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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다시 사는 탑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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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본듯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11.18 11:43
최근연재일 :
2020.12.10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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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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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DUMMY

기존에 알던 상식들이 깨져가고 있다.


주방경력 1년, 24살의 나이.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온 동양인 민재 장.


그는 네 접시를 내놓겠다고 했다. 경력 1년차의 패기라 보기엔 지나치다. 새로이 구상한 접시를 선보이기엔 부족한 시간. 생선을 손질하고 육수를 내는 것을 고려해 시간을 넉넉잡아 주었지만, 정말로 그 네 접시를 이 정도 퀄리티로 선보일 수 있을지는 몰랐다.


“정말입니까?”


달뜬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영락없이 소년 같은 모습이다. 민재의 그 초롱초롱한 눈이 접시를 내려다보는 대런을 바라봤다.


“다양한 재미가 있어. 신맛이 주를 이루긴 하지만 고소한 향과 더불어 오이의 청량함이 입안을 개운하게 해주는군. 이 정도면 전채로 들어가기에 충분하다. 보는 즐거움, 코스음식으로서의 역할, 동양적인 분위기.”


대런이 그릇을 들어 깨끗하게 비우더니 물었다.


“이 레시피, 나한테 팔겠나?”


웃음꽃이 만개하는 순간이었다. 대런이 이 정도 말을 할 정도면 정말로 욕심이 난다는 이야기다. 30분 동안 머릿속에서 짜 맞췄던 레시피. 처음 해보는 요리.


인정받았다. 나의 레시피가. 나의 창조성이.


“앞으로 가르쳐주시는 걸로 퉁쳐 드리죠.”

“가르치고 뭐고, 이 레시피는 내가 너한테 배워야 할 노릇이다. 환장하겠군. 어디서 이런 놈이 굴러들어왔는지 모르겠어.”


믿을 수가 없다. 물론 많은 레시피들은 헤드셰프의 머리에서만 탄생하지 않는다. 중간 중간 스태프밀을 만든 라인쿡의 손에서 만들어지기도 하고, 스타지의 말 한마디가 접시의 출발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이 광경.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1년 동안 일했던 업장이 어디지? 아직 한국은 미슐랭이 관심에 둘 만큼 미식시장이 큰 곳이 아닐 텐데. 아, 스시집에서 일을 했었나? 그런 거면 말이 되겠군.”


대런이 자기 멋대로 주워섬기기 시작했고, 민재가 눈을 위로 치켜떴다. 내가 일했던 곳이 어디였더라.


맞다.


“샤브샤브집이였습니다. 일식 말고, 한식이요.”

“샤브샤브? 내가 아는 샤브샤브라면... 생선손질을 도대체 어디서 배운 거지?”


대답을 들으니 더 믿을 수가 없다. 광어를 해체하겠다고 나섰을 때 보았던 것은 아직까지 대런의 뇌리에 선명하게 박혀있다.


비늘을 벗기고, 대가리를 따고, 지느러미에 칼을 박아 순식간에 석장을 뜨던 그 모습. 생선뼈와 칼이 부딪히며 나는 그 소리는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보통 그런 숙련도는 수백, 수천을 반복해야만 나온다.


“제 아버지가 낚시를 좋아하시거든요. 자주 같이 갔습니다. 회 뜨는 건 제 담당이었고요.”


말하기도 입 아프지만, 당연히 거짓말이다.


“...낚시실력이 굉장하신가보군. 도미를 그런 정확도와 빠르기로 손질할 만큼이면 어지간히 많이 낚으신 것이 아닐 텐데 말이야.”


광어를 뜨는 모습에 대런은 문득 궁금해졌었다. 도미의 손질도 가능할 것인가. 그때 민재의 대답은 이랬다.


예, 못할 건 없죠.


“뭐. 강태공이라 불리긴 하셨습니다.”

“강태공?”

“낚시의 신이요.”


아부지 미안해요.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아버지를 팔아먹은 민재가 시선을 회피했다.


이 솜씨는 진래호텔에서 근무했을 때 익힌 것이다. 매일 수십 마리의 생선이 들어왔다. 선도를 위해선 손질이 안 된 상태에서 오는 게 부지기수였고, 생선해체가 손에 배는 것은 당연했다.


“낚시의 신이라...”


달싹이는 입술을 보니 대런은 무어라 말을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가 인중을 씰룩이다가 시선을 돌렸다. 이제 마지막 접시다. 굴튀김. 석탄처럼 검고 짙은 빛이 농롱하게 뿌려지고 있다.


와그작


하는 소리가 들렸고, 짭짤한 풍미가 몰아닥친다. 오징어 먹물을 첨가한 반죽. 그것이 바스러지자마자 굴의 육즙이 범람하듯 새어나온다.


