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격병과 장미와 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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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비르소
작품등록일 :
2020.11.27 23:39
최근연재일 :
2021.02.13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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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14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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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35차 발디르 교전 - 1

DUMMY

“라펠트 12기 빠른 속도로 접근 중. 코드 레드.”


“전원 회피한다!”


상황이 급격히 바뀐 원인을 파악하기 전에 일단 피하는 게 급선무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성석을 직접 노릴 수 있는 스카이 러너가 퇴각 중이라는 점이었다.


‘반드시 책임을 물으리라.’


무스카트의 기수를 돌리며 샬은 이를 악물었다. 제국의 사절에게 총탄을 날린 것이 공화국의 경솔함인지 제국의 계략인지는 상관없었다. 그를 분하게 만든 것은 단지, 아이들에게 선물을 가져다줄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는 계속 통신 채널로 페르멜서스에 연락을 취하려 했지만, 들리는 것은 잡음뿐이었다.


“리더로우 중장님, 여기부터는 저희가 맡겠습니다!”


샬에게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이젤린이었다. 샬의 기함 무스카트는 자위적인 무장만을 갖춘 상태여서 오랜 기간 전장에 머물 수 없었다. 이젤린의 뒤로 신속기동군 소속 스펠바우스-더블릿 3기가 함께했다.


“그럼, 뒤를 부탁하네.”


샬은 짧게 말하고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전장을 이탈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떠나면서도 그는 통신기에서 손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좋게 생각하자. 어차피 안 되는 거였어.

그리고 된다 해도 제국이 기습을 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결국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나?


샬이 해치쪽으로 눈을 돌리자, 제국으로부터 받은 라핌초 포션 상자가 보였다. 그곳에는 제국공군 슈트롬포겔의 마크가 커다랗게 찍혀 있었다.



“너 똑바로 안 해? 어디서 배워먹은 거야?”


아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카티야라는 사람에 대해 파악이 되는 순간, 아린은 그녀에게 정신과 상담을 권해주고 싶었다.


“저격 소총은 오히려 그렇게 매번 소지하는 게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시끄러워! 어디서 사이비로 배워 가지고는? 여기서는 내 말이 곧 법이거든?”


그러나 아린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냥 알겠다 하고 대충하는 척해.’


보다 못한 에디제 상병이 아린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봤지만, 아린은 코웃음만 칠뿐이었다. 에디제가 지금껏 하부 갑판에서 살아남은 것은 빠른 눈치와 적당한 타협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들어온 신병은 눈치가 없는 건지 고집이 센 건지 당췌 알 수가 없었다.


“너, 지금 개기는 거야?”


“하사님, 그게 아니오라. 조만간 실전에 들어갈지도 모르는데 총기를 분해하여 소지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판단된 것뿐입니다.”


“판단? 하부 갑판 에서의 판단은 누가 한다고? 나 카티야 돌레트가 한다.”


“아린 일병. 하사님께서는 실전에서 총기가 오작동 되는 걸 방지하고자......”


그러자 아린이 에디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카티야에게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 톤은 어느새 높아져 있었다.


“저격총은 예민하기 때문에 함부로 소지하는 게 아닙니다. 저희는 어떤 상황에서도 무조건 원칙대로 해야 한다고 메시스 라우덴 교장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기관총처럼 투박한 물건이 아니란 말입니다.”


“이 년이! 그렇게 개기라는 것도 메시스 교장인지 뭔지한테 배운 거야? 까라면 까야지 뭔 잔말이 많아!”


갑자기 카티야가 아린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에디제가 말려봤지만, 하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카티야가 먼저 달려들자, 그녀에게 꼬박꼬박 경어를 붙이던 아린도 이판사판이 된 듯했다.


“그래, 어디 맘대로 해봐라!”


“너, 아주 눈이 뒤집혔다. 오늘 나한테 죽었어!”


“참으십시오! 참으십시오!”


두 사람이 머리채를 붙잡고 왔다갔다 하고, 한 사람은 이들을 말리는 동안, 하부 갑판의 온갖 집기들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통신 채널은 세 사람 모두 끈 상태. 두 사람이 마치 소싸움을 하듯 서로 머리채를 붙잡고 놓지 않는 바람에 모든 게 엉망이 되었다. 이들을 말리는 에디제는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어서 이걸 뜯어말리지 않으면......


우르르르.


서로 싸우던 두 사람이 하부 바스켓에 쏙 빠지고 말았다. 바스켓은 아벨라르에는 없던 공간인데 이번에 저격병을 받으면서 새로 마련된 곳이었다. 그리고 아린은 바스켓에 저격총을 거치해놓고 있었다.


쾅!


그리고, 데모크라시멘-5000에서 탄약 일발이 격발되는 순간.

