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범 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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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치퍼
작품등록일 :
2020.11.22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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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5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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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9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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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미친 이리

DUMMY

"배로 간다 이 말이구나?"


"강제로 수십명을 끌고가는데는 배보다 좋은 방법이 없습니다. 일단 태우기만 하면 손이 묶인 채론 도망갈 방법이 없으니 말입니다. 곧 배가 떠날 시간이니 서두르지 않으시면 늦습니다."


"배는 어디서 출발하느냐?"


"여기서 서쪽으로 삼십리 거리에 나루터가 있습니다."


'이놈들은 수많은 양민들을 헤친 무도한 놈들인데 죽이는 것이 낫겠지.'


"저..."


"뭐야?"


"도사는 신이한 사술을 쓰다 걸려 아마 크게 다치거나..."


"뭐?"


"죽었을수도 있습니다."


그가 말을 마치고다른 일당의 원망어린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왜 눈치 없이 안해도 될 말을 해서 수종의 화를 돋구느냐는 듯 잔뜩 찌푸린 눈으로 욕을 해대고 있었다.


"흥. 너희 중에 그 도사에게 나쁜 짓 한 놈 있느냐? 한 대 쥐어박는 다든지."


"우리 중엔 없습니다"


잔뜩 기합이 들어간 답이 세명의 입에서 동시에 터져 나왔다. 수종은 납득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이놈들아. 일단 잡았으면 몇 대 쥐어박을 것이지. 쯔쯧. "


"하지만 노예 인솔자 한 놈은 우리 중에서도 성질 급하고 더럽기로 알아주는 놈이라..."


"성질? 그럴리 없지만 그랬다면 그것 참 운이 없는 놈이구나. 그 성질 때문에 죽을것이니."


수종은 그동안 현암과 함께 하며 여러 번의 밥구걸과 배를 얻어타는 과정에서 거절 당하거나 핀잔을 듣는 것을 보지 못했다. 항상 그것이 신기하다 생각한 수종이었기에 화적들이라도 그를 함부로 할 수는 없을 것이라 믿고 싶었다. 

무엇보다 현암이 괜히 자신의 흉몽을 사 이런 일이 일어난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지금 뛰어간다해도 배를 잡을 수는 없을 터. 강가를 간다해도 배가 지나갔는지 아닌지도 알기 어렵다. 합포로 바로 가야할까?'


수종이 고민에 빠진 가운데 눈치 빠른 한 놈이 입을 열었다. 


"사흘 후 저녁에 함안 칠서나루에 도착해 내립니다."


"좋다. 그 말이 오늘 너를 살린 줄 알거라. 너흰 화적떼니 분명 말도 있겠지?"


"있긴 하오나..."


"있는데 뭐?"


"산채에 있어서."


산채는 어디냐?"


"안됩니다. 산채엔 두령과 열댓명이 더 남아 있습니다."


"안되기는 지랄. 안그래도 바빠서 두령이라는 황가놈 얼굴은 못보겠지만 말 한 마리는 받아야겠다. 위치만 알려줘."


그는 황별초 산채의 위치를 알아내고 곧바로 달려갔다. 그들은 대담하게도 산채를 숨기지도 않았다. 그저 들판 한 가운데 평범한 부자집처럼 서있었다. 그만큼 이 경상도 깡촌은 나라의 관심 밖이었고 고을 아전들과 파견된 관리들도 그저 자기들 해먹기 바빴지 민초들이 화적이나 왜구에 당하든 말든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저기구나. 다음에 내가 이 영천을 지날 때까진 너희들은 목숨붙은 송장 일뿐이다. 그때까지만 살아 있거라.'


그는 침착하게 마굿간으로 접근했다. 위치와 상황은 산에서 만난 놈들이 해준 얘기 그대로였다. 수종은 마사를 관리하는 한 놈만 처리하고 신속하게 준마 한 마리를 타고 떠날 계획이었다. 


'운이 나쁜 놈이 저놈인가?'


그는 멀리서 말을 먹이고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하고 시위를 겨누었고 살은 망설임 없이 날았다. 


"으윽. 누,누구냐?"


"화적에게 알릴 이름은 없다."


수종은 급히 달려가 활에 맞은 화적을 발로 차 자빠뜨리고 가장 크고 힘이 좋아 보이는 말을 풀어 올라탔다.


"이놈아. 나중에 다시 올테니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거라."


그는 미리 생각해둔 도주로를 이용하여 달렸고 창졸지간의 일이었지만 역시나 화적패 답게 말에 올라탄 세 명이 쫓아오는 것이 보였다. 


"흥."


