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온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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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원(省元)
작품등록일 :
2020.11.28 17:19
최근연재일 :
2022.08.1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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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8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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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DUMMY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장소에서 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겹도록 반복된 괴로운 꿈은 밤마다 그녀를 미치게 만들 정도였다.



“담현..원한을..“


”서방님! 어디 계세요!? 대체 어디에 있는 거예요?! 제발.. 나타나 주세요!“


”많은 희생을 치루며 죽령을 겨우 탈환했는데.. 배신자 때문에.. 내 원한을..“


”서방님!“



불공을 드리다가 지쳐 잠깐 잠들었던 ˚평강공주 고담현은 눈물을 흘리며 깨어났다.


벽면에 크게 자리 잡은 금빛의 불상이 그녀의 슬픔을 바라보는 듯 했다.


그녀의 앞에는 작은 금동불(金銅佛)이 놓여있었고 뒤에는 비어있는 관 위에 온달의 투구가 있었다.



”나무관세음보살..“



젖은 눈을 훔친 공주는 지친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목탁을 두들기며 불공을 드리기 시작했다.



***



고려의 장안성에서 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산 속의 한 사찰, 제법 선선한 바람은 여름이 지났음을 알리고 있었다.



“후아암~ 으아아~ ”



사찰의 마당 청소를 끝낸 동자승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크게 벌리고 기지개를 피며 하품을 했다.


혹시나 전주(殿主)스님이 보기라도 했을까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나 아무도 없는 듯 했다.


이내 동자승은 산속 깊숙이 위치한 법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똑. 똑. 또로록..”



법당 안에서 목탁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동자승은 어찌해야할지 고민하며 문밖에서 서성거리다가 곧 법당의 문에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어.. 공주님. 진지 드실 시간이 한참 지났사옵니다.”



문밖의 동자승의 말에 목탁소리가 멈췄다.


방안에서 기진맥진한 여성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아까 말하지 않았나요. 오늘 식사는 하지 않을 것이니 그리 아세요.”


“아.. 예. 공주님.”



되돌아가려고 할 찰나 기척 없이 나타난 중년 스님을 본 동자승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에구머니나!”


“허허, 왜 그리 놀라느냐?”


“아.. 법사((法師))스님. 오셨사옵니까?”



얼굴이 붉어진 동자승은 느닷없이 나타난 ˚혜자(惠慈)에게 합장하며 예를 올렸다. 아이는 걱정 어린 말투로 혜자에게 말을 이었다.


“법사스님. 공주님께서 아직도 아무것도 드시지 않았사옵니다. 기진맥진하실 텐데...”


“음.. 요새 통 식사를 하시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걱정이로구나. 오늘이 부마의 삼년상 마지막 날이지?”


“예. 법사스님. 그런데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사옵니까?”


“왜국으로 떠나기 전에 공주님께 인사를 드리러 왔단다. 꽤 오래 머물다 올 것 같구나.”


“바다 건너의 그 왜국 말입니까?”


“그래. 이따가 내 직접 공주님을 뵐 터이니, 지금은 공주님의 뜻대로 하자꾸나. 곧 공양 시간이니 준비하거라.”



“예.”



-똑. 똑. 똑. 똑.-



멈춰있던 목탁소리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동자승이 자리를 떠나자 혜자는 법당을 바라보며 합장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저녁노을이 자취를 감추고 밤하늘의 별들이 선명해지는 시간에도 법당의 목탁소리는 계속해서 울렸다.


공양이 끝나고 모두가 저녁예불을 드리는 동안, 삭발한 머리에 승복을 입은 중년의 남성이 공주가 있는 법당의 문고리를 밀었다.


-끼이익-


남성은 금빛 불상 앞에서 예불을 드리는 공주의 등 뒤에 다가섰다.



“누구..”



공주는 찬찬히 뒤돌며 남성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호롱불이 전부인 법당 내부는 어두웠었기에 남성의 얼굴을 자세히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남성의 오른쪽 귀의 상처를 보고는 공주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너는!”



