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꿩은 알고 있다 (9)
소균은 인터뷰에서 박지양의 딸이 그 전투기를 갖고 싶어 해서 지양이 거기 있었다고 대답했다.
“박지양이 쓰러진 진열대의 상품은 모두 헬기야. 딱 한 대의 전투기만 그 헬기 프라모델 안에 섞여 있어.”
신지의 대답에 상영이 끄덕거렸다.
“바로 그겁니다. 상대의 취향, 욕구, 원하는 바, 혹은 현재의 건강이나 심리 상태를 안다면 사람은 다른 사람을 지배할 정도로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대상자는 항상 그렇지 않더라도 종종 자기도 모르게 그 상황에 휩쓸리죠. 신지 선배가 다른 먹을 것들을 제쳐두고 굳이 샐러드를 먹기 위해 가장 끝까지 간 것처럼요. 그래서 전투기 프라모델 「F-15J」는 헬기 장난감 속에 섞여서, 박지양의 딸이 박지양을 끌고 그곳으로 오게 만드는 하나의 시작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이 진열대에 이 프라모델을 가져다 놓은 사람이 바로 재천 선배입니다. 소균 선배가 사실 재천 선배의 알리바이를 위해서 한 말이지만 결국 진열대의 정리를 책임지고 있었던 사람이 재천 선배라고 발언한 사실도, 또 당시 CCTV의 장면도 그걸 증명하겠죠.”
바로 어제 소균이 말했다.
‘재천이는 스텝으로 거기 있었어요. 마트의 물건을 진열하고, 아이들이 그걸 쇼핑하면서 흐트러뜨려 놓으면 바로 잡곤 했어요.’
재천은 눈 한 번 깜박이지 않았다. 소균은 어지러운 듯 손으로 얼굴을 감샀다. 모니터 속의 백영미는 아이들에게 그림과 글로 된 교육 자료를 펼치기 시작했다.
상영은 모니터를 일별하더니, 고저 없는 목소리로 오혜아의 사건 현장을 가리켰다.
“이건 오혜아 씨가 떨어질 당시의 육교 사진입니다. 오혜아의 딸이 남긴 증언도 있죠. 이게 아주 오묘합니다. 오혜아의 딸, 승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뭔가 반짝거리는 것을 잡으려는 것처럼 엄마가 손을 뻗었다……’ 라고요. 저 역시 다른 경찰들처럼 그게 뭘까 생각했죠. 아이가 ‘반짝’거린다고 표현하는 것은 어른과는 범위가 다르거든요. 그리고 이 사진에서 있는 딱 하나의 상황적 비논리성, 그러니까 육교 위, 난간 쪽에 떨어진 이 병 뚜껑 같은 것의 정체가 뭔지 알아차렸습니다. 그건 다른 사진 속에 아이들이 들고 있는 장난감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보세요, 오혜아의 딸 장승지는 만화 캐릭터 모양을 한 큰 통을 목에 걸고 있죠. 그 옆의 형철이는 비슷하게 생긴 큰 칼을 걸고 있고요. 그리고 잘 보면, 이 통들은 마개가 열려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통들의 모양이나 정체가 아니라 통의 마개가 모두 열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통들의 정체는 뭘까요? 아이들은 저마다 마개가 열린 통을 갖고 있죠. 사실, 이것은 어른들은 뭔지 모르지만,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쉬운 퀴즈입니다. 비눗방울을 만들기 위해 비눗물을 담은 통입니다.”
신지는 이를 닦다가 본 거품을 회상했다. 그때도 하얀 거품 속에서 무지개가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찬가지로 사진 속의 병뚜껑이 뭔지를 알아차렸다.
눈을 감자, 오혜아가 육교를 건널 때의 상황이 그려졌다.