그는 빠르게 달리는 말에 올라 탄채로 뒤를 돌아보며 시위를 당겼다. 날아가는 화살은 달리는 말보다 더욱 빠르다. 그러지 않았다면 화살은 아마 영원히 화적에게 닿지 않을 것이다. 화적 하나가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말에서 떨어져 나뒹굴렀고 내지르는 비명이 거리에 울려퍼졌다. 놀란 다른 화적들은 멀어져 가는 그를 더 이상 쫓지 못하고 구경 할 수 밖에 없었다.


"말은 구했지만 길을 알지 못하니 부지런히 달려야만 늦지 않겠구나. 달려라. 강자야!"


"이히히힝."


"왜? 새 이름이 맘에 안든 것이냐?"


"이힝"


"그럼 말똥이?"


"이히히히히힝"


"소똥이? 개똥이?


"이히히히히히힝;;;"


"강자가 낫지? 강자로 하자."


"이힝"


"달려라 강자야!'









그는 말을 몰아 칠서나루로 가기위해 이미 지나쳐온 장산(현 경산)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이곳은 백제에게 대야성을 잃은 신라가 김유신에게 군주를 맡긴 곳이었다. 김유신이 군사를 훈련시키고 신라의 국경방어와 백제와의 전선을 책임졌던 곳으로 삼국통일의 시작점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또한 원효와 설총, 일연 등의 큰 승려가 난 곳이라 그런지 도처에 절과 승려가 보였다. 수종은 낡은 승복 차림의 빼빼 마른 한 노승이 눈에 띄어 말에서 내려 길을 물었다.


"스님. 남쪽으로 가려면 어느길로 가야합니까?"


"남쪽 어디 말이오"


"칠서나루로 가야합니다."


"칠서?"


"듣기로는 창녕과 함안 사이에 있는 나루터라는데 혹시 모르십니까?"


"허허. 인연이로다. 나는 지금 창녕 구룡산으로 가야하니 말벗이나 하면 되겠구만."


"스님. 안타깝지만 저는 한시 바삐 달려야 하는 몸이라 그리 할 순 없습니다. 그냥 방향만 알려주시죠."


"허. 젊은 시주가 그리 바삐 움직이니 명도 짧은 것인가... 안타깝구나. 조금 천천히 살면 그래도 조금 더 살 것인데."


 수종은 명 짧다는 얘기를 현암에게 너무 자주 듣던 얘기라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려했다. 하지만 처음만난 승려가 면전에 대놓고 명이 짧다 욕하는 것같아 기분이 적지 않이 상했다.


"하. 중이 칠십이 먹도록 아직도 성불하지 못했으니 명이 길다 자랑 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비록 혼잣말의 형식이었으나 중에게 다 들리도록 의도한 말이었고 수종은 그 후 곧장 말에 올라타려 했다.


"허허. 성미가 급한 시주로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는데 시주가 내 부탁을 들어준다 약속하면 길을 일러주지."


"무슨 부탁이오?"


"내가 구룡산에 가는 것은 부처님 말씀을 전하러 가는 것이니 자네가 내 대신 전해주시게."


수종은 늙은 중의 말을 알아들 수 없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니 내는 부처도 아니고 스님도 부처가 아닌데 어찌 부처의 말을 전하리이까?"


수종의 말을 들은 승려는 어깨에 메고 있던 봇짐을 풀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이 불경을 구룡산 구룡사 혜문에게 전해주게. 나는 자네가 보는 것보다도 이십이나 더 먹었으니 언제 성불하여 윤회의 사슬을 끊어버릴 수 있을지 모르겠구만. 언제 죽을지도 모르니 촌음을 아껴 부처님 말씀을 공부해야 열반에 가까워 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구룡사가 칠서로 가는 길에 있는 것이 확실합니까?"


"불자는 속이지 않는다네. 칠서나루는 구룡사에서 정남쪽으로 사십리 길이네. 구룡사까지 산길이라도 말을 타고 오를 수도 있으니 들렀다 간다해도 칠서나루까진 이틀이면 족할게야."


"그럼 길을 일러 주십시오. 명이 짧아도 불경 전하기 전에 객사하진 않을테니."


"자네가 이 불경을 전하고도 살아있다면 나를 찾아오시게나. 나는 무학산 천수사(踐修寺)에 있으니."


마치 그 불경을 전하러 가는 길이 죽으로 가는 길이냥 말을 하는 중의 태도가 못마땅한 수종은 다시 쏘아부쳤다.


"흥. 내가 불경을 전하고 장산으로 왔는데 당신이 죽고 없다면 천수사의 이름을 요절사로 바꾸겠소."


