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온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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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원(省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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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8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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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0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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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화 - 거지꼴사내와 공주의 첫만남.

DUMMY

경당의 광찬이 일러준 대로 외성 주변의 산을 향해 이동하던 공주 일행은 곧 비탈길에 접어들었다.


숲속으로 들어오니 화창한 숲의 냄새가 두 여성의 코끝을 상쾌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공주의 비단 치마 끝은 산길의 바닥과 나뭇가지 등에 끌리면서 점차 지저분해지기 시작했다.



’바지저고리를 입고 나올 걸 그랬나. 이렇게 산길을 오를 줄은 몰랐는데..‘



항상 말이나 마차를 타고 다니던 공주였기에 산행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휴우. 장안성터서부터 제법 걸었어. 정말 오랜만에 이렇게 긴 시간을 걸어보는 것 같아.”


“공주님, 쉬었다 가시겠사옵니까?”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 공주는 곧 너울을 벗어 표영에게 건넸다.



“더워서 못 쓰겠어. 조금만 더 걸어보자. 아까 광찬이라는 자가 말한 산이 이쯤인 것 같은데 좀 더 가보면 나오겠지?”


“그럼 좀 더 이동하겠사옵니다.”



경당에서 봤을 땐, 그리 높은 산처럼 보이지 않았으나 막상 오르다 보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하물며 작은 산이라 할지라도 온달의 거처가 산꼭대기에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표영의 손을 잡고 겨우 산 정상 부근에 올라갈 무렵이 되자 저 멀리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휴우! 힘들어! 드디어 도착했나? 저기 연기가 피어오르는 거 보니 저 부근에 거처가 있나봐.”


“그런 것 같사옵니다. 공주님. 조금만 더 힘을 내시옵소서.”


“온달을 찾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휴우.”



피어오르는 연기가 가까워질수록 사람이 살고 있다는 정황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기와 함께 어떤 음식을 만드는 것 마냥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찌르기 시작했다.



“음식 냄새인데.. 그러고 보니 우리도 식사하지도 않았잖아. 표영, 배고파졌어.”


“거처에 도착하면 음식을 구해보겠사옵니다.”



냄새와 연기가 완연히 가깝다고 느껴졌을 때 곧 자작나무로 세워진 울타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아. 드디어 다 온 것 같아.. 너무 힘들었어..”


“휴우,. 노고가 크셨사옵니다. 공주님.”



두 여성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울타리로 향했다.


마치 성벽처럼 솟은 끝이 뾰족한 울타리 안에는 나무와 돌로 만들어진 집 세 채가 자리하고 있었다.


연기는 끄트머리에 있는 집에서 피어오르고 있었기에 공주와 표영은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부뚜막 근처에서 토기를 들고나오던 으리는 동개와 검을 찬 표영의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라 토기를 떨궜다.



“꺄악! 누! 누구세요!?”


“앗!”


“어머나!”



갑작스러운 서로의 등장에 세 여성이 모두 놀라며 당황해했다.


깨진 토기에서 흘러나온 누룽지 같은 익힌 곡식 물이 못 먹게 돼버리자 마침 배가 고팠던 고담현 역시 안타까워하며 사과했다.



“마, 많이 놀랐니? 미, 미안해.. 아까워서 어쩐담..”



“에효.. 아까워라.. 헌데 누구신데 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죠?”



깨진 토기를 주워 정리하는 예쁜 여성의 질문에 표영이 말을 이었다.



“경당에서 광찬이라는 자가 이곳에 속특인이 있다고 하여 들렀다. 이분께서 그자를 찾고자 하신다.”


“속특인..이요?”



놀란 으리가 큰 눈으로 고담현을 빤히 쳐다보자 표영은 무의식적으로 그녀에게 호통을 쳤다.



“어딜 감히 눈을 마주치는 것이냐?”


“예? 무슨 말씀이세요..?”


“무례하긴! 이분은 고려의 공ㅈ...”