뚜껑이 떨어진다, 비눗물이 쏟아진다, 승지가 뚜껑을 잡아달라고 부탁한다, 오혜아는 금수저 네 명 중에 가장 마음이 여렸다. 귀찮지만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그때 등 뒤의 아이, 노형철이 많은 양의 비눗물을 그가 디딘 바닥 아래에 흘린다……, 차로 이동할 거라고 생각해서 신었던 오혜아의 하이힐이 휘청거린다, 난간의 높이는 무척이나 낮다, 그때 누군가가 그의 뒤에…… 기다란 플라스틱 칼로 휘청거리는 몸을 찌르고 민다……, 추락하는 오혜아의 눈동자는 자신을 민 자신의 아이를 바라본다…….
비눗방울이 방울방울, 빗속에서 육교 밖으로 날리며 ‘반짝’거린다…….
화면 속에서 백영미가 웃으며 말했다. 이제 화면 안의 아이들은 딱 둘만 남아 있었다.
「아니에요, 이런 행동들은 절대 나쁘지 않아요. 왜냐하면 너희들의 엄마 아빠도 니들 나이 때에 다 한 번씩 해 봤단다. 봐, 여기 남아 있잖아. 엄마 이름이 뭐지?」
아이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오.혜.아.」
「김.선.윤.」
소균이 코를 훌쩍였다. 자신의 옛 모습을 쳐다보는 백영미는 인형처럼 뻣뻣한 자세였다. 재천도, 성낙도 무감각한 얼굴로 화면을 쳐다보았다. 화면 속 백영미가 아이들을 구슬렸다.
「너희 둘은 여기 있는 무수한 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우수한 마인드를 가진 애들이야. 선생님도 너희 둘 같은 케이스는 보지 못했어. 냉철하고 누구보다도 영리해. 그러니까 그걸 보여주자, 응? 선생님이 매우 기뻐해줄게. 여기 너희들 엄마 이름 옆에 뭐라고 적혀 있지?」
아이들이 그것을 표정 없이 읽었다. 또박또박, 마치 단어를 분지르듯이-.
「재·미·있·겠·다」
「재·미·있·겠·다」
백영미가 만족한 듯, 씽긋 웃었다.
「그래, 잘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정말 재미있는 실험을 계속 할 거예요. 근데 조심해야 할 게 있어. 이 ‘놀이’를 할 때는 반드시 사람을 살려놔야 해. 알겠지? 죽이면 안 돼요, 왜냐하면, 죽이면, 너희가 얼마나 ‘잘했는지’ 엄마 아빠에게 알려줄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실패해도 상관없이 없어요. 다음에 항상 더 잘하면 돼요. 꼭 살려놔야 해요, 알겠죠? 그래야 다음에 더 잘하는 걸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혹시 들키면 뭐라고 말하면 된다고 했지?」
「몰랐어요!」
두 아이가 합창하듯 외쳤다. 백영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아무도 너희들을 나무라지 못해요. 너희들이 무슨 짓을 해도, 너희는 어리고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하면 돼요.」
울고 싶었다. 상영 역시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박지양 씨는 허벅지와 허리를 깊게 찔렸죠. 박지양 씨의 딸이 갖고 싶었던 프라모델 맞은편에는, 김선윤의 아들인 형철이가 갖고 싶어 하던 아동용 공구함과 건담이 있었습니다. 제가 아침에 아이들의 카드에서 발견한, 간이마트에서 갖고 싶은 물건 목록들이었죠.
사건 몇 분 전, 형철이 옆은 소균 선배의 손을 잡고 그것을 같이 구경하던 승지였습니다. 그리고 사건이 시작될 무렵, 박지양은 오혜아처럼 자기 딸의 손에 이끌려 저 두 아이의 사이에 있었습니다. 어제 성낙 선배가 전문가의 소행이라고 저에게 넌지시 암시를 걸려고 했던, 허벅지와 복부 쪽 옆구리는 사실……, 아이가 들키지 않게 찌르기에 가장 좋은 높이였을 뿐이죠. 오혜아가 떨어졌을 때도, 오혜아의 딸인 승지 뒤에서 오고 있던 것도 바로 김선윤의 아들 노형철이었습니다. 여러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길이라서, 아무도 그 사실에 주목하지 않았지만요.”
화면에는 훨씬 더 어린 승지와 형철의 데이터 영상이 떴다. 이번에는 소균이 두 아이를 포함한 다른 아이들과 노는 장면이었다.
