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그녀들의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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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희
작품등록일 :
2020.11.27 21:05
최근연재일 :
2021.06.24 22:41
연재수 :
2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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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08 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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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207. 본심과 불화

DUMMY

"으으···."


유진은 펜을 쥐고는 인상을 쓴다.

책상 위에 펼친 노트에 뭔가를 적으려 한다.

하지만 한 글자도 쓸 수 없다.


"어려워~!"


유진은 펜을 내동댕이친다.

그리고 양팔과 다리를 버둥거린다.


"왜 이런 걸 써야 하냐고~!"


분함을 억누르지 못하고 소리친다.

그 직후, 침묵이 이어진다.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야?"


결국 현자타임에 빠진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방문이 부서질 정도로 쿵쿵 두드린다.


"시끄럿!"


혜민이다.

깜짝 놀란 유진은 토끼눈으로 방문만 바라볼 뿐이다.

반응이 없는 게 불만인지, 방문이 벌컥 열린다.


"이 밤중에 무슨 난리야?"


혜민은 잔뜩 열받은 모양이다.


"어, 그게···."


유진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한다.


"기, 기획서가 잘 안 써져서 그만···."


본인이 말하고도 창피하다.

유진은 얼굴을 붉히면서 시선을 떨군다.


"으이구."


혜민은 혀를 찬다.

무척 어처구니가 없다는 반응이다.


"네가 머리 쓰는 일을 힘들어하는 건 알아. 하지만 밤중에 소리 지르는 건 아니잖아?"


"으, 응···."


유진은 고개를 주억거린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잘못한 건 자신이니까.


"무슨 소란이야?"


열린 방문으로 수지가 고개를 내민다.

유진과 혜민이 벌인 일이 신경 쓰인 걸까?


"얘가 기획서를 못 써서 스트레스가 쌓인 거 같아."


"흐응~."


방으로 들어선 수지가 침대 끝에 걸터앉는다.


"확실히 확실한 계획을 세우는 게 쉽지는 않지."


"그래?"


혜민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는 경우는 드물잖아."


그럴 바엔 차라리 대충 뼈대만 만들고 진행한다.

그리고 일을 진행하면서 자리를 잡는 게 낫다는 게 혜민의 생각이다.


"기획서도 적당히 쓰면 되지 않아?"


"뭐, 그것도 한 방법이긴 해."


수지는 다리를 꼬면서 허공을 쳐다본다.


"하지만 구구주먹식으로 일을 했다가 어떤 꼴이 났는지 너도 알잖아."


"그, 그야···."


대답이 궁해진 혜민은 유진을 슬쩍 쳐다본다.

하지만 할 말이 없는 건 유진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 기획서를 작성하게 되었다.

누구 탓을 할까?


"솔직히 나도 유진이의 웹예능에는 불안감을 느끼곤 했어."


말 나온 김에 수지는 본심을 털어놓는다.


"너무 계획성이 없어서, 불필요한 행동이나 지출이 많았잖아."


"윽!"


유진은 한 방 먹었다는 듯이 몸을 움츠린다.

확실히 수지의 지적대로다.

오늘만 해도 계획을 변경한 탓에 지후에게 폐를 끼쳤다.


"이참에 기획서를 쓰면서 방향성을 잘 잡는 게 좋겠어."


"그건 아는데···."


말끝이 흐려진다.

수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하지만 혼자서 방향성을 정한다는 게 유진에게는 무척 어려웠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걸."


하고 싶은 것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많다.

그 와중에 딱 하나만 골라서 정하는 게 몹시 어렵다.


"하지만 망설이기만 했다가는 아무것도 못 한다고."


수지 옆에 앉은 혜민이 말한다.

평소답지 않게 진지한 말투다.


"그럼 이것만 대답해봐."


수지가 검지를 세운다.


"유진이 너한테 가장 중요한 건 뭐야?"


"어, 어?"


예상치 못한 질문에 유진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무슨 뜻이야?"


