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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붉은 입술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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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러버
작품등록일 :
2020.12.01 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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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12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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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테이블 위의 전쟁 - 이유

DUMMY

14. 테이블 위의 전쟁



1941년 7월 5일, 남미에서 에쿠아도르와 페루간의 전쟁이 발발하였다. 세계는 북미를 제외하고는 조용한 곳도 안전한 곳도 없어졌다. 그리고 미국은 완연히 호황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알렉산드라와 줄리아 등은 9월부터 4학년부터 12학년까지 있는 달턴 스쿨에 다니기 시작했다. 3학년까지 다니는 달턴 학교는 따로 있었다. 바웬 만은 학교에 가기를 거부하고 퀸즈 타이어를 경영하면서 독학을 했다. 일곱 명의 퀸이 달턴 스쿨에 들어가자 한 동안 학교가 시끄러웠다. 성이 퀸(Quinn)인 소년과 소녀들은 가족은 분명한데 머리카락 색깔이나 눈으로 봐서 한 형제 자매 같지는 않았는데, 그럼에도 그들의 유대는 매우 강했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고상하고 품격있었다. 더구나 그들은 공부마저 잘했다. 체스바와는 공부에서 다른 퀸 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림을 잘그렸다. 달턴 스쿨은 사립학교지만 기숙학교가 아니었다. 셀렌부인은 일곱 퀸을 통학시키기 위하여 캐딜락 리무진을 사고 운전사를 구했다. 바웬까지 합쳐서 전 가족이 함께 움직이려면 리무진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다. 검정색 캐딜락 플리트우드 리무진 뒷자석에는 있는 간이의자는 얇고 낭창였는데, 알렉산드라와 아밀리아는 간이의자에 앉아 흔들리는 것을 좋아했다. 달턴 스쿨에는 퀸들 외에도 부모나 운전사가 승용차로 데려다 주는 학생들이 종종 있었다. 학생들은 차를 타고 가다가 아는 얼굴을 보면 서로 차안에서 열심히 손을 흔들고 소리치곤 했다. 학교에서 실제로 만날 때는 그 정도로 친하지 않았지만 차를 탔다는 데서 오는 우쭐함이 빚어낸 모습이었다. 특히 남자아이들이 알렉산드라 네의 검정색 플리트우드를 보면 유난히 열광했다.

"쟤들 미쳤는가봐."

하고 조피아는 작은 소리로 투덜거리면서도 싫어하지 않았다.

줄리아는 늘 모른 척, 아무 관심없는 척으로 일관했다. 여자애들은 여자애들끼리 조잘거리고, 타테우쉬와 쯔비그니는 대체로 조용했다. 캐딜락 안은 아침 저녁으로 영어와 폴란드어, 헝가리어가 섞인 기묘한 언어들로 가득찼다. 학교의 과제며 친구 이야기, 선생이야기며, 옷 이야기 등등.

운전기사 톰슨은 나이가 오십이 넘은 중노인이었는데, 소녀들이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호칭은 무조건 리틀 프린세스로 하였다. 남자아이들은 리틀 프린스였고, 바웬만 그냥 프린스였다. 톰슨은 바웬에게 감탄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에 차에 타면, 달턴 스쿨에 동생들이 모두 내린 다음에 자동차는 사업장으로 향했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톰슨은 퀸즈 타이어에서 바웬의 일을 거들었다. 세차를 하는 자동차들의 경우에는 운전을 해줘야 할 경우도 있었고, 일손이 부족하면 타이어 교체일도 거들었다. 퀸즈 타이어는 항상 매우 바빴다. 바웬은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퀸즈 타이어의 전 직원들을 움직였다. 언성 한 번 높이는 법 없이, 자기보다 나이 많은 어른들인 마크와 바넷사 등을 손가락처럼 부리는 모습이 놀라웠다. 바원은 타이어 회사에서 나온 사람들을 만날 때도 말을 별로 하지 않으면서 늘 좋은 거래 조건을 끌어냈다. 톰슨은 누구보다도 바웬을 위해 일한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달턴 스쿨에서 수업이 끝나고 나면 줄리아 등을 집에 데려다 주고 톰슨은 다시 와서 바웬을 태워서 집으로 갔다. 바웬을 데려갈 때는 차 안에 그와 바웬 뿐이었다. 잡담하지 않는 바웬은 톰슨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톰슨도 함부로 말하지 않았다. 톰슨은 그의 진중함에 대해서 알렉산드라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프린스는 늘 엄숙합니까?"

그때 알렉산드라는 낄낄거리며 말했다.

"바웬은 바웬이 아니라 바젤(Basel, 스위스의 지방이름)이 되어 버렸어요."

어리둥절하는 톰슨에게 아밀리아가 말했다.

