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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다시 사는 탑셰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어디서본듯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11.18 11:43
최근연재일 :
2020.12.10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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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7,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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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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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4화

DUMMY

창조는 수많은 실패를 전제로 한다. 에디슨도 말하지 않았는가. 천재는 99% 노력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고. 요리도 마찬가지다. 잠에서 깨어 대충 만든 요리가 가게의 시그니처 메뉴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의 레시피는 엄청난 수정과 개량이 거친 뒤 완성된다.


“물론 에디슨은 1%의 영감 없이는 아무리 노력해도 둔재는 둔재에 머문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던 모양이지.”


대런이 말했다.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듯한 새벽 5시의 주방. 백열등이 창백한 빛을 뿌려대고, 삭막한 적막이 흘렀다.


“영감 없는 노력은 삽질에 불과해. 어디를 파야 우물이 나올지를 모르는데, 허구한 날 땅만 판다? 10센트라도 발견하면 다행이라 생각한다.”


대런은 마지막으로 남은 스티로폼 박스의 포장을 풀었다. 몇 겹의 포장지를 벗겨내고 나온 것은 참치다.


“삽질을 하다가 탄생한 레시피들도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굴소스나, 뉴욕치즈케이크 같은 것들요.”

“굴소스는 삽질보다는 멍청한 실수로 탄생했다 봐야 하겠지. 굴을 졸이다가 확인하는 것을 깜빡하다 만들어진 거니까.”

“그렇긴 하지만, 노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뉘앙스처럼 들렸습니다.”

“잘 들었다. 나에겐 노력보다는 영감 한줌이 그 무엇보다 중요해.”


대런 블루. 소문으로 듣기보다 외골수적인 면이 있는 사람이다. 민재는 하던 것을 멈추고 부담스러운 눈으로 씽크대를 쳐다봤다. 그의 두 손에는 전복과 그것을 깨끗이 씻어낼 솔이 들려있다.


“그래도 전 노력이 더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내가 얘기했을 텐데. 이 바닥에서 우직하기만 하는 사람은 도태된다고. 중요한 게 뭐라고 했었지?”

“...센스라 하셨습니다. 셰프.”

“그래 센스. 노력은 선행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너는 충분한 센스가 있는 놈이야.”


이런 사람이 나한테 관심을 가진다라.


좋아해야 하는 것인지 싫어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민재는 솔질을 재개했다. 벅벅 긁어대는 소리가 묘하게 거슬린다.


“우선 서로의 접시를 내놓는 것으로 하지. 나는 총 네 접시를 내놓으려 한다. 민재 너는 물회 하나면 될 테니 끝나고 따라붙어라.”

“저도 네 접시를 내놓으려 합니다. 끝나고 바로 따라붙겠습니다. 셰프.”

“...뭐? 네 접시?”


대런이 고개를 돌렸다. 그가 처음으로 놀란 눈빛을 보였다.


“굴튀김 하나와 물회를 총 세 가지 방식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적갈색, 초록색, 투명한 갈색으로요.”

“...베이스들이 다르겠군. 아까 얘기하기론 고추장 베이스가 기본 형태라고 했었나?”

“예. 달고 시고 매콤한 게 한국의 대중적인 물회입니다. 제가 하려는 건 제주도에서 주로 먹는 것을 좀 변형시킨 것이고요.”

“다른 것들은 기존에 해본 적이 있었나 보지?”

“음 아뇨. 여기 상황에 맞춰 색다르게 바꿔보려 합니다. 먼저 초록색 같은 경우는...”

“설명은 시식 후에 듣지. 좀 일찍 일어났더니 배가 고프군.”


대런이 말허리를 자르곤 칼을 들었다. 날카롭게 잘 벼려진 칼의 단면 위. 흥분한 그의 얼굴이 비춰졌다.


미쳐 돌았군.


대런이 민재가 들을 수 없게끔 조용히 읊조렸다. 민재 장. 그는 짧은 이동시간 동안 저런 변형들을 떠올렸다. 결과물이 안 나왔어도 저 담담한 어투를 보면 알 수 있다. 자신이 내놓을 접시가 맛있을 것이라는 확신. 그 근거 모를 자신감이 저 동양인한테는 있다.


“...레이 이놈이 나한테 괴물을 던져줘?”


이번엔 민재의 귀에도 들리는 음성이었다. 단, 방금 전과 다른 점이라면 그 언어가 불어라는 것.


“예?”

“혼잣말이다. 어서 안 하고 뭐하지? 90분 남았다.”


대뜸 제한시간을 걸어버리는 대런이었다. 도발적인 시선. 민재가 볼을 긁적였다.


