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배우로 전직을 명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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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운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11.27 17:58
최근연재일 :
2021.01.19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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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10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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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47. 드림팀 - (2)

DUMMY

“오케이, 이것으로 리딩을 마치겠습니다.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지휘자인 황태수의 목소리가 미팅룸을 갈랐다.

그와 동시에 리딩에 참여했던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넨다.


“선배님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무슨.”

“역시 선배님 연기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이시환의 입꼬리가 길게 휘어진다.

다소 오그라드는 말이지만, 진심이었다.

연하윤이나 한세강과는 결이 다르지만, 그의 연기엔 그들과는 다른 맛이 있었다.

특히 배역을 연기하는 느낌이 아닌 배역 자체를 자신으로 만드는 메소드 연기는 연기를 보는 이로 하여금 색다른 명품 연기를 선사했다,

이시환은 피식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많이 배우기는. 오히려 내가 지혁이 너 보고 배우고 있다. 세상에 감정 없는 사이코패스 배역을 어쩜 그렇게 잘 살리냐?”

“형, 혹시 대본 드시면서 연기하는 거 아니죠? 아니, 대사 칠 때마다 진짜 사이코패스 보는 거 같아서 대사 치다가도 깜짝깜짝 놀란다니까요!”


이시환은 물론 상범이 역시 혀를 내두르며 내 쪽으로 다가온다.

보다 훨씬 멋있게 연기했던 나를 보고 칭찬을 건네는데 괜스레 낯빛이 뜨거워진다.


“너무 비행기 태우시는 거 아닙니까?”

“비행기는요. 지혁 씨처럼 연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하윤 씨.”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어요?”


리딩 시작 전에 보였던 화사한 미소와 함께, 연하윤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삭막한 사내들 사이를 풀어주는 미인의 등장에 칙칙했던 분위기가 금방 가신다.


“연 선배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상범 씨도 오랜만이에요. 지혁 씨도 연기 많이 늘었지만, 상범 씨도 저번보다 연기 엄청 늘었던데요?

“다 선배님이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제가 뭘 한 게 있다고요.”


상범이의 인중이 길게 늘어진다.

하긴 연하윤의 미모를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지만.


“으헤헤.”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야?

하지만 상범이는 그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시환 선······”


덜덜.


연하윤의 팬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긴장할 줄이야.

이시환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거기에 손끝까지 희미하게 떨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어지간히 긴장한 모양이다.

보고 있는 내가 다 안쓰럽게 느껴진다.


“하윤 씨. 아까 인사 못 드렸죠? 여기 이시환 선배님이세요.”

“이시환 선배님! 저도 꼭 한번 뵙고 싶었는데, 이제야 겨우 뵙네요. 말씀 많이 들었어요. 연하윤입니다, 선배님.”

“이, 이, 이시환입니다!”


딱딱하게 굳은 이시환이 경례라도 할 기세로 인사를 건넨다.

완전히 굳어버린 채 긴장하는 모습을 보니, 사단장을 마주한 이등병과도 같은 느낌인데.

아까 눈치받은 것도 있으니 조금 도와 드려볼까?


“하윤 씨가 너무 예뻐서 긴장하신 모양이에요.”

“하여간 지혁 씨도 참.”

“선배님이 하윤 씨의 팬이시래요. 전에 카네이션 촬영 때, 정말 많이 도와주신 제 은인 같은 분이신데 이렇게 연이 또 닿네요.”


은근슬쩍 이시환을 띄워주자 지켜보던 연하윤의 눈동자가 큼지막하게 커진다.


“정말이요? 이거 어쩌죠? 저야말로 선배님 정말 팬이었는데, 선배님 연기에 정말 감명받아서 선배님이 나온 작품도 많이 찾아봤거든요!”

“제, 제 작품을요?”

“말씀 편하게 해주세요. 저 선배님 정말 광팬이에요. 선배님 나오신 작품 중에 특히 <설원의 추억>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이시환의 입가가 헤벌쭉 벌어진다.

전에 팬미팅 당시에 나를 찾아준 팬들과도 같은 모습인데, 그 모습이 정말 행복해 보이기까지 하다.


