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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붉은 입술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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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러버
작품등록일 :
2020.12.01 04:36
최근연재일 :
2021.02.17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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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12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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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철학하는 침대 - 모순 덩어리 철학자들

DUMMY

15. 철학하는 침대


알렉산드라는 침대에 엎드려서 책을 보며 우유를 마셨다. 우유를 흘리지 않기 위해서 상체를 들어 올리고 턱도 올리고 마셨는데도 우유가 입가로 타고 내려 목을 간지럽히며 가슴으로 내려갔다.

"퀸!"

하고 셀렌부인이 주의를 주었다.

알렉산드라는 컵의 우유가 한 방울도 남지 않을 때까지 그 자세로 마시고 나서 배시시 웃으며 가슴을 눌러 흘러내린 우유를 닦았다. 손가락으로 마치 먼지 털 때처럼 가슴을 털어냈다.

"책에는 안 흘렸어요."

셀렌부인이 물었다.

"왜 퀸은 침대까지 우유를 가져와서 마셔요? 꼭 그 자세로."

알렉산드라가 대답했다.

"안 흘리고 마시는 거 성공할 때까지만 할게요."

이러면 보통 셀렌부인은 더 묻지 않고 넘어갔다. 알렉산드라가 우유를 마신 후에는 양치질하러 달려가기 때문이었다.

"혹시 치약이 맛있어서 그래요?"

하고 셀렌부인이 말했다.

알렉산드라는 일어나서 양치질하러 가려다가 움찔했다. 그리곤 돌아보면서 작은 소리로 물었다.

"선생님도 맛있지요?"

셀렌부인은 "아!" 하고 웃음을 지었다.

설마 했던 것이 정말 이었던 것이다. 셀렌부인은 치약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예전부터 사용하던 가루로 만든 것과 다르고 자극성이 너무 강해서 조금밖에 쓰지 않았다. 특히 이번에 산 콜게이트 치약은 양치질을 하고 나면 입안이 없어진 것처럼 얼얼했다. 그래서 설마 콜게이트 치약이 맛있어서 알렉산드라가 우유를 침대에서 먹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알렉산드라는 우유만 마실 경우 양치질하는 게 과하게 보일까봐 목과 옷을 일부러 적시고 씻으러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양치질을 한 번 더 해댄 것이었다.

"꼭, 민트 껌 같아요. 그런데, 껌보다 더 좋아요. 설탕을 우유에 좀 많이 넣으면."

셀렌부인은 가까이 가서 알렉산드라의 컵을 보았다. 컵 바닥에는 우유에 녹지 않고 남아있는 설탕이 가득했다. 보나마나 알렉산드라는 이 설탕에 치약을 버무리거나 치약에 설탕을 버무려서 양치질하며 먹었을 것이다.

이왕 들킨 것, 알렉산드라는 음흉하게 씨익 웃고 있으며 공범이 되기를 요청하고 있었다.

셀렌부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 하고 나서, 설탕 없이 한 번 더 양치질 해요. 치약만으로."

"네!"

하고 알렉산드라가 신나게 대답하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셀렌부인은 알렉산드라의 침대에 펼쳐져 있는 책을 보았다. 전체 174 페이지인 "기하학적으로 증명된 윤리학(Ethica, ordine geometrico demostrata)" 가 며칠 동안 같은 페이지에 펼쳐져 있었다. 셀렌부인은 이건 또 무슨 장난일까 하고 생각했다. 알렉산드라는 대부분의 책을 금방 읽는다. 눈으로 훑어내리고 나면 거의 다 기억하고, 그 다음부터는 그 내용을 생각하지 책을 며칠 동안 펴고 보는 경우는 잘 없었다. 이것도 양치지를 한 번 더 하기 위한 장치일 가능성도 있었다.

