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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붉은 입술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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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러버
작품등록일 :
2020.12.01 04:36
최근연재일 :
2021.02.17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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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14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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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전야의 반전주의 - 사탕이 좋아

DUMMY

바웬은 저녁에서야 강연이 시작되는 게 못마땅했다. 이미 어둡다. 셀렌선생님이 텅빈 집에서 기다리는 게 마음에 놓이지 않았다. 머리만 끄덕이고 동생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와, 오빠 멋있다."

하며 체스바와가 호들갑을 떨었다. 오빠 소리로 봐서 아직도 공부 안하려는 의도를 표현한 것이지만 리무진에서 내리는 바웬은 누가 봐도 멋있었다. 아주 단단하면서도 엄숙한 표정은 그가 17살이라는 생각을 떠올리지 못하게 했다. 그는 청년이 되어 있었다. 주변에는 랜킨 의원을 보기 위해 오는 사람들의 차가 하나 둘 도착하고 있었다. 바웬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길 옆에 나와 바웬을 기다리는 줄리아 등은 어린 알렉산드라와 아밀리아를 가운데 두고 찬바람을 막아주며 서있었다.

"춥다. 들어가자."

하며 바웬은 먼저 뛰쳐온 체스바와의 어깨를 툭쳤다. 대화를 주고 받으며 여덟 명이 함께 강당으로 향했다.

"아밀리아, 누구야?"

하고 아밀리아를 아는 어떤 여자아이가 소리쳐서 물었다.

아밀리아가

"우리 오빠야."

하며 뻐겼다.

줄리아는 한쪽 끝에서 걸으면서 늘 퇴근하면 묻는 말을 했다.

"힘들었지?"

"괜찮아. 왜 먼저 안 갔어? 날씨도 추운데."

하는데 쯔비그니가 말했다.

"퀸이 이것도 전쟁이래."

알렉산드라는 바웬을 보고 기뻐했지만 뭔가 표정이 이상했다.

"퀸은, 뭔 일 있어?"

하자 아밀리아가 대신 대답했다.

"수업시간에 사탕 먹다가 걸렸대. 그래서 선생님이 어머니 데려오라고 했대."

알렉산드라는 못들은 척하고 있었다. 늘 단 걸 입에 물고 살다시피 하니까 학교 수업시간에 마저 사탕을 먹었던 모양이었다.

바웬이 의문을 표했다.

"겨우 사탕 먹은 일로?"

"주의를 받고도 또 먹었대. 세 번이나. 그래도 퀸은 잘못 없어. 수업 방해를 한 것도 아니고, 딴 애들 떠들때 사탕 깨물어서 소리낸 것밖에는 시끄럽게 하지도 않았다니까."

아밀리아는 퀸을 위해서 변명해주고 있었다. 퀸이 시켰을리는 없고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다.

"퀸은 오빠가 선생님을 만나줬으면 해. 셀렌선생님께는 말하지 말고."

"아!"

바웬은 납득했다. 왜 알렉산드라가 이것도 전쟁이라고 했는지, 그리고 모두 집에 안가고 자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알렉산드라가 배시시 웃었다.

"선생님 교실에서 기다려."

입 안에서 사탕이 구르고 있는 게 보였다.

미국은 퀸 일가가 도착했을 때 이미 주 5일 근무가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금요일인 오늘이 주말 저녁이고, 토요일에는 학교에 오지 않으니까 선생의 소환에 응하려면 월요일은 되어야 한다. 월요일이면 바웬이 가장 바쁜 날이고 낮에는 시간을 내기 어렵다.

"우리 교실은 이쪽."

알렉산드라가 방향을 손짓했다. 조피아는 랜킨 의원이 도착할 때를 대비해서 강당으로 먼저 갔고, 나머지는 모두 알렉산드라의 교실로 갔다. 교실이 가까워지자 알렉산드라는 바웬에게 속삭였다.

"우리 선생 못됐어. 오빠가 잘 말해줘. 나 귀찮게 하지 말라고."

"어떻게 귀찮게 하는데?"

"자꾸 수업시간에 물어봐. 성가시게. 대답하려면 입에 있는 사탕 들킨단 말이야."

"알았어."

바웬은 피식 웃었다.

알렉산드라는 6학년이었다. 교실 밖 복도에 줄리아 등이 서서 기다리고, 바웬은 알렉산드라를 데리고 들어갔다.

"미스....."

하고 바웬이 모자를 벗고 인사하면서 말을 꺼내자 이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빨간 머리 여선생이 손을 내밀었다.

"메리 리, 메리라고 불러요. 미스터 퀸(Quinn)"

바웬은 폴란드의 습관처럼 무심코 그 손을 잡고 키스하는 시늉을 하려다가 악수를 했다. 장갑을 끼지 않은 여자의 거친 손이었다. 미국에서는 이제 여성들도 남성들과 악수를 하고 있었다.

"바웬이라 부르면 됩니다."

"미스터 바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알렉스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요청했습니다."

메리 리는 학부형 자격으로 온 바웬에게 미스터 라는 존칭을 붙이지 않을 수 없기에 미스터 바웬으로 그를 불렀다. 대화의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었다. 바웬은 금색 명함상자에서 명함을 꺼내 건네주었다.

메리 리는 퀸스 오토 타이어를 알고 있었다. 퀸스 타이어는 달턴 스쿨에서 걸어서 가도 15분 거리에 있고 이미 상당히 유명했다.

"바웬씨가 퀸스 타이어 사장이었군요!"

메리 리는 말 그대로 새파란 신사인 바웬이 퀸스 타이어 사장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학교에서 유명한 퀸스들이 부유하고 기품있어 남달랐지만 바로 그 퀸스 타이어의 가족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제 동생 알렉스를 잘 부탁드립니다. 잘못한 게 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바웬은 미스 메리 리의 눈을 빤히 들여다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미스 메리는 약간 당황했다.