혜민 역시 의도를 눈치채지 못한 눈치다.


"유진이가 하고 싶은 게 많다는 건 알겠어."


수지가 차분하게 말한다.


"하지만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어."


그렇기에 우선순위를 정해두는 게 좋다.

수지는 그렇게 말을 잇는다.


"가장 중요한 거라···."


유진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그런 거,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


"···그건 문제 있는 거 아니야?"


혜민이 어처구니없다는 시선을 보낸다.


"어쩔 수 없잖아. 하고 싶은 게 많으니까."


"그런 문제가 아니야."


수지는 딱딱한 표정으로 유진을 바라본다.


"넌 네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게 아닐까?"


"···어?"


유진은 허를 찔렸다는 듯이 눈을 깜빡거린다.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모른다.

그걸 타인에게서 들었다.

이 이상으로 충격받을 일이 또 있을까?


"그게 무슨 소리야?"


혜민은 인상을 찌푸린다.

그런 말을 자신이 듣는다고 하면 바로 화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충격적인 발언이다.


"그런 말을 대놓고 하다니, 너답지 않아."


"그런가?"


수지는 어깨를 으쓱거린다.


"하지만 모른 척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수지의 시선이 다시 유진에게로 향한다.


"뭘 좋아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뭐든 하고 싶은 걸로 보였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수지의 얼굴을 유진은 빤히 쳐다본다.

수지가 아무 생각도 없이 저런 말을 할 리가 없다.


"···여태 그런 식으로 날 보고 있었어?"


유진이 어렵게 입을 연다.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수지는 그렇게 말하면서 일어난다.


"내 말이 너한테 상처가 된다는 건 나도 알아."


그래도 지금의 유진에게는 꼭 필요한 말이다.

수지는 그 말을 남기고는 방을 나선다.


"쟤도 오늘따라 이상한데?"


수지가 사라지자, 혜민이 의아한 시선으로 방문을 바라본다.

어른스러운 수지가 먼저 나서서 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내가 한심하게 보여서 그런 거 아닐까?"


유진이 잔뜩 기가 죽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하아···."


혜민이 거칠게 머리를 긁적인다.

수지의 말에 또 상처받았네.


"또 멘탈이 작살났어? 지금의 네 모습이라면 나도 한마디 하고 싶다고."


"내가 뭘?"


발끈한 유진이 혜민을 노려본다.


"왜 내가 너나 수지에게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데!?"


"핫!"


그 말에 혜민도 화가 났는지, 벌떡 일어선다.


"그래? 나나 수지가 널 생각해서 해준 말이 그렇게 서운해? 알았어!"


앞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

혜민은 그 말만 남기고, 방문을 박차고 나가버린다.

혼자 남은 유진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닫힌 방문을 바라본다.


"이게 아닌데···.'


실수했다.

어떻게든 수습을 해야 한다.

하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에엥···."


결국 책상에 엎드린 채로 울어버린다.




"누가 가서 유진이랑 미나 불러와."


아침을 준비하던 하은이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식탁에 있던 혜민과 수지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내 말 못 들었어?"


하은이 돌아보면서 다시 말한다.

그래도 혜민과 수지는 모른 척할 뿐이다.


"얘들이 정말···!"


하은이 한마디 하려는 그때, 연아가 주방으로 들어선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어, 그래."


연아의 등장에 하은의 표정이 풀어진다.


"마침 잘 왔어. 가서 유진이랑 미나 좀 데리고 와."


"네? ···아, 네."


연아는 식탁에 앉아 있던 혜민과 수지를 흘끔 쳐다본다.

두 사람 다 뚱한 표정이다.

작게 한숨을 내쉰 연아는 주방을 나온다.

그리고 위층으로 향한다.


"미나야, 유미나. 일어났어?"


미나의 방문을 노크한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방문이 열린다.


"···응?"


연아의 노크에 잠에서 깼는지, 미나는 막 일어난 모습이다.