책을 쓴 저자 바루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는 17세기 사람으로 그의 모든 저서가 한 때는 금서 목록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철학의 왕자라고 칭해지기도 했고, 게오르크 헤겔은 철학자는 모두 스피노자주의자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었다. 스피노자의 저서 기하학적으로 증명된 윤리학은 철학에 수학을 이용한 형태의 하나다. 뉴턴의 저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나 마찬가지 발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스피노자의 사상은 스토아 학파와 그 이전의 에피쿠르스에 연원을 두고 있는데, 알렉산드라는 에피쿠르스의 정원(The Garden)을 동경하는 말을 했다. 정원은 에피쿠르스가 만든 만남의 장소였고, 에피쿠르스 학파는 남녀 차별 없이 배울 수 있는 최초의 학파였다. 남녀 차별 없는 교육을 실시하는 달턴 스쿨에 이르는 이천 오백 년 동안 그런 학교가 있다고 알려지지 않았다. 남녀가 배움에 있어서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는 수 천년 학문을 하는 것보다도 어려웠다. 알렉산드라가 스피노자의 저술을 읽게 된 것도 "쾌락"과 "윤리"에 대한 공부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에피쿠르스를 공부하게 되었고, 다시 에피쿠르스의 맥락을 이어가는 스피노자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알렉산드라가 만족스런 표정으로 돌아왔을 때 셀렌부인이 말했다.

"퀸, 나한테 할 말 있으면 해요."

알렉산드라는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이 되어 머뭇거렸다.

셀렌부인이 물었다.

"스피노자가 퀸에게 뭐라 했어요?"

알렉산드라가 작심한 듯이 말했다.

"자기가 엉터리래요."

셀렌부인은 뜻밖의 소리에 아무 말도 못했다.

알렉산드라가 말했다.

"그 사람 모순 덩어리예요. 선생님."

셀렌부인은 정말 알렉산드라를 가르치기가 쉽지 않았다. 한 번씩 들고 나오는 문제나 주제는 셀렌부인조차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게 대부분이었다. 스피노자에 대해서 셀렌부인은 아주 위대한 철학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알렉산드라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스피노자를 모순 덩어리라 생각했으니까 함부로 셀렌부인에게 반박도 못하고 제 나름 끙끙거렸던 것이다. 엉뚱한 짓이나 하면서. 어쩌면 우유가 책에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책에 떨어뜨리기 위해서 그 자세로 마셨을 가능성도 있었다.

"이야기해봐요."

하고 셀렌부인이 말했다.

알렉산드라가 말했다.

"코나투스(Conatus, 힘)가 살고자 하는 욕구, 의지이면서 행복은 코나투스의 완전한 방출에 있다고 하는데, 이 사람은 우주가 시작도 끝도 없다고 해요. 그래서 죽음도 죽음이란 죽음은 없다고 하게 되는데, 살고자 하는 욕구인 코나투스는 어디서 나와요? 이 사람 인생 자체도 모순이예요. 평생 가난하게 살다가 오래 살지도 못하고 병걸려 죽었는데, 이 사람은 코나투스를 말하면서도 그게 없었던 거예요.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기회가 많았는데도 엉뚱한 소리나 하면서 일부러 가난하게 살다가 죽었다고요."

셀렌부인은 대꾸하지 못했다.

알렉산드라의 말처럼, 스피노자의 인생은 그러했다.

알렉산드라가 말했다.

"이런 사람들 아주 싫어요. 프로이트도 모순 덩어리에 비겁자고, 에피쿠르스도 쾌락 어쩌고 하면서도 평생 아파서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에 살았다 하고, 스피노자 이 사람도 그렇고. 선생님, 왜 제가 읽고 감명받는 책들을 쓴 사람들은 다 이래요? 수학 말고 철학하는 사람들은 다 그런 거 같아요."

알렉산드라는 분개하고 있었다. 부르바키의 집합론을 읽었을 때, 인간은 어쩌면 이렇게 위대한가 하고 부르짖었던 알렉산드라였기 그 실망은 더욱 컸다.

셀렌부인이 침대에 함께 걸터앉아 토닥거렸다.

"퀸, 철학은 원래 그래요. 과학은 추정과 실험, 관찰을 통해서 쌓아가는 것이지만 철학은 늘 무너뜨리고 새로 시작해야 하는 거랍니다. 세월이 지나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되고 부서지고 달라지는 생명체 같은 거예요."

알렉산드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저 윤리학하고 철학 더 안해도 돼요?"

알렉산드라는 공부하기 싫다. 공부가 싫다는 소리를 하는 체스바와나 마찬가지라는 말을 듣는 게 겁이나서 책 만 펴놓고 미적거렸던 것이다. 아마 저녁 테이블에서도 "공부나 해" 하는 아밀리아의 말에 제 바람에 찔렸던 게 틀림없다.

셀렌부인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 웃는 경우가 없었기에 알렉산드라는 눈이 둥그레졌다.

셀렌부인이 말했다.

"퀸 원하는대로 해요. 철학을 하다가 수학으로 돌아서는 사람들이 다 그런 이유 때문이니까요."