"아니, 꼭 잘못했다고는 할 수 없어요. 알렉스는 아주 우수한 학생이니까요. 하지만 제 지시를 잘 따르지 않아요. 사탕을 많이 먹는 나쁜 습관도 문제입니다. 우리 달턴 스쿨은 현대적 교육을 실시하지만 학생들은 교사의 권위와 지시에 따라야 합니다. 하지만 알렉스는....... 이게 제일 큰 문제입니다. 학교 방침상....."

옆에 있던 알렉산드라는 일부러 딴청을 부리고 있었다. 입 안에서는 사탕이 오물거렸다.

바웬은 알렉산드라를 변호했다.

"알렉스는 사탕이 필요합니다. 사탕은 알렉스에게 약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알렉스가 아픈가요?"

메리 리는 내키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사탕이 약이라는 건 말도 되지 않는다.

바웬은 가느다란 알렉산드라의 손목을 들어 보였다.

"알렉스는 다른 음식을 잘 먹지 못합니다. 아주 조금만 먹습니다. 우리가 폴란드를 탈출할 때 너무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알렉스는 굶어서 죽을 뻔했습니다. 거의 죽었다가 살아났지요. 너무 굶어서."

바웬의 침중한 말에 메리 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저희가 겪은 전쟁은 그랬습니다. 벗어났지만 음식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는 겁니다. 알렉스는."

"오.... 알렉스. 미안해. 내가 몰랐어."

하며 메리 리가 눈물을 글썽이며 알렉스를 안았다. 메리 리는 겉보기 보다 감정이 풍부한 선생이었다. 바웬은 알렉산드라가 그 때문에 꽤 피곤할 것 같았다.

바웬이 머리를 숙였다.

"사탕 이외, 지시에 따르는 문제는 제가 잘 타이르겠습니다."

"제가 다른 학생들과 학교에 사정을 알리겠습니다. 아무 문제 없을 거예요. 다 알렉스를 이해할 겁니다."

메리 리는 아무 걱정 말라는 듯이 알렉산드라를 더 안아 주었다. 알렉산드라는 바웬을 보면서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메리 리는 바웬에게 알렉산드라가 한 과제물이랑 수업 시간에 한 것들을 보여주며 칭찬했다. 수업 시간에 한 것은 알렉산드라가 한 거 겠지만 과제물은 대부분 아밀리아와 체스바와가 대신 해준 것들이었다.

교실을 나오면서 알렉산드라는 작게 웃었다.

"오빠 거짓말 잘 꾸며 내더라. 난 밥도 잘 먹는데."

"나한텐 진짜야."

하고 바웬이 묵뚝뚝하게 대꾸했다. 알렉산드라는 바웬의 표정이 무거워져 있는 것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또 힘들었던 순간을 떠올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잘 됐어?"

하고 아밀리아가 물었고, 알렉산드라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바웬을 보면서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오빠 덕이야."

바웬은 의젓하고 당당했다. 회색 양복에 흰모자, 붉은 줄무늬가 들어간 넥타이는 그를 더욱 멋있어 보이게 했다.

"멋있다."

하고 쯔비그니가 부러워했다.

"넌 좀 더 커야돼."

줄리아가 어림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강당에 들어갔을 때는 조피아가 그들이 앉을 자리를 잡아 놓고 있었다. 강단 왼 쪽에는 두 개의 책상에 두 사람이 앉아서 기부금을 받고 있었다. 하나는 달턴 스쿨을 위한 기부금을 받는 곳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가인 지네트 랜킨을 위한 곳이었다. 바웬은 줄리아와 같이 가서 학교 측에 학생들 이름을 말하고 20달러를 기부하고, 지네트 랜킨 쪽에는 퀸이라는 이름 만으로 20달러를 기부했다. 20달러는 작은 돈이 아니었다.

이내 장내 방송이 정숙을 요구했고, 바로 사회자의 안내방송과 함께 지네트 랜킨이 손을 흔들며 연단으로 들어왔다. 미국 최초의 여성 하원의원은 61세였지만 몸이 가늘며 단단해 보였다. 청중들이 박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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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18. 중역회의 - 흥겨운 크리스마스 21.02.16 20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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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17. With Peace and Hershey - 착한 부자, 착해서 부자가 된 사람 21.02.16 21 0 10쪽
71 17. With Peace and Hershey - 학업 중단, 어떤 사람들의 이상한 성공 조건 21.02.16 19 0 11쪽
70 17. With Peace and Hershey - 미국이 두려워 하는 것 21.02.16 26 0 11쪽
69 16. 전야의 반전주의 - 반전주의자 랜킨 의원 21.02.14 20 0 11쪽
» 16. 전야의 반전주의 - 사탕이 좋아 21.02.14 25 0 9쪽
67 16. 전야의 반전주의 - 프린스 바웬 21.02.14 23 0 10쪽
66 15. 철학하는 침대 - 데카르트의 연인, 여자 왕 크리스티나 21.02.12 30 0 14쪽
65 15. 철학하는 침대 - 모순 덩어리 철학자들 21.02.12 16 0 11쪽
64 14. 테이블 위의 전쟁 - 자유와 정의, 그리고 반전 21.02.12 21 0 10쪽
63 14. 테이블 위의 전쟁 - 이유 21.02.12 21 0 12쪽
62 12. 유혹하는 진리들 21.02.11 19 0 12쪽
61 11. 아사신 - 거래 21.02.11 25 0 13쪽
60 11. 아사신 - 암살교단의 우두머리 21.02.11 24 0 7쪽
59 10. 크리스마스의 거미 21.02.11 20 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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