“흠, 이것도 괜찮긴 하군. 굴의 비린내는 라임즙으로 얼추 잡은 것 같은데, 문제점은 알고 있지?”

“...너무 평범한 것 같습니다.”

“그래. 반죽을 바꾸고 염장된 송어알을 갈아놓았으면 재미는 더 살았을 것 같긴 하군. 여러 시도를 해봐야 하긴 하겠어. 지나친 짠 맛은 경계해라.”


평들을 마치고 대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내 접시들을 보여줄 차례군.”


그가 접시 하나를 들고 왔다. 민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접시이되 접시가 아니다. 뜯어낸 오크통의 판자 위, 통째로 반으로 갈라진 성게가 열매처럼 달려있다.


뾰족한 밤송이 같은 성게가 접시로서 기능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안에는 하얀 거품이 채워져 있고 캐비어가 붓질을 해놓은 것처럼 곡선을 그리며 쌓여있다.


“설명을 해주지.”

“네... 네.”


대런이 피식 웃었다. 홀린 듯 쳐다보는 저 눈을 보고 싶었다. 어디 사랑에 빠진 눈빛. 그래. 저 나이대 조리사라면 저런 눈빛을 하고 있어야지.


“크림은 아몬드크림이다. 숭어알과 유자 제스트, 성게알이 들어가 있고, 위에 보이는 것은 캐비어지. 그리고 여기에.”


차갑게 보관되어 있던 유자 소르베가 한 티스푼 떨어진다. 스르르 하얀 바다 속으로 침전되기 시작하는 노란색의 소르베. 움푹 들어가는 것이 침몰되는 배를 보는 것만 같다.


“유자 소르베가 들어가지. 먹어봐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숟가락이 꽂힌다. 한참을 뒤적거리는 듯하더니 수면 아래로부터 숟가락이 건져진다. 우물거리는 입. 터져 나오는 감탄사.


“하하...”


절로 웃음이 나오는 맛이다. 이후 이어진 접시들도 사정은 같았다. 하나하나가 모두 예술작품을 보는 듯하다.


“우리는 음식을 눈으로 먼저 먹지.”


나뭇잎 위의 눈송이들. 꽃들이 만발한 초승달, 사막의 오아시스.


맛도 맛이지만, 눈을 뗄 수가 없다. 충격의 연속이다. 민재는 벙어리라도 된 것처럼 전율하고, 먹고, 그 순간의 환희를 만끽했다.


“맛을 살리는 것은 좋아. 하지만 맛있기만 하는 건 부족하다. 그 이상이 있어야 하지. 예술작품을 먹는다는 느낌. 스푼이, 포크가 오갈수록 너무 아까워서 탄식을 흘릴 만한 접시를 내놓아야 해.”


민재는 플레이팅에 대해서 자신이 모자라다고 느낀 적이 이번이 처음이다. 대런 블루, 그는 주방의 예술가였다. 그의 손이 움직임에 따라 접시 위에는 한 폭의 그림들이 그려졌다.


이걸 내가 훔칠 수 있을까.


민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감동, 경외, 열등감. 여러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드러났다. 대런이 그를 바라보며 툭 던지듯 말했다.


“민재 너의 플레이팅 솜씨도 그 나이대, 경력의 솜씨라기에 훌륭하다. 하지만 모자라지. 평소에 많은 것들에 관심을 가져라. 자연을 관찰하고, 예술작품을 많이 보러 다녀라. 나는 특히 전시전을 많이 가지. 휴일이면 의무적으로라도 무언가를 배우러 다니고, 영감을 찾으려고 한다.”


셰프는 예술가이기도 하기에, 끊임없이 영감을 추구해야 한다. 전시나 공연들에 취미가 없어도 강박적으로 문화 체험을 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이 접시.”


대런이 가리킨 것은 가리비 카르파쵸였다. 붉은 기가 도는 식초를 바른 일본 깻잎들의 위로 생가리비, 병아리콩, 미소와 파르미지아노 치즈를 섞어 만든 소스가 물감처럼 떨어뜨려져 있다.


“크리스마스트리 같지 않나? 크리스마스 때 손님들 반응이 궁금해지는군.”


대런이 희미하게 웃었다. 민재는 트리에 달린 하얀 종을 시소에 감싸 입안에 쑤셔 넣었다. 생가리비의 물컹한 질감이 박하냄새와 닮은 시소의 향과 알맞게 버무려진다. 민재는 아예 눈을 감은 채 턱관절을 질겅질겅댔다. 욕이 나올 정도로 맛있다.


“이 꽃 향은 뭐죠?”


미미하지만 얇게 코팅된 듯한 향이 존재했다. 이 접시의 세련됨은 그 꽃 향에 의해 완성된 것 같다.


"아, 쟈스민이군요."

“코도 제법 쓸 만하군.”


