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31.
제목. 염라
글. 도유화
31.
#1. 적천교 북구 입구. 낮
장의사들의 검은 밴이 지나간 도로 위를 멍하니 쳐다보는 아서.
아서의 시선으로 두툼한 손이 불쑥 튀어나온다.
고개를 들면, 장로로 불리는 중년 여성, 섬뜩하게도 웃는다.
장로: (씨익) 도를 아십니까?
#2. 로드의 집. 상하의 방 낮.
아서가 없으면 아무도 쓰지 않는 안방. 로드, 멍하니 빈방을 쳐다보다가 방문을 닫는다.
탁- 문 닫힌 안방, 고요하다.
#3. 로드의 집. 거실. 낮
로드, 안방 맞은편 아서가 나간 현관문을 보는데, 고요하다. 잠금장치가 열려 있다.
열릴 기색도, 바깥의 인기척도 없다.
외로운 표정.
로드: (현관문 응시) 보내지 말 걸 그랬나···오랜만에 시끄러웠는데 말이야.
(한숨) 너무 험하게 대한 것 같기도 하고···
(머리를 긁적인다.) 쯧. 뭐, 알아서 하겠지. 다시 오든, 딴 데로 가든.
(뒤돌아, 스위치에 손을 가져간다.) 자자··· 지상은 내일이 오니까!
안방 문 바로 옆의 스위치에 로드의 손이 가까워지면, 빠른 인기척이 들린다.
탁탁탁- 빠른 발걸음 소리. 로드, 불 끄다 말고, 고개를 돌리면,
아서, 현관문을 열어 집안에 서 있다.
#4. 동일/낮
아서, 현관문 닫지도 않고, 로드에게 따진다.
꽤 큰 목소리. 로드, 현관문을 닫아준다. 딸칵- 문이 잠긴다.
아서: 미친 거야? 이게 대체···아니지.
저 사람들, 저 향이 어떤 향인지는 알고 있는 거야?
저 색은, 하늘의 인간도 죽이는 향이라고!
다 같이 모여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같이 죽자는 거야? 왜 서로 축하해 주는 건데?
뭐가 그렇게 좋은 거야? 뭐 지상 아래는 낙원이라도 된데?
로드: 용케 잘 찾아왔네? 기억력이 나쁘진 않아.
하나씩 물어봐, 하나씩.
아서: (숨을 가쁘게 내쉰다.) 헉···헉···(침을 삼킨다.) 끕.
로드: 저 놈들은 향을 볼 수가 없지.
신은 지상에 불을 내어주지 않았으니까. 쓰임을 허락했을 뿐.
아서: 모여서 뭘 하는 건데?
로드: 흑암굴, 감옥, 혓바닥, 수풀림, 사막까지, 원하는 지옥을 골라서 새 삶을 살겠다는 거지.
지을 수 있는 죄를 저지른 다음에, 확신이 들면
서로 죽고, 죽이는 거야. 그걸 의식이라고 부르고.
아서: 그게 된다고? 설마..
Flashcut> 귀왕과의 전쟁, 아서에게로 미친 듯이 달려오던, 검게 썩은 죄인들.
로드: 안 되지. 죽음은 이용하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거니까.
(아서를 가리키며) 그래서 민이랑 내가 상하를 구하려고 했던 거야.
말이 안 되니까.
아서: (로드를 빤히 쳐다보며) 천상으로 가는 방법. 알려줘.
로드: (아서를 위아래로 훑는다.) ···
로드N: (생각) 염라···푸른색 향···해결책···새로운 하늘···
Flashcut> 눈물에 가려진 듯, 흐릿하게 보이는 붉은 하늘이 비치는 커다란 방. 머리가 긴 한 여성이 터벅터벅, 붉은 물 속으로 서서히 가라앉는다.
로드: 도와줘.
너 보러 왔던, 여자애 기억해?
아서: ···? (의심스러운 눈) 응···
로드: 상하를 구해줘.
그 아이가 흑암굴로 못 가게 도와줘.
자기 자식 버리고, 스스로 목숨 끊는 걸 막아줘.
(악수를 청한다.) 그 다음에, 알려줄게.
이걸 “딜” 이라고 하지. 거래라는 뜻이야.
로드의 손, 푸른 빛이 일기 시작하면, 아서, 살짝 놀라더니, 의심하는 눈초리를 거둔다.
로드: 아직 스물도 안된 여자애가 이루지도 못할 이유로 자기 목숨을 버리겠다는데,
설마 모른 척할 건 아니지?
왕이잖아?
아서: (악수를 받는다.) 글쎄, 한 번쯤 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아서, 로드 공감하듯이, 쓴웃음을 짓는다.
#5. 적천교 북구 입구. 낮
아서, 다시 적천교 앞에 선다.
적천교의 건물. 낡아 여기저기 얼룩지고, 이파리 하나 없는 가로수에, 거미줄처럼 여러겹 펼쳐진 전선까지, 으스스한 모습으로 주변을 짓누른다.
아서, 교회로 진입한다.
들어서면, 중앙 승강기 양쪽으로 예배당으로 가는 문이 나 있다.
오른쪽 벽은 계단, 반대편은 막다른 벽.
아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으면, 장로로 불리는 중년 여성, 예배당에서 나온다.
기쁜 듯, 환영한다.
장로: (뭐라 말하지만, 로드의 목소리에 가려진다.)
