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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붉은 입술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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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러버
작품등록일 :
2020.12.01 04:36
최근연재일 :
2021.02.17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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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17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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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구조와 한계, 그리고 방식 - 지혜의 문을 지나서

DUMMY

알렉산드라는 칸트가 보여준 이 가능성과 사실들로 구조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 형상이고 형상의 작동 행태가 형식이다. 형식이 결과로서 형상을 변화시키고 형상은 형식을 낳는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모든 구조는 잠재적인 전체여야 하고, 그 전체 속에 파악된 구조에 의한 잠재적인 형식 또한 존재한다. 그래야만 형식이 형상을 변화시켜 구조가 완전한 전체로 발전할 수 있게 한다. 언어로 구축된 구조의 질서는 그 연결성을 조금만 느슨하게 하면 모든 것이 꿈처럼 몽롱하다. 세상의 실체도 사실은 이처럼 몽롱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무엇이든 다 나올 수 있다. 몽롱하고 애매하기 때문에, 보고 싶은 것이 보일 수 있다. 가족과 회사, 국가 조직도 이러한 틀로 설명되고 그 구조에 알맞는 운영원리가 나올 수 있다.

물론 구조가 잘못되거나 움직이는 형식이 잘못되었다면 어떤 것도 원하는 결과를 거두지 못한다. 미스터 허쉬가 성공과정에서 밟아간 것도 따져 보면 먼저 주어진 것을 바탕으로 이 성공 구조를 완성하는 과정이었다. 그는 기술을 먼저 완성했고 그 다음에는 좋은 제품을 만들었으며, 이후 그에 맞는 판매방식을 제품에서 끌어냈었다. 알렉산드라가 가족을 만들어 온 방식도 이와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알렉산드라는 구조와 방식은 근본적으로 동시에 설계되어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한쪽이 다르면 발전을 통해서 같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존재하는 모든 것, 해와 달, 별과 하늘, 그리고 심연과 우주가 모두 이렇게 구조와 방식이 동시에 설계되었거나 발전해서 같아지고 있는 것이라는 가정도 해볼만 했다. 방식으로 구조를 알고 구조로 방식을 알 가능성이 존재한다. 실험과 체험을 한계까지 하다보면 실체와 인식으로 만들어진 관념이 일치하는 지점, 진실에 이르는 순간이 올 수 있다.

알렉산드라는 어쩌면 이 구조적 방식이 우주와 신을 탐구하는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럴려면 수학에도 언어적 상상력이 더해져야 한다. 대칭과 균형, 대조와 비교라는 도구도 사용되어야 한다.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구조는 결국 물방울 같은 것일 테니까.

가뿐한 마음으로 사뿐사뿐 걸어서 방으로 들어가 소리없이 문을 열었다. 셀렌부인은 일어나서 명상을 하다가 알렉산드라의 기척을 느끼고 눈을 떴다.

"칸트 다 했어요 선생님, 이제 뭐 해요?"

하고 알렉산드라가 물었다.

셀렌부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답하며 가져온 책들 중에서 한 권을 꺼냈다.

"프란시스 베이컨."

노븀 오르가늄(Novum Organum, 신기관), 베이컨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르가늄에 대항하며 쓴 책으로 베이컨 적 방법인 귀납법을 제시하는 책이었다. 두 개의 기둥 사이를 빠져 나가는 범선의 모습이 표지를 보며 알렉산드라가 감격하며 말했다.

"지혜의 문이군요."

표지는 지브롤타 해협에 있다는 헤라클레스의 기둥을 지나서 지중해서 대서양으로 범선이 나아가는 것을 의미했다. 알렉산드라는 베이컨의 노븀 오르가늄이 지혜의 문들 중의 하나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누가 지혜의 문을 모를 수 있단 말인가? 표지에 둥글거나 네모나게 형상화하여 그러놓았는데. 하지만 노븀 오르가늄은 다른 지혜의 문들과 달랐다. 진리와 지혜가 담겨 있는 지혜의 집으로 들어가는 문이 아니라, 지혜의 집에서 나와 한 없이 열려있는, 무변광대한 진짜 진리의 세계로 열려 있는 문이었다.

알렉산드라는 책을 받아들고 좋아서 폴폴 뛰었다.

"이것만 하면 저 졸업하는 거예요? 아! 이건 1권이네요."

셀렌부인이 웃었다.

"큰 바다에 나가더라도 가까운 바다에는 섬들이 많고 먼 바다에는 대륙이 있지 않겠어요?"

"그걸 다 넘어가면요?"

하고 알렉산드라가 물었다.

셀렌부인이 대답했다.

"퀸 혼자 가야 할 길이지요."

알렉산드라는 셀렌부인 옆에 기대 앉았다.

"혼자 가기 싫어요."

셀렌부인이 토닥거렸다.