"그래. 그거 재밌는 내기구만. 어서 가보시게. 명을 얼마나 재촉하는지 궁금하구나."





수종은 장산에서 청도를 지나 창녕에 이르는 동안 산을 우회, 들판과 작은 언덕, 오솔길을 이용하여 백여리를 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눈앞에 화왕산, 관룡산, 구룡산, 열왕산으로 이어지는 산악지대는 구룡사의 북쪽에 병풍처럼 우뚝 솟아 있어 반드시 넘어야만 했다. 


깊어가는 가을임에도 높은 하늘아래 화왕산과 구룡산은 여전히 푸르렀다. 온 산이 붉고 노랗고 푸른 빛이 뒤섞여 화려한 속리산의 풍광과는 사뭇 달라 시간을 거슬러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단풍은 속리산만 못하지만 화왕산의 억새 군락은 듣던대로 장관이구나."


화왕산의 정상을 넘는 수종의 혼잣말에 갑자기 억새군락에 숨어있던 한 무리가 벌떡 일어나더니 답을 했다. 


"으하하하하하. 화왕산의 억새는 들어 본 놈이 화왕산 봉팔이 패가 무섭다는 얘기는 듣지 못 했나 보구나."


"형님. 우리가 화왕산에 옮겨 온지 한 달 밖에 안되어 아직 소문은 안났나 봅니다. 흐흐"


그들은 서로 눈빛을 나누며 낄낄 거리며 웃었고 수종은 골치아프다는 듯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봉팔이 패? 또 도적놈들인가. 세상이 온통 도적떼 천지로구나. 말세야 말세."


"속리산 얘기를 하는 걸 보니 동향인것 같은데 말과 가진 것만 다 내어 놓으면 곱게 내려보내 주마. 하하."


"오호. 속리산을 아는 구나. 나는 상주 사람이다. 너는 누구냐?"


"어허. 나는 보은 사람 이봉팔이다. 보아하니 사냥꾼 같은데 속리산 미친 이리라는 이름이 상주와 보은 일대에 떨쳤고 자는 아이도 내 이름을 듣곤 울었는데 너만 듣지 못 했는가?"


"도적떼 두령의 이름이야 알게 뭔가? 자신이 미친 이리라니 자는 아이를 웃겼겠지 누굴 울려."


수종은 전혀 들어보지 못 했다는 듯 귀를 파며 말했다.


"고놈. 방자하구나. 동향이라 봐주려 했더니 눈에 뵈는 것이 없는 모양이구나."


'여덟명. 남은 화살은 세 개 뿐인데. 쉽지 않겠구나. 수풀이 울창하진 않으나 말을 타고 도망치기엔 그래도 경사가 험하다. '


"안그래도 아침부터 인내산 화적떼를 혼내주느라 피곤하구나. 귀찮게 하지말고 꺼져라. 갈 길이 바쁜 몸이니."


"허허. 큰 소리 치지마라 이 자식아. 우릴 그런 근본없는 인내산 화적떼와 비교하면 너무 섭섭하지. 내 목엔 은병(銀甁) 열 개가 걸렸으니 능력껏 가지고 가보거라."


'저놈의 말처럼 현상금이 있더라도 잡았다 한들 나는 곧장 남쪽으로 가야하니 개경의 가구소(街衢所)나 근처 관아까지 끌고가긴 귀찮다. 차라리 살려두고 다음에 잡는 것이 현상금도 타고 좋지.'


"도적들아. 오늘은 봐줄터이니 구룡사로 가는 길이나 냉큼 고하거라."


수종의 말이 가소로웠던지 이번엔 봉팔의 뒤에 있던 다른 수하가 입을 열었다. 


"허허. 형님. 속리산의 호랑이가 설쳐 도망왔더니 저놈까지 우리를 무시하는 모양입니다. 마침 구룡사로 간다니 거사를 앞두고 후환을 남기지 마시고 서둘러 잡아 족치시지요."


작가의말

별초는 고려시대의 무인집단으로 위세 있는 가문의 무력집단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삼별초도 원래 사병집단이죠. 이성계의 가별초 또한 이성계의 사병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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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내기 20.12.05 18 0 11쪽
9 구룡사의 혈투 20.11.30 27 1 13쪽
8 장생고와 산사의 도적들 20.11.29 25 1 12쪽
» 속리산 미친 이리 20.11.29 29 2 11쪽
6 흉몽 20.11.28 35 2 15쪽
5 화적놀이 20.11.26 45 2 14쪽
4 유기 20.11.25 49 2 12쪽
3 정심(淨心) 20.11.24 68 3 13쪽
2 호식이 20.11.23 86 3 13쪽
1 도굴 20.11.23 107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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