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배우로 전직을 명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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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운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11.27 17:58
최근연재일 :
2021.01.19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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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0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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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46. 드림팀 - (1)

DUMMY

손아귀에서 맺히는 땀방울을 움켜쥐며 황태수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겨우 억눌렀다.


‘내가 지금 뭘 본 거야?’


황태수는 눈 앞에 펼쳐진 작금의 현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얼마나 당황했으면 오디션을 촬영으로 헷갈리고 ‘컷’이라는 말이 흘러나왔을까?

이와 같은 반응은 비단 자기 혼자만의 반응이 아니었다.


“······”


그렇게 열을 올리며 고성윤의 편을 들던 심사위원은 입을 쩍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하긴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이 바닥에 발을 걸친 관계자로서, 눈이 있다면 눈앞에서 펼쳐진 연기가 어느 정도의 수준이었는지 제일 잘 알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이 중에서 가장 놀란 것은 그가 아니었다.


바로 당사자인 고성윤이다.

그의 상태는 훨씬 더 심각했다.

연기를 시작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배우에 의해 완전히 잡아먹혔다.

이들 중에서 직접적으로 살기로 가득한 눈동자를 마주했던 탓인지 그는 반쯤 정신을 잃은 것처럼 멍하니 허공을 정지혁을 바라보 뿐이다.


“크으! 역시 정지혁 배우네요. 어째 저번보다도 훨씬 더 연기가 는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아직 많이 부족한걸요.”


박호영의 칭찬에도 불구하고 정지혁은 선선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농담도.

그게 부족한 거면 충무로의 배우들은, 아니 당장 고성윤부터 배우라는 직함을 걸고 활동할 수 없을 것이다.


“대사는 일부러 조금 바꾼 겁니까? 본래라면 고성윤 배우가 연기한 것처럼, 신율의 대사는 경어로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까?”

“네, 제 나름의 해석을 더해 일부러 평어로 연기했습니다.”

“그 이유가 뭐죠?”


박호영의 입가가 진한 미소를 그렸다.

오랫동안 같이 합을 맞춰왔기 때문일까?

박호영은 황태수가 가장 궁금했던 부분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마침 그에 대해 궁금함을 품던 황태수의 시선 역시 정지혁의 입술로 집중된다.

이윽고 모두의 집중 속에 정지혁의 입술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제가 파악한 신율은 잘 벼린 칼날과도 같은 인물이었습니다. 바이러스가 퍼지고 사람이 괴물로 변하는 상황에서 감염자에 대처하는 법을 가장 먼저 깨달은 인물로. 특유의 카리스마로 시민들의 선두에서 감염자와의 전쟁을 주도했죠.”

“네,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시민들을 보다 원활하게 이끌기 위해 부드러운 카리스마로서 경어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질문과 동시에 정지혁의 눈썹이 길게 휘어진다.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정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말을 덧붙였다.


“신율이 일반적인 캐릭터라면 그렇습니다.”

“일반적인 캐릭터요?”

“네, 하지만 신율은 다른 인물들과는 결이 다릅니다. 신율은 사이코패스이지 않습니까?”


황태수의 입이 쩍 벌어졌다.

눈앞의 황태수가 고민하고 있던 부분을 정확하게 짚었다.


“공감 능력 부족으로 인해 감정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잘못된 행동이 왜 잘못된 행동인지 잘 모릅니다. 그나마 유일하게 느끼는 감정은 짜증뿐이죠. 저는 이 점에 주목했습니다.”

“그게 뭐죠?”

“자신의 삶에 위협이 되는 존재를 죽였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부분을 트집을 잡는 남자는 신율에게 있어서 짜증을 유발하는 존재일 뿐입니다.”


대답하는 정지혁의 시선이 고성윤에게로 머무른다.

그를 바라보던 정지혁의 입꼬리는 이윽고 길게 휘어지며 짙은 호선을 그렸다.


“그렇다면 공감 능력도 적고 윤리적인 개념에도 무지한 신율이라면 굳이 경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신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을 정확하게 짚고 들어오는 모습이 그로 하여금 사이코패스가 아닌지를 의심케 만든다.


“그, 그럼 남자를 죽이지 않은 이유가 뭡니까? 윤리적인 개념에 무지한 신율이라면 거기서 남자를 죽였어도 되지 않습니까?”


떨리는 목소리로 투자처 측의 심사위원이 질문을 건넨다.

정지혁은 피식 조용히 웃으며 간결하고도 정확한 대답을 내뱉었다.


“그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귀찮았기 때문입니다.”

“귀, 귀찮아서요?”

