소하다. 그들은 봉급을 받는 만큼의 기술을 요하는 작업에 투입되고, 세밀한 디테일들은 결국 스타지의 몫이다.


파를 직화로 구운 뒤 탄 부분을 까고, 호일로 감싸 15분 동안 오븐에 미열로 구워낸 것을 핸드블렌더로 갈아버린다. 문제는 이게 레시피의 아주 미미한 일부라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메인 접시 하나에 들어가는 3가지 소스 중 한 소스에 들어가는 요소들 중 하나.


“그 과정들은 셰프의 비밀들이고, 그걸 훔치러 가기 위해 가는 게 스타지야.”


그렇기에 스타지는 더욱 눈을 바삐 움직여야 하는 존재다. 사실상 그들만큼 열심히 눈알을 굴려야 하는 존재는 없다. 레시피부터 라인쿡들의 조리기술. 헤드셰프의 주방지휘. 전반적인 주방 시스템까지. 지천에 기회들이 깔려 있고, 억지로라도 그 모든 지식들을 우겨넣어야 한다.


“일하러 가는 게 아니라 공부하러 가는 느낌이네.”

“많은 수의 스타지가 그런 마음으로 가지. 그래서 이번 기회가 좀 뭐랄까.”


기대된다.


“짜식.”


제이미가 한쪽 입술을 늘였다. 저 표정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의지를 불태우게 만드는 무엇이 있다. 그는 괜시리 민재를 쳐다보다가 헤드락을 걸었다. 갑작스러운 행동. 민재가 괴로워하며 제이미의 팔을 쳐댔다.


“뭔데!”

“열심히 해라. 나도 열심히 할 테니까.”

“근데 왜 목을 졸라!”

“부러워서 인마~”


부럽다. 동시에 더 잘 하고 싶다.

제이미가 침대에 풀썩 눕더니 말했다. 그의 고개가 목을 쓰다듬는 민재에게 향해 있다.


“그래도 내일 수업은 들어야지. 내일 수업 뭐였지?”

“스킬개발수업하고 위생학, 그리고 미식학.”

“넌 미식학 수업 들을 때면 신나 보이더라.”

“아무래도 멜라니 셰프 수업이 재밌으니까. 내일은 또 뭔 얘기 나오려나.”


내일 오후는 멜라니 셰프의 수업이다. 스타지는 스타지고, 학교수업은 제대로 들어야 하지 않겠나.


둘은 각자의 침대에 누웠다. 잠시 적막. 멀뚱히 천장을 바라보던 민재가 말했다.


“누가 불 끌지 내기할래?”




***




“Bon Appétit!”


다시 돌아온 미식학 수업. 멜라니가 처음 내뱉은 말이었다. 무 맥락의 프랑스어였지만 몇몇이 그 단어를 알아듣는다. 미국의 전설적인 요리연구가인 줄리아 차일드. 그녀는 방송마다 이렇게 외쳤다.


맛있게 드세요!


그녀의 방송들은 연식이 오래되어 흑백으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용케 알아듣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이 문장이 미국인들에게 너무나 친숙해진 말들 중 하나라는 뜻이다.


문제는 그 말이 난데없이 튀어나올 자리가 아니라는 점. 피식 웃는 소리와 적막이 기묘하게 공존했다.


“놀라셨죠? 오랜만에 좀 특이하게 시작을 해보고 싶었어요. 몇몇은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아나보군요.”


멜라니가 기기를 조작했고, 사진 하나가 튀어나왔다.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브라운계열의 색, 듬성듬성 보이는 채소들과 큼직한 덩어리들.


프랑스 가정식. 뷔프 부르기뇽이었다.


“줄리아 차일드는 뷔프 부르기뇽을 두고 이렇게 말했죠.”


멜라니는 잠깐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뷔프 부르기뇽은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가장 맛있는 소고기 요리다.”


그녀는 한참을 뷔프 부르기뇽의 맛을 설명한다.


“일반적인 스튜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씹자마자 고기의 결이 흐트러지고, 야채도 부스러지죠. 하지만 차별성은 그 안에 들어간 와인입니다. 짙게 깔린 피노누아(포도의 품종 중 하나)의 향. 입을 우물거릴수록 섬세하면서도 강인한 줄기들이 붉은 석양처럼 펼쳐지죠. 그 향은 와인의 품종마다 다릅니다. 저는 체리와 가죽향을 좋아하는데... 또 말이 길어졌군요. 한 스푼 떠먹으면 줄리아 차일드가 한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멜라니는 그렇게 말하곤 침을 꿀꺽 삼켰다. 그 사이에 뷔프 부르기뇽의 맛을 떠올린 모양이다. 그녀가 어색하게 웃더니 말했다.


“여러분이 이해해주세요. 뷔프 부르기뇽은 저한테 있어서는 comfort food 같은 것이라.”


그녀가 이렇게 장황하게 서두를 던진 이유는 따로 있었다.

comfort food. 의역하자면 집 밥. 그녀는 학생들 하나하나에게 자신이 집 밥이라 여기는 것들이 무엇인지 질문했다.


햄버거, 리조또, 라멘, 반미.


다양한 국적과 인종들이 모인 만큼 그 대답들은 상이했다. 제이미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물었다.


“맥주도 되나요, 셰프?”


멜라니가 입술을 매만지며 콧소리를 냈다. 그녀가 예외를 두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맥주도 음식의 범주 안에 있죠. 좋아요. 한 번 말해볼래요?”