“하윤 씨! 이제 준비해야 해!”

“아, 네! 금방 갈게요. 선배님 죄송합니다. 오후에 라디오 촬영이 있어서 먼저 들어가 볼게요.”

“지, 지금···요?”

“네, 촬영까지 얼마 안 남았거든요. 정말 죄송합니다. 대신 제가 다음에 우리 광주행 배우들 모인 자리에서 식사 대접할게요.”


눈썹을 오므리며 연하윤은 못내 미안한 기색을 보인다.

하지만 이미 그 모습은 이시환의 눈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입꼬리가 귀에 닿을 것처럼 활짝 벌어진 모습을 보니, 벌써부터 회식 자리를 눈에 그리고 있는 모양이다.


“그럼 선배님도 상범 씨도 다음 촬영 때 뵐게요. 지혁 씨 이따가 봐요!”


싱그러운 인사를 끝으로 연하윤은 미팅룸을 빠져나갔다.

옆을 보니 시커먼 사내 둘이 그녀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멍하니 손을 흔들고 있다.

인중을 늘어뜨리며 웃으며 입을 헤벌쭉 벌리고 있는데 파리가 들어가도 모르겠다.


“입에 파리 들어가겠습니다, 선배님.”

“야, 들었냐?”

“뭐를요?”

“하윤 씨··· 아니, 하윤이가 내 팬이래.”

“어시스트 좋았죠?”


덥석!


이시환이 돌연 내 손을 잡아 올린다.

이윽고 그는 이제껏 본 것 중에서 가장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소리쳤다.


“아유, 이 기특한 녀석! 뭐 먹고 싶냐? 오늘 내가 쏜다 가자!”

“오, 정말입니까?”

“그래, 하윤이랑 안면도 텄는데 뭐가 아까울까. 가자, 이런 날 술 한잔해야지!”

“그렇다면 오늘 양주로 달립니까?”

“양주 좋지 가자!”


갑작스러운 상범이의 양주 선언에도 이시환은 전혀 거침이 없다.

양주라 솔직히 나도 끌리긴 하지만.


“죄송합니다, 선배님.”

“응? 왜 무슨 일 있어?”

“저도 오늘 촬영이 있어서요.”

“촬영이요?”


상범이와 이시환의 눈동자가 내게로 고정된다.

나는 멋쩍은 표정으로 뺨을 긁적이고는 말을 덧붙였다.


“아니, 촬영은 아니고 스케줄이 맞겠네요.”

“엥? 촬영도 아니면··· 뭐 행사 그런 거야?”

“라디오예요.”

“라디오요? 어, 아까 연하윤 선배님도 라디오라고 그러셨는데······”

“지혁 씨!”


멋쩍은 표정으로 한쪽 뺨을 긁적이는 사이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부른다.


“지혁 씨! 서둘러야 해요. 하연 씨는 벌써 출발했어요!”

“네, 금방 가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뵐게요 선배님.”


나는 멀리서 부르는 김수아를 따라 황급히 자리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뒤늦게 정신을 차린 이시환이 미팅룸이 떠나가라 소리친다.


“정지혁 이 부러운 놈아!”


아니, 스케줄은 제가 맞춘 게 아니잖아요···


***


발단은 며칠 전에 지현이의 병문안을 갔을 때였다.


“그게 그렇게 재밌냐?”

“조용히 해봐, 이거나 듣게. 다른 사람들 사연도 들려주고 이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알아?”


지현이는 다운받은 라디오 어플의 볼륨을 키운다.


‘그러고 보니··· 매일 이 시간만 되면 라디오를 들었네.’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로 라디오의 과거의 영광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는데, 지현이는 오후 4시만 되면 라디오를 켜곤 했다.

특별한 방송은 아니었다.

DJ가 틀어주는 노래와 간단한 사연, 그리고 출연한 연예인들에 대한 이야기로 약 2시간 남짓하게 흘러가는 것이 전부다.

여느 방송과 특별하게 다른 방송은 아니지만, 지현이는 꼭 이 방송을 듣곤 했다,


“아하하! 대박 완전 웃겨, 오라방도 이거 들어봐.”


