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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붉은 입술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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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러버
작품등록일 :
2020.12.01 04:36
최근연재일 :
2021.02.17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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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1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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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테이블 위의 전쟁 - 자유와 정의, 그리고 반전

DUMMY

체스바와가 반색했다.

"그럼 그거 만들자. 그거 있으면 세탁기 고장 안나는 거지?"

"꼭 그렇지는 않지만...... 쓸데가 많을 거야."

"공부나 해."

하고 아밀리아가 둘을 향해 눈을 흘겼다.

"쳇."

체스바와가 입을 비죽거렸다. 공부를 못하는 것도 아니고 잘하는 편이지만 체스바와는 공부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핑계거리만 있으면 공부보다 다른 걸 하려고 했다. 그 때문에 줄리아나 다른 형제들한테서 공부나 하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전쟁 많다. 이제 체스바와도 군대 이끌고 아밀리아한테 쳐들어가겠다."

하고 테이블 끝에 있던 알렉산드라가 중얼거렸다.

"아. 전쟁."

하고는 조피아가 바웬에게 말했다.

"바웬은 전쟁이 잘못되었다는 거지?"

바웬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생각해보니까, 힘을 앞세우지 않은 논쟁은 전쟁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그럴려면 논쟁이 전쟁보다 덜 피곤해야 할 걸?"

하고 알렉산드라가 말했다.

줄리아가 말했다.

"맞아. 누가 알아, 논쟁이 귀찮아서 군대를 보내 버릴지. 논쟁은 자기가 하는 거고 전쟁은 군대가 하니까 얼마든지 나 몰라라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토론이 힘들어지는 건 다른 사람이 자존심을 건드리기 때문이야. 아픈 델 찌르는 거."

하고 체스바와가 아밀리아를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아밀리아가 큭큭 거리며 웃었다.

"기어코 나한테 군대를 보내네."

아밀리아와 체스바와는 두 살 차이고, 체스바와는 조피아와 나이가 같았지만 아밀리아는 유독 체스바와를 만만하게 여겼다. 그림을 잘 그리고 생각도 분방한 체스바와를 부러워하는 마음과 체스바와가 공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만만하게 어우러져 만들어진 독특한 감정이었다. 서로 찝적이면서도 둘은 잘 놀았다.

아밀리아가 물었다.

"그래서 전쟁의 대안이 논쟁이야?"

알렉산드라가 말했다.

"이럴 땐 논쟁이 아니라 외교라고 하는 거야."

"아. 외교."

하고 아밀리아가 말을 고쳤다.

바웬이 말했다.

"외교나 논쟁은 대안을 찾는 과정이지 대안이 아니야. 전쟁의 대안은 풍족함일지도 몰라. 굶지 않기 위해서 일으킨 전쟁을 대신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을테니까."

그때 셀렌부인이 물었다.

"전쟁을 피하는 것이 자유를 잃는 것이라면? 그래도 전쟁을 피해야 하는가요?"

"자유없이 노예가 되는 거요?"

하고 쯔비그니가 물었다.

"그래."

하고 셀렌부인이 대답했다.

쯔비그니가 머리를 흔들었다.

"차라리 전쟁하고 말겠어요. 시키는대로만 하고 매맞고 짐승처럼 산다면 죽고 싶을 거예요.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전쟁하다 죽는 게 나아요."

셀렌부인이 또 물었다.

"그럼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빼앗는 것을 보면 그에 맞서 싸워야 할까요?"

체스바와가 말했다.

"정의를 위해서 그래야 할 것 같아요."

"그럼, 넌 전쟁을 좋아하는 거네."

하고 또 아밀리아가 말했다.

"다들 정의니 뭐니 이유를 가지고 전쟁할테니까."

셀렌부인이 말했다.

"정의를 위한 전쟁은 허용되어야 할까요? 만약 허용하지 않는다면, 정의는 무엇으로 지킬 수 있을까요? 사람이 지킬 수 없다면 정의는 누가 지키죠? 신이? 신이 사람이 사는 세상의 정의를 지킬 수 있을까요? 사람도 지키지 않는 세상의 정의를."

모두가 동시에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신이 있다면 신은 전쟁을 원하는 거야."

하고 바웬이 무거운 음성으로 말했다.

줄리아와 조피아 등은 모두 섬짓한 기분에 몸을 움추렸다.

바웬이 말했다.