화면 속의 소균은 울고 있었다. 아이들도 제각각 놀다가도 그의 울음에 동조하여 이유도 없이 울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은 뛰어난 공감 능력을 가지고 있죠.”
상영이 화면 속의 상황을 설명했다.
“소균 선배와 백 선생님은 저들을 하나하나 저런 식으로 테스트 한 겁니다, 그렇죠? 아마 모르긴 해도, 이 캠프를 들락거리는 거의 모든 아이들을 테스트했을 겁니다. 백 선생이 들어오기 이전의 자료는 다른 꿩들, 특히 소균 선배가 제공했겠죠. 아무튼 백 선생은 자기에게 적합한 대상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데이터를 탐구하고, 실험을 거치거나, 특별히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를 찾아다녔습니다. 사이코패스가 되기 쉬운 기질을 찾아다닌 겁니다.
사실 저는 아까 신지 선배를 잠깐 혼자 놔두고, 범인 B, 즉 두 아이에게 뚜렷한 동기 없이 그런 행동을 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해 분주했습니다. 하지만 승지와 형철이는 거의 갓난아기 때부터 여기에 있었기 때문에 검토할 자료가 굉장히 많았어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백 선생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해도, 짧은 시간 동안 그 모든 것을 찾기에는 힘들었죠. 하지만 결국 범인 B의 동기가 무엇인지를 찾을 수 있는 영상들이 몇 개 있었는데, 지금 보시는 이런 것들이죠. 소균 선배와 백 선생은 아이들의 정서가 가진 이 문제를 알고도, 저나 다른 선생에게 아무런 보고를 하지 않았어요.”
화면 속의 소균이 아무리 울어도, 딱 두 명만은 자기 일에 열중했다. 바로 장승지와 노형철이었다. 오직 두 아이만이, 백영미가 울 때도 심지어 생글생글 웃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웃음이지만, 한편으로 끔찍했다.
상영은 그 영상을 켜놓은 채로 일어섰다.
“그래서 이제 종합적으로……, 금수저 선배들이 태웠을 법한, 잃어버린 네 장의 페이지를 적당히 유추하면 이렇습니다. 어쩌면 이런 게 아닐까 합니다.
「구렁이는 잘 살고 있었다. 선비의 살을 먹고 자란 자식들도 태어났다. 꿩들은 구렁이에게 자신이 사냥한 것들을 헌납하며 그 자식들을 맡아 길렀다. 구렁이의 친구들, 구렁이의 친척들 자식들도 모두 길렀다. 그리고 그중에 놀라울 정도로 살인자 구렁이와 닮은 아이를 발견했다. 그 아이를 길렀다. 스스로 자기 종족을 해쳐도 좋을 만큼, 양심이 없는 아이로 길렀다. 꿩들이 이 구렁이 아이에게 제일 처음 가르쳐 준 것은…… 배가 불러도 다른 대상을 괴롭힐 때의 쾌감이었다. 양심이 없는 뱀의 아이들 중 일부는 원래도 살인귀였으므로 그 쾌감에 금세 감응했다……, 네 엄마도 그랬으니까 너도 그래도 좋아, 꿩들은 아기 구렁이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일러주었다. 하지만 네가 네 엄마나 아빠를 공격할 때는 꼭 살려놔야 한다, 그래야 네 엄마 아빠는 너희들이 자기들보다 더 완벽한 구렁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방법은 좀 허술해도 좋아, 많이 실패해도 괜찮아, 그저 많이 시도하면 돼. 어차피 구렁이들은 너희들을 혼내지 못할 거야. 너희는 너무 어리니까.」”
화면 속의 승지와 형철은 아주 어릴 때도 붉은 색으로 갈기갈기 찢어진 사람들을 그려댔다. 그들은 백영미나 소균이 아무리 울어도 그것에 반응하지 않고 깔깔대며 좋아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상대의 표정에 대해 어른보다 풍부한 공감 반응을 보이는 것과는 반대였다.
