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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건보
작품등록일 :
2020.11.24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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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0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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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0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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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화

DUMMY

74.


“왜 바로 검을 들고 달려들지 않았어? 저번만 봐도 단장님 얘기가 나오자마자 기세랑 살기를 일으키길래 이번에 만나면 대화할 여유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꼭 말해야 해?”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지금 말하지 않으면 두 번 다시 말할 기회는 없을 수도 있어.”


유리의 말이 끝나자 둘 사이에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별다른 이유는 아닌데 괜찮아?”


침묵을 깨며 안나가 입을 열었다.


“그 별다른 이유를 듣기 위해서 꺼낸 말이야.”

“그래.”


그녀는 유리를 향해 겨누고 있던 검 끝을 아래로 내렸다.


“처음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단 소리를 들었을 때는 거짓말인 줄 알았어. 너도 알다시피 그분은 강인한 분이시니까.”

“그치. 다리를 다치시기 전에는 제국에서 총단장님과 쌍벽을 이루는 분이셨으니까.”

“그래. 그런 분이 자신보다 경지가 한참 낮은 사람에게 돌아가셨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어. 하지만 폐하의 말씀과 할아버지의 수행원들의 말을 듣고 현실이란 걸 깨달았지.”

“그래서 그 시간에 날 찾아온 거야?”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식의 시간이 가까워짐에 따라 나는 이곳을 포함해 황도 근처를 함부로 벗어날 수 없었어. 그래서 유리, 너가 황도에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어. 할아버지를 죽인 너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

“하지만 죽이지는 않았지.”

“맞아. 처음에는 할아버지를 잃었다는 상실감과 복수감에 눈이 멀어 죽이려고 찾아간 거였어. 근데 막상 만나고 보니 너가 할아버지를 죽였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

“내 경지 때문에?”


안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 이유도 없지 않아 있지만 너가 말해준 할아버지의 유언이 가장 컸어.”

“하지만 잔뜩 흥분한 채 지어낸 거라며 믿을 생각이 없었잖아. 들을 생각도 없었고 말이야. 그래서 나도 더 길게 말하지 않고 여관을 떠났었는데.”

“그때는 분명 죽이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으니까. 네가 분명 비겁한 방법으로 할아버지를 죽였다고 생각을 했었거든. 그래서 유언도 네가 지어낸 거라고 생각했고.”

“그럼 그 생각이 바뀐 계기는 뭐야?”

“그 유언은 지어낸다고 해서 떠오를 말이 아니니까. 할아버지의 입에서 나올 만한 말이니까. 오늘 너를 만나기 전까지 생각했지만 그것 말고는 떠오르지 않더라고.”


안나는 깊게 숨을 내뱉고 검을 다시 들어 올려 유리를 향해 검 끝을 겨눴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은 어땠어?”

“자신이 섬겨야 할 사람에게 끝까지 충성을 다하는 강인한 기사셨어.”

“그래? 끝까지 할아버지답네. 죽기 전이라 약해지실 만도 한데 그런 모습을 보이지는 않으시네. 그럼 이제 물어볼 건 다 물어본 거야?”

“아니.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뭔데?”

“단장님의 유언도 있고 해서 내가 싸우기 싫다고 말했었잖아.”

“그랬었지?”

“그래도 너는 싸울 거지?”

“물론. 너는 폐하를 죽이려고 하니까.”

“그럼 됐어.”


유리는 순식간에 안나에게 쇄도했다.

그녀도 당황하지 않고 유리가 휘두르는 검을 맞받아쳤다.

서로의 검이 부딪혀 생긴 마나의 파동이 공간을 휩쓸기를 잠시 안나는 재빨리 그와 거리를 벌렸다.


“역시 단장급은 내 힘으로 받아치기에는 많이 벅차네.”


그녀가 손목을 주무르며 말했으나 유리는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둘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발을 움직였다.


“이젠 그저 적이구나.”


다시 한번 휘둘러지는 검에 그녀는 검을 틀어 공격을 흘렸다.

곧이어 검을 회수하며 그를 향해 뻗었으나 이번엔 유리가 공격을 가볍게 흘렸다.