모든 것이 얼어붙은 듯 조용해졌다.



“10시 방향. 적 라펠트 2기 접근중.”


통신 채널에서 레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리자, 뿔테 안경을 쓰고 침착하게 밖을 조준하고 있던 레빈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아까부터 아린 쪽은 무슨 일이 있는지 통신 연결이 되질 않았다. 별일 없어야 할 텐데.


“앞쪽으로 접근한다. 레빈! 첫 사냥이야. 아벨라르가 다른 비공함보다는 조금 빨라서 빠르게 숨통을 끊어야 할 텐데. 자신 있나?”


“자신은 없지만, 해보겠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적 라펠트가 시야에 들어왔다. 기체에 임모탈파티즈 소속 2931부대 ‘융커스’라는 명칭이 제국 표준어로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


쿵콱-!


거총을 한 레빈의 어깨가 뻐근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 아픔, 매캐한 탄약 냄새는 오랜만에 겪는 어찌 보면 그리운 것이었다. 보호장구만 잘 차고 있으면 만사가 OK라는 말부터, 불면증을 치료하는 때는 ‘탄도학’책이 최고라는 것까지.


포말하우트에는 악몽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융커스의 마성석에서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급기야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마성석의 반응상황을 보고 취약점을 놓치지 않고 공략한, 흠잡을 데 없는 깔끔한 솜씨였다. 리아가 화망을 조성하기도 전에 레빈의 전과가 올라가자, 리아와 엘젠리카는 환호성을 질렀다.


“오, 대단한데, 역시 샤프슈터야.”

“대단해요 레빈 병장님!”


“1기 격추.”

“수고했어. 첫 격추군.”


이젤린이 레빈 병장에게 짧은 축하 인사를 건네었지만, 레빈은 주위의 반응이 무색할 정도의 무표정으로 뿔테 안경을 올리더니 다음 타겟을 겨냥하였다. 기계는 약간의 도움을 주는 것뿐이지만, ‘저격모드’로 인공 신체 모드를 맞춰놓자 반응이 평소보다 월등히 좋아진 느낌이었다. 마치 자신이 저격만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콱!

철컥!

콱!


이번에 레빈은 융커스를 호위하던 베슬레이의 마성석에 총탄을 날렸다. 이를 알아챈 베슬레이가 급히 회피 기동을 했지만, 레빈은 절묘한 솜씨로 두 발을 연속해서 쐈다.


연발 저격.


이는 취약점이 잘 보이지 않거나, 한 발로 마성석을 완전히 깨뜨리지 못했을 경우, 두 발을 연속으로 같은 탄착지점에 맞추는 고난도 기술이었다. 레빈의 저격에 이번에는 베슬레이에게서 검은 연기가 뿜어지더니 기체가 크게 기울며 대지의 여신에게로 향했다.


그렇지만 레빈은 이를 악물었다.


아직 멀었어.

공화국의 준척급 저격수가 되려면.


그러나 레빈의 생각과 달리 전과를 보고받는 이젤린은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함장님께서 이렇게 즐거워하시는 모습은 오랜만이네요.”


“저걸 보고도 가만히 있으면 지휘관이 아니지. 보라고, 단지 세 발에 적기 두 기가 격추되었어. 미칠듯한 가성비지.”


“그건 가성비가 아니라, 솜씨라고 해야되겠는걸요? 아무튼, 저도 놀랐습니다.”


“그래, 세리가 칭찬할 정도면 저건 보통이 아니라고, 그나저나 하부는 무슨 일이 있나? 아까부터 연락이 안 되네.”


“제가 내려가 보고 오겠습니다.”


세리가 말했다.


격발된 순간부터 갑작스러운 교전에 이르기까지 아린과 카티야는 얼어붙은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10분 혹은 15분 정도의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두 사람에게는 깨지 않는 악몽과도 같았다.


“너 때문이야 이 쐉년아.”


“말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진짜 어디서 이런 고문관이 들어와 가지곤.”


“동작 그만! 다들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세리 메레디스 중위의 목소리가 하부 갑판에 울리자,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하부 바스켓에서 기어 올라와 그녀 앞에 섰다.


“저기 제가 설명드리겠습니다. 아까 충격 때문에 둘 다 바스켓 안으로 빠져서......”


“에디제 쉴즈 상병. 내가 이게 충격으로 어질러진 건지, 서로 우격다툼이 있어서 그런 건지도 분간 못 할 것 같아?”


세리의 낮은 목소리에 에디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카티야 하사, 아린 일병. 두 사람은 통신 채널부터 켜놓길 바란다. 그리고 지금은 교전 중이니 이에 대한 조사와 책임은 교전이 끝나고 진행하겠다. 그때까지 우리가 살아 있다면 말이지.”


