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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붉은 입술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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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러버
작품등록일 :
2020.12.01 04:36
최근연재일 :
2021.02.17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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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17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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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구조와 한계, 그리고 방식 - 집으로 들어온 전쟁 냄새

DUMMY

19. 구조와 한계, 그리고 방식





12월 31일까지 알렉산드라는 빨갛고 노랗고 파란 형형색색의 초콜렛을 상상했다. 파란색 초콜렛은 어떤 맛일지, 빨간색 초코렛과는 어떻게 다를지를 상상 속에서 비교해보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집으로 배달되어 온 m&m’s 초코렛 상자를 받았다. M&M 초코렛은 허쉬 초코렛과 관련있는 회사에서 만들었는데 전부 군대로 다 보내기 때문에 가게에서 살 수가 없는 것이었다.

알렉산드라는 몇 개 맛을 보고는 더 먹지 않았다. 분명 달았는데 맛이 없었다. 설탕으로 초코렛을 감싼 동그란 단추 모양 초코렛들은 알렉산드라의 구미를 전혀 당기게 하지 않았다. 맛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는데 실제 맛은 알렉산드라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못했다. 알렉산드라는 다시 키세스를 먹었는데, 키세스도 맛이 없었다. 아몬드 초코렛바도 맛이 없었고, 모든 사탕 종류가 다 싫어졌다. 이제 단 것은 입에 대기도 싫었다. 설탕맛이 나는 건 다 싫었는데 코카콜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알렉산드라는 창가에 기대고 쪼그려앉아 센트럴 파크 위의 하늘을 보고 있었다. 몹시 우울했다. 시선을 발끝으로 돌렸다. 조피아가 그저께 발톱을 분홍색으로 칠해줬다. 손끝으로 문질러서 매끈거리는 페디큐어의 감촉을 느끼니 어깨까지 저릿한 간지러움이 번졌다.

M&M 초코렛을 먹은 것도 후회되고 본 것도 후회되었다. 동그란 색깔 단추 같은 M&M이 뒤섞여 있는 모습은 너무 많은 것을 연상시켰다. 풀밭에 쓰러져 있던 시체들, 푸른 군복에서 새어나오던 피, 누런 땅바닥에 구르는 주검들, 허연 구더기. 이 때문에 초코렛이 싫어지더니 단 것 전부가 싫어졌다. 여러 색깔 때문인 것만은 아니었다. 체스바와가 쓰는 물감은 훨씬 더 다채로웠지만 전쟁의 참상을 연상시키지는 않았다. M&M이 생산되는 족족 군대로 보내지고, 군대는 전쟁터로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허쉬 초코렛과 M&M’s의 가장 큰 고객은 군대였다. 특히 허쉬 초코렛은 "깁미 초코렛"이라는 전쟁터의 슬픈 유행어를 만들었다. 머릿속에서 M&M 초코렛으로 모자이크처럼 그린 전쟁 모습들이 자꾸 보였다. 알렉산드라는 결국 화장실로 달려 가서 토했다. 웩웩거리며 토하자 줄리아가 놀라서 달려왔다.

"어디 아파?"

알렉산드라는 손짓으로 괜찮다는 시늉을 하고는 입가를 닦았다.

"언니, 저거 다 갖다 버리자."

"뭐? 초코렛?"

어느 틈에 달려온 아밀리아가 물었다.

알렉산드라가

"기분 나빠서 못 먹겠다. 갖다 버리자. 나 이제 단 거 안 먹을거야."

하고 단호하게 선언했다.

전쟁이 집으로 들어온 것 같이 불쾌하다고 알렉산드라가 이야기했을 때 반대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허쉬씨가 특별히 보내준 M&M 초코렛들은 도착한 지 두 시간도 안 돼서 박스 채로 빈민구제소로 보내졌다. 허쉬씨의 마음은 고맙지만 M&M 초코렛은 알렉산드라에게 큰 상처가 되었다. 빈민구제소에서 돌아오는 길에 줄리아와 아밀리아, 그리고 운전기사인 톰슨과 함께 햄버그를 사먹었다. 즐겁지도, 힘이 나지도 않았다.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평화로울 때는 평화에 기대 살고, 전시에는 전쟁에 기대어 살아야만 부유하게 사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착하면 뭐하는가 세상은 이런 것인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프로이트 방식으로 확장해보면 착하게 산다는 것은 단지 나르씨시즘의 한 형태일 뿐이라고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선한 자기 자신, 순수한 자기 자신에 자기가 반해서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건 자기 능력이나 미모에 대한 집착과 마찬가지로 나르씨시즘적인 집착이다. 이런 종류의 선은 집착이라는 "형식"에 붙어있다.

"스케이트 타러 갈래?"

하고 아밀리아가 제안했다. 맨하탄에는 겨울마다 호수에서 스케이트를 탈 수 있었다. 센트럴파크에 있는 호수에서도 가능했는데 어떤 경우에는 관리인들이 막았다. 그러나 일단 타고 호수로 나가버리면 그들도 별 다른 방법이 없었다. 단 그런 곳은 스케이트를 빌려주는 곳이 없으니까 자기 것을 가져가야 했다. 알렉산드라는 스케이트를 타는 게 싫지는 않았지만 번거로워서 거절했다.

알렉산드라는 그 다음날도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무용도 건성으로하고 하루 종일 창밖만 보았다. 셀렌부인은 알렉산드라를 지켜 보기만 했다. 그냥 둬도 괜찮으냐는 줄리아의 걱정에 이렇게 말했다.