“표영! 쉿!”



고담현은 곧 표영의 입을 손으로 막은 채 가까이 다가가 속삭였다.



’쉬잇. 내가 공주라는 걸 이 사람들이 알면 우리뿐만이 아니라 사람들도 여러 가지로 곤란해질 거야. 아직은 말하지 않아도 돼.’


‘하오나..’


‘내가 시키는 대로 해. 그리고 내게 너무 극존칭으로 대하지 마. 사람들이 더 이상하게 볼 거야. 이제부턴 공주님이 아니라 아가씨야. 알겠지?’


‘공ㅈ.. 아니, 아가씨.. 알겠사옵니다.’


“어허!”


‘아, 알겠..습니다..’



잠시동안 표영에게 바짝 붙어 구시렁거리던 고담현은 곧 으리에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경당에서 아이들이 야단법석을 떠는 것을 보니 경계해서 그런 것 같은데 우린 나쁜 자들이 아니니 경계하지 않아도 돼. 네 이름이 무엇인지 말해줄 수 있니?”


“예? 저, 저는 으리라고 하는데요.. 어떻게 오신 분들이신지..”


“으리?”


“예.”



비슷한 또래의 으리가 어떤 태도로 이 정체 모를 여성들을 대해야 할지 우물쭈물해 하고 있을 때 곧 연기가 피어오르던 집에서 한쪽 눈을 가린 백발의 부정주가 나왔다.



“아가. 무슨 일 있니?”


“아. 예. 어머니. 저기.. 손님이 오셨는데..”


‘아가!? 어머니!?‘



으리에게 아가라고 부른지 오랜 시간이 지나 습관처럼 부르게 된 것이 공주에게는 오해를 살만했다.



’온달이가 설마 벌써 얘랑 결혼을 한 건가? 아주 예쁘긴 하다만..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으리가 중년의 여성더러 어머니라고 말하자 공주는 혹시나 잘못 찾아온 것은 아닌지 의아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곧 백발의 여성이 실낱같은 찡그린 눈으로 처음 보는 두 여성 쪽으로 걸어왔다.


머리는 희었으나 머리카락 색에 비해 늙어 보이지는 않은 여성이었다.


으리와 마찬가지로 이 중년의 여성도 외진 산골에는 어울리지 않는 느낌의 여성들이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저, 혹시 온달이라는 사내를 아시는지요? 경당에서 광찬이라는 자가 이 부근에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예? 어떤 분이시기에 제 아들을 찾는 것인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고려 여성이 속특인더러 아들이라고 하다니, 부왕께 말로만 들었던 상황을 현실로 접하니 공주도 당황해할 수밖에 없었다.



“흐음.. 아드님을 꼭 찾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헌데 아드님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시는지요?”


“동료들과 사냥을 하러 나갔습니다.. 사냥을 한번 나가면 늦은 밤이 돼서야 돌아옵니다만.. 어찌 우리 아들을 찾고 계시는지.. 설마 아들이 뭐라도 잘못한 것입니까?”



불안한 마음에 두 손을 맞잡고 한숨을 크게 내쉬던 부정주에게 가까이 다가간 고담현은 그녀의 손을 잡고 말을 이었다.



“아드님께서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으니 걱정 마세요. 어머님.”


“어머님이라니요.. 처자는 대체 누구신지..”



고담현은 손바닥과 손가락 마디마디에 굳은살이 배긴 부정주의 손을 쥐었다.


고담현의 따듯한 손과 함께 허리춤에서 흘러나오는 향낭의 달콤하고 향기로운 냄새가 부정주의 코끝을 찔렀다.



“고운 손 뿐만 아니라 향낭의 냄새를 맡아보니 분명 평범한 분의 여식은 아닐 텐데 어떻게 우리 아들을 찾아오셨단 말입니까.”


“어머님, 아드님을 만나고 난 뒤에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리고 저희는 수상한 자들이 아니니 안심하세요.”