"아침 먹으래."


"알았어. 곧 내려갈게."


그러고는 방문이 닫힌다.

다음에는 유진 차례다.


"유진아, 밥 먹으래."


노크하면서 부르지만, 방문은 열리지 않는다.


"어라?"


묵묵부담에 연아는 당황한다.

평소라면 바로 문이 열리면서 유진이 나왔을 텐데.


"야, 정유진!"


왠지 불안감이 든다.

그런 기분을 느낀 연아는 문을 세게 두드린다.

잠시 후, 작게나마 문이 열린다.


"···왜?"


작게 열린 틈으로 유진의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너, 괜찮아?"


문틈 사이로 보이는 방안은 깜깜하다.

아침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렇기에 연아는 불안해진다.


"···응."


유진은 나지막이 대답만 할 뿐,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


"아침밥은 됐다고 하은 언니에게 전해줘."


그렇게 말한 유진은 방문을 닫는다.

방문이 닫힐 때까지 연아는 말도 붙이지 못한다.


"···쟤는 또 왜 저래?"


주방에 있던 혜민과 수지도 이상하긴 했다.

어젯밤에 혜민과 트러블이 있다는 건 알아챘다.

하지만 유진이 이렇게까지 우울해할 줄이야.


"왜 그래?"


미나가 방을 나오면서 묻는다.


"아니, 유진이는 아침 안 먹겠대."


"웬일이래?"


미나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제까지 유진이 아침을 안 먹은 적이 있던가?


"뭐, 유진이도 컨디션이 안 좋을 때도 있겠지.”"


그렇게 얼버무리고는 미나를 데리고 주방으로 향한다.


"왔어? ···유진이는?"


"아침 안 먹는대요."


"별일이네."


하은은 의외라는 얼굴로 천장을 바라본다.

저승사자인 하은은 아는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아주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닌 이상, 그 능력을 쓰려고 하지 않는다.

특히 소녀들의 사생활을 존중해서, 한 번도 생각을 읽어낸 적이 없다.

지금도 그렇겠지.


"잘 먹었습니다."


그 사이, 식사를 마친 혜민이 식기를 정리한다.

설거지까지 마친 후, 주방을 나선다.


"조연아."


주방을 나가기 직전, 연아를 부른다.


"지금 사무실에 사장님 계실까?"


"지금?"


연아는 벽시계를 살핀다.

오전 7시 51분.

주말의 아침으로는 이른 시각이다.


"아마 계실걸."


하지만 지후는 의뢰 마감일을 목전에 두고 있다.

아마 새벽부터 나와서 작업하고 있지 않을까?


"흐응~."


혜민은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주방을 나선다.

그 뒷모습을 조용히 지켜본 연아는 자신 몫의 식사를 챙긴다.


"안 말려?"


먼저 식탁에 앉은 미나가 묻는다.


"왜 붙잡아야 하는데?"


연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고는 식탁에 앉는다.

그러자 미나가 잔뜩 놀란 얼굴로 연아를 바라본다.


"의외네. 너라면 당장이라도 따라갈 줄 알았는데."


"혜민이 쟤가 공공연하게 말할 정도면 상담이라도 받을 생각일걸."


그런 거라면 굳이 따라갈 필요가 없다.

연아는 말을 덧붙인다.


"하긴 그렇네."


혜민이 지후에게 개인적인 얘기를 하려고 했다면 여기서 말할 리 없다.

미나도 그 점을 알아차린다.


"그런데 사장님께 상담할 일이 뭐가 있을까?"


"글쎄."


연아는 어깨를 으쓱거린다.

집히는 건 있다.

하지만 그 얘기를 하는 건 꺼림직하다.


"수지 넌 뭐 아는 거 없어?"


미나의 시선이 수지에게 향한다.


"모르겠는데."


짤막하게 대답한 수지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빈 밥공기에 밥을 꾹꾹 눌러 담는다.


"무슨 일 있어?"


