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격병과 장미와 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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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비르소
작품등록일 :
2020.11.27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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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3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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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3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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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랑가르드 교전 - 1

DUMMY

아벨라르는 497812 드브리에 착륙하여 재정비를 하고 있었다.


도주한 제국 비공함들이 지원군을 이끌고 돌아올 수도 있어서 탐지 감도는 최대로 해놓고 있었지만, 이젤린은 일부러라도 모두를 풀어주고 싶었다. 볼트를 너무 조이기만 하면 못쓰게 마련이다. 게다가 그들은 인간이니까.


이젤린은 아벨라르의 소녀들에게 자유시간을 주기로 했다. 다만 그녀가 허락한 자유시간은 아벨라르의 사이다(빛을 이용한 탐지 및 거리 측정)가 무언가를 발견할 때까지만 이었다. 그동안 이젤린은 함장석에서 내려와 비공함 안을 돌아다녔다.


세리,


부족한 잠을 잤다. 이젤린은 그녀가 잘 자도록 손수 그녀의 침실 방문을 닫아주었다. 그녀가 자는 모습은 코도 안 골고 자세도 반듯하여 마치 영안실의 시체와도 같았다. 잘 때도 재미없다고 생각했지만, 이젤린은 세리가 잘 자고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레뮤와 코헤르,


탐지 장치를 확인하며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둘은 공화국의 전혀 다른 곳에서 태어났고, 입대 전까지는 한 번도 만난 적도 없었지만, 취미부터 시작해서, 식성이나, 말투든 모든 것이 비슷했다. 너무나도 닮아서 어쩌면 도플갱어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크니우스 장관은 두 사람이 하도 비슷하여 가끔 헷갈려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이젤린이 바로잡아 주곤 했다.


카티야와 에디제,


카티야는 다시 총기를 분해하여 점검하고 있었다. 괜찮다고 하여도 그녀는 막무가내였다.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도록 이젤린은 그녀가 하는 대로 놔두었다.


에디제는 방아쇠를 당기다가 물집 잡힌 곳이 아프다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바쁜 카티야를 대신하여 이젤린이 그녀의 물집을 터뜨리고 약을 발라주었다. 이젤린은 이런 것도 못 참고 징징대냐며 면박을 주었지만, 에디제는 이에 지지 않고 다음 비행 때는 꼭 의무병을 뽑자고 건의했다.


스윗 로즈베리는 여전히 기계실에서 마성석과 씨름하고 있었다.


“나머지는 어디 갔지?”


“아까 밖으로 나갔어요. 리아 하사가 다 데리고요.”

에디제가 말했다.



497812는 여행가이자 소설가인 안나이 크레부스의 책으로도 유명하지만, 꽃들이 흐드러진 데다가 작은 폭포까지 있어서 여행가들의 숨겨진 명소였다. 엘젠리카는 여행을 좋아해서 여기에 꼭 한번 와 보고 싶었는데, 오늘 그 소원을 이루고 있었다.


“와 예쁘다!”


엘젠리카가 수피아 꽃이 흐드러진 들판을 어린아이처럼 뛰어다녔다.


“저는 제대하면 남자친구부터 사귀어서 여기저기 많이 다닐 거에요.”


“나중에 내 드브리에 엔젤이 좋아하는 수피아 꽃을 많이 심어놓을게. 남친하고 놀러와.”


“싫은데요? 더 재밌는 데로 가야지.”


“그래? 어디 하고 싶은 대로 해봐. 대신 그놈은 엔젤하고 사귀기 전에 나하고 싸워서 이겨야 돼. 알았지?”


“어련하시게요?”


리아가 팔을 깍지 낀 채로 드러누웠다. 푸른 하늘에 구름이 뭉게뭉게 흘러갔다. 저 아래에서 보는 하늘보다 드브리가 많지 않아, 맑게 쭉 뻗어 있는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엘젠리카는 페리에게 꽃으로 된 왕관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엔젤.”


“왜요, 하사님?”


“만약에 말야. 우리도 하늘 위로 시커먼 드브리들 말고 이 맑디 맑은, 진짜로 구름이라 불리는 것들만 볼 수 있다면 말야······. 그럼 사람들의 마음도 깨끗해질까? 싸워서 빼앗을 땅이란 게 없으니, 싸우지 않고도 화해할 수 있는 뭐 그런 마음이 들지 않을까?”


“뭐 잘못 드셨어요? 평소 하사님답지 않게.”


“그렇지?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헛소리해 봤어.”


리아가 멋쩍은 듯 크게 웃었다.


“좋을 것 같긴 해요. 저는.”


“응?”


“좋을 것 같다구요. 저 하늘 위에 땅들 없이 이렇게 맑은 하늘하고 구름만 있다면.”