대런은 잘난 제 자식을 자랑하는 아빠미소를 하며 답했다.


“생가리비를 쟈스민꽃으로 우려낸 물에 15분간 담갔지. 이유는...”

“부족한 향 때문이죠?”

“...맞다. 이 카르파초의 메인은 엄연히 생가리비지. 이대로 내놓기에는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식의 발상은 해본 적이 있던가. 대런 블루. 이 셰프는 보물고블린 같은 존재다. 한 대 치면 우수수 배울 점들을 떨군다.


이 사람에 밑에 있다면 더 높게 날아오를 수 있다. 그런 확신이 들었고 민재의 눈이 욕망으로 번들거렸다. 떨리는 음성이 물었다.


“언제부터 일하면 됩니까?”


넘어왔군.


결국 대런의 의도대로, 민재는 스타지를 자처했다. 레이는 민재를 보고 이렇게 표현했다. 빛나는 재능. 흥미롭기 그지없는 신비한 동양인.


그러나 대런은 민재를 괴물이라 부르고 싶었다. 1, 2년이 지나서도 이놈이 내 아래에 있고 싶을까 싶은 심정이었지만, 대런은 보고자 했다.


장민재가 가는 길을, 그가 성장하는 모습을.


“다음 주부터 하는 것으로 하지. 요 며칠간은 휴일이라 일을 시켜주고 싶어도 시켜줄 수가 없겠군.”


눈에 띄게 실망하는 민재가 보인다. 대런이 피식 웃더니 말했다. 어깨에 올라간 손. 대런이 소스마저 핥아 먹어 깨끗해진 접시를 내려다봤다.


“이곳으로 11시까지 와라. 점심을 같이 먹는 것으로 하지. 데려가고 싶은 곳이 생겼다.”




***




다음날 점심.


대런이 데려간 곳은 스시 오마카세였다.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며, 대런이 민재에게 말했다.


“여긴 내가 자주 가는 집이야. 이곳보다 뛰어난 맛을 보여주는 오마카세 집은 많지만 내가 데려온 이유는 따로 있다.”


문을 열자 우디톤의 내부가 환하게 드러난다. 대나무, 종이로 이루어진 조명갓. 이자카야나 초밥집에서 흔히 보이는 조합들이다. 곳곳에 적힌 일본어들은 방금 전에 걸었던 뉴욕시티의 거리가 언제 있었냐는 듯 새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 집 주인장이 좀 특이하지.”


두건을 쓴 서버의 안내를 받으며 둘은 바 쪽으로 착석했다. 오마카세인 만큼 셰프들이 드나드는 통로와 비치된 조리기구들, 재료들이 훤하게 보인다. 드문드문 앉아는 손님들은 한 셰프의 세심한 주의를 받으며 초밥들을 먹고 있다. 검은 머리와 훤칠한 외모, 짧은 키. 딱 봐도 젊어 보이는 셰프였다.


“저 분입니까?”


초밥을 쥐는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민재는 그를 유심히 바라봤다. 그러나 옆에서 나온 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이었다.


“아니, 잠깐 주방에 들어 가셨나보군.”


말하기 무섭게 나오는 왼쪽의 뚫린 문에서 사람이 튀어나온다. 쭈글한 주름. 야윈 얼굴. 검버섯. 이곳 본本의 헤드셰프 켄지 우마로.


“혹시...”

“주인장이 연세가 좀 있으시다. 저번에 얘기하시기론, 70 중반을 넘으셨던가?”


켄지의 눈이 둘의 시선과 맞닿았고, 잔잔한 미소가 노인장의 입가에 나타났다. 켄지가 말했다. 담백한 음성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いらっしゃいませ。(어서 오십쇼.)”

KakaoTalk_20201210_235053336.jpg

사진 출처: instagram @IICucchiaiodiaAnita


작가의말

이번화의 레시피입니다.


송로버섯을 곁들인 생가리비 카르파초

https://www.youtube.com/watch?v=oRjFU9VxDmo


모티브가 된 영화입니다.

데이빗 겔브 - 스시 장인: 지로의 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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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44 GMT
    작성일
    20.12.11 21:53
    No. 1

    재밌습니다 잘봤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고철아주큰
    작성일
    20.12.12 15:41
    No. 2

    서투른 집밥 쉐프이지만 크림에 식초를 넣었나요? 식초로 굳힌 가리비에 크림을 얹었나요? 절대 크림과 식초는 안 어울리는 조합입니다만(마요네즈 빼고) 뭔가 있으니 나왔겠지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3 n9119_so..
    작성일
    20.12.27 06:56
    No. 3

    너무 재미있습니다. 1화부터 여기까지 그대로 쭉 읽었네요. 다만 후기에 올려주시는 링크를. 폰으로는 확인할수가 없어서 조금 아쉬웠네요. 건필하세요 :)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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