두 아이는 날카로운 선으로 뻗어가는 그림만 그려댔다. 붉은 크레파스를 꽉 쥔 앙증맞은 손은, 찌르고 누르듯 짓이기며 점점 빨라졌다. 두 아이는 종이가 찢어질 때까지 광적으로 손을 놀리며 웃어댔다.
화면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얼굴은 점점 비애로 가득 찼다. 소균은 눈물이 마른 얼굴로 화면을 뚫어져라 쏘아보았다.
엊그제 밤. 신지가 소균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방에 와서 같이 자자고 말했을 때, 소균은 대답했다.
‘……데리고 오면 안 돼. 아이들은 절대로 자기 방의 번호표에서 이탈할 수 없어. 누군가에게 들키면 안 돼.’
그 대답은 아이들의 반사회적인 낌새를 들키지 않으려 하는 핑계가 아니었을까.
신지에게는 소균의 처음 보는 모습이 두 아이보다 더 공포였다. 그런 소균의 옆에는 성낙이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그도 역시 어제 상영에게 화를 내며 말했다.
‘왜 안 지켰어?’
그 이후로도 성낙은 상영이 범죄심리학자라는 것을 알고 또한 불같이 화를 냈다. 역시 이상한 태도였다. 친구가 걱정이 되어서 상대가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고 여기거나, 혹은 엘러리에서 이상하게 웃어서 그 친구가 무슨 사고를 칠까봐 걱정해서 지키라고 한 것이었으면, 상영의 실체에 대한 분노는 이치에 맞지 않았다.
신지가 김선윤의 호출로 이사실에 들어가기 직전, 상영에게 털어놓은 ‘전날 느낀 이상한 점’ 역시 성낙이나 재천이 상영을 대하는 태도였다.
상영이 유능한 범죄심리학자라면 오히려 박지양의 사건에 도움이 되거나 16년 전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 텐데, 왜 그들은 그렇게 화를 낸 걸까?
그런 면에서는 성낙의 옆에 서서 참담한 표정으로 화면을 보는 강선호도 비슷했다.
전날 저녁, 신지는 당시 상황을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전직 경찰이 범죄심리 전문가와 일하는 상황을 그렇게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상영이 했던 말처럼, 아무리 경찰이 단서 위주의 과학수사를 하고, 프로파릴러는 단서를 통한 추론 위주의 수사를 해서 서로 가끔 대척한다고 해도, 어젯밤 강선호의 입장은 또한 아리송했다.
무엇보다도 강선호는 이미 16년 전 사건 때도 신지를 도우려 했고, 진범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지난 저녁 식사 후 테이블에서, 강선호는 상영과 자신이 협력하는 이유가 됐던 ‘범죄심리학자’라는 타이틀을 마치 금수저파가 요행히 써먹은 것처럼 돌려 말했다. 그런 말을 할 때 그의 태도는 평상시처럼 조용하고 신중했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이상했다.
왜 강선호는 가리파나 그 자신에게 유리할 수 있는 서상영이라는 존재를, 금수저파로 오해받도록 유도하거나 혹은 방치했던 걸까.
도대체 박지양의 죽음으로 상영과 나머지 사람들의 인간관계에서 어떤 지형의 변화가 있었던 건가. 왜 성낙과 강선호는 박지양의 죽음을 기점으로, 둘 다 이상한 방식으로 상영을 경계한 것일까.
막상, 상영은 신지의 의문을 듣고 나서 온화하게 답변했다.
‘결과적으로 그분들도 제가 누구의 편인지 알 수 없었는데, 그분들이 원한 건 제가 구렁이들이 16년 전에 한 일을 밝히는 것도 아니고, 16년 후의 일을 밝히는 것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요?’
당사자들에게 사실을 모두 밝힌 후, 상영의 표정은 그 대답을 할 때보다 더 복잡했다.
그는 참담한 투로 혼잣말처럼 말했다.
“……누군가에게는 복수가, 누군가에게는 뜻 깊은 보은報恩이 되는 거죠. 이 경우에는 특히 더.”
사람들은 못 박힌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상영이 신지의 어깨를 잡고 문으로 다가설 때까지도, 화면 속의 두 아이에게 시선을 박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상영이 그들의 등에 대고 말했다.