"그럼 계속 철학하는 사람들은 바본가요?"

하고 퀸이 물었다.

셀렌부인이 말했다.

"퀸, 내가 어떤 숫자를 생각하고 있어요. 이 방안과 관련된 숫자고 10보다 크지 않아요. 그 숫자를 맞춰봐요."

알렉산드라가 말했다.

"아마 0부터 10까지 다 물어봐야겠지요? 맞는지 아닌지."

셀렌부인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또 어떤 숫자를 생각하고 있어요. 그 숫자가 뭔지를 알려면요?"

알렉산드라가 얼굴을 찌푸렸다.

"답이 나올 때까지 자꾸 말하는 건가요? 철학자들도?"

셀렌부인이 말했다.

"그래요. 철학자들은 답을 찾는 사람들이지 답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예요. 그들이 말한 답은 답에 이를 때까지는 모두 틀렸어요. 답을 찾는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아요.자꾸 묻고 답해보고, 또 묻고 답하죠. 그러면 틀린 답이 수없이 쌓이게 되지요. 철학을 하다가 수학으로 간 사람들도, 수학을 한다면서 실은 철학을 해요. 그들에게 문제는 철학이고 해결하는 방법은 수학인 거지요. 퀸."

"예."

"퀸은 철학을 하면서 틀린 답을 배우는 게 아니예요. 그들의 저술을 읽으면서 그들이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고 검증해봐요. 퀸이 싫어하는 에피쿠르스가 없었으면 과학은 발전하지 못했어요. 어쩌면 아직도 우리는 나귀가 돌리는 방아에서 빻은 곡식으로 빵을 만들고 있을지도 몰라요. 현대 과학의 방법론은 에피쿠르스에 의해서 정립되었으니까요. 스피노자가 아니라면 유일신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기원인으로서의 코나투스를 말하지 않았다면 인간 본연의 가치를 발견하는데 얼마나 더 많은 세월이 필요했을지 몰라요. Deus sive Natura(신이 바로 자연이다)에서 Nous sive Hyle(신과 물질이 동일하다)에 이르는 그의 생각은 이전에 존재했던 모든 사상과 가르침을 우리가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했어요. 그로 인해서 우리는 하나가 열이 되는 것처럼 사유의 폭을 넓히고 진리를 더 멀리서, 더 깊이 추구할 수 있게 되었어요."

셀렌부인의 말에 알렉산드라는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셀렌부인이 말을 이었다.

"우리 인간은 모두 저 전기불 같아요. 밝았다가 어두워지고 다시 밝아지는 전등처럼, 우리도 강할 때와 약할 때를 오가며 살아요. 심장 마저도 간격을 두고 뛰어요. 더 크게보면 해도 아침에만 떠요. 진리를 추구하다가 자기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고, 감당하지 못할 진리들 앞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철학자를 조롱해서는 안돼요. 그들의 말이 모순되고 그들의 행동이 말을 따라가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들의 업적이 모두 허위와 거짓으로 드러난다 하더라도, 그 사람들의 삶은 숭고해요. 우리 인간은...... 고작 그런 존재니까. 그들은 우리의 진실한 모습입니다."

알렉산드라는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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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17. With Peace and Hershey - 학업 중단, 어떤 사람들의 이상한 성공 조건 21.02.16 19 0 11쪽
70 17. With Peace and Hershey - 미국이 두려워 하는 것 21.02.16 26 0 11쪽
69 16. 전야의 반전주의 - 반전주의자 랜킨 의원 21.02.14 21 0 11쪽
68 16. 전야의 반전주의 - 사탕이 좋아 21.02.14 25 0 9쪽
67 16. 전야의 반전주의 - 프린스 바웬 21.02.14 23 0 10쪽
66 15. 철학하는 침대 - 데카르트의 연인, 여자 왕 크리스티나 21.02.12 31 0 14쪽
» 15. 철학하는 침대 - 모순 덩어리 철학자들 21.02.12 17 0 11쪽
64 14. 테이블 위의 전쟁 - 자유와 정의, 그리고 반전 21.02.12 21 0 10쪽
63 14. 테이블 위의 전쟁 - 이유 21.02.12 21 0 12쪽
62 12. 유혹하는 진리들 21.02.11 19 0 12쪽
61 11. 아사신 - 거래 21.02.11 25 0 13쪽
60 11. 아사신 - 암살교단의 우두머리 21.02.11 24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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