“남자는 감염자가 아닙니다. 현재 신율 본인을 포함한 생존자들이 모여 있는 칸에서 ‘감염자’가 아닌 ‘사람’을 죽인다면 다른 이들이 남자의 의견에 동조하며 반발할 것 같아 귀찮아서 살려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그 말은 즉······”

“공개되지 않은 으슥한 공간, 혹은 단 둘뿐인 공간이었다면 아마 죽였을지도 모르죠.”


짝, 짝, 짝


조용히 웃으며 대답하는 정지혁 한마디에 연달아 질문을 건네던 투자처 관계자가 자기도 모르게 손뼉을 마주친다.

입을 쩍 벌리고는 감탄을 금치 못한 채, 손뼉을 치는 모습이 퍽 웃기기까지 하다.


‘끝났구먼.’


고성윤은 끝났다.

오늘의 기억이 어떻게 남을지는 모르겠지만, 정지혁의 연기에 완전히 잡아먹혔다.

유일하게 자기를 지지해주던 지지자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를 딛고 일어선다면 보다 뛰어난 배우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은 남겠지만, 여기는 소속사도, 학원이 아니다.

가능성만으로 배우를 뽑는 자리가 아닌 이상.

결과는 정해졌다.


“두 배우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결과는 두 분의 회사를 통해 전달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이미 황태수의 머릿속엔 단 한 명의 배우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페르소나.

자신의 분신이자 상징이 될 배우, 정지혁에 대한 생각으로.


***


“아하하, 그런 일이 있었어요?”

“아영이 네가 그 모습을 봤어야 해. 지혁 씨 연기에 잡아먹혀서 겁에 질린 모습이 아주 가관이었다니까. 박진욱 그 인간은 어떻고? 인상만 잔뜩 쓰면서 아무 말도 못 하는 게 진짜 아주 볼만했어.”

“아, 나도 같이 가서 봤어야 하는데, 하필이면 의상 때문에 못 가서.”


자랑처럼 늘어놓는 김수아의 목소리에 박아영이 진한 아쉬움을 털어놓는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지만 김수아는 환하게 웃으며 몇 번이고 그때의 일을 이야기했다.

오디션이 끝나고 환한 얼굴로 나를 맞아주던 그녀의 예상대로 나는 오디션에 합격했다.

하긴 메인 감독인 황태수로부터 페르소나라는 이야기까지 들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몰랐다.


“그럼 지혁 오빠 이번에는 사이코패스를 연기해야 하네요.”

“맡은 신율이라는 인물이 사이코패스니까 그래야지.”

“그러고 보면 오빠도 진짜 연기 스펙트럼 넓다니까요.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는 효자에 킬러에, 북한군에, 비서까지. 게다가 이번에는 사이코패스라니.”


박아영이 손가락으로 배역을 세어보며 입을 쩍 벌린다.

듣고 보니 그녀의 말대로다.

맡는 작품마다 평범한 캐릭터는 하나도 없지 않은가.

당장 나부터도 신기해하고 있는 사이 운전하고 있던 김수아가 진한 미소를 머금는다.


“다 지혁 씨가 연기를 굉장히 잘해서지. 다 역할도 성격도 특징도 다른데, 지혁 씨는 그 캐릭터성을 100% 살리면서 연기를 하잖아.”

“하긴 대본이 매일 헐릴 정도로 분석하고 공부하니까요.”

“그게 진짜 대단한 거라니까. 지혁 씨처럼 이렇게 열심히 하는 배우가 어디 있어?”


앞에 있던 김수아와 박아영이 칭찬을 거듭하며 나를 추켜세운다.

마침 대본을 보고 있던 나는 괜스레 뜨끔하며 대본 사이로 얼굴을 감췄다.


“에이, 그 정돈 아니에요.”

“아니긴, 지금도 그렇게 대본 보고 있으면서. 진짜 나중에 오빠가 읽었던 대본 모아놓고 사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릴 거예요.”

“대본을 뭐 하러 올려.”

“아니, 전에도 말했잖아요. 오빠 팬들도 봐야 한다니까요. 다들 오빠가 그냥 천잰 줄 알지. 이렇게 노력하는 천재가 어디 있다고.”


지켜보던 박아영이 강하게 어필한다.

이게 그리 대단한 건가?

다들 이 정도는 하는 것 같은데.


“자자, 거기까지 하시고. 곧 도착합니다. 태백 스튜디오예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창밖으로 고고한 자태의 회색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이것으로 두 번째 찾는 태백 스튜디오.


“저희는 차에서 대기하고 있을게요.”

“리딩 잘하고 와요. 오빠 파이팅!”