“알겠습니다.”


“똑바로 말햇!”


“알겠습니다!”


세리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함교로 올라갔다. 그제야 세 사람은 그들이 있어야 할 위치로 돌아왔다. 아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뭔가 꼬여도 단단히 꼬인 거라고 생각해 도저히 앞에 벌어진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쿵!


그러는 동안에도 레빈의 저격은 계속되고 있었다. 신속대응군과 상부 바스켓의 화망(火網) 지원이 시작되자, 레빈의 전과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었다.


“벌써 6기야! 초기 전개된 라펠트의 절반을 혼자 격추하다니.”


리아의 외침에도 레빈은 별다른 제스쳐없이 앞에 있는 적의 움직임에만 집중했다. 그는 저격교범에 적힌 대로 강화세라믹탄을 5발 발사한 뒤에는 1분간 급속 냉각 주머니로 총열을 시켰다. 그리고, 10발 1팩을 다 쓰면 열로 못 쓰게 된 총열을 버리고 새로운 총열로 갈아 끼웠다.

그래도 자신이 아직 시엔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포말하우트에서 스러진 자신의 선배는 탄약을 아끼면서도 저격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 결함투성이이며, 구닥다리인 대 비공함 마성석용 저격 소총으로 말이다.


쿠콰콰콰!

쿠콰콰콰!


그러는 동안에도 리아의 피스키퍼-16 중기관총은 마치 기계톱 소리 같은 굉음을 내고 있었다. 리아는 좀 더 가까이 가서 적을 갈아버리지 못함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레빈의 활약 때문이었다. 레빈의 방식은 자신의 성향은 아니지만, 아무렴 어떠랴. 정작 리아 자신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주의였다. 어쩌면 이젤린 함장도 자신과 같은 생각으로 이 어리숙한 저격병을 데려온 것일지도 모른다.


“언니들! 숙제가 몰려오고 있어. 이번에는 8기야.”


“무스카트는요? 우리의 임무는 무스카트 호위 아닌가요?”


“무스카트가 후방으로 이동하는 동안, 우리가 방패가 되어야 해. 기뢰 밭을 지나고 있기 때문에 속도를 많이 줄인 상태야.”


“갈 때도 고생, 올 때도 고생인데 샬 중장이 많이 허탈해 하겠네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샬 중장께 뭐라고 해야 할지.”


이젤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어쩌면 해프닝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큰 사고가 벌어졌다. 그것도 자신의 승조원으로부터 말이다. 세리로부터 하부 갑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다는 보고를 들었을 때, 이젤린은 그 우발적인 총격이 이쪽에서 저지른 잘못임을 직감했다.


그렇다 해도 이젤린은 책임 소지를 묻는 것을 피할 생각은 없었다. 잘못했다면 벌은 달게 받아야 한다. 설령 그것이 이제 처음 영관급 경력을 쌓게 된 이젤린에게 나쁘게 작용한다 할지라도 말이다.


“최대한 방어할 수 있도록 무스카트의 바로 앞에 붙어서 싸운다.”


이젤린은 아벨라르의 장점인 기동성을 희생하더라도 무스카트를 보호 할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 그것은 원래 그녀의 계획에 없었고, 움직이지 않으면서 어떻게 무스카트를 보호해야 할지에 대한 그녀의 고민거리였지만, 레빈의 갑작스러운 활약으로 인해 택하게 된 최선의 방법이었다. 지금은 화려한 기동을 뽐낼 순간이 아니라 우직하게 총탄을 막아내어야 할 순간이니까.


“9시! 3시! 적 라펠트, 고다이바 접근합니다.”


경고음이 시끄럽게 울려댔지만, 이젤린은 당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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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멕시즐 공국 - 2 21.01.25 129 4 11쪽
51 멕시즐 공국 - 1 21.01.22 146 4 12쪽
50 제국의회 21.01.21 146 4 11쪽
49 제국 쪽 상황 +1 21.01.20 158 4 12쪽
48 교전 후 공화국 쪽 상황 21.01.19 152 4 14쪽
47 제35차 발디르 교전 - 3 21.01.18 154 4 13쪽
46 제35차 발디르 교전 - 2 +1 21.01.15 155 5 12쪽
» 제35차 발디르 교전 - 1 21.01.14 161 5 12쪽
44 임시 휴전 회담 - 3 21.01.13 153 5 11쪽
43 임시 휴전 회담 - 2 21.01.12 145 3 11쪽
42 임시 휴전 회담 - 1 21.01.11 162 3 12쪽
41 발디르 가도 +2 21.01.09 189 4 11쪽
40 새 출발 21.01.08 179 5 9쪽
39 다시, 전선으로 - 2 21.01.07 186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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