"난 신이 있어도 인간을 위해 있는 것 같지 않아. 없는 것 같지만, 있다면 신은 우리를 배신한 거야. 전쟁을 통해서 인간을 가장 낮은 곳으로 타락시키는 거고."

누구도 바웬이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아밀리아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인간이 먼저 잘못해서 불로 심판하는 거라면....."

줄리아가 벌컥하면서 말했다.

"우리가 뭐 잘못했는데? 뭐 잘못했다고 총맞아 죽을 뻔하고 굶어죽을 뻔해야 했는데? 원죄 같은 소린 입에도 올리지 마. 사람죽인 사형수도 이런 식으로 처벌하진 않아. 실컷 고생시키고 뭘 잘못했는지도 알려주지 않고 전쟁으로 심판해? 그건..... 악마야!"

다시 테이블에는 침묵이 흘렀다. 모두의 경험이 줄리아를 반박하지 못하게 했다.

"전쟁은 나빠."

하고 타테우쉬가 말했다.

"하지만 난 입대할 생각을 하고 있었어. 졸업해도 군사학교에 들어갈 생각이고."

타테우쉬가 군인이 되려 한다는 걸 아는 사람은 바웬 뿐이었다.

"뭐? 군인?"

하는 소리가 줄리아 입에서 터져 나왔다.

"누군가는 지켜야 할 거잖아."

타테우쉬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이제 피난 갈 곳도 없어. 난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난 총들고 싸울거야. 내가 지켜야지 누가 지키겠어."

"다 같이 지켜야지."

하고 줄리아가 말했다.

타테우쉬가 말했다.

"바웬은 안돼. 돈 벌어야 하니까."

알렉산드라는 모두의 퀸이지만, 지금 가장은 바웬이었다. 타테우쉬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기꺼이 자기가 총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체스바와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전쟁 더 안나면 좋겠다."

바웬이 말했다.

"안 나게 하고 싶어."

조피아가 물었다.

"반전운동을 하겠다는 말이야?"

바웬이 머리를 끄덕였다.

"정의를 위해서 싸워야 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 자유를 위해서 싸워야 하는 건 알겠고."

"토론하고 설득하는 건 어쩌면 전쟁보다 더 비효율적일지도 몰라. 우리는 싸워도 함께 밥먹잖아. 전쟁하는 나라들은 그럴 수 없을테니까. 토론이 안 될거야."

하고 아밀리아가 말했다.

"뭔 말이 하고 싶은데?"

하고 체스바와가 툭 쏘았다.

아밀리아가 고개를 움추리며 말했다.

"난...... 바웬 오빠가 반전운동 하다가 돈 못벌게 될까봐 무서워."

"그럴 일 없어."

하고 바웬이 말했다. 하지만 아밀리아와 체스바와는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은 전쟁보다 가난을 더 무서워하고 있었다.

조피아가 말했다.

"이번 금요일에 지네트 랜킨(Jeannette Rankin)이 우리 학교에 방문한대. 바웬도 와 볼래?"

"그 사람이 누군데?"

하고 체스바와가 물었다.

조피아가 말했다.

"연방 하원의원, 반전주의자야."

"여자가?"

아밀리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조피아가 말했다.

"최초로 연방 의원이 된 여자래. 그 전에도 당선됐는데 이번에 또 당선됐대."

달턴 스쿨은 현대의 여느 진취적인 학교와 마찬가지로 남녀 평등 교육을 기치로 내건 학교였다. 달턴에는 달턴 플랜을 통해서 각 학생들이 가진 개성과 자질에 따라 실질적 체험 교육을 실시하여 미국을 위한 인재를 기른다는 목표가 있었다. 따라서 여성 저명인사를 초청하여 여학생들을 고무하는 일은 자주 있는 행사였다.

말을 잘하고 예쁜 조피아는 학교에서 인기가 아주 좋았고 학생들 뿐만 아니라 선생들과도 친했다. 퀸즈 타이어의 회계 업무외엔 학교에서 공부만 하는 줄리아와 달리 조피아는 늘 활동이 많았고 그만큼 학교 소식에 대해서 잘 알았다.

"바웬이 오면 랜킨 의원과 이야기해볼 기회가 있을거야. 그날 내가 랜킨 의원을 안내해주기로 되어 있거든."