두 사람의 응원을 받으며 나는 스튜디오 안으로 향했다.

저번처럼 안내원의 안내를 받으며 미팅룸으로 향했는데, 놀랍게도 그 안쪽엔.


“후, 후!”


헬스장에서 자주 보던 풍경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기서까지 뭐해?”

“이 목소리는?”


터질 듯한 팔근육을 자랑하는 육중한 덩치의 남자가 나를 맞이한다.

내가 모를 수가 없는 인물이자. 벌써 몇 번이고 호흡도 맞추고 같이 운동도 자주 하는 동생.


“형!”

“오랜만에 같이 작업하는 것 같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서로를 향해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정말이지 세상 참 좁다니까.


***


“일찍 오셨네요.”

“누가 할 소리를. 너야말로 너무 일찍 온 거 아니야?”


리딩 전부터 알게 된 사실이지만 황태수 감독의 신작 광주행의 출연 배우 중엔 아는 얼굴들이 즐비했다.

상범이는 그들 중 한 명으로.

나의 출연이 확정됨과 동시에 가장 먼저 인사를 건넨 배우이기도 했다.


“그래도 아는 사람이 있으니까 마음이 훨씬 편하네.”


출연 배우 중에 아는 배우가 있다니 긴장감이 훨씬 덜하다.

물론 이는 나뿐만이 아니었다.


“하하! 형님과 함께라면 언제든지 롱테이크 액션 씬도 자신 있습니다!”


거짓말 조금 보태 상범이는 정말 뛸 듯이 기뻐했다.

서로에 대한 실력도 충분히 잘 알고 있고, 이미 서로 자주 합을 맞춘 경험이 있기에, 어떤 어려운 액션 씬도 믿고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무 빨리 온 거 아니야?”

“에이 다 형한테 배운 거지 않습니까? 항상 정해진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해서 준비하는 편이 더 좋다고!”

“설마 나보다 빨리 온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형이 가르쳐준 이 습관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작품마다 만나는 선배님들에게 많이 예쁨도 받았고요.”


상범이는 씨익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하여간 덩치나 인상과는 정말 다르다니까.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실례합니···”


닫혀 있던 문이 열리며 또 다른 이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번에도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이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입가에 진한 미소를 그리며 이쪽으로 다가온다.


“짜식 잘 지냈냐!”

“오랜만입니다, 이시환 선배님.”


카네이션에서 큰 도움을 주었던 이시환.

그가 환한 미소와 함께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손을 맞잡으며 인사를 건넸다.


“요새 좀 잘 나간다더라? 연기도 엄청 늘었던데?”

“에이, 아직 멀었습니다.”

“사이코패스 배역 맡았댔지? 그거 꽤 어려워 보이던데 괜찮겠어?”

“선배님이 잘 이끌어주시면 훨씬 잘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여간 말은!”


반가움으로 가득했던 눈꼬리가 길게 휘어지면 입꼬리에 짙은 반월이 번진다.

한참 인사를 나누는 사이 나는 그를 이끌고 상범이에게 데려갔다.


“선배님 여기 좋은 친구 한 명 더 있습니다.”

“오? 마상범 씨 맞죠? 드라마 잘 봤어요.”

“실제로 만나 뵙는 건 처음이지? 이쪽은 이시환 선배님. 전에 카네이션이라는 드라마를 같이 찍었는데 내게 정말 많은 도움을 주신 선배님이야.”

“에이, 도움은 무슨.”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마상범입니다 선배님!”


상범이는 환히 웃으며 허리까지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몸에 솟아오른 근육 덕분인지 인사만으로도 압박이 고스란히 전해질 정도.

덕분에 이시환의 얼굴이 떨떠름하게 변한다.


“어··· 어. 잘 부탁해.”


처음 마주하는 덕분에 다소 어색하게 흘러갈 줄 알았건만.

그건 정말 괜한 걱정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때 지혁이가 얼마나 꽁해있던지.”

“형이 그런 적이 있었습니까?”

“너도 봤었어야 한다니까. 하하!”


상범이의 등장만으로도 굉장히 반가우면서도 놀라웠지만.

반가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와 친한 배우가 한 명 더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바로 카네이션에서 내게 큰 도움을 주었던 이시환이었다.


이시환은 특유의 사교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상범이와도 금세 친해졌다.

서로가 알고 있는 공통분모인 내 이야기를 꺼내며 웃음을 터뜨리는데, 다행히 서로 코드가 잘 맞는 모양이다.


“형님께서 지혁이 형을 도와주신 덕에 저도 지혁이 형께 많이 도움받았습니다.”