“그래, 그렇겠지?”


“하사님.”


“왜?”


“나중에 드브리 받으면 우리집에 놀러 오세요.”


엘젠리카가 미소 지으며 말하자 리아는 실눈을 떠 그녀를 보고는 ‘아아, 됐어.’하고 일부러 눈을 감아 버렸다.


“리아!”


낮잠 한숨 자려는데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 눈을 떴다. 해치를 연 이젤린 함장이 모두의 이름을 부르며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하늘은 갑자기 소나기가 내릴 것처럼 어두워져 있었다.


실눈을 뜨고 하늘을 올려다 본 리아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를 데리고 비공함 쪽으로 달렸다. 저 멀리 뭔가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아벨라르에 귀를 찢는 듯한 비상벨이 울리며 모두 다시 전투 배치에 들어갔다.


“2시 방향 미확인 물체 접근 중. 크기가 매우 크고 생체활동이 감지되는 것으로 보아 비공함은 아닌 것 같습니다.”


레뮤가 전체 통신 채널을 열고 브리핑하였다.


“그럼 대체 뭐지?”


“육안으로 보니 무슨 도마뱀 같았어요.”

리아가 말했다.


“도마뱀이라······. 그럼 천공용인가?”


“세리, 이 근처에 천공용이 있나?”


“사그누스라고 있는데 그리 흉폭한 놈은 아닙니다.”


“고등학교 때 배운 기억으론 천공용은 자기 영역 이외에는 움직이지 않는다 들었는데, 맞나?”


“네, 정확히 알고 계십니다. 근데 저 사그누스에게 뭔가 일이 있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때 코헤르가 외쳤다. “사그누스 뒤로 마성석 반응 감지.”


“좋아, 이륙한다. 가서 놈들을 확인하고 적일 경우 교전한다.”


“넵, 함장님.”


짧은 휴식을 마친 아벨라르는 다시 하늘로 이륙하였다.


모두 이곳에서 본 아름다운 들꽃들은 안중에도 없었지만, 엘젠리카가 만들어 준 꽃왕관을 쓴 페리는 언젠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고 싶다고 생각했다.



랑가르드 교전(交戰).


공화국 1기의 비공함과 4기의 스카이러너가 붙은 이 소규모 교전을 별도의 이름으로 명명하는 것은 어쩌면 사치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카펠라 공역 옆의 이름도 없던 장소에서 벌어진 이 교전에 별도의 이름을 부여한 것은 이 전투가 주는 의미가 작지 않아서였다.


랑가르드의 교전은 공화국과 제국의 두 S급 지휘관이 처음으로 직접 맞부딪힌 전투였다. 그 어떤 외부적인 요소가 개입되지 않은 넓은 하늘에서 오롯이 그들의 지휘능력과 임기응변으로만 승패가 판가름 난 전투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변경에서의 교전은 향후 공화국과 제국의 전선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코드 레드! 스카이러너 5기 포착. 브라더후드 오브 울브즈입니다.”


“스카이러너가 왜 여기 있는 거지? 아무튼, 그럴 것 같았어. 스카이러너 하면 바로 그들 아닌가?”


이젤린은 포말하우트에서의 그들의 활약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제국의 날 선 칼이었고, 연합공군의 목에 걸린 가시였다. 그런 그들을 여기서 만날 줄이야.



“공화국 비공함 입니다!”


“젠장, 일이 꼬이다니······. 헤르젠, 지원을 요청해라.”


“잡음이 너무 심해 통신 채널을 열 수가 없습니다.”


“방해전파 때문이군.”


“어떻게 하죠?”


루페브르의 질문에 이자크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저 날뛰는 천공용을 데리고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을까?


이런 상태라면 천공용을 버리고 도망가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지만, 이미 형제를 둘이나 잃었기 때문에 그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황제에게 천공용을 안겨야만 했다.


“일단 내가 저들의 시선을 끌어보겠다.”


“대장, 너무 위험합니다!”


“내게도 생각이 있어.”

이자크는 다른 형제들과 반대 방향으로 돌았다.



“스카이러너 한 기가 무리에서 빠져나와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거리는 50뤽, 45뤽, 40뤽······.”


“우리도 접근한다.”


“38, 35······. 우리가 접근하자 뒤로 빼고 있습니다. 39, 43······.”


“뭐지?”


이젤린은 그 움직임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이자크는 도박을 하고 있었다.


그가 공화국의 비공함에서 무서워할 것은 저격뿐이었다. 저들의 기관포는 회피 기동으로 전부 피할 수 있지만, 저격만큼은 노리고 쏘는 것이라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데다 그 위력 또한 치명적이었다.