“테넌츠 1885... 아니 기네스로 하겠습니다.”


기네스. 맥주를 사랑하는 제이미다운 대답이었다. 그는 기네스와 어울리는 음식들을 여럿 이야기했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이루어지는 말들. 한 사람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편안한 분위기다.


장민재. 민재는 집에서 먹었던 밥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주로 회귀하고선 본인이 했고, 그 이전에 먹었던 것이라면...


자연스레 미간이 구겨졌다.

선화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리워지는 집 밥은 아니었다.


“...저기 민재?”


멜라니가 민재를 지목했다. 모두가 대답을 마친 상황. 줄곧 민재만 입을 다물고 있었다.


“민재만 대답을 안 했군요. 너무 많아서 고민 중인 건가요?”

“아,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민재는 유학생이니 그리울 게 많을 수 있겠어요.”


멜라니가 부드럽게 웃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느꼈다. 평소 같았으면 주저 없이 의견을 얘기했을 학생이 심각해진 얼굴이다.


“저는 미역국으로 하겠습니다.”

“미역국이라. 한식이겠군요. 학우들을 위해서라도 설명해주시겠어요?”

“평범합니다. 말린 미역과 함께 소고기나 어패류 등 취향에 따라 선택한 건더기를 같이 볶죠. 물을 붓고, 마늘을 넣고, 간장 조금과 소금으로 간을 합니다. 근데 제 어머니는 좀 색다른 건더기를 추가하셨네요.”


민재 피식 웃었다. 커다란 국물용 멸치. 그 비주얼이 다시금 생각났다.


“솔직히... 저희 부모님이 요리를 잘 못 하시는 편이라 막 맛이 좋아서 그리운 건 아니에요. 그 괴식에 가까운 맛이 좀 생각난다, 정도입니다. 아. 컵라면은 그립네요. 간편하고 제 입맛에 맞는데, 여기 미국은 컵라면은 구하려면 좀 멀리 가야 해서요.”

“컵라면?”

“차이나타운의 배달음식 같은 거라 보시면 되는데, 좀 매콤한 한국식 국물라멘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주로 소고기 베이스 육수고요.”


진라면 매운맛. 오징어짬뽕. 신라면. 지금은 아직 안 나온 감자면.


요식업에 종사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밥을 잘 챙겨먹지 않게 되는 경향이 짙어졌다. 허기는 지는데 몸이 고되면 아무리 요리에 열정적인 사람일지라도 간편식을 찾게 된다. 라면은 민재가 가장 즐겨 찾던 음식이다. 이는 민재뿐만 아니라 많은 셰프들에게도 해당되는 사항일 것이다.


“그리운 음식이 곧 엄청나게 맛있는 음식은 아니지요. 고민한 것 치고는 단순한 대답이었네요.”

“예 뭐.”

“그렇게 고민한 이유가 뭔가요?”


멜라니가 물었고, 다시 침묵이 있었다. 민재는 인중을 살짝 구기며 생각했다.


내가 왜 그렇게 고민했지?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다. 민재가 떠듬대며 말했다.


“셰프께서 말씀하신 comfort food... 있지 않습니까.”

“네. 그거.”

“그게 제 뿌리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뿌리. 그리워지는 음식은 인생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주로 강렬한 미식경험을 주었거나, 가랑비 젖듯 일상처럼 존재했던 음식들. 하지만 민재는 그런 음식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 보면 제가 면을 되게 좋아하긴 하네요.”


레이 셰프에게 해주었던 비빔면 또한 면이다. 새삼 너무나 익숙해져 놓쳐왔던 것을 알게 된 느낌이다.


“면발을 젓가락으로 들어서 후루룩 삼키는 그 순간이 좋은 것 같아요. 국물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소스를 입가에 묻히면서 먹는 것도 좋아하고요.”

“뭔가 면을 먹는 느낌이 나니까?”

“네.”


잘 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다르다. 하고자 하는 것은 더욱 다르다.


민재는 줄곧 프렌치나, 퓨전한식을 자신의 뿌리라 생각했다. 주로 해왔던 것이 그랬으니까. 그러나 그 생각은 시간이 갈수록 희멀건 반죽물처럼 뿌예졌다.


3년을 헤드셰프로 있었던 레스토랑에서 그는 주구장창 한국식 양식을 기계처럼 조리했었다. 파스타, 피자, 스테이크. 어느 순간부터 하고자 하는 요리는 없고, 해야만 하는 조리만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고민했다.


“제가...”


한참동안.


“면을 좋아했었네요.”


깨달음을 얻은 표정에 멜라니가 미소 지었다. 재능 있는 셰프들은 종종 사소한 것으로부터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는다. 민재가 방금 어떤 심경을 겪었는지 모르지만, 멜라니는 순간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그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 학생은 한 발자국 앞을 나간 것 같다.


“축하해요.”


그래서 그녀도 순수하게 민재의 전진에 짧은 축하를 얹었다.


“크흠. 취향이란 건 인지하는 순간부터 더 깊어지는 셈이죠. 뿌리. 민재가 잘 이야기해줬습니다. 방금 말한 음식들은 여러분들이 추구하는 맛을 인지해나가는 첫 출발점이라 할 수 있어요. 많은 셰프들도 자신이 추구하는 맛의 방향을 그렇게 발견하곤 합니다.”


걸어왔던 발자취들, 와인을 마시고 얻게 된 기회.

민재는 지금, 그 출발점에 다시 섰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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