사연을 읽는 DJ의 사연을 듣고 지현이는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행복한 모습으로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 자연스레 호기심이 끓어오른다.


‘라디오라··· 조금 놀래켜 줄까?’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이다.


“아유, 누추한 곳에 귀한 분들이 오셨네.”

“아닙니다, 선배님.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요, 긴장하지 말고 오늘도 뽜이팅 있게! 재밌게! 한번 달려봅시다.”


김수아에게 물어보고 이곳저곳 알아본 결과.

지현이가 매일 같이 듣는 라디오 방송에 패널로 출연할 수 있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 출연 의사를 듣고 담당 PD와 작가는 정말 뛸 듯이 기뻐했다고.

TV 방송 프로그램에 비해 게스트에 들어가는 예산도 적고 퀄리티도 떨어지니 이 시국에 나의 출연은 가뭄에 단비와도 같다고 한다.

어찌 되었든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는 것은 성공했지만, 여기엔 내가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하윤 씨는 전에 나와본 적 있죠?”

“네, 선배님. 전에도 선배님 덕에 방송 잘 마무리했었는데 오늘 하루 더 선배님께 신세 지겠습니다.”

“아유 신세는 무슨. 하여간 하윤 씨는 얼굴도 예쁜데 마음씨는 더 곱다니까. 다른 후배들이 이렇게 말 좀 예쁘게 하는 모습을 배워야 할 텐데.”


채널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DJ 봉용수가 환한 웃음과 함께 칭찬을 늘어놓는다.

그와 동시에 내 옆에 있던 예상 밖의 변수.

연하윤의 입가에도 짙은 미소가 번진다.


라디오의 출연이 확정되는 것은 좋았지만, 나 혼자만의 출연은 아니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연하윤 역시 라디오의 일일 게스트로 함께하게 된 것이다.


“곧 슛 들어갑니다! 모두 준비해주세요.”

“자, 그럼 오늘도 힘차게 가봅시다. 지혁 씨랑 하윤 씨 오늘 잘 부탁해요!”

“네, 선배님!”


4시가 가까워짐에 따라 분위기가 급변한다.

라디오 방송은 녹화 방송도 존재하지만, 이 방송의 경우 100% 생방송으로 흘러간다.

시청자들의 사연을 미리 받아 그것을 읽어주는 것이 메인이긴 하지만, 사연을 직접 작성한 시청자와 전화 연결을 통해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는 경우도 비일비재한 덕분이다.


“오늘 사연은 몇 개 추려 봤는데, 용수 오빠 한번 체크해주세요.”

“흠, 이거랑···”


봉용수는 익숙한 손짓으로 몇 개의 사연을 골라낸다.


“아, 이분 또 사연 보내주셨네.”

“아 그분이요? 엄청 애청자시잖아요. 거기에 사연도 엄청 잔잔하고 감동적인 부분도 많고요.”

“이렇게 목소리 좋은 배우분들이 두 분이나 계시는데 오늘 그분 사연으로 한번 가볼까?”

“좋죠. 누구 드릴 거예요?”

“이분 사연은 잔잔하게 약간 슬픈 분위기도 있으니까. 지혁 씨. 지혁 씨 이 사연 맡아볼래요? 애청자시기도 하고 마음 같아선 내가 직접 읽어드리고 싶긴 한데··· 아무래도 지혁 씨 목소리가 훨씬 더 좋을 것 같아서요.”


봉용수는 씨익 웃으며 나를 향해 사연이 적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종이를 받고 사연을 확인하던 눈동자가 크기를 더한다.

봉용수가 넘겨준 사연.

내용도 그렇고 사연을 보낸 이름으로 적힌 이니셜도 그렇고, 보자마자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사연은 내가 너무 잘 알고 있는 이의 사연이다.


***


“아, 하필!”


따스하게 살랑이는 여름 바람이 너무 포근했던 탓일까?

점심을 먹고 한창 너튜브를 보던 도중 깜빡 잠들고 말았다.

