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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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최승윤
작품등록일 :
2014.08.02 04:56
최근연재일 :
2014.09.04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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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9.04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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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Chapter 3. 꿩은 알고 있다 (10)

DUMMY

5.




김선윤은 본관의 다른 방에 서 있었다. 이사실은 경찰이 점령한 이후 출입 금지였다.


그는 저도 모르게 치마 위를 긁으며 푸념했다. 정돈이 잘 된 손톱이 치마의 실에 걸려버렸다.


“이런 제길!”


허벅지를 긁는 것은 박지양에게 배운 습관이었다. 아마도 그 샌님이 죽을 때, 박지양이 무서워하며 치마 위를 긁던 모습을 무의식이 저장했을지 모른다. 지양은 긴장할 때마다 허벅지 부근을 살며시 긁어댔다.


“아냐, 긴장쯤은 해도 되지. 이 만한 일을 치렀는데.”


선윤은 자위하며 웃음을 지었다. 아까 고신우가 죽고 난 후에 피가 흐른 바닥 타일을 모두 뒤집어놓고 그의 시신을 박지양이 있는 과학실에 가져다 놓느라 힘들었다. 고신우 자식을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누군가 다 짊어질 사람이 필요하긴 했다. 아마도 백영미로 짐작이 되지만, 16년 전 사건을 잘 기억한다고 자부하며 언제 공개할지도 모를 사람에게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했고.


……근데 메시지?


선윤은 창문에 비친 자신의 미소를 보다가 아까 들은 단어를 떠올렸다.


저 망할 놈의 서상영이 뭔가 메시지, 라고 말한 것도 같은데.


녀석이 무슨 말을 했지?


“엄마, 경찰 갔어?”


어린 아들이 문을 열며 물었다. 밤이 오고 있었다. 내일이면 캠프의 끝이고 잠시 후에 남편도 도착할 예정이었다. 다행히 빠져나간 인력들에 비해 남아 있는 인력들로 마무리는 가능했다. 고신우가 죽은 것은 당분간 비밀로 해달라고 경찰에게 사정도 했다. 어느 정도는 아버지의 배경이 통할 기미였다. 본관은 어차피 스텝들이나 드나드는 건물이라 보안도 가능했다.


선윤은 오랜만에 맛본 강혈腔血의 쾌감으로 관대해졌다.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어, 갔어. 들어 와.”


아들은 다가와 사탕을 내밀었다. 며칠만에 보는 엄마의 미소를 반기는 눈치였다.


“아빠는 언제 와? 이거, 형이 만든 거야. 오늘 좋은 재료 찾기에서 가지고 만들었대.”


아이들이 만든 사탕이라면 맛이 뻔했다. 김선윤은 귀찮았지만, 곧 이 녀석들 덕에 캠프가 성공적이라고 생각을 돌렸다.


“그래, 잘 먹을게, 고맙다고 전해줘. 그리고 아빠는 더 늦는대.”


사탕에서는 시큼한 냄새와 단내가 섞여 들었다. 작은 아이는 방긋 웃으며 총총,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선윤은 열린 문을 일별하고 사탕을 빨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맛있었다. 사탕, 하면 서상영이 떠오르는 게 기분이 상했지만.


“……이게 다 윤신지 때문이야.”


선윤은 창문에 비친 자신을 향해 뇌까렸다. 고신우가 뜯어온 당시 그 페이지에는 윤신지가 펜으로 갈겨 쓴 몇 줄이 있었다. 무슨 암호 같은 말이지만 단서가 될 수도 있었다.


「구렁이 1이 환약을 발로 짓이기고 있었다, 구렁이 2가 허벅지를 계속 긁으며 옥상을 올려다봤다, 구렁이 3이 옥상에서 뛰어내려오며 과학실로 숨었다, 구렁이 4가 옥상에서 장판을 정리하며…… 웃고 있었다? 왜? 선생님은 어디로?」


고신우는 그 페이지를 건네며 숨이 턱까지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윤신지라는 애가 이걸 적으면서 전화 버튼을 누르고 있었어! 통화가 잘 안 터지니까 고생하면서! 샌님이 떨어지는 걸 보지는 못했어도, 우리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그 말을 듣고, 혹시나 윤신지 때문에 경찰이 금수저 네 사람을 조사하면 큰일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재빨리 문제의 페이지들을 태우고 재는 화장실에 버렸다. 아마도 교지 원고의 일부분인 듯 졸업생들의 한마디가 적혀 있고, 알 수 없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지역에서 흔히들 이야기하는 꿩 설화였다. 뭔지는 몰라도 강소균이 적은 서두의 꿩 이야기는 예전에 이미 읽었고, 고신우가 뜯어온 페이지들은 그 내용에 대한 술회述懷나 그에 준하는 편집팀의 잘난 척일게 분명했다.


그래서 그냥 버렸다. 그 딴 걸 볼 시간도 없고 내용을 확인할 틈도 없었다. 그 상황에서는 그저 모든 것이 철두철미해야 했다. 설마 그 쥐새끼 같은 윤신지가 샌님을 찾아다닐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까닭에 선윤은 짜증이 나 있었다.