조피아는 부다페슈트의 레스토랑 로자에서 일할 때부터 이미 사람을 대하는 데는 전문가였다. 그 깔끔한 태도가 학교 선생들 눈에도 뛰었던 것이다.

바웬은 지네트 랜킨을 만나보고 싶었다. 책으로만 읽는 것보다 실제 반전운동을 하는 사람을 만나서 자기 자신을 확인하기를 원했다. 셀렌선생님이 반전주의에 대해서 모를리 없겠지만, 바웬이 느끼기에 셀렌선생님은 평화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사람이지만 반전주의자가 아니었다. 알렉산드라도 반전주의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원래 바웬이 가장 만나고 싶었던 반전주의자는 로맹 롤망이었지만, 그는 프랑스인이었다.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한 후 어떻게 되었는지도 바웬은 알지 못했다. 로맹 롤랑을 만나고 싶은 이유는 로맹 롤랑이 1932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국제반전대회를 주도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바웬은 에라스무스 이후에 롤랑이 노벨문학상을 받게 해준 그의 소설 "장 크리스토프"를 읽고 있는 중이었다. 소설속 인물인 장 크리스토프는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바웬은 그를 통해서 인생을 배웠다. 자유와 진실, 그리고 인간을 위해서 사회의 악과 싸워야 하는 것을 배웠다. 크리스토퍼가 경험하는 연애, 우정, 사랑, 좌절, 꿈, 그리고 조화로운 생각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부탁할게."

하고 바웬이 조피아에게 말했다.

테이블의 이야기 주제는 다른 것으로 넘어갔고, 이내 다들 공부하기 위해서 자리를 뜰 때, 체스바와는 쭈뼛거리며 바웬의 옷자락을 붙잡고 말했다.

"바웬 오빠, 난 공부 안해도 돼."

"뭔 말이야?"

하고 바웬이 묻자 체스바와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오빠가 반전운동할 때, 내가 회사일 도울 수 있어. 오빠가 한 것처럼만 하면 되잖아."

바웬은 이마를 짚었다. 언젠가부터 여자애들은 뭔가 꼭 부탁하고 싶으면 오빠란 소리로 부른다. 폴란드 말로 "브라트"라고 하든 헝가리 말로 "피유데스드비에"라고 부르든. 여차하면 체스바와가 기회를 잡았다 싶어서 학교 안가고 일하러 나올 판이었다. 바웬은 아밀리아가 했던 말을 그대로 했다.

"공부나 해."

그날 저녁에 알렉산드라는 라즐로 할아버지에게 도착할지도 불분명한 편지를 보냈다. 바웬과 아이들이 아주 똑똑해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체스바와는 빼고.

이는 라즐로가 믿고 있는 화성인 효과였을 수도 있었다. 한 명이 특출하면 주변의 인물들도 영향을 받아서 함께 특출해진다는 것이 라즐로의 경험이었고 믿음이었다. 그러나 어떤 결과에 유일한 원인이라는 것은 현실에서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일반화하기에는 표본이 너무 특이했고, 확인 가능한 표본의 숫자도 지나치게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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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20. 세일렌 - 뜨게질 하는 짐승들이 있는 바다 가운데 섬 21.02.17 31 0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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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20. 세일렌 - 길은 자기 속에. Nosce to ipsum (나 자신을 알라) 21.02.17 27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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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17. With Peace and Hershey - 학업 중단, 어떤 사람들의 이상한 성공 조건 21.02.16 19 0 11쪽
70 17. With Peace and Hershey - 미국이 두려워 하는 것 21.02.16 26 0 11쪽
69 16. 전야의 반전주의 - 반전주의자 랜킨 의원 21.02.14 21 0 11쪽
68 16. 전야의 반전주의 - 사탕이 좋아 21.02.14 25 0 9쪽
67 16. 전야의 반전주의 - 프린스 바웬 21.02.14 23 0 10쪽
66 15. 철학하는 침대 - 데카르트의 연인, 여자 왕 크리스티나 21.02.12 31 0 14쪽
65 15. 철학하는 침대 - 모순 덩어리 철학자들 21.02.12 17 0 11쪽
» 14. 테이블 위의 전쟁 - 자유와 정의, 그리고 반전 21.02.12 22 0 10쪽
63 14. 테이블 위의 전쟁 - 이유 21.02.12 21 0 12쪽
62 12. 유혹하는 진리들 21.02.11 1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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