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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예술이 밥 먹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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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후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11.26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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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기능

DUMMY

[아리오 갤러리X서울문화재단 : 청년작가전]


아리오 갤러리 성북구점 앞에 커다란 현수막이 펄럭였다.


갤러리 스태프들은 분주하게 오프닝 파티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케이터링 업체 직원들은 카나페와 오픈 샌드위치, 브라우니와 쿠키 같은 핑거푸드와 샴페인을 세팅하고 있었다.


일호는 벽에 걸린 작품들을 보며 마지막으로 디피를 점검했다.


입구를 따라 들어온 관람객들은 먼저 안락한 집의 모습을 보게 되고, 그 이후에 10호 캔버스에 그려진 도시의 모습을, 그 뒤에 기어코 무너져버린 집의 내부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그림을 본 뒤 걸음을 돌릴 때, 폐자재로 만들어진 개집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일호가 그림을 보고 있는 사이에, 샴페인 잔을 든 손 하나가 불쑥 들어왔다. 유하린이었다.


“꽤 좋은 샴페인인 것 같아서 슬쩍 가져왔어요.”

“감사합니다.”


유하린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샴페인을 마셨다. 일호도 그녀를 따라 샴페인을 한 모금 마셨다. 신선한 과실 향을 품은 샴페인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오···.’


눈이 번쩍 떠졌다.


“맛있네요.”

“그죠?”


뿌듯한 얼굴로 샴페인을 마시던 유하린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아, 하고 말했다. 그녀는 정교하게 다듬어진 개집의 지붕과 벽을 가리키며 물었다.


“근데 저번부터 묻고 싶었던 건데, 저 집은 어떻게 만들었어요? 일호 씨 설마··· 나무도 다뤄요?”

“설마요. 치수만 계산해서 을지로에 있는 목공소에 가져갔죠.”


‘대신 사장님이 고생 좀 하셨지.’


일호는 폐자재로 만든 개집을 보며, 목공소를 찾아갔던 때를 떠올렸다.

목공소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전기 톱이 달린 목공용 기계들이 눈에 들어왔다. 바닥에 두껍게 깔린 톱밥이 걸음마다 폴폴 날렸다.

목공소 사장은 일호의 세세한 부탁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그가 원하는 대로 하나하나 정교하게 재단을 해줬다.


일호는 부서진 건물의 잔해로 만들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벽을 물감으로 덮지 않았다. 흠집과 빛 바린 색이 그대로 드러났다.

거칠지만, 오히려 그 거친 느낌이 잘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그 말을 들은 유하린은 아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봐도 좋네.’


그렇게 유하린이 작품을 보고 있을 때, 전시 담당 큐레이터가 그들을 향해 넉살 좋게 웃으며 다가왔다.


“작가님들, 왜 여기 계세요? 로비로 오세요!”

“아, 저는 조금 이따가 가려고 했는데···!”

"어서요~!"


큐레이터에게 팔을 잡힌 유하린은 끌려가듯 로비로 향했다.

일호는 그 모습을 보며 천천히 뒤따라갔다.



*



지나가던 사람들은 아리오 갤러리 건물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커다랗게 걸린 현수막을 쳐다보았다.


“저게 뭐지?”

“전시 같은 거 하나 본데?”

“창고를 갤러리로 바꿨나 봐.”

“아, 맞아. 나도 그런 기사 본 적 있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갤러리를 찾았다. 버려진 창고였던 공간이 갤러리로 재탄생되었다는 점이 흥미를 끈 듯했다.

이미 전시를 찾아보고 온 사람들도 많았지만, 사전지식 없이 건물 앞에서 기웃거리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하긴, 이런 시도를 한 게 한국에선 거의 처음이니까.’


일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오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자신의 그림을 보고 있는 관람객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조금 긴장이 되었다.


‘···잘 전달되면 좋을 텐데.’


이윽고, 한 아이와 아이의 엄마가 그의 작품 앞에 섰다. 그림을 본 아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엄마, 여기에 다 노랑이랑 파랑밖에 없어!”

“그러네? 현지가 좋아하는 색들이네.”


아이는 일호가 그린 안락한 방을 가리키며 자신의 방과 닮았다며 좋아했다.


그 뒤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그림을 보며 대화를 나눴다.


“그림이 되게 흐리다.”

“응. 안개 낀 것 같아.”