뭐지?

의문이 들었지만 문제가 될 건 없다. 시간은 차고 넘친다.


끄덕이는 고개. 이어지는 솔질. 민재를 바라보는 대런의 입술이 묘하게 비틀려있다.




***




“...맛이 없을 수가 없겠군.”


완성된 요리들. 세 개의 그릇과 하나의 접시.

색색들이 국물이 각기 다른 개성을 담아내고 있다.


조리대를 내려다본 대런이 숟가락을 들었다. 먼저 적갈색의 국물. 묵직한 무게가 들린 것만 같다.


“이게 제주 물회라 했나?”

“예. 한 번 드셔보시죠.”


사치스러운 요리다. 성게알, 전복, 광어지느러미, 온갖 귀한 재료들이 한 그릇에 몰아져 있다.


“이게 네가 말한 제주 물회인가 보지?”

“네. 된장이 미소로 변경되어서 향은 덜 부담스러우실 겁니다.”

“일단 먹어봐야겠군.”


해물들이 스푼에 다 오르지도 않는다. 그만큼 회의 종류와 채소들이 다양하다. 대런은 한참을 헤매다 민재를 쳐다봤다.


어떻게 먹으면 되냐는 눈빛. 민재가 웃으며 말했다.


“그냥 드시면 됩니다. 마음이 가시는 대로 드세요. 채소를 먼저 드셔도 좋고, 해물을 먼저 드셔도 좋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후루룩 하는 소리가 들린다. 오독거리는 질감이 아닌, 물컹이는 질감이 뒤따라왔다.


“한 번 삶았나보군?”

“네. 사케가 있어서 찜기에 넣고 살짝 익혔습니다.”


그리고 다음은 성게알의 차례. 조그마한 압력에도 흐드러지는 성게알의 풍미에 미소의 은은한 향, 고추장의 강렬한 향이 뒤섞인다. 그런데 어딘가 고소한 향도 숨겨져 있다.


대런이 피식 웃었다.


“재밌는 짓을 했군.”


그제야 민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크게 튀진 않나보네요. 호두 기름에 미소하고 고추장을 3:1로 섞어 볶았습니다. 여기에 고춧가루 우린 물을 좀 추가했고요. 아, 신맛은 셰리식초입니다.”


꿀꺽 넘어가는 목울대. 숟가락이 몇 번 오간다. 민재가 그 손놀림을 멈춰 세웠다.


“어느 정도 드셨으면 소면을 추가해 드시죠.”

“면? 아, 잘 어울리겠군. 시원한 미소국물에 어패류, 그리고 면이라니.”


미리 삶아 두었던 소면이 나선으로 내려온다. 한입 먹으면 사라질 면 다발. 젓가락이 휘적여졌고, 면이 실처럼 풀어진다.


“동양적이야. 몇 가지를 수정해야겠지만 더운 여름에 단품으로 내놓을 수 있겠어.”

“걸리시는 부분이 있습니까?”

“우선 단가. 그리고 산미가 세고 향이 난잡하다.”

“아...”

“이건 나중에 조절하면 되니까 넘어가지.”


민재는 당장 떠오르는 개선점이 있는지 물어보려다 말았다. 대런이 그릇을 들어 남은 국물을 모조리 마시고 있었다.


깔끔하게 비워진 그릇. 나쁘지 않다는 평가다. 민재는 들썩이는 입가를 자제하며 자신의 몫을 먹기 시작했다.


“아시아의 누들은 가격이 저렴하다는 인식이 있지. 실제도 그러하고. 이런 걸 비싼 값으로 팔아먹으려면 식당의 분위기가 특정될 필요가 있어. 뉴욕시티에서 이 메뉴로 손님의 지갑을 열게 하려면 아예 국수를 빼거나 눈에 보이는 재료를 단순화해서 오마카세로 가는 수밖에 떠오르지 않는군.”


오마카세. 바 형식의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에게 셰프가 손님의 먹는 타이밍에 맞춰 음식을 내놓는다. 고급 일식전문점에서 주로 하는 형태인 만큼 대런이 추구하는 방향과는 맞지 않다.


“그런 것하고 별개로... 맛은 훌륭해. 그 다음은 뭐지?”

“다음은 투명한 갈색입니다. 멸치육수베이스에 도미회, 구운 가지, 말린 토마토, 어린 꼴뚜기회를...”


설명이 있었고, 숟가락이 여지없이 들렸다. 한 입 맛 본 대런이 인상을 찌푸렸다.