“헤에, 지혁이가? 짜식, 안 그럴 것 같아도 잘 챙겨줬나 보네. 지혁이가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여도 굉장히 마음이 여리고 섬세하다니까.”

“형님께 잘 배운 덕이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어느새 상범이가 이시환을 부르는 호칭도 형님으로 바뀌어 있다.

웃음을 터뜨리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이 뒤이어 다른 배우들이 속속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하나둘씩 채워지는 자리를 보던 이시환의 안색이 점점 굳어가기 시작한다.

이윽고 그는 품 안에서 조그만 통 하나를 꺼냈다.


“형님 약 챙겨 드세요?”

“아. 이거? 아무것도 아니야.”


이시환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애써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내 눈에는 훤히 보인다.


“선배님 그거 청심환이죠?”

“풉!”


하필 물을 마시고 있던 찰나 그에게서 조금이나마 물이 튀어나온다.

다행히 옆자리에 아무도 없었기에 망정이지 까딱하면 대형사고 칠 뻔했다.


“역시 형님도 긴장되시는 겁니까?”

“뭔 소리야 내가 왜 긴장해?”

“그렇죠? 무려 이번 작품의 주인공이신데 긴장할 리가 없죠?”

“···너 씨.”


조그맣게 흘기는 모습에 결국 웃음이 터져 나온다.

이시환은 조용히 하라며 손을 들이밀지만 이 좋은 놀림감을 여기서 날릴 수야 없지.

마침 상범이도 그의 반응을 보고 관심을 보인다.


“형님?”

“사실은 그게···”

“와아악!”


이시환이 괴상한 소리와 함께 눈을 부릅뜬다.

아 저런 모습을 보면 더 놀리고 싶은데.


“에이 선배님 그럴 수도 있지 그게 뭐 창피한 일이라고 그러십니까. 아까는 제 이야기도 하셨으면서.”

“너 쪼잔하게 자꾸 이럴래?”

“아까 제 이야기 먼저 꺼내신 건 선배님입니다.”

“큭!”

“그래서 무슨 이야깁니까?”


나직하게 침음을 터뜨리는 이시환을 뒤로하고 나는 상범이의 귓가에 조용히 입술을 가져갔다.


“사실 선배님이 오늘 오시는 어떤 배우님 열혈 팬이시거든.”

“정말입니까?”


상범이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진다.

이시환은 못 들은 척 청심환을 입에 털어 넣고 물을 마셔보지만, 이미 붉게 달아오른 얼굴이 그의 창피함을 증명하고 있다.


“선배님 삐지신 겁니까?”

“삐지긴 누가!”

“에이, 팬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저도 선배님 열혈 팬인데.”

“맞습니다. 저도 미처 말씀 못 드렸습니다만 형님의 열혈 팬입니다. 형님이 나온 작품 하나도 안 놓치고 전부 다 봤습니다.”

“오, 진짜?”


구겨져 있던 이시환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진다.

상범이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향해 상체를 들이밀었다.


“형님이 나온 영화 보면서 정말 공부도 많이 했습니다!”

“캬, 우리 상범이가 뭘 좀 아네. 지혁이 너도 상범이 좀 보고 배워. 여 봐봐. 얼마나 착하고 그래?”

“그럼 저도 선배님을 본받아 앞으로 연······”

“너 치사하게!”


달려드는 이시환 덕분에 분위기는 더욱 밝아졌다.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 속에 다른 배우들과 서로 인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뒤이어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오셨습니까?”

“감독님 오셨습니까?”


황태수.

그가 등장했다.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작품을 탄생시킨 감독의 등장은 배우들로 하여금 잊고 있던 긴장감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황태수는 선선히 웃으며 자리 앞에 섰다.


“리딩에 앞서 간단히 소개를 드리겠습니다. 이번 <광주행>의 각본과 연출을 맡을 황태수입니다. 아무쪼록 부족한 몸이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황태수가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건넴과 동시에 곳곳에서 박수 소리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황태수를 시작으로 미팅룸에 앉아있던 이들 한명 한명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네기 시작한다.


“박우찬 역을 맡은 마상범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신율 역을 맡은 정지혁입니다. 아직 부족한 몸이나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와 상범이까지 인사를 마치고 이제 옆에 있던 이시환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주연 한강우 역의 이···”


돌연 그의 목소리가 조그맣게 기어들어 간다.

난데없이 줄어드는 목소리에 나는 황급히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이, 이시환입니다!”


뒤늦게 소개를 마치고 자리에 앉지만, 말까지 더듬어서야 너무 긴장하고 있다.


“선배님 너무 긴장하셨습니다.”

“······어우 살 떨려 죽겠다 지혁아.”