저녁이 되기 전에 다시 일어나긴 했지만, 눈을 뜬 시간은 5시가 조금 넘은 시간.

하필이면 매일 같이 즐겨듣던 라디오가 시작하고 한 시간은 족히 넘은 시간이다.

정지현 낮잠에 빠져버린 스스로를 원망하며 황급히 스마트폰의 어플을 켰다.


“네, 다음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청취자분들의 사연을 읽어드리는 시간입니다. 오늘의 테마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특별한 우리 가족’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 봉용수와 여기 있는 게스트분들이 직접 고르고 고른 사연을 엄선하여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라디오는 한창 진행 중이다.

앞에 부분은 못 들은 탓에 나중에 못 들은 부분을 다시 들을 방법을 생각하고 있던 찰나.


“첫 번째 사연은요. 오늘의 특별 게스트. 배우계의 블루칩으로 떠오르는 명배우 정지혁 씨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엉?”


너무 당황해서 잘못 들은 걸까?

분명 굉장히 익숙한 이름이 흘러나왔는데.

잘못 들은 걸까?

정지현은 귀를 톡톡 두드리고는 다시 라디오에 집중했다.


“제가 오늘 고른 사연은···”

“설마··· 진짜 오라방이야?”


아니···

오라방이 왜 거기서 나와···?


“JJH님의 사연입니다.”

“엣?”


화악!


소리가 들릴 정도로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JJH’

그것은 자신의 이름인 정지현의 이니셜로 자신이 직접 작성한 사연이지 않은가.

자신의 사연을 하필 오라방이?

지금이라도 라디오를 꺼야 하나 수만 가지 망설임이 오가는 사이.


“안녕하세요. 봉용수의 4시 데이트의 애청자 JJH입니다. 불치병을 앓고 있는 탓에 병원에서만 지내는 저를 보고 걱정이 많은 오빠라, 기회가 된다면 그동안 오빠에게 터놓지 못했던 말을 건네고 싶어서 이렇게 사연을 보내드리게 되었습니다.”


오라방이 사연을 읽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특별하고도 특별한 저희 오빠의 사연을 소개할까 합니다.”

“아으···”

“저희 오빠는 배우입니다.”


***


“원래 오빠의 직업은 군인이었어요. 20살 때 어차피 갈 군대 일찍 가겠다고 바로 입대하고선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어떤 부대에 간 건 모르겠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위험한 부대였나 봐요. 1년에 한두 번 휴가를 나올 때마다 상처나 흉터가 하나씩 늘어있었거든요.”


지현이의 사연에는 나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내가 군에 있었던 이야기부터, 부득이하게 전역을 하고 후유증으로 병원에 입원한 이야기까지 휴가 때마다 나오던 모습까지 기억하고 있던 것인지.

그에 대한 내용은 물론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 모를 내 연금에 관한 이야기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8년이나 군대에 있다가 다쳐서 나온 거라 나라에서 연금이 나온다던데 전 잘 모르겠어요. 오빠가 돈에 대해선 한 번도 말한 적이 없거든요. 나중에 알게 된 건데 그 연금도 제 병원비로 들어가고 있더라고요. 그래도 연금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해서 자기가 모아두었던 돈까지 제 병원비로 쓰고 있었대요.”


일부러 한 번도 말한 적 없는 이야기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

괜히 알려주면 더 미안해할까 봐 말 안 한 것이었는데.

다 알고서도 모르는 척했던 모양이다.

사연을 읽는 마음에 괜스레 뭉클한다.


“사실 오빠가 군대에 간 이유도 배우가 된 이유도 아마 돈 때문이었을지도 몰라요. 제가 매일 병원에만 있어서 병원비가 너무 정말 많이 나오는데, 그걸 오빠 혼자서 감당하는 것이 쉬울 리가 없었을 테니까요.”


지현이의 이야기는 그간의 내 행보도 담고 있었다.

연주를 구했던 사건, 저예산 영화의 단역으로 출연하고 AND에 합류했던 것까지.


사연이 점점 더 이어질수록 부스 너머로 다른 스태프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이 사연 속의 오빠가 나라는 것을 눈치를 챈 것일까?