"아주 외로운 길이지만, 길이 모습을 드러내면 우리는 가야 한답니다. 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좌절하지만, 길이 보일 때는 결코 좌절하지 않아요. 우리는 길을 가는 것이지 그 길의 끝에 다다라야 할 의무는 없답니다. 길 끝에 다다른다면....... 아마 작은 기쁨만 있겠지요. 오면서 보았던 길가의 작은 꽃이 주는 정도의 기쁨만."

알렉산드라는 셀렌부인의 품에 얼굴을 묻고 가만히 있었다. 그게 알렉산드라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위안이고 행복이었다.

셀렌부인이 알렉산드라의 등을 쓸며 주문을 외우듯이 말했다.

"똑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은 없다. 퀸 너는 서로의 길이 동아줄처럼 겹치며 더 큰 길을 만들어 갈수 있는 사람을 만나거라. 우리 인생에서 진실한 구원은 진리가 아니라 사람이란다."

셀렌부인은 처음으로 알렉산드라를 손녀에게 대하듯 말했다.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그 사람이 자기가 가는 길이 멀고 외로운 길이라는 걸 알고 있다면, 네 가슴 속에 있는 것이 사랑인지 아닌지는 묻지마라. 그 사람이 너를 사랑하는지 아닌지도 묻지 말고, 너처럼 먼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인지만 확인해라. 다른 것은 아무 것도 필요없으니까. 어떤 흠이나 잘못이 있더라도 다 받아들이고 용서하거라. 원망하지도 말고, 너의 그런 마음을 그 사람에게 가르치려 하지도 말아라. 이해도 바라지 말고, 아무 것도 원하지도 마라. 그가 원하는 게 있으면 다 주어라. 하지만 그가 너보다 나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두려워하거라. 그러면 운명이 너와 그 사람을 하나로 묶어 놓을 거야."

"예."

알렉산드라는 셀렌부인의 드레스 등뒤 자락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셀렌부인이 말했다.

"눈여겨 봐야 한다. 어디에 네 짝이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가까이 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혜성처럼 너를 스쳐갈 것이니까. 편견없는 눈으로 보거라. 보이는 데 현혹되지 말고. 혜성 같이 다가왔다 멀어지는 사람이라면, 다시 만나기 어려울 수있단다."

"저를 싫어하면 어떻게 해요?"

하고 알렉산드라가 물었다.

셀렌부인이 알렉산드라의 얼굴을 두손으로 잡고 빤히 보며 말했다.

"세상 누구도 퀸을 싫어하지 못할 거야. 내가 그렇게 가르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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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20. 세일렌 - 길은 자기 속에. Nosce to ipsum (나 자신을 알라) 21.02.17 27 0 9쪽
» 19. 구조와 한계, 그리고 방식 - 지혜의 문을 지나서 21.02.17 27 0 7쪽
78 19. 구조와 한계, 그리고 방식 - 칸트의 몽상 21.02.17 24 0 10쪽
77 19. 구조와 한계, 그리고 방식 - 집으로 들어온 전쟁 냄새 21.02.17 21 0 8쪽
76 18. 중역회의 - 노동과 자본의 관계 형성 21.02.16 30 0 13쪽
75 18. 중역회의 - 사업에서 성공하는 법 21.02.16 22 0 8쪽
74 18. 중역회의 - 흥겨운 크리스마스 21.02.16 20 0 10쪽
73 18. 중역회의 - 나무 같이 자라는 아이들 21.02.16 68 0 9쪽
72 17. With Peace and Hershey - 착한 부자, 착해서 부자가 된 사람 21.02.16 21 0 10쪽
71 17. With Peace and Hershey - 학업 중단, 어떤 사람들의 이상한 성공 조건 21.02.16 19 0 11쪽
70 17. With Peace and Hershey - 미국이 두려워 하는 것 21.02.16 26 0 11쪽
69 16. 전야의 반전주의 - 반전주의자 랜킨 의원 21.02.14 21 0 11쪽
68 16. 전야의 반전주의 - 사탕이 좋아 21.02.14 25 0 9쪽
67 16. 전야의 반전주의 - 프린스 바웬 21.02.14 23 0 10쪽
66 15. 철학하는 침대 - 데카르트의 연인, 여자 왕 크리스티나 21.02.12 31 0 14쪽
65 15. 철학하는 침대 - 모순 덩어리 철학자들 21.02.12 16 0 11쪽
64 14. 테이블 위의 전쟁 - 자유와 정의, 그리고 반전 21.02.12 21 0 10쪽
63 14. 테이블 위의 전쟁 - 이유 21.02.12 21 0 12쪽
62 12. 유혹하는 진리들 21.02.11 19 0 12쪽
61 11. 아사신 - 거래 21.02.11 25 0 13쪽
60 11. 아사신 - 암살교단의 우두머리 21.02.11 24 0 7쪽
59 10. 크리스마스의 거미 21.02.11 20 0 18쪽
58 9. 위대한 독재자 - 비극도 행운도 언제나 옆을 스치는 세상 21.01.23 3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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