“하지만 저는 성격이 못 되어 먹어서 그런지, 살인은 살인이라고 여깁니다. 여러분들은 아무도 살인죄로 잡혀가진 않겠지만, 확실히 꿩파였죠. 선비를 구하지 못했지만, 선비의 딸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눈치 채는 순간 조력하기로 결심한 사람들.
재천 선배, 선배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지만, 누군가가 죽이기 쉽게 하기 위해 진열대에 조종기 모델을 올려놨죠. 이건 소균 선배도 증언한 바였습니다.
성낙 선배, 선배 역시 어느 누구도 죽이지 않았지만, 다음 순서가 제대로 이행되기 위해 신지 선배의 기억을 막아둘 필요가 있었습니다. 저를 신지 선배 옆에 묶어둘 필요도 있었고요. 복수가 막힐까봐 걱정하고 실패의 위험성을 감수하고도 어떤 행동을 했던 것, 사실 그 역시 살인에 동조한 행위죠.
강선호 선배, 전 정말, 선배는 마지막까지도 헷갈렸어요. 어떨 때는 전혀 협조하지 않는 것 같지만, 어떨 때는 완벽하게 협조하는 입장으로 해석이 됐거든요. 아까 소균 선배가 선배에게 경찰을 좀 늦게 불러달라고 부탁할 때는 진짜 더 헷갈렸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 모든 행위가 선배와 소균 선배의 입장을 혼란스럽게 보이게 하려 계획한 술책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그건 마치…… 아까 김선윤이 일부러 신지 선배에게 닫히는 문 안쪽의 일부만 보여줌으로 해서, 전체를 다 이해한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심리적인 트릭과 비슷합니다. 거짓말을 하진 않았어도, 그 거짓말을 묵과하고 동조하거나 진실을 알려주지 않는 것도 거짓말과 비슷한 행위적 선택이죠. 어쩌면 선배의 위안은 그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오혜아가 사고를 당할 당시, 오혜아와 아이들을 태우러 김선윤이 보낸 차, 그 차가 늦게 도착해서 오혜아는 김선윤에게 혼날까봐 바싹 겁에 질려 일부분의 거리를 걸어갔죠. 그 차가 늦게 온 이유는 바로 경호팀의 문제였습니다. 아까 제가 서류를 확인했던 것도 그런 부분입니다. 물론 오혜아 씨의 사건이 터졌을 때도 이미 그 이야기는 나왔었죠.
결국 선배가 나를 자기들 편인지 아닌지 테스트하려고 어제 모두가 있는 곳에서 백영미 씨의 말을 이용한 것처럼, 선배는 처음부터 완벽한 꿩들의 조력자이지만 아닌 척하고 나를 테스트한 겁니다, 그렇죠? 아니면 소균 선배의 부탁을 들어주는 입장에서만 조력자 역할을 했던 걸까요?
어쨌든 선배는 꿩의 편이었습니다. 심지어 선배는 금수저를 둘러싸고 일어난 이 일들이, 법으로 따지면 행위의 결과론적으로 사람이 상해를 입거나 존속을 부당하게 저지당한다는 걸 알게 되는……, 영미법으로 하면 ‘고의에의 이전’ 즉, 고살故殺에 가까운 행동이고, 우리나라에서는 미필적 고의까지 적용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그렇게 했습니다.
저는 선배가 가장 헷갈렸지만, 한편으로는 의도적인 증거 인멸도 하지 않았을까하고 감히 추측합니다. 예를 들어, 형철이가 박지양을 찌를 때 썼던 조립식 부메랑 말입니다. 김선윤이 고신우를 죽일 때 썼던 것은 조립식 부메랑의 한쪽 날이라고 했습니다. 원래 두 개를 붙이고 테두리에 테이프를 발라서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씌우는 구조죠. 그런데 고신우의 손에 있는 것은 서로 맞닿게 붙여야 하는 두 개의 날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러면 나머지 하나는 자연스럽게 실제 박지양을 공격할 때 썼던 거라고 유추할 수 있어요.