곧바로 남성의 완력이 공주를 덮치며 짓이겼다.



“읍! 으읍!”


“쉬이이잇! 네년도 곧 남편 곁으로 보내주마.”



공주는 눈물을 흘리며 남성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저항하고 싶어도 기력이 쇠약해진 탓에 목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


고통스러워하는 그녀의 모습 바라보던 남성은 미소를 지으며 더 세게 입을 막고 목을 졸랐다.



“으으읍! 크흡!”


“그래그래, 다 됐으니 가만있어라. 조금만이면 돼.”



호롱불에 비친 그림자가 발버둥 치는 모습이 방안 전체를 흔들었으나 오래가지 않았다.


공주의 숨이 멎자 남성은 소매에서 천 뭉치를 꺼냈다.


천 뭉치 안에는 날카로운 비녀가 들어있었다.



“부마의 죽음에 슬퍼한 공주는 끝내 자결을 선택해 남편을 따라간 것이외다...”



공주를 죽인 남성은 곧 정면에서 누군가가 응시하는 느낌을 받았다.


벽면의 커다란 불상의 얼굴과 눈이 마주친 남성은 비아냥거리며 투덜거렸다.



“흥! 왜? 벌이라도 주려고? 난 불타(佛陀) 따위 믿지 않아.”



법당 내부가 쥐죽은 듯 고요해지자 주변을 조심스레 살피며 법당의 문을 닫고 나온 남성은 유유히 산속으로 사라졌다.


저녁 예불을 마친 혜자는 공주가 있는 법당의 목탁소리가 멈춘 것을 이상히 여겨 문에 다가갔다.



“공주님. 혜자이옵니다.”


“...”


“공주님?”


“...”



혜자라면 평소에도 반갑게 맞이했던 공주였다.


그런 혜자가 수차례 공주를 불러보았지만 공주는 대답이 없었다.



“공주님. 잠시 들어가겠사옵니다.”



상복을 입은 평강공주는 금색 방석 위에 엎드려 있었다.


엎드린 그녀 옆에는 목탁과 나무채가 놓여있었다.



“공주님..?”



혜자는 평강공주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공주님? 주무시는지요?”


“...”



공주는 말이 없었다.


혜자가 공주의 어깨에 손을 대며 흔들어보았지만 말도, 반응도 없었다.



“공주님?”



엎드려있는 공주를 자세히 살피니 눈이 뜨인 채 숨이 멎어있었다.



"마..맙소사!"



복부에 자리 잡은 손에는 무언가 쥐어져있었고 피가 물들어있었다.


그녀의 손에 쥔 날카로운 비녀가 복부에 꽂혀있었다.



"공주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하얗게 창백해진 피부에 눈물 자국이 선명한 그녀의 눈꺼풀을 닫아준 혜자는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흘렸다.



공주의 죽음은 비밀리에 태왕 고대원(高大元)에게 당도했다.



“맙소사. 누님이..어찌... 어찌 이런 일이!”


고대원은 서신을 든 채, 그대로 옥좌에 털썩 주저앉았다.


함께 궁 안에 있던 중리위두대형(中裏位頭大兄)이자 최측근인 을지문덕(乙支文德)이 걱정스레 물었다.



“태왕! 괜찮으십니까!? 무슨 일이기에 갑자기..”


“짐의 누님이.. 으흐.. 누님이 세상을 떠났다고 하오. 으흑흑...”


“공주님께서!”



을지문덕은 그 자리에서 넙죽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눈물을 흘렸다.


궁 안의 내관과 모든 궁녀들 또한 모두 자리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공주님.. 부마.. 어찌, 두 분께서 이리도 허망하게 가시다니요.. 흑흑. 온달부마..”



고대원의 굵은 눈물이 서신에 떨어지며 글씨와 뒤섞이면서 검게 번져갔다.


평강공주의 죽음은 왕족의 자결로 치부되었기에 태왕 고대원은 고담현의 사망 건에 대해서 함구령을 내렸다.