순간적으로 그녀에게 빈틈이 생겨 붙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안나는 순식간에 거리를 벌리며 그의 손아귀를 벗어났다.


‘아예 시간을 끌기로만 작정을 했군.’


허공을 휘두른 손을 검으로 가져오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안나는 성질이 순수 속도계였으니···.’


검 전체를 은은하게 뒤덮고 있던 유리의 마나가 천천히 움직이더니 날로 모이며 강한 빛을 발산했다.

푸르게 빛을 내던 눈빛도 원래의 빛깔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움직였다.

그는 순식간에 안나의 눈앞에 나타나더니 주저 없이 앞으로 검을 뻗었다.


‘위험해!’


안나는 재빨리 고개를 젖히며 황급히 거리를 벌렸다.

그녀는 유리의 모습을 눈에서 놓치지 않으며 손을 뺨으로 가져갔다.

볼에서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너무 빨라. 내 눈으로도 다 따라갈 수가 없어.’


또 다시 유리가 그녀의 눈앞에 나타나며 검을 뻗었다.

이번에도 안나는 완전히 피하지 못해 어깨가 살짝 베이며 거리를 벌렸다.


‘그래도 8시간. 그 정도 시간이면 의식이 끝나니 이대로 싸워주지 말고 버티기만 하면 우리의 승리야.’


그는 안나를 바라보기만 할 뿐 덤벼들지 않자 굴 사이에는 고요함만이 맴돌았다.


‘분명 남은 시간 동안 버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유리는 검을 쥔 손을 포함해 전신을 살짝씩 풀었다.


‘이 정도면 적응은 끝났으니 빨리 끝내자.’


그는 다시 안나에게 쇄도하며 검을 휘둘렀다.

그녀는 이번에도 겨우 반응했으나 아까와는 결과가 달랐다.


“큭···.”


안나는 어깨를 붙든 채로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

그녀가 물러난 방향으로 바닥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왼쪽 어깨를 감싼 오른손은 피로 흥건했다.

검을 쥐지 않은 유리의 손에는 어깨부터 잘려나간 그녀의 팔이 들려있었다.


“지금 상태만 봐도 조금도 못 버틸 것 같은데?”


유리의 질문에도 안나에게서 들려오는 답은 없었다.


“이곳에서는 당장 치료할 수도 없잖아. 네가 시간을 끌어 내가 루테프를 죽이지 못하는 것보다 너가 죽는 게 훨씬 빠를 거야.”


그는 들고 있던 팔을 뒤로 던지고 검을 휘둘러 검신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거친 숨소리 말고 공간 안에 들리는 소리는 없었다.


“진짜 이길 수가 없네···.”


안나는 포기한 것인지 바닥에 등을 붙이고 눈을 감았다.

유리는 그녀에게 다가가 검을 정리하고 그녀의 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시간은 어느 정도 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안 되네.”

“경지의 차이가 있으니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잖아.”

“그치···. 경지의 차이는 운으로라도 메꿀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맑고 힘이 있던 목소리는 점점 작아져 갔다.

유리는 죽어가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다 입을 열었다.


“너에게 아직 단장님의 마지막에 대해 못 해준 말이 한가지 있어.”


그녀는 힘겹게 고개를 돌려 그와 눈을 마주쳤다.


“뭔데···.”

“이건 크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그냥 흘려들어도 상관없는 거야. 네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는데 단장님은 혼란을 겪고 계셨어.”

“무슨 혼란?”

“아스 폐하를 섬겼던 시간이 오래되셨다 보니까 루테프에 대한 충성심도 있지만, 그분에 대한 충성심도 여전히 남아있었어.”

“아. 그거···.”

“알고 있었어?”

“정확하게는 아니지만. 윽···, 어느 정도는 눈치채고 있었어.”

“그럼 그분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셨던 혼잣말, 가르쳐줘?”


안나는 고개를 젓고 입을 열었다.


“됐어···. 어차피 혼잣말이라고 해봤자 폐하와 현 황제에게 죄송하다고 하셨겠지.”