아마도 그 부메랑은 처음에 아이들 공구와 건담 사이에 있던 조립식 키트들 사이에 있었을 겁니다. 범행 직후, 거기 부메랑에는 엄청난 피가 묻어 있었겠죠. 형철이는 그걸 사용하고 자기 옷에 닦아서 박지양의 피가 튄 거라고 우겨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그 자리에서 부메랑을 다시 조립할 정도의 시간은 없었을 겁니다. 당신은 아이들의 옷도 다 벗겨갔다고 했으니까요. 그러니 이게 캠프 어딘가에 아직 있다면, 경찰이 금방 찾아낼 수 있는 거겠죠. 옷 속에 있는 부메랑이든 뭐든. 뭐, 경찰이 찾아도 형철이를 의심할 것 같지는 않지만요.
옷의 피야, 그 당시 형철이의 위치상 묻은 거고, 부메랑은 아이가 사기 위해 들고 있었다고 말하면 끝이니까요. 상처를 대보고 과학수사를 하면 알 수도 있겠지만, 당신은 전직 경찰이고, 지금 문제의 부메랑이 어디에 있는지는 본인만 알고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나는, 성낙 선배가 급류를 확인하러 강에 갔었다는 말에서 힌트를 찾고 있습니다. 성낙 선배도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이 부탁했으니까 갔겠죠.
아, 그리고 백영미 씨는…… 더할 말도 없을 만큼 꿩들의 우두머리였습니다. 선비의 딸이자, 꿩들을 움직이는 우두머리. 당신은 심지어 어제 우리의 테이블에 와서 금수저파들이 나를 감시자로 고용했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당신의 꿩들에게 은연중에 내가 꿩들을 도와주지 않을 거라는 말을 흘린 거죠.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행동으로, 아직 당신의 정체를 모르는 나머지 꿩들에게 선비의 딸이 누군지 알려준 겁니다.
마지막으로 소균 선배, 선배는 솔직히 처음부터 끝까지 다 조용히 움직이며 가장 조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백영미 씨가 들어오기 전에 아이들의 성향과 성격을 매번 체크하는 기록들을 빼내서 백영미 씨에게 준 것도 당신일 거라 짐작합니다. 이건 제가 캠프 내의 자료 입출입 기록을 봐야 알겠습니다만.
무엇보다 소균 선배, 선배는 백영미 씨가 박지양의 피습 이후에, 김선윤 씨의 아들을 가장 먼저 씻길 때, 당신은 재빨리 다른 용의자인 장승지를 데리고 가서 샤워를 시켰죠. CCTV로 보면 아이들이 박지양의 피를 덮어썼는데, 이런 경우에는 절대로 피해자 주변의 사람들을 씻기면 안 됩니다. 소균 선배나 백영미 씨가 그걸 몰랐다 해도 강선호 실장이 지시했어야 하는 일이었어요. 그러니 셋 다 암묵적으로 그런 식으로 직접적인 현장 훼손이 아니라 증거인멸로 빠져나가는 걸 동의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경우에, 아이들을 먼저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말한 것은, 사실 가장 좋은 명분이었죠. 대부분의 비전문가들, 특히 그 자리에 있던 학부모들은 그 말에서 수사나 행적적인 모순이 어디에 있는지 그렇게 빨리 파악하지 못하니까요. 머리가 좋았어요, 소균 누나. 그리고 강선호 실장님.”
구렁이파의 정체는 처음부터 정확했다, 선비의 정체도 처음부터 정확했다.
문제는 꿩파의 정체였다. 그리고 꿩파들이 노리고 있던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신지는 다시 한 번 한 방향으로 움직이던 잔디와 무형의 손, 바람을 생각했다. 어렴풋이 맴돌던 공기들의 정체를 알아차리는 순간, 테이블 위의 섞인 음식들이 각자의 공간으로 나눠지는 순간 비애가 덮쳐왔다.
신지는 울기 시작했다. 상영이 다른 이들에게 당부했다.
“저는 이제 신지 선배와 함께 여기를 나갈 겁니다.”
완전히 갈라진 목소리였다.