"아니."


미나의 질문에 대충 대답한 수지는 식사를 재개한다.


"다들 이상해."


미나는 수지를 기묘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그 시선에 수지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미나 너, 아침밥부터 먹어."


하은의 말에 미나는 부랴부랴 일어선다.

그리고 식사를 챙긴다.


"오늘 예정은 있어?"


연아의 질문에 수지가 고개를 든다.


"딱히 없는데. ···있다고 하면 다음 경연 준비일까나?"


수지는 허공을 쳐다보면서 대답한다.

이제 다음 주가 지나면 「베스트 모델」의 마지막 경연이다.


"우승할 생각이야?"


"어떨까?"


수지는 머리를 기울인다.

지고 싶은 건 아니다.

하지만 이기면 한 브랜드의 전속 모델이라는 부상이 딸려온다.

골치 아프게도.


"그 브랜드, 인지도가 꽤 있던데. 그 정도면 전속 모델을 하는 게 낫다고 봐."


"뭐, 아이돌을 그만두라는 말만 안 하면 고려해보겠지만."


그렇게 연아와 수지는 대단찮은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탐색전이 치열하다.


"역시 우승하는 게 좋으려나?"


"너 정도 되는 사람이 지면, 그 이상으로 꼴사나울 일이 또 있어?"


"그것도 그렇네."


그렇게 대답한 수지는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는다.

방어가 두텁네.

연아는 내심 혀를 찬다.

이걸로 탐색전은 성과 없이 끝난다.

그렇다면···.


"연아 너, 이따가 사무실 갈 거야?"


자기 몫의 식사를 챙긴 미나가 다시 자리에 앉는다.


"응. 작곡 공부하기에는 큰 도움이 되니까."


연아는 생각에 잠긴다.

몇 시에 나가야 할까?

너무 일찍 가도 곤란하지만, 늦게 가도 안 된다.

머릿속으로 시간을 재면서 연아는 밥을 뜬 숟가락을 입 안에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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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209. 배달 레스토랑에서의 근무 21.06.23 36 2 11쪽
208 208. 화해를 위한 방법 21.06.21 27 2 11쪽
» 207. 본심과 불화 21.06.08 49 2 12쪽
206 206. 라테아트 도전 21.06.06 45 3 12쪽
205 205. 촬영 장소 물색하기 21.06.05 55 2 12쪽
204 204, 새로운 웹예능 기획 21.06.04 47 2 12쪽
203 203.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 21.06.03 43 2 12쪽
202 202. 최고의 생일선물 21.06.01 36 2 13쪽
201 201. 이미지 체인지 21.05.31 29 2 13쪽
200 200. 알면서도 속아주기 21.05.30 42 2 12쪽
199 199. 연속적 트러블 21.05.27 57 2 13쪽
198 198. 생일파티 준비 21.05.26 37 2 12쪽
197 197. 스텝 바이 스텝 21.05.25 35 2 12쪽
196 196. 혜민의 또 다른 목표 21.05.24 40 2 12쪽
195 195. 혜민에게는 극비비밀 21.05.22 36 2 11쪽
194 194. 신데렐라 콤플렉스의 원인 21.05.21 30 2 12쪽
193 193. 신데렐라 콤플렉스 거부론 21.05.20 37 2 12쪽
192 192. 선물을 위한 밑준비 21.05.19 32 2 11쪽
191 191. 도시락 소란 21.05.17 40 2 14쪽
190 190. 집안일 촬영하기 21.05.16 71 2 12쪽
189 189. 흥정과 감상회 21.05.15 59 2 11쪽
188 188. 오전 집안일 21.05.14 40 2 11쪽
187 187. 집안일 계획 21.05.13 35 2 11쪽
186 186. 바쁜 일정이 정해지다 21.05.12 40 2 13쪽
185 185. 새로운 관심사 21.05.11 72 2 12쪽
184 184. 선물 결정하기 21.05.10 69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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