“자꾸 그러시면 선배님의 위엄이 없어지지 않습니까. 남자는 자신감입니다 선배님!”


조그맣게 속삭이자 그가 황급히 자세를 고쳐잡는다.

하여간 팬의 마음은 알겠는데 이 정도면 조금 과한 거 아닐까?

때아닌 걱정으로 이시환을 바라보던 사이.


끼익.


불현듯 모두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한다.

이시환이 계속 신경을 쓰고 있던 이이자, 그가 팬을 자처하는 여배우.

아, 나도 눈이 마주쳤다.

이윽고 그녀는 길게 휘어지는 눈 사이로, 얼굴을 감추고 있던 모자와 마스크를 벗기 시작했다.


얼굴을 가리고 있던 모자와 마스크가 걷어지며 이윽고 그녀의 얼굴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길게 흘러내리는 밤갈색의 머리칼 사이로, 고양이와도 같은 짓궂은 미소를 머금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안녕하세요. 이번에 신연 역을 맡은 연하윤이라고 합니다. 명성이 자자한 분들이 모인 자리이니만큼 누가 되지 않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초승달처럼 환하게 번지는 미소가 이쪽으로 향한다.

그리고는 한쪽 눈을 깜빡이는데, 괜스레 이어지는 윙크에 오한이 스친······

잠깐, 오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옆을 바라보니.


“······”


이시환이 나를 바라보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설마 방금 저 윙크 때문에?

이윽고 그의 입술이 조그맣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부.

러.

운.

놈.


“······”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번 영화··· 괜찮을까?

나의 그런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황태수는 우리를 보며 마이크를 집었다.


“떠오르는 블루칩 정지혁 씨, 신스틸러 마상범 씨, 충무로의 실력파 배우 이시환 씨와 연하윤 씨까지.”


미팅룸에 모인 이들을 바라보며 황태수가 진한 미소를 그린다.


“이만하면 가히 드림팀이라 하지 않겠습니까?”


작가의말

2021년 1월 10일 00시 37분부로 내용이 수정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Act 46 수정 공지를 통해 안내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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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Act 57.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完) +57 21.01.19 5,886 205 19쪽
56 Act 56. 제작 발표회 +20 21.01.18 6,114 217 14쪽
55 Act 55. 퇴장은 이별이다 +16 21.01.17 6,439 237 16쪽
54 Act 54. 인간의 조건 +18 21.01.16 6,975 217 18쪽
53 Act 53. 은혜는 바다 같이 - (2) +22 21.01.15 6,921 227 14쪽
52 Act 52. 은혜는 바다 같이 - (1) +11 21.01.15 6,666 188 13쪽
51 Act 51. 스승과 제자 - (2) +19 21.01.14 7,843 233 19쪽
50 Act 50. 스승과 제자 - (1) +18 21.01.13 8,085 236 19쪽
49 Act 49. 드림팀 - (4) +22 21.01.12 8,552 266 17쪽
48 Act 48. 드림팀 - (3) +16 21.01.11 8,979 264 18쪽
47 Act 47. 드림팀 - (2) +39 21.01.10 9,319 321 18쪽
» Act 46. 드림팀 - (1) +18 21.01.09 9,894 263 19쪽
45 Act 45. 잡초를 뽑을 땐 뿌리까지 - (2) +19 21.01.08 9,906 311 15쪽
44 Act 44. 잡초를 뽑을 땐 뿌리까지 - (1) +21 21.01.07 10,290 256 18쪽
43 Act 43. 마지막 퍼즐 +15 21.01.06 10,777 272 20쪽
42 Act 42. 너 인성 문제 있어? +23 21.01.05 10,472 31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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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Act 38. 마음의 치료사 - (2) +14 21.01.01 11,204 304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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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Act 36. 마녀의 남자 - (3) +24 20.12.30 12,157 288 18쪽
35 Act 35. 마녀의 남자 - (2) +16 20.12.29 12,089 295 20쪽
34 Act 34. 마녀의 남자 - (1) +14 20.12.28 12,875 292 20쪽
33 Act 33. 꿈이 무엇입니까? +12 20.12.27 12,731 303 19쪽
32 Act 32. 액션은 이렇게 하는 겁니다 - (4) +13 20.12.26 12,688 294 20쪽
31 Act 31. 액션은 이렇게 하는 겁니다 - (3) +12 20.12.25 12,409 285 17쪽
30 Act 30. 액션은 이렇게 하는 겁니다 - (2) +20 20.12.24 12,701 308 20쪽
29 Act 29. 액션은 이렇게 하는 겁니다 - (1) +18 20.12.23 13,151 30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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