고담현은 부정주의 얼굴을 응시하며 말했지만 천에 가려진 한쪽 눈 말고 다른 눈은 백내장이 온 듯, 하얗게 변해있었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으신가 보구나..‘


-꼬로록-



자신의 뱃속에서 배고픔을 알리는 신호가 살짝 들려오자 얼마간 정적이 흘렀다.



“저기, 으리라고 했지? 넌 온달과 어떤 관계지!?”


“예!? 으음.. 오, 오라버니인데요..”


“오라버니?”


“예.. 무슨 문제라도..”


“아, 아니야. 오라버니라니.. 어쨌든 다행이다.”



혹시나 했던 마음에 불안해했던 공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저기.. 아까 깨뜨린 토기는 정말 미안해. 혹시 식사를 위한 음식이었니?”


“아.. 예.. 어머니와 함께 들 수수 죽이었는데..”


“여기까지 오느라 배고픈 것도 잊고 있었는데 아까 냄새를 맡다보니 배가 고파졌거든. 혹시 지금 다시 만들어줄 수 있을까? 우릴 대접해주면 훨씬 크게 보답해줄게.”


“아.. 예. 그럴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친절하구나. 정말 고마워.”



부뚜막으로 간 으리는 다시 수수로 죽을 쑤기 시작했다. 곡식의 양이 많지 않았기에 그릇에 담겨온 죽 역시 소량이었다.



“양은 적지만.. 드세요.”


“고마워. 어머님도 드세요.”



네 명의 여성은 곧 마당의 평상에 앉아 수수 죽으로 간단하기 요기를 마쳤다.



“잘 먹었습니다. 단순한 음식인데 배고파서 그런지 정말 맛있었어. 다음에 쌀 한가마니를 보내줄게. 으리야.”


“예? 한가마니라니요?”


"나중에 보낼게. 어머님, 그럼 잠시 온달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리시면 올 텐데.. 산중은 위험하니 이곳에서 기다리시는 게 어떠신지요..”


“공ㅈ.. 아니 아가씨. 일리가 있사ㅇ.. 습니다. 흠흠! 여기서 기다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표영의 말에 공주가 얼굴을 찡그리며 응시했다.



“소, 송구합..니다.”


“기왕 이렇게 찾으러 왔으니 직접 찾아보겠습니다.”


“조심하세요.. 산짐승도 위험하지만 불한당들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예. 어머님. 가자 표영.”


“예. 공ㅈ.. 아가씨..”



고담현은 표영의 헛말에 표정을 찡그리며 함께 울타리 밖으로 나왔다. 멀찌감치 그녀들을 호위하는 을지문덕의 군사들도 조심스레 이동하기 시작했다.



***



울타리 밖으로 나온 고담현은 표영에게 툴툴거렸다.



“표영.”


“예. 공주님.”


“또!?”


“아. 송구하옵니다.”


“또!?”


“예. 아가씨. 말씀하세요.”


“그래! 힘들더라도 실수하지 마. 그나저나 내가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집에서 온달이를 기다릴 수는 없지 않겠어? 그리고 밖으로 나오니까 얼마나 재밌는지 넌 모르지?”


“재밌다니요.. 아가씨..”


“이렇게 밖으로 나왔으니 평소에 절대 먹을 수도 없을 수수 죽도 오늘 먹어봤고, 산도 이렇게 힘들게 올라보고, 비록 평민이지만 새로운 사람들도 만났잖아? 궁에선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이야.”


“그렇긴 합니다만..”


“이제 온달이만 만나면 될 거야. 옛날보다 더 성장한 사내가 됐겠지? 아 첫말을 어떻게 꺼내야할지.. 온달아? 온달님? 뭐라고 하는 게 좋겠어? 낭군이 될 사람이라면 온달님이 어울리겠지?”



한참을 망상에 젖어 산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어둑어둑해진 산길 저 멀리서 사내들의 괴성과 함께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당황한 두 여성은 그 자리에서 멈췄다.