“이 영상을 끝까지 보실 시간들을 드릴게요. 이미 충분히 모든 답을 알고 계시겠지만요…….
저는 선배들이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저 밖에서 제가 5분을 기다린다는 사실을요.”
상영은 구렁이파의 수장, 김선윤에게 주었던 말미를 꿩파에게도 주었다.
“그 5분 안에 나오는 분들은 이 잔인한 복수극에서 빠지고 자수할 분들이라고 믿겠습니다. 내가 보장하는데, 여러분 중에 누구도 형법적 처리를 당하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경찰은 선배들의 말을 믿지도 않을 거예요. 오히려 미친놈으로 취급할 겁니다.
저도 알아요. 여러분은 아무도 직접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으니까요. 아까 김선윤을 보며 마치 금수저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걸 처음 알았다는 듯 절규했던 백영미 씨조차도 그렇죠. 16년 후에 구렁이파의 아이들이 실제로 뱀의 영혼을 갖고 태어날지는 미리 예측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혀는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일을 했는지. 우리가 뭔가 잘못된 선택을 하면……, 혀는 끊임없이 그 부분을 건드릴 겁니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 그리고 그 감각의 무게는 선생님을 잃은 것과 같은 힘으로 평생 선배들을 압박할 겁니다. 여러분은 적어도 ‘뱀의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선배들, 저는 기다릴 겁니다. 아직 김선윤이 멀쩡할 때 선배들도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자꾸만 장승지의 웃는 얼굴 위로, 처음 그 아이를 마주하던 날 눈물로 얼룩진 얼굴이 겹쳐 떠올랐다. 오혜아가 죽던 날, 그의 아이는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엄마를 살리려고 했는데……, 살리려고 했는데……!’
신지는 범인 B를 짐작했을 때 그 말이 무척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자신의 엄마가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런 일을 했으면서도, 그 입에서는 살리려고 했다는 말이 나올까? 어떻게……? 아무리 백영미가 살려놓으라고 가르쳤어도 어떻게……?
“오혜아가 죽었을 때 장승지가 한 말은 순서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정원에서의 5분이 평생처럼 느껴졌다. 신지가 눈물을 닦으며 잔디를 바라보고 있을 때, 상영이 답을 말했다.
“순서?”
“네, 순서요. 아이가 한 말 치고는 이상하지 않습니까? ‘구하려고’ 했다가 아니고 ‘살리려고’ 했다, 라고 말했죠. 아이가 하기에는 지나치게 구체적이어서, 오히려 비논리적인 말입니다. 이런 건 대체로 납치범이 자기 인질을 알맞은 타이밍에 죽이지 못했다는 의미로 하지 않습니까?”
알맞은 타이밍과 순서-.
상영은 나뭇가지를 손가락으로 튕기며 돌아섰다.
“아까 제가 김선윤에게 사건에 대해 설명할 때, 오혜아와 박지양으로 연결되는 순서는 마지막까지 고민했다고 말씀드렸죠? 오늘 아침까지도 순서는 여전히 헷갈리는 과제였죠. 그건 날조된 고신우의 유서와 저 비디오들을 확인하기 전이었습니다.
순서가 헷갈린 이유는, 우리가 대개 ‘죽음’을 복수의 최종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은연중에 ‘죽음’을 복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혜아가 가장 먼저 죽은 이유를 의아해 했던 겁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반대죠. 그게 장승지가 했던 그 ‘살리려고 했다’라는 말에 드러난 겁니다. 그래서 김선윤에게 설명을 하다가, 장승지가 한 그 말의 진위를 깨닫고, 이건 정말…… 잔인하다고 말씀드렸던 겁니다.
꿩파가 17년 전에 완성한 꿩파의 복수 이야기는 절대로 구렁이파를 죽이는 결말이 아니었죠. 사실 이 모든 사건들에서 상대를 죽이려고 어떤 트릭을 쓴 사람은 김선윤 말고는 없습니다. 실제로 다른 범인B나 범인D는 어떤 대상도 죽이지 않으려고 했죠.