유리는 말이 없었다.


“유리, 유언···, 하나 들어줄 수 있어?”

“말해봐.”

“할아버지 대신 끝까지 곁을 지켜드리려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폐하께 전해줬으면 해.”

“어려운 건 아니네. 그리고 죽기 전에 이거 한가지는 알아둬. 너랑 단장님이 제국의 반역자로 알려질 일은 없을 거야.”


안나는 그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다행이네···.”


유리는 그녀의 미소를 바라보기를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땅을 파내기 시작했다.

꽤 긴 시간 동안 땅을 파낸 그는 죽은 안나의 시체를 들어 안고 조심히 그곳에 내려놓았다.

집어던졌던 그녀의 팔과 검을 주워와 그녀의 왼쪽에 내려두고 흙으로 구멍을 덮었다.


“중요한 일 중이니까 날 가만히 놔뒀으면 좋겠는데.”


수많은 인원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유리는 그 가운데에서 그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쉬지 않고 안나의 시체 위로 흙을 덮었다.

한 사람이 그의 말을 무시하며 무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하···.”


그는 가볍게 공격을 피했고 손에 힘을 싣고는 상대의 가슴을 밀쳤다.

그자는 버티지 못하고 멀리 날아갔다.

유리는 다시 손을 움직여 흙을 덮었다.


“예전 동료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그 시체를 묻어주다니. 상당한 악취미인데.”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유리를 향해 말했다.

하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손을 움직여 흙으로 덮기만 했다.

그들도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유리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기만 했다.


“분명히 나는 득달같이 달려들 줄 알았는데 꽤나 참을성이 좋아.”


유리는 손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허리를 풀었다.


“우리도 안나님의 시체 앞에서 망나니 같은 모습을 보일 수는 없으니까.”

“주제 파악은 잘돼있어. 자기들이 깨질 걸 미리 알고 있고 말이야.”

“우리도 마나를 사용하는 무인들이니 경지의 차이를 좁힐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을 수밖에. 아무리 수적으로 우위를 점해도 한계가 있으니. 얄궂은 현실이지.”


몸을 다 푼 유리는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그래서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은 다 꺼낸 거야?”

“어차피 들어줄 생각도 없잖아.”


그들도 유리를 따라 각자의 무기를 뽑아 들었다.

유리는 주위를 둘러싼 이들을 하나씩 두 눈에 담았다.


‘분명 주위에서 느껴지는 건 없었어. 이백명 정도가 있다는 얘기는 분명 거짓은 아닐 거야. 그럼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다는 건데.’


유리가 들고 있는 검에 강렬한 마나의 빛이 맴돌기 시작했다.


‘다행히 이것들 가운데서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지는 건 없어. 그리고 목적이라고 해봤자 조금이라도 시간을 끄는 것. 겨우 그거밖에 없으니.’


유리는 준비가 되자마자 상대에게 쇄도하며 무작정 검을 휘둘렀다.

상대는 반응하지 못하고 몸이 강렬한 기운에 찢기듯이 떨어지며 목숨을 잃었다.

한 명으로 그치지 않았다.

여러 명이 모여있던 탓에 주위에 있던 이들도 그와 똑같은 모습으로 피를 쏟아내며 쓰러졌다.


“죽여!”


동료가 죽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 뒤에야 그들이 반응했다.

하지만 유리는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미 자리를 옮긴 유리는 강대한 마나에 휩싸인 검을 우악스럽게 휘둘렀다.

삽시간에 주위로 피와 살점이 이리저리 날렸다.


“어떤 방법을 써도 상관없으니 어떻게든 놈의 발을 붙잡아!”


비명과 고함이 공간 안을 울렸다.

그 속에서 유리만이 묵묵히 움직였다.

베고 찌르고 짓밟고 터뜨리고.

피하고 흘리고 시체와 부상자를 방패로 쓰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을 죽이기 위해서만 움직였다.


“폐하···.”

“네놈은 우리가···.”


둘러싸고 있던 적들은 하나둘씩 쓰러져 갔으며 유리는 점점 전신이 붉게 물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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