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입술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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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hershey
작품등록일 :
2020.12.01 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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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7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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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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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Sage 셀비아 꽃 - 시험 받다

DUMMY

20. Sagy 샐비아 꽃




헤르만 바일 교수는 석기에게 독일어를 말하며 먼저 물었다.

"Wir müssen wissen. Wir werden wissen.(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이 말에 동의하니?"

석기는 불쑥 대답했다.

"Wenn die Zeit vergeht, können wir niemals aufhören. Es hört nicht auf. (시간이 흐르고 있다면 우리는 결코 멈출 수 없습니다. 멈추는 게 아닙니다.)"

바일 교수가 환히 웃었다.

"동의하는군. 한데 시간이 흐르는 건가?"

"개체의 시간은 관측 또는 비교 대상이 존재할 때부터 흐릅니다."

"시간이 흐르는 건가 비교가 진행되고 있는 것일 뿐인가?"

바일 교수가 물었다.

석기는 금방 대답하지 못했다.

바일 교수가 말했다.

"어떤 사물이 속도에서 비교되는 과정을 시간이라는 말로 표현한 게 아닌가?"

"예."

하고 석기는 대답했다.

헤르만 바일 교수는 아인쉬타인의 상태성 이론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말하고 있었고, 그 이해는 석기보다 훨씬 깊었다. 헤르만 바일 교수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수학자이지만 수리 물리학자로 "공간,시간, 물질"을 쓴 사람이었다. 취리히 공과대학 시절 그는 아인쉬타인의 동료기도 하였다.

바일 교수가 물었다.

"안다는 것은 지(지성)가 경험하는 여행이지. 동의하나?"

독일 억양이 강한 영어임에도 음성은 부드러웠다.

석기는 동의한다고 했다.

바일 교수가 다시 물었다.

"요즘 유행하는 타임머신이라는 말이나 시간여행 같은 소리들을 여기에 대입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석기는 충격을 받았다. 석기와 H.G 웰즈의 소설 타임머신을 읽었다.

"아!"

하고 나서 대답했다.

"앎을, 지식을 시간을 넘어서 얻을 수도 있겠군요."

바일 교수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그렇게 지식을 쌓으면, 우리 인간이 존재의 한계를 넘어서 우리를 알릴 수 있을까? 즉, 인지 되는 것 이상으로 우리를 존재 외부의 대상에게 인식 시키는 게 가능할까?"

"아!"

하고 석기는 다시 한번 탄성을 발했다. 자기가 바보가 된 것 같았다.

바일 교수의 말은 많이 알게 되면 우리가 존재하는 시간대를 넘어서, 다른 시간대 또는 세상에 우리를 드러나게 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었다. 즉, 타임머신이 실제 가능할까와 같은 질문이었다.

석기는 속에서 희열을 느꼈다.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처음으로 만났다. 스스로 묻지 않아도 쿡 찔러서 생각의 틀을 흐물고 길을 열어주는 사람을 만났다.

석기는 아무 대답도 못하는 중에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바일 교수가 말했다.

"외로웠겠군. 그래도 대답해보게."

석기는 숨을 크게 들여 마시고 말했다.

"불가능합니다."

"가능하다면?"

"그게 가능하다면 모든 것이 가능한, 전능의 신이 되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과 같습니다."

"왜?"

"시간이 대상의 속도에서 비롯된다면 상대적인데 반해, 공간 또는 시간을 초월하여 드러나게 하는 것은 상대적인 것을 극복하는 절대적인 것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상대적인 빛보다 더 절대적인 어떤 것은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존재한다면 신이거나 신이 사용하는 것일 겁니다."

하고 석기가 대답했다.

바일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고 낮은 목소리로 비밀스럽게 말했다.

"바로 그거야. 우리는 수학자, 물리학자라는 직업으로 진짜 하는 일을 숨기지. 우리 모두는 실제로 신학자야. 최초의 수학자 피타고라스부터 그랬어. 위대한 완벽주의자 가우스와 뉴턴도 마찬가지지. 네 나이라면, 이 신학자들 무리에서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셈이지."

석기는 바로 이해가 되었다.

바일 교수가 여전히 낮은 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사실 오랫동안 타임머신을 사용해서 지식을 축적해왔지. 너도 우리들 중의 하나가 되고 싶지 않나?"

"되고 싶습니다."

하고 석기가 말했다.

바일 교수가 소리내어 웃었다.

"내가 널 처음 본 곳이 바로 타임머신이야. 남들은 도서관이라고 부르지. 꼭 미래로 먼저 가야 할 이유는 없어. 도서관은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이야. 나는 길잡이 중의 한 사람이고."

"고맙습니다."

하고 석기는 고개를 숙였다.