로드N: 교회에 조심할 인간은 딱 한 명이야. 장로.
4층짜리 건물 안에서 가장 높은 인간이지.
예배당 안쪽, 다른 신도들 지나가는 모습, 초췌하다.
Flashcut> 30회, #12, 축하받는 중년 남성. 웃지만, 눈 밑이 어둡고, 몸은 말랐다.
로드N: 그 안 전부가 장로란 여자가 죽으라면 죽을 인간들이야.
아무도 믿지 마. 총도 없는 이 땅에서 남자가 제일 조심할 건,
사이비뿐이니.
장로, 아서에게 이리 오라는 듯, 예배당으로 손짓한다.
#6. 적천교 북구 1층. 예배당. 낮
예배당, 새하얀 방에, 허름한 철제 의자가 잔뜩 있다.
조를 짠듯, 의자로 만든 원이 여러 개.
아서, 상하를 찾지만,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아서의 손을 잡는데, 재민.
재민: (아서를 당기면서) 가.
장로: 이리로 오세요!
아서: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 한다.) ···.?
자리에 앉는 아서와 재민.
신도들 모여모여 작은 예배당 꽉 차면, 처음 듣는 점잖은 남자 목소리, 방안에 가득 찬다.
장로: 지금은 낙원으로 가신 저희 예전 장로님 목소리예요.
(잘 들으라는 듯, 자기 귀를 톡톡 친다.) 좋은 말, 남기고 가셨죠.
아서N: 교회라는 곳이 원래 그런 곳이야?
로드N: 아니? 원래는···.천국으로 가는 방법을 알려주지.
아서N: 뭐?
로N드: 신을 믿고, 착하고 바르게 살면 죽어서 천국에 갈 수 있다~이런 거 가르칠 거야.
신이 인간 시절에는 어떠셨나~그런 거나.
좀 많이 걸릴걸?
아서, 입 삐쭉 내밀며, 다른 신도들처럼, 손을 모으고 기도하려는데,
재민, 아서의 손을 놓지 않는다.
손 대신, 눈만 감고 있는 재민. 아서, 그를 따라 눈만 감는다.
아서: (눈을 감는다)···?
#7. 동일/낮
장로, 신도들에게 작은 컵과 수상한 액체를 나눠주는데, 붉다.
재민, 그리고 아서, 새빨간 물을 받는다.
장로: (쫄쫄쫄 따르며) 윤회의 강물이에요~
모두 죽음을 미리 받아들이자구요~
아서: (킁킁) 아닌데?
재민: (홀짝홀짝 마신다.) 핏물이야.
아서: (이젠 알겠다는 듯) 이상한 건 아니구나? (홀짝홀짝 마신다. 달다.) 음~.
#8. 적천교 1층 계단. 밤
예배당 문이 열리면 통유리 입구가 보인다. 어느새 해가 진 바깥. 어둑어둑하다.
대부분은 바깥으로 나가고, 몇몇 일부는 교회에 남는다.
로드N: 간단해. 밤까지 버티면, 재워줄 거야. 그럼, 의식에 참여할 수 있어.
마지막까지 남는 아서, 예배당에서 나와 왼쪽의 계단, 오른다.
재민, 여전히 아서의 손을 잡고 있다.
작은 아이가 익숙한 아서.
#9. 적천교 2층. 기숙사. 밤
작은 복도에 여러 개로 난 문.
차례로 4명씩 방안에 들어가는데, 장로, 안내한다.
장로: (손을 입에 모아 외친다.) 들어가기 전에, 휴대폰은 바구니에 넣어주세요~
우리 일등 신도분들 전화는 제가 당분간 보관할게요~
죽은 사람은 전화를 못 받으니까요~
아서의 주머니, 살짝 불룩하다.
로드N: 내지 마. 항상 몸에 지니고 있어. 어떻게 쓰는지는 알려 줄게.
쓸데없이 보지마. 들킨다.
아서, 아무것도 안내고 지나치면, 장로 이상하게 쳐다보는데,
장로: 핸드폰 없어요?
아서: ···? 그게 뭐죠?
장로: ···? 들어가요.
#10. 적천교 2층 기숙사. 방안. 밤
가구없이 그냥 이부자리만 깔려 있는 작은 방.
아서, 들어오자마자 주머니를 살짝 더듬는데, 아무것도 없다.
아서: (당황) 어엉?
재민, 아서에게 무언가 건넨다.
아서의 스마트폰.
재민: (스마트폰을 건넨다.) 스마트폰이 핸드폰인데···
아서: (받아든다.) 아···고마워.
(살짝 고민한다.) 어···모르겠다!
아서, 재민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당황하는 재민에게 웃어 보이는 아서.
#11. 동일/밤
아서, 누워있다. 옆에는 역시 재민. 잠들었다.
아서: (잠든 재민 지켜보다, 천장 본다.) 하아···상하라고 했던가..?
어디있으려나···
(눈 감는다.) 후···조금만 참자···
로드N: 의식은 격주에 한 번.
아서N: 그럼 한참 뒤 아냐?
나 했잖아.
로드N: 아니, 무조건 한 명, 교회 안에서 죽어야 해.
넌···아니, 민이는 창 밖으로 몸을 던졌어.
못해도, 아무리 길어도, 해가 2번 뜨기 전이야.
부탁할게. 막아줘.
상하가 이제, 만삭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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