"침울은 감정적 사고의 한 방법이예요. 이성적 사고가 지나치면 뜻하지 않은 계기로도 종종 나타납니다. 우리는 감정에 대한 이성적 생각이 아니라 이성에 대한 감정적 생각 역시 필요로 해요."

"저러다 잘못될까봐 걱정돼요."

줄리아는 근심을 거두지 못했다.

셀렌부인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바웬을 데려와요. 아니 전부다."

바웬도 년말이라 출근하지 않고 집에 있었다. 우루루 다 몰려와 긴 테이블에 둘러앉았을 때 셀렌부인이 물었다.

"우울한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러자 알렉산드라를 제외한 모두가 오른손을 들었다. 다들 너 때문이야 하는 눈빛을 받으며 알렉산드라가 멀뚱멀뚱한 표정을 지었다.

셀렌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집에만 있어서 그런 것 같군요. 함께 휴가 가는 게 어떨까요?"

"어디로요?"

하면서 체스바와가 반색을 했다. 우울한 기색이 털끝만큼도 없었다.

셀렌부인이 신문을 펼치고 손으로 짚었다.

"코네티컷에 있는 레이크 컴파운스(Lake compounce)가 재미있을 듯해요. 어뮤즈파크(amusement park 놀이공원)이니. 재미난 놀이시설이 많다는군요."

아밀리아와 체스바와가 얼굴을 신문 가까이로 붙였다. 쯔비그니는 늦어서 체스바와의 뒤통수 밖에 못 보았다. 뉴욕타임즈의 광고페이지의 깨알 같은 글자와 사진들이 그 여백으로 보였다.

광고를 독점하고 있던 아밀리아와 체스바와는 눈치가 보였는지 슬며시 줄리아와 조피아에게 넘겨 주었다.

"어디갈지 투표하자. 난 가고 싶은 곳이 있어."

하고 체스바와가 말했다.

"나도."

하고 아밀리아가 말했다.

차례대로 신문 광고면에 나온 것을 훑어보았지만 아무도 레이크 컴파운스를 눈여겨 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 바웬은 셀렌부인에게 신문을 돌려주며 물었다.

"선생님은 레이크 컴파운스에 가고 싶은 게 아니지요?"

셀렌부인이 빙긋웃으며 말했다.

"나도 내가 가고 싶은 곳을 투표할까요?"

"당연한 걸요."

하며 조피아가 말했다.

휴가지는 여러 후보 중에서 키 웨스트(Key west)로 결정되었다. 플로리다 최남단인 키 웨스트 섬까지는 원래 철도가 바다를 건너서 이어져 있었는데 허리케인으로 부서져서 새로 자동차 도로가 만들어져 개통된 지 일년 남짓했다. 겨울에도 따뜻한 곳이라는 이국적인 경치와 자동차로 바다를 가로질러 간다는 것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바웬은 즉시 회사 직원인 바넷사와 마크에게 전화해서 휴가를 1월 10일까지 연장하겠다고 알린 후 뉴욕 뮤니시펄 공항에서 마이애미로 가는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바로 다음날이었다. 모두가 비행기를 탈 거라는 사실에 어쩔 줄 몰라하며 기뻐했다. 줄리아 등은 따뜻한 플로리다의 날씨며 온갖 정보를 다 동원하면서 짐을 꾸리고, 조피아는 마이애미와 키 웨스트에 호텔을 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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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19. 구조와 한계, 그리고 방식 - 지혜의 문을 지나서 21.02.17 26 0 7쪽
78 19. 구조와 한계, 그리고 방식 - 칸트의 몽상 21.02.17 23 0 10쪽
» 19. 구조와 한계, 그리고 방식 - 집으로 들어온 전쟁 냄새 21.02.17 21 0 8쪽
76 18. 중역회의 - 노동과 자본의 관계 형성 21.02.16 29 0 13쪽
75 18. 중역회의 - 사업에서 성공하는 법 21.02.16 21 0 8쪽
74 18. 중역회의 - 흥겨운 크리스마스 21.02.16 19 0 10쪽
73 18. 중역회의 - 나무 같이 자라는 아이들 21.02.16 65 0 9쪽
72 17. With Peace and Hershey - 착한 부자, 착해서 부자가 된 사람 21.02.16 21 0 10쪽
71 17. With Peace and Hershey - 학업 중단, 어떤 사람들의 이상한 성공 조건 21.02.16 18 0 11쪽
70 17. With Peace and Hershey - 미국이 두려워 하는 것 21.02.16 25 0 11쪽
69 16. 전야의 반전주의 - 반전주의자 랜킨 의원 21.02.14 20 0 11쪽
68 16. 전야의 반전주의 - 사탕이 좋아 21.02.14 24 0 9쪽
67 16. 전야의 반전주의 - 프린스 바웬 21.02.14 22 0 10쪽
66 15. 철학하는 침대 - 데카르트의 연인, 여자 왕 크리스티나 21.02.12 30 0 14쪽
65 15. 철학하는 침대 - 모순 덩어리 철학자들 21.02.12 16 0 11쪽
64 14. 테이블 위의 전쟁 - 자유와 정의, 그리고 반전 21.02.12 21 0 10쪽
63 14. 테이블 위의 전쟁 - 이유 21.02.12 21 0 12쪽
62 12. 유혹하는 진리들 21.02.11 19 0 12쪽
61 11. 아사신 - 거래 21.02.11 23 0 13쪽
60 11. 아사신 - 암살교단의 우두머리 21.02.11 24 0 7쪽
59 10. 크리스마스의 거미 21.02.11 20 0 18쪽
58 9. 위대한 독재자 - 비극도 행운도 언제나 옆을 스치는 세상 21.01.23 3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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