평원왕 서거 직후 느닷없이 신라를 평정하기 위해 정규군이 아닌, 백성들로 이루어진 군사들을 이끌고 남하한 온달.


아단성 부근 신라와의 전투에서 누군가의 저격으로 부상당한 뒤 실종된 온달과 마찬가지로 평강공주를 죽음에 이르게 한 원흉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작가의말
˚평강공주(平岡公主) : (생몰년 미상) 고구려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공주이자, 바보 온달의 아내입니다. 가난하고 바보스러운 온달과 결혼해서 고구려의 장수로 육성시킨, 내조의 여왕으로 손꼽히는 여성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평강공주의 평강(平崗)은 평원왕의 평강상호왕(平崗上好王)이라는 호칭에서 따온 것으로 실제 이름과 생물년 등의 자세한 기록은 안타깝게도 남아 있는 것이 없습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평강이라는 시호 대신 고담현이라는 가상의 이름을 사용해 표기합니다.


˚혜자(惠慈) :(? ~ 622) 고구려의 승려. 일본인들이 신으로 받들어 모시는 쇼토쿠태자(聖德太子)의 스승으로 백제의 승려 혜총과 함께 왜에 불교를 널리 알렸고 20년간 쇼토쿠태자의 교육을 담당하였으며 정치고문으로 활동하였습니다. 615년 쇼토쿠태자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과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 ‘승만부인경(勝夫人經)’ 이 세가지 경전의 소(疏)를 지었을 때 이를 가지고 귀국, 포교활동에 힘썼고 영류왕 4년인 621년 쇼토쿠 태자의 부음이 전해지자 매우 슬퍼하다가 이듬해 음력 2월 5일에 자신의 죽음을 예언, 바로 다음날 자신도 죽었다고 합니다. 수의술(獸醫術)에도 능통하였던 혜자는 일본에서 매년 쇼토쿠태자와 함께 제사를 모시며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중리(中裏) : 중리는 국가의 중요한 기밀을 관장하거나 국왕을 가까이서 모시는 부서로 인사관리 뿐 아니라 수도경비, 국왕의 시위, 첩보 등 국가의 중추업무를 담당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중리부의 직급은 중리소형, 중리대형, 중리대활, 중리위두대형 등의 순위로 나뉘며, 연개소문의 쿠데타 성공 후 연남생, 연남산 등의 자식들이 이 중리의 직책들을 맡았기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녔었다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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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216화 - 염탐. +2 22.07.15 58 3 14쪽
217 215화 - 아내와 남쪽으로. +2 22.07.11 71 3 15쪽
216 214화 - 강국과의 거래. +4 22.07.08 61 3 13쪽
215 213화 - 혼혈임을 이용하는 온달. +4 22.07.04 70 3 17쪽
214 212화 - 맹세. +4 22.06.29 84 3 15쪽
213 211화 - 담판. +2 22.06.27 76 3 14쪽
212 210화 - 출산. +4 22.06.21 102 3 14쪽
211 209화 - 온달의 무기. +4 22.06.14 73 3 13쪽
210 208화 - 부정적인 소문. +2 22.06.08 73 3 13쪽
209 207화 - 남하를 위한 준비. +2 22.06.07 72 3 13쪽
208 206화 - 오열. +2 22.06.02 81 3 14쪽
207 205화 - 떠나는 사람들. +2 22.05.30 79 2 12쪽
206 204화 - 도망자들. +2 22.05.26 67 2 14쪽
205 203 화 -무너진 상단. +2 22.05.24 79 2 13쪽
204 202화 - 신라땅에서의 습격. +2 22.05.21 77 2 12쪽
203 201화 - 발각. +2 22.05.18 75 3 16쪽
202 200화 - 회임 소식. +2 22.05.14 88 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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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198화 - 남은 이들을 위한 목표. +2 22.05.07 98 3 13쪽
199 197화 - 충격에서 충격으로. +2 22.05.04 83 2 13쪽
198 196화 - 넋 잃은 온달. +2 22.05.03 71 3 14쪽
197 195화 - 용서를 구하는 부녀. +2 22.04.27 83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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