이자크는 공화국의 저격 거리가 30뤽이라고 알고 있어서 30뤽 바깥쪽에서 움직이다가 기회를 보아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만일 저쪽에 수준급 저격병이 있다면?


지금까지 많은 저격병을 만났지만, 그의 회피 기동은 자타가 인정하는 카엘리아 최고였기 때문에 그리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그들의 총구에서 불을 뿜는 순간, 그들의 사각으로 피하여 마성석을 공격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포말하우트에서 만난 저격병들은 달랐다. 그들의 실력이 뛰어났다기 보다는 필사적이었다고나 할까? 그때 그들에게 좀 더 행운이 있었다면 아마 자신의 머리는 공화국의 총탄에 꿰뚫려 벨마덴 거리에 효수되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이자크가 간을 보는데도 저쪽에서는 아무런 공격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제야 이자크는 저들의 전력을 간파했다. 저들은 제국식 인파이터들이라는 것을.


“적 스카이러너 전부가 사방으로 몰아닥칩니다. 거리 30, 20······.”


“언니들! 기관포 좀 선물해줘!”


이젤린의 말이 끝나자 상부와 하부에서 불꽃이 일었지만 스카이러너들은 이를 가볍게 피해버렸다.


쿵-. 쿵-.


스카이러너를 제압하지 못한 비공함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늑대들의 망치 세례였다. 아벨라르의 기체가 울릴 정도였다.


“속도와 고도 최대로! 최대한 놈들을 흔들어서 떨어뜨린다.”


마성석까지 깨뜨려 버리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한 이젤린은 속도와 고도를 급격히 올렸다.



비공함으로의 진입 각도가 좋지 않았던 바람에 아쉬운 대로 갑판을 부수고 있던 투라미스와 루페브르는 아벨라르의 급속기동에 중심을 잃었다. 그들은 갑판 위에서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것을 잡은 채 겨우 버티고 있었다.


“마성석을 직접 노리겠습니다.”


“아니야. 투라미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공화국의 최신 비공함같다. 속도가 지금껏 보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마성석을 때리러 내려갔다가는 후폭풍에 휘말려 중심을 잃고 추락할지도 모른다. 일단 멈출 때까지 최대한 붙는다. 모두들 떨어지지 말고 최대한 붙어라!”


“존명!”



“함장님 적들이 우리 갑판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쥐벼룩같은 놈들.”


이젤린이 이를 갈며 말했다.



“대장님 진동이 너무 심해 버티기가 어렵습니다.”


“끝까지 버텨!”


이자크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아벨라르는 하늘 끝까지 치솟았다가 떨어지는 비행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젤린과 승조원들은 마치 멀미가 심한 배에라도 오른 듯 괴로웠지만, 어떻게 해서든 저들이 아벨라르의 배면을 노리는 것만은 피해야 했다.


“함장님, 아무리 고기동을 해 봐도 저들이 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리아, 갑판에 살짝 기관포 좀 발사해줄 수 있나?”


“바람구멍 술술 날 건데 농담하시는 거죠?”


리아는 이젤린의 명령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로즈베리, 출력이 얼마나 남았지?”


“지난번에 입은 데미지도 있어서 이대로 고기동을 거듭하다간 오래 못 버틴다는 것만 알아주십시오.”


그녀의 말대로 보급이 없는 이상, 아낄 수 있는 건 아껴야만 했다. 여기서 저들을 상대하다가 만일 나중에 제국의 비공함들이라도 온다고 하면 속절없이 당하니까. 그러자 이젤린은 뭔가 생각이 난 듯 세리에게 말했다.


“세리, 엘3,678/펠4,096으로 전속력으로 이동해.”


“알겠습니다. 그런데 함장님, 정말로 그리고 가나요?”


“응.”


“그럼 혹시?”


“그래, 그거야.”

이젤린이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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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멕시즐 공국 - 2 21.01.25 129 4 11쪽
51 멕시즐 공국 - 1 21.01.22 146 4 12쪽
50 제국의회 21.01.21 146 4 11쪽
49 제국 쪽 상황 +1 21.01.20 158 4 12쪽
48 교전 후 공화국 쪽 상황 21.01.19 152 4 14쪽
47 제35차 발디르 교전 - 3 21.01.18 154 4 13쪽
46 제35차 발디르 교전 - 2 +1 21.01.15 155 5 12쪽
45 제35차 발디르 교전 - 1 21.01.14 162 5 12쪽
44 임시 휴전 회담 - 3 21.01.13 153 5 11쪽
43 임시 휴전 회담 - 2 21.01.12 145 3 11쪽
42 임시 휴전 회담 - 1 21.01.11 162 3 12쪽
41 발디르 가도 +2 21.01.09 189 4 11쪽
40 새 출발 21.01.08 179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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