“다 같은 색을 썼는데 느낌이 전혀 다르네.”


퇴근 뒤 갤러리에 들른 직장인들도 일호의 그림 앞에서 꽤 오랫동안 시간을 보냈다.


“···풍경들이 굉장히 쓸쓸하게 보이네요.”

“그러게요. 잊혀져 가는 도시 같기도 하고.”


일호는 사람들의 틈에서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림을 본 사람들은 다들 저마다 독특한 감상을 얻고 있었다.


누군가 중얼거렸다.


“그런데, 왜 이렇게 그렸을까?”

“빨간색이랑 초록색을 왜 안 썼을까? 화분에 있는 꽃이랑 줄기도 연한 노란색이야.”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보던 사람들은,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아.’


낮고 흐린 시야.

빨간색과 초록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눈···.


작품 옆에 붙어있는 짧은 설명까지 읽은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오랫동안 일호의 작품 앞을 서성였다.


“아이구, 이쪽엔 사람이 참말로 많구먼.”


그때, 일호의 작품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긴 노부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그들은 평소처럼 주변을 산책하던 길에, 우연히 갤러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구, 내가 눈이 침침해서 그런가···? 그림이 흐릿하네.”


그 말을 들은 큐레이터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제대로 보셨어요. 이 그림은, 의도적으로 뿌옇게 만든 그림이거든요.”


어리둥절해하는 부부의 얼굴을 보며, 큐레이터가 말을 이었다. 그녀의 설명을 듣는 노부부의 얼굴이 점차 안타까움으로 물들었다.


“그래서 제목이 <우리의 집>이었구만.”

“···불쌍한 것.”


그렇게 중얼거린 할머니가 갑자기 눈시울을 붉혔다. 직원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어머, 할머님··· 괜찮으세요?”

“아이고, 주책 맞게시리···. 미안합니다.”


그녀는 민망해하면서 꽃무늬 손수건을 꺼냈다. 그리고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이걸 보니까, 일 년 전에 떠난 우리 미미가 생각나서···.”

“아···. 그러셨구나.”

“참말로 이뻤거든. 내 새끼···. 내가 손주처럼 자식처럼 키웠는데.”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어깨를 감싼 채 토닥거렸다. 한동안 그 앞을 떠나지 못하고 눈물을 훔치던 할머니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그 강아지는··· 지금 어디서 지내고 있수?”


*


취재를 위해 갤러리로 향했던 ABS 기자가 걸음을 멈췄다.


“아니, 저게 뭐야?”


갤러리로 향하는 길에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던 것이다.


‘···설마 이게 다 갤러리 입장 줄이라고?’


기자는 입을 떡 벌린 채 줄을 바라보았다.


‘요새 유명한 전시라고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내부에 들어서자, 사람들은 더욱 바글바글했다. 날카로운 눈으로 사람들의 얼굴을 살피던 기자의 얼굴이 한순간 밝아졌다.


‘찾았다···!’


일호를 발견한 기자가 쪼르르 달려가 일호의 눈앞에 마이크 한 대를 쑥 들이밀었다. 일호가 그 커다란 마이크를 멀뚱멀뚱 쳐다보자, 기자가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신일호 작가님 맞으시죠?”

“어, 네. 맞습니다.”

“저희 ABS와 인터뷰 좀 해주시겠어요? 잠깐이면 됩니다!”


일호가 얼떨떨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자, 기자는 짧은 인터뷰니 떨지 말라며 격려했다.


어느새 일호는 방송용 마이크를 차고 미술관 뒷편에 놓인 벤치에 앉아있었다. 커다란 카메라 역시 우직하게 선 채로 그의 얼굴을 담고 있었다.


“혹시 본인 소개 좀 해주시겠어요?”

“어, 안녕하십니까. 신일호라고 합니다.”


기자는 준비해둔 질문들을 하나씩 풀어놓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로 인해 작가님의 작품을 구매하고 싶다는 문의가 빗발친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전시 이후에 작품을 판매하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아뇨.”


그의 단호한 말에 기자의 눈이 동그래졌다. 일호가 말을 이었다.


“관심 감사합니다만, 이 작품은 판매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왜죠? 이유가 뭔가요?”


기자는 순수한 호기심으로 질문을 던졌다. 일호는 그 질문에 차분하게 답했다.


“더 많은 사람들한테 보이고 싶은 이야기라서요.”