꿩파는 선배를 아끼는 마음으로 그랬을 겁니다. 그리고 구렁이파에게는 구렁이의 자식들이 다른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가 되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형벌이 될 테니까 그랬던 겁니다.
그러니까 백영미는 아이들에게 심리적인 유도나 조종이 불가능할 경우까지 대비해서, 계속 시도하라고 말한 겁니다. 그들의 복수는 정말 대단하죠……. 죽이는 복수가 아니었어요.
점차 더 철두철미한 사이코패스가 되어가는 자신의 아이들을 봐야 하는 게, 바로 구렁이파가 감당해야 할 일이었죠. 그러니까, 금수저가 죽으면 그건 복수가 아닙니다. 그냥 실수죠. 그래서 백영미는 순서를 그렇게 정한 것 같습니다. 자기 아버지의 죽음에 가장 덜 관여한 순서대로, 음, 죄질이 가장 덜 나쁘다고 생각한 오혜아부터 아이들의 그 ‘놀이’를 연습시키려는 의도로요. 아마, 백영미는 그 장소를 육교 위가 아니라 계단이나, 뭐 그런 걸 예상하지 않았을까요? 오혜아가 죽을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거죠. 저는 그래서 죽은 사람이 가장 덜 나쁜 사람이라는 가정 하에 그게 순서가 아니었을까 하고 짐작합니다.
고신우의 경우도 그래요. 아까 제가 16년 전 사건을 고신우의 유서 내용과 지금 죽은 사람의 순서대로 죄질을 따져서 맞춰봤다고 말씀드렸죠? 그러면 고신우가 선배를 공격하고 페이지를 뜯어간 사람입니다. 그 남자가 사라진 페이지들의 내용을 정말 몰랐을까요? 자세히는 몰라도 대충은 알았을 겁니다. 그게 그 남자가 박지양이 죽었을 때 그렇게 동요한 이유입니다. 선배도 아까 고신우와 김선윤의 대화 기억하시죠? 저도 말미에 엿들었죠. 그 남자는 자기 아이들을 걱정했어요.
고신우가 말한 ‘애들이 잘못된다’는 개념은 일반적으로 정말 다치거나 죽는다는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고신우는 그 페이지들의 내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21세기 선비의 죽음에 대한 꿩파의 복수는 구렁이의 죽음이 아니라는 사실을요. 오히려 그 반대죠. 감정반응이 없는 몇 명 아이들, 사이코패스적인 성향을 약간이라도 가진 아이들을 사이코패스로 기른다, 그게 꿩파의 복수 계획 전말이었지 않습니까. 그걸 고신우는 어느 정도 간파한 겁니다. 오혜아가 죽을 때까지는 설마, 했던 것이 박지양이 죽으니까 이제 선명해진 거죠. 부모로서 그것만큼 무서운 건 없죠. 부모에게 자식을 잃는 것만큼 두려운 유일한 상황은, 그 자식이 살인마가 되는 사실일 겁니다.
고신우는 아마 대충 짐작했을 겁니다. 정확한 것은 몰랐지만요. 오히려 사라진 페이지의 반전 내용을 몰랐던 건 김선윤이고, 그래서 제가 경고한 겁니다.”
비로소 상영이 선윤에게 던진 마지막 말이 이해가 됐다.
‘……아직도 모르겠습니까, 선배. 선배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진짜 이유가 뭔지?’
본관에는 경찰들이 들락거렸다. 상영이 찌푸린 미간으로 정문을 응시했다. 신지가 말했다.
“적어도 김선윤이 오늘은 안전할 것 같네.”
상영도 동의했다.
“네, 우리가 꺼낸 이론이 모두 맞더라도, 오늘은 김선윤도 보호 받을 겁니다. 저도 특별히 김우철 경감이라는 담당자에게 말을 해 놨고요. 그리고 뭐, 이사실 근처는 지금 다른 경찰도 있고, 김선윤의 남편도 곧 도착할 거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 말은 적어도 아직 내일까지는 시간이 있다는 거죠.”
하늘이 한참 높았다. 딩동, 종이 허무하게 울렸다. 상영도 피곤과 참담함이 섞인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최후의 5분, 기다리던 이들은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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