바일 교수가 말했다.

"인터뷰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난 도서관에서 자네를 유심히 보았지. 여기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는 별난 사람들이 많아. 혼자 서있기 외로워서 모인 사람들이야. 다들 가는 길은 다르지만. 아브라함 플레서너씨가 기회를 만들어줬지."

아브라함 플렉서너는 프린스턴 고등연구소를 설립하고 소장이 된 사람이었다. 1930년에 설립되어 아직 채 10년도 안 된 프린스턴 고등연구소가 세계적인 석학들이 모이는 곳이 된 것에는 위대한 교육자인 플렉서너의 역할이 컸다. 고등연구소에 소속된 학자들은 연구비를 타내기 위해서 아무런 노력도 할 필요가 없다. 그저 하고 싶은 연구를 하면 될 뿐이다.

"나는 가끔 수학과 자연과학은 순수함으로 이치를 탐구해야 하는 거였나 하고 생각할 때가 있네. 대부분 위대한 발견은 어렸을 때 또는 젊었을 때 발견되니까 말이야. 나이가 들면 문제는 많이 찾아 내는 데, 답은 못찾고 젊은 사람들이 찾도록 던져 놓지. 우리처럼 나이든 학자의 역할은 답이 아니라 문제를 발견하고 젊은 사람들을 자기가 걸어온 만큼만 인도해주는 게 아닐까 싶어. 문제를 던져 주면서 말이야."

바일 교수는 말을 하면서 만년필을 꺼내 종이에 글을 써서 석기에게 주었다.

"이런 식이지. 이 문제의 답을 알겠나?"


-There is no set whose cardinality is strictly between that of the integers and the real numbers

정수의 집합보다 크고 실수의 집합보다 작은 집합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한집합에 대한 질문이었다.

석기가 대답했다.

"CH(continuum hypothesys: 연속체 가설)은 증명할 수 없습니다. 지금의 수론으로 포함할 수 없는 요소, 정의를 해주어야 할 요소가 있기 때문에 이 명제는 참이라고도 거짓이라고도 증명하지 못합니다. 무한집합론의 발전을 위해서 이 문제가 해결될 필요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 외에는 의미없는, 문제가 아닌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바일 교수가 물었다.

"직관인가? 증명 불가하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는 있는가?"

"시간이 많이 걸릴 것입니다."

하고 석기가 대답했다.

"모든 문제가 그렇지. 답은 먼저 떠오르는데 설명하려면 100 년도 모자라는 경우들이 있어."

바일 교수는 종이를 가져가 새 문제를 적었다.


- Prove that the axioms of arithmetic are consistent.

산술 공리가 모순없음을 증명하라.


작가의말

이 부분들에 추가 설명은 또 설명을 부를 것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등장하는 문제들은 실제 문제입니다.


간혹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수학 문제가 뭔 뜬 구름 잡는 거 같은 소리냐 하는 것입니다.

실은 그렇습니다. 풀이 과정 또는 증명 과정은 섬세하고 복잡한데 문제는 종종 매우 단순합니다. 문제가 길면 답은 간단하고 증명은 길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인식과정에서 드러나는 불이해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문제를 아는 것이 답을 찾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찾고 나면 문제는 대개 단순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밤하늘을 보면서 우주의 경이를 느낀다고 합니다. 

그러나 숫자에 나타나는 규칙성을 보는 것만으로도 무한한 경이에 떠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간의 지성이 아무리 발전해도, 공식이나 정리로 축약되지 않는 한 인간은 자기가 아는 수조차도 모두 담지 못합니다.  담으려는 순간에 마음이 벅차오르고 터질 것 같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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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8. 합창 - 숲을 지나는 길 21.01.19 41 0 10쪽
53 7. 술탄의 보물 - 위대한 알 콰리즈미 21.01.15 50 0 11쪽
52 7. 술탄의 보물 - 왕의 길 21.01.15 44 0 6쪽
51 7. 술탄의 보물 - 의도된 오해, 반쯤의 진실 21.01.15 41 0 10쪽
50 6. 카알파 - 아사신의 별 21.01.08 67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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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2부 별이 달리는 곳에서 시작(본문없음) 20.12.27 56 0 1쪽
36 여기까지가 붉은 입술의 바다 1부, 천개의 눈 20.12.27 59 0 1쪽
35 20. Sage 샐비아 꽃 - 괴팅겐 20.12.25 56 0 11쪽
» 20. Sage 셀비아 꽃 - 시험 받다 20.12.25 61 0 7쪽
33 19. 전운 - 자본주의 혁명의 여전사들 20.12.23 63 0 19쪽
32 19. 전운 - 프린스턴에 새 삶의 뿌리를 두다 20.12.23 6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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