‘아.’


기자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어느새 준비한 질문들은 동이 났지만, 그녀는 개인적인 질문들을 하나씩 던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촬영감독이 조급하게 손목시계를 가리킬 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호와 대화를 나눴다.


*


“지호야, 수저 좀 놔라.”

“네에.”


평소와 다름없는 저녁 시간.

일호의 가족들은 집에서 저녁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이틀 전 성황리에 오픈한 아리오 갤러리의 청년예술가 전시 현장입니다. 지금 보이는 이 작품은 <우리의 집> 연작으로, 올해로 만 22세인 83년생 신일호 작가의 작품입니다.


‘어···?’


그리고 뉴스에선 일호의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있던 신지호와 전경미의 눈이 커졌다.


“엄마··· 저거 신일호 맞지?”

“우리 아들이 왜 저기서 나와···?”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나온 신태섭도 뉴스에서 보이는 익숙한 얼굴에 눈을 커다랗게 떴다. 셋은 입을 벌린 채 화면에 눈을 고정했다.

곧 일호의 인터뷰가 화면에 보였다. 그는 차분한 얼굴로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뭐야, 신일호 화면빨 잘 받네?”


전경미는 지호의 허벅지를 치며 집중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지호는 붉어진 허벅지를 문지르며 입을 내밀었다.


다른 뉴스들보다 꽤 분량이 할애된 인터뷰였다.


-재개발지역의 명암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으로, 보는 이들로 하여금 다양한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신일호 작가의 작품. 그의 작품은 우리 사회에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뉴스로 넘어갔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일호의 가족들은 멍한 얼굴로 앉아있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곧이어 세 개의 각기 다른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일호의 가족들은 각자의 핸드폰을 쥔 채 당황했다.


[B.F : 야, 방금 뉴스 나온 거 네 동생 맞지?]


지호는 얼떨떨한 얼굴로 문자와 텔레비전을 번갈아 보았다.


*


한편, 그들과 다른 장소에서 같은 뉴스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갤러리Y의 사무실.

사무실에 놓인 텔레비전을 보던 지윤후가 고개를 저었다.


“와, 일호 씨··· 또 한 건 했네요.”

“그러게요.”


남궁윤은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그녀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네.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그녀는 이런저런 말을 한 뒤, 덧붙여 말했다.


“···아, 이름은 드러나지 않게 해주세요.”


*


-아리오 갤러리X서울문화재단 : 청년작가전, 성황리 개최···

-작품의 모델이 된 강아지 ‘우리’, 무사히 새 가족에게 입양

-동물보호단체에 후원 문의 빗발쳐··· 동물보호단체 ‘정말 감사하다’

-얼굴 없는 거액의 후원자까지 등장··· ‘집 잃은 동물들에게 따뜻한 겨울을’


뉴스를 보던 우주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윤아가 임시 보호하던 우리는 인상이 좋은 노부부의 가족이 되었다. 윤아 말로는 낯을 조금 가려도 순한 아이라고 했다.


‘정말 잘됐다.’


그녀는 마우스를 내렸다. 눈에 들어오는 제목의 기사가 있었다.


-신일호作 <우리의 집>, 예술의 순기능을 몸소 보여 주다.


우주의 시선이 ‘예술의 순기능’이라는 단어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그녀는 천천히 한 손을 가슴 위에 올렸다. 두근대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사는 세상을 또 다른 시선으로 보여주는 것.

또 다른 ‘나’로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


어떤 예술은 그걸 가능하게 만든다.

그리고 일호의 작품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우주의 표정을 본 친구가 물었다.


“너 오늘 무슨 좋은 일 있어? 혹시··· 애인 생겼어?"

“아니."


우주는 웃으며 답했다.


"그것보다 더 힘 나는 거."


절로 의욕이 솟아나는 기분이었다. 우주는 미소를 지으며 펼친 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부족한 글을 읽어 주시는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ㅠㅠ

앞으로도 더욱 성실히, 노력하며 쓰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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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큰 그림 +18 21.01.01 13,578 339 13쪽
37 꿈의 길 (2) +19 20.12.31 13,343 354 12쪽
36 꿈의 길 (1) +11 20.12.30 13,396 361 11쪽
35 저희 팀 에이스거든요 +13 20.12.29 13,474 342 11쪽
34 두 번째 개강 +12 20.12.28 13,522 35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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