“무, 무슨 소리지? 멧돼지 소리 같은데!?”


“아가씨, 제 뒤로.”


“으응..”



표영은 가까워지는 전방의 괴성을 향해 동개의 활과 화살을 꺼내 활시위를 당겼다.


다가오는 것은 여러 발의 화살을 맞고 피를 흘리며 달려오는 멧돼지 성체였다.



“꺄앗! 멧돼지야!”


“이잇!”



표영이 날린 화살은 저 멀리 달려오는 멧돼지에게 적중했으나 상처 입은 짐승은 계속해서 다가오고 있었다.


표영은 재차 화살을 날려 명중시켰지만 쓰러질 듯 말 듯 계속 다가오고 있었다.


남은 마지막 화살을 시위에 걸 찰나 사방에서 화살 몇 개가 날아들었다.


동시에 날아든 여러 발의 화살을 맞은 멧돼지는 그제야 길바닥에 쓰러졌다.



‘어디서 날아온 거지? 한 곳이 아니었는데..’



갑자기 날아온 화살의 정체에 표영이 의문을 가지고 있을 때 곧 숲속에서 덥수룩한 머리와 지저분한 수염으로 얼굴을 덮어버린 거지 같은 사내가 튀어나왔다.



『“휴우! 잡았어 온달. 정말 큰일 날 뻔했네! 저기 괜찮으세요!? 아니 이 산에 여성분들이 어쩐 일로 이렇게 오셨단.. 어라!? 맙소사.. 네가 어떻게 여길..!?”』


“네놈은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거지꼴의 사내는 표영의 호통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주를 향해 다가왔다.


당황한 표정의 공주는 표영의 등 뒤로 바짝 붙어 다가오는 사내를 응시했다.



‘이 짐승 같이 지저분한 사내는 누구기에 이런 이상한 말을 하는 거지?’



거지꼴의 사내는 공주에게 다가가더니 갑작스레 그녀를 안았다.



“꺄앗! 저, 저기..!”


“이, 이 자가 감히이!”



당황한 표영은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었으나 거지꼴의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공주를 안고 있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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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216화 - 염탐. +2 22.07.15 58 3 14쪽
217 215화 - 아내와 남쪽으로. +2 22.07.11 71 3 15쪽
216 214화 - 강국과의 거래. +4 22.07.08 61 3 13쪽
215 213화 - 혼혈임을 이용하는 온달. +4 22.07.04 70 3 17쪽
214 212화 - 맹세. +4 22.06.29 84 3 15쪽
213 211화 - 담판. +2 22.06.27 76 3 14쪽
212 210화 - 출산. +4 22.06.21 102 3 14쪽
211 209화 - 온달의 무기. +4 22.06.14 73 3 13쪽
210 208화 - 부정적인 소문. +2 22.06.08 73 3 13쪽
209 207화 - 남하를 위한 준비. +2 22.06.07 72 3 13쪽
208 206화 - 오열. +2 22.06.02 81 3 14쪽
207 205화 - 떠나는 사람들. +2 22.05.30 79 2 12쪽
206 204화 - 도망자들. +2 22.05.26 67 2 14쪽
205 203 화 -무너진 상단. +2 22.05.24 79 2 13쪽
204 202화 - 신라땅에서의 습격. +2 22.05.21 77 2 12쪽
203 201화 - 발각. +2 22.05.18 75 3 16쪽
202 200화 - 회임 소식. +2 22.05.14 88 3 16쪽
201 199화 - 처리해야할 자. +2 22.05.11 83 3 13쪽
200 198화 - 남은 이들을 위한 목표. +2 22.05.07 98 3 13쪽
199 197화 - 충격에서 충격으로. +2 22.05.04 83 2 13쪽
198 196화 - 넋 잃은 온달. +2 22.05.03 71 3 14쪽
197 195화 - 용서를 구하는 부녀. +2 22.04.27 83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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