어느새 연하윤은 나를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오빠가 이렇게 훌륭한 배우가 돼서 정말 너무 기쁩니다. 오늘 제 사연을 읽어주실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제 사연이 선발된다면, 이 자리를 빌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사연을 읽는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먹먹해지는 가슴을 애써 누르며 나는 지현이가 내게 전하는 말을 소리 내어 읽었다.


“오라방, 내가 아파서 정말 미안해. 내가 불치병이라 오빠한테 맨날 폐만 끼치는데, 나 하나 살리자고 남들 2년밖에 안 가는 군대에서 8년 동안이나 있었는데 후유증만 얻어 전역하고, 그동안 진짜 고생 많았지?”


고생은 무슨.

매일 병원에만 누워 있고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했는데.

꼭 낫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렇게 긴 시간이 지나도록 그 약속하나 지키지 못했는데.

내가 무슨 고생이야.


“이제는 오라방 꿈에 겨우 닿았으니까, 돈 때문에, 나 때문에 힘든 일 도맡아 하면서 자기 꿈 포기하지 말고, 꼭 성공해서 오라방 꿈 이뤘으면 좋겠다.”


가장 힘든 것은 내가 아니라 자신일 텐데.

불치병 때문에 밖에도 자유롭게 나가지도 못하고, 남들 다 가는 학창 시절도 못 보낸 채, 병원에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으면서.

바보같이 왜 나를 걱정하고 신경 쓰는 거야.


“우리 오라방 내가 많이 아끼고 사랑해.”


사연을 읽는 목소리가 기어들어 간다.

애써 울음기를 지우고 성대를 타고 나온 소리가 마이크 너머로 가득히 울려 퍼진다.


“네, 정말 감동적인 사연이네요.”


시큰해진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간다.

봉용수의 진행에도 불구하고 나는 물론 부스 밖의 스태프들과 연하윤까지 조용히 눈물을 훔치고 있다.

진행하는 봉용수도 마찬가지다.

헤드셋을 잡고 목소리를 이어가면서도 조용히 손가락을 들어 올려 눈꼬리 끝에 고인 물방울을 닦아내고 있다.


“오빠의 꿈을 응원하는 정말 감동적인 사연이었습니다. 지혁 씨는 어떠세요?”

“사연에 너무 몰입해서 읽었는지 제가 다 눈물이 나려고 할 정도네요.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오빠분께서 부디 이 사연을 꼭 들었으면 하네요. 괜찮다면 지혁 씨도 이 사연을 보내주신 JJH님께 한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본래 계획에는 없던 돌발 상황.

소리 죽여 놀라며 봉용수를 바라보지만, 봉용수는 괜찮다고 입 모양으로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밖의 스태프들 역시 OK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들의 배려 아닌 배려에 나는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저도 아픈 여동생을 둔 입장으로서 굉장히 공감이 되는 사연이었습니다. 다른 분들께서 괜찮으시다면, 저야말로 이 자리를 빌려 한 말씀 전해드리고 싶네요.”


무슨 말을 전해야 할까.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지 머릿속이 말끔히 정리되지 않는다.

모두의 시선 끝에 나는 차분히 눈을 감고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진심을 꺼냈다.


“평범하게 살게 해준다고, 반드시 낫게 해준다고 약속했는데, 벌써 1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


끝내 참지 못한 눈물이 발갛게 달아오른 볼을 타고 또르륵 흘러내린다.

연기가 아닌 가슴에 묻어둔 진심이 폐부를 거쳐 호흡을 타고 소리가 되어, 마이크를 집어삼킨다.


“오빠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낫게 해줄 테니까. 우리 남매 절대 포기하지 말고.”


1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차마 전하지 못하고 숨겨 두었던 내 진심을.

이 자리를 빌려.

네게 전해본다.


“우리 꼭 행복해지자. 내 동생 사랑해.”


작가의말

수정량이 적어 얼마 안 걸릴 줄 알았는데 결국 30분이나 지각하고 말았네요.

아무 말 없이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늦은 만큼 더 공을 들였습니다.

부디 독자님들께서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좋겠네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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