"퀸이 말해줬는데, 바젤은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가 숨을 거둔 장소래요. 바웬은 에라스무스를 좋아해요."

톰슨은 바젤도 모르고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도 몰랐다. 그러나 그 말들로 인해 바웬을 더 존경하게 되었다. 톰슨은 나이가 오십 네 살이었지만 열 여섯 살인 바웬을 담고 싶어 했다. 바웬은 사업장에서는 오로지 일만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그날 일을 되짚어보며 개선책을 찾는다. 톰슨은 거울로 뒷자리의 바웬을 보면서 그의 표정과 몸짓만으로도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렴풋이 짐작으로 알았다. 톰슨은 어릴 때 읽는 법만 겨우 배웠다. 그래도 그 덕에 운전까지 배워 글을 모르는 다른 형제들보다 훨씬 편안하게 살았다. 형제들과 달리 학교도 가지 않으면서도 현명하고 어른스러운 바웬에 톰슨은 자기를 투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였다.

차가 마제스틱에 도착하면 톰슨은 재빨리 내려서 차문을 열어주고, 그가 마중나온 타테우쉬와 함께 아파트 현관으로 사라질 때까지 허리를 숙였다. 바웬이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지만 계속했다.

톰슨이 보는 것처럼, 바웬은 이 무렵 자기를 확장하며 성숙해지는 중이었다. 케네기의 저술을 읽은 바웬은 자기의 입장에서 취할 것은 취했고 버릴 것은 버렸다. 그 와중에 바웬은 자기 자신과 인간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전쟁 속에서 인간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지, 왜 전쟁을 해야 하고 누가 하는지를 생각하게 되면서, 바웬은 전쟁이 인간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전쟁에서 승리해도, 승리한 자는 학살자의 멍에를 짊어질 뿐이다. 패배한 자에 대한 가혹한 착취는 또 다른 죄악이다. 죄악은 반드시 대가를 불러온다.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은 죄지은 일부가 아니라 재앙처럼 전체가 감당해야 한다. 전쟁이 인생을 이해하는 통과의례일 필요는 없다. 전쟁은 겪지 않은 자들에게만 전지전능한 도구다. 그래서 바웬은 누구와도 싸우려 하지 않았다. 당당하게 맞설지라도 비폭력으로 맞섰다.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에 심취하게 된 것도, 에라스무스의 사상은 논쟁을 피하지 않으면서도 전혀 급진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바웬은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을 읽으며 깊이 공감했다. 성직자의 사생아였으며 자기 자신도 수도원의 수도사였던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은 기독교를 산산히 부수고 부정하는 것으로 보였다. 성직자에 대한 비난에 그치지 않고 신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있으며, 다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신이 아직 민중에게는 유효한 도구이기 때문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바웬은 전쟁을 겪으면서 신의 무용성을 넘어서 신이 존재하지 않거나 최소한 신이 인간에 유익한 존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날은 1941년 12월 2일 화요일이었다. 저녁에 바웬은 셀렌부인을 모두가 둘러앉아 커피를 마시는 중에 불쑥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전쟁은 누구를 위해서 하는 걸까?"

"배가 고파서 먹을 걸 빼앗기 위해 하는 거 아니야?"

줄리아가 바로 반문했다. 줄리아도 헝가리에서 먹을 것을 담당하면서 배고픔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혹독하게 체험했고, 지금도 무서워하고 있었다. 형제들 몰래 나가서 도둑질을 하고 싶었던 마음이 얼마나 컸는지 모른다. 몸을 파는 것 쯤은 알렉산드라가 허락만 했으면 기뻐하며 했을 것이다. 알렉산드라가 미워하여 자기를 버릴까봐 못했다. 몸을 팔고 버림 받았다면, 이제는 전쟁터가 되어버린 헝가리에서 창녀로 살고 있거나 유태인이라는 누명을 쓰고 죽었을 지도 모른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줄리아는 몸이 벌벌 떨렸다. 줄리아는 먹을 것이 풍족한 지금도 배가 부를 만큼 먹지 못했다. 배 고픈 것보다 배 고플 때 먹을 게 없다는 사실이 더 무서웠기 때문에 항상 음식을 남겨 두려고 했다. 다른 아이들도 이 점에서는 비슷했다.

"아닌 거 같아."

조피아가 말했다.

"우린 전쟁 때문에 배가 고팠잖아. 배가 고파서 전쟁한 게 아니고."

조피아의 집은 폴란드에서 부유했다. 사업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부족한 것 없이 자랐다. 그래서 없는 것과 배고픔을 참기는 더 어려웠다. 조피아는 독일과 소비에트, 그리고 전쟁을 지독하게 혐오하고 있었다.

줄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밀리아가 말했다.

"히틀러가 나쁜 놈이라서 그래."