“발상은 좋은데, 과하군. 구운 가지의 향은 좋았다. 멸치육수의 담백함과 궁합이 좋군. 근데 나라면 도미보다는 방금 그 전복을 넣었겠어. 찌고 남은 거 있나?”

“있습니다. 바로 가져오겠습니다.”


슬라이스 된 전복의 누런 살이 숟가락에 놓이고 차례대로 색들이 입혀진다. 말린 토마토의 붉은색, 가지의 보라색, 꼴뚜기의 하안색. 그리고 아래에 깔린 투명한 갈색.


민재는 들이밀어진 숟가락을 합 하고 삼켰고, 우물거렸다. 식감이며, 맛이며 아까와는 확연히 다르다. 방금 전은 도미가 주역이었다면 막 들어간 전복은 나머지 것들을 받쳐주면서도 제 존재감을 잃지 않는다.


“치명적인 단점은 또 있다.”


대런이 숟가락으로 멸치육수 물회를 빠르게 훑었다. 난장으로 유영하는 오색빛깔. 민재가 탄식을 흘렸다.


“너무 크군요.”

“너는 최선의 식감이라 생각하고 이 사이즈를 내어놓았겠지만, 이렇게 되면 손님의 재량에 따라 디자인된 맛이 변한다. 대중을 타겟으로 한 식당이라면 모를까, 정교하고 섬세한 맛을 찾고자 온 손님들에게 내놓기엔 위험부담이 많아.”

“위험부담이라면 인터넷 평가들 말씀이십니까?“

“인터넷? 그게 왜?”


민재가 아차 싶어서 말을 돌렸다. 시대를 간과했다. 아직 미식평론이 대중에게까지 오지 않은 시대였다.


“그... 아닙니다. 이 접시가 레스토랑의 전부인 것처럼 평가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군요.”

“그래. 입소문은 중요하지. 그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말이든, 언론에서 떠들어재낀 것이든. 소문은 크게 부풀려지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수십의 긍정적인 평가보다 하나의 부정적인 평가를 더 기억해.”


파인 다이닝의 접시들은 가이드라인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저 노란 것을 돼지고기와 새우, 버섯과 함께 드셔야 하는데, 느끼하면 소금을 더 찍어 드시라 둥의 복잡한 안내들.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어떻게 되든 좋다는 식이거나 반항심을 드러내는 손님들은 있기 마련이다.


“서버의 안내를 따르지 않는 손님도 고려해두어야 한다...”


민재가 내뱉은 문장이 파하고 공중에 흐트러졌다. 민재는 그 숨결을 다시 들이마시곤 닫힌 입술을 꾹 아래로 눌렀다.


“명심하겠습니다.”

“이건 이쯤하고 넘어가지. 다음은?”

“초록색입니다. 오이와 고수로 물을 우려냈고, 쌀식초, 백미소, 다진 생강으로 참치를 잠시 절였습니다.”

“참치가 들어갔군. 그것도 포케로.”

“네, 이건 맛있을 겁니다.”


가장 공을 들인 요리다. 민재 자신도, 이런 레시피를 이렇게 단시간에 떠올렸다는 걸 의심할 정도로.


“그럼 어디 한 번 맛을 봐볼까.”


하얀 그릇. 백옥 같은 그릇에 파릇한 초록색 국물이 담겨있다. 정육면체로 잘게 썬 붉은 참치는 한 켠에 봉곳이 쌓여있고 그 옆면으로는 얇게 여민 오이가 유려한 곡선을 그려낸다.


“이건 어떻게 먹지?”

“고수 잎하고 오이, 참치를 적당히 올려 드시면 됩니다.”


시큼한 맛이 화사하게 솟아오른다. 씹지 않아도, 다양한 신맛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쌀 식초, 레몬즙, 생강. 양파는 기분 좋게 아삭거리고 참깨의 고소한 향은 탱탱볼 같이 튀어다니던 신맛을 진정시킨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제일 중요한 것은 참치다.


우수구치 간장에 절여진 참치의 살. 그 뒤의 다양한 풍미들. 이건...


“하.”


훌륭하다. 대런은 기가 차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믿을 수 없다는 눈이 접시를 노려봤다.


“정신 나갔군. 이건 바로 메뉴에 올려도 되겠어.”


작가의말

이번 화에 나온 물회들의 모티브가 되는 곳은 이렇습니다.


전복물회 - 신라호텔 라연


멸치육수 물회 - 정식당 물회


오이와 생강을 우려낸 차가운 참치수프(초록빛 물회)

https://www.gourmettraveller.com.au/recipes/browse-all/chilled-cucumber-ginger-soup-with-raw-tuna-11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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