체스바와가 물었다.

"그럼 왜 독일 사람들은 나쁜 놈 히틀러가 총통이 되게 했어? 그냥 그림쟁이 였다며."

체스바와는 그림을 좋아해서 누가 그림을 그린다면 무조건 호감을 가졌다.

"그때는 나쁜 줄 몰라서?"

하고 아밀리아가 둘러댔다.

타테우쉬가 말했다.

"히틀러만 볼게 아니라 전쟁 전체를 생각해봐야지. 옛날에는 정말 배가 고파서 빼앗는 전쟁을 하기도 했을거야."

"어쩌면 배가 불러서, 힘이 쎄서 약한 나라를 침략했을지도 모르지. 노예처럼 부려 먹으려고."

마침내 쯔비그니도 끼어들었다. 쯔비그니는 말을 하면서 타테우쉬를 눈으로 흘겼다.

타테우쉬가 급하게 말했다.

"넌 내가 심부름 좀 시켰다고. 나도 바웬이 시키는 건 다 해."

쯔비그니가 말했다.

"내가 책 보고 있을 때만 시키잖아. 끊기도 곤란할 때."

"그만해. 왜 그런 이야기가 지금 나와? 이것도 전쟁이야?"

하고 줄리아가 핀잔을 줬다.

쯔비그니는

"응."

하고 대꾸했다.

"내 군대가 있으면 타테우쉬 나라로 쳐들어 갔을거야."

줄리아가 다시 꾸지람을 하려는데 바웬이 저지했다.

"그래서 타테우쉬 죽일 거니?"

"아니."

쯔비그니가 대답했다.

"생각할 때나 책 읽을 때 뭐 좀 안 시켰으면 좋겠어. 바웬이 없으니까 뭐든 나한테 시켜."

타테우쉬가 말했다.

"노는 것처럼 보이니까 그렇지."

"네가 말 안해도 타테우쉬가 해주는 건 없어?"

하고 바웬이 물었다.

쯔비그니가 바로 대답했다.

"많아."

목소리에 풀이 죽었다.

바웬이 말했다.

"그럼 둘이서 한 번 의논해봐. 서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쯔비그니가 머리를 흔들었다.

"지금 말고. 지금 하면 더 손해볼 거 같아. 나도 내가 제일 적게 한다는 거 알고 있다고."

타테우쉬가 피식 웃었다.

쯔비그니가 계속 말했다.

"그래도 난 지금 중요한 걸 하고 있단 말이야. 하다가 방해 받으면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그게 뭔데?"

가소롭다는 듯이 체스바와가 말했다.

쯔비그니가 대답했다.

"전기가 지나간 흔적을 남기거나 그 흔적을 전기로 지울 수 있을까 생각하는 거야."

쯔비그니는 스니커즈 만들겠다고 할 때도 그랬고, 가끔 엉뚱한 생각을 하곤 했다.

"그저께 세탁기 고친다더니 못해서 결국 사람불러 놓고, 너 그 때문에 전기 생각한 거지?"

하고 조피아가 몰아세웠다.

"맞아."

하면서 쯔비그니는 또 풀이 죽었다.

"전기가 지나간 흔적을 자동으로 기록만 할 수 있다면, 내가 고칠 수 있었을거야."

"그런 게 있어?"

하고 타테우쉬가 물었다.

쯔비그니가 말했다.

"없는 거 같아. 책을 찾아봐도 없었어. 그래서 내가 만들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보던 중이었는데, 자꾸 나한테 이거 하라 저거 하라 시켰잖아."

조피아 피식하며 물었다.

"네가 어떻게 만들건데?"

쯔비그니가 대답했다.

"전자석 붙은 스위치로."

"릴레이?"

하고 바웬과 타테우쉬가 동시에 말했다. 그들은 자동차를 알았기에 릴레이(계전기)를 알고 있었다.

"응."

하고 쯔비그니가 말했다.

"그걸 몇 개 동시에 사용하면 흔적을 기록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

"그거 만들면 돈 벌 수 있어?"

하고 체스바와가 물었다.

쯔비그니가 말했다.

"아마..... 벌....겠지?"

스니커즈 만들자고 할 때보다 자신있는 음성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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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20. 세일렌 - 진리나 신에게도 지지 않는 길 21.02.17 27 0 8쪽
80 20. 세일렌 - 길은 자기 속에. Nosce to ipsum (나 자신을 알라) 21.02.17 26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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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14. 테이블 위의 전쟁 - 자유와 정의, 그리고 반전 21.02.12 21 0 10쪽
» 14. 테이블 위의 전쟁 - 이유 21.02.12 21 0 12쪽
62 12. 유혹하는 진리들 21.02.11 1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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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11. 아사신 - 암살교단의 우두머리 21.02.11 24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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