당시에는 그저, 쥐약을 먹은 쥐들이 눈의 혈관이 터져 실명을 하고, 그래서 햇빛을 찾아 밖으로 나와 버둥거린다는 글을 읽었기 때문에 그걸 보고 싶었다.


샌님이 대상이었던 이유는 단 하나, 그 별명 때문이었다. 그 전해 여름 방이 끝날 무렵, 우연히 교지실의 강소균과 그 동료들이 채팅을 하며 떠드는 소리를 엿들었다. 편집실의 남자애 중 하나가 ‘근데 이게 진짜 가능한가?’하고 소균에게 물었다. 그때 소균이 대답하는 것을 엿들었다. ‘가능하지 않을까? 사인死因이 복잡할수록 동기와 범인은 가려지니까.’


그 말을 엿들을 때 박지양과 고신우도 같이 있었다. 편집실을 스쳐가며 세 사람이 실실 웃었던 기억이 났다.


흥, 서상영, 아무리 잘난 척하면 뭘 해.


선윤은 캠프를 나서는 서상영과 윤신지를 지켜보며 웃었다. 둘이 뭘 그렇게 의논하는지, 한참 동안 관리동 앞에서 서성이다가 떠났다.


어쨌든 이제 끝이다. 경찰에게는 백영미인지 뭔지 하는, 저 샌님의 숨겨진 딸이 사실은 혼자 오해해서 박지양을 찔렀을 거라고 넌지시 흘렸다. 그렇지 않으면 백영미가 신분이나 이력을 속이고 여기 들어올 이유가 뭐가 있냐고도 말했다. 경찰은 그런가요, 하며 백영미에게 참고진술을 요구했다.


백영미가 떠나는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았지만 상관이 없었다. 백영미가 잡혀도 상관없고, 빨리 떠나도 상관없었다. 어느 쪽이든 당하는 것은 백영미가 될 게 분명했다.


“언제나 이런 거지.”


김선윤은 즐거워하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입 안의 사탕은 아주 작게 줄어들었고, 해는 지평선 너머로 모습을 감추어,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조금 더디게 흘러갔다. 복도에서 인기척이 들린 것은 사탕이 완전히 다 녹은 후였다.


선윤은 고개를 내밀어 복도를 확인했다. 깜박, 복도의 전구가 한 번 흔들리며 눈앞도 흔들렸다.


……깜박?


그때였다.


갑자기 단순한 반짝임이라고 생각한 증상이 심해졌다. 복도의 불빛이 아니라 시야에서 생기는 증상이었다.


문득 컴컴한 복도의 장면이 환영처럼 일그러졌다. 시신의 온도를 조작하기 위해 실컷 틀어댄 에어컨.


그 냉방기는 한참 전에 껐는데도 돌연 한기가 들었다.


……뭐지?


급격히 어지러웠다. 몸이 오싹오싹해지고 목덜미가 서늘했다. 배가 아프며 이마의 열이 솟고, 그러면서도 모공이 한 번에 팽창하듯 손과 발에는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눈앞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자 공포가 느껴졌다. 시야를 가리는 거대한 안개 역시 점점 짙어질 뿐이었다.


“누구 없어요?!”


소리를 질렀지만 안개는 점점 짙어지고 곧 불투명한 막처럼 시계視界를 가로막았다. 선윤은 토하기 시작했다. 거친 소리를 내며 내장이 뽑힐 듯 토할 때마다 시야가 잠깐 밝아지고 흐려지기를 반복했다.


우욱, 거친 욕지기질이 거듭됐다. 순간, 선윤은 복도에 서서 자신을 관찰하는 검은 환영과 마주쳤다.


형철이었다. 선윤은 굉장한 통증을 느끼며 아들에게 손을 뻗었다.


“……아, 아, 아들?”


그러나 그 순간, 형철은 웃었다. 갑자기 웃었다. 그 웃음을 보는 순간, 몸이 벌벌 떨리고 시야는 완전히 뿌연 막으로 덮여 버렸다.


믿을 수가 없다!


몸은 균형 감각을 잊은 채 옆으로 툭, 하고 넘어갔다. 선윤은 격렬한 어지러움 속에서 발버둥 치며 좀 전의 웃음을 떠올렸다.


그 웃음, 기시감 있는 그 웃음……!


확실히 그랬다. 아들의 미소는 조금 전까지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선윤 만큼 그 웃음의 진의를 아는 사람은 세상에 없었다. 선윤은 구토의 고통도 잊고 공포에 사로잡혔다.


살면서 아무것도 무서운 것이 없었는데, 그런데……!


선윤은 안간힘을 다해 손을 저었다. 뿌연 안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사…… 살려……!”


또각또각.


마침내 다가오는 어른의 걸음 소리가 들렸다.


“죽지 않아요.”


부드러운 목소리가 속삭였다. 바로 선비의 딸이었다.


“죽지 않아요. 그냥 시력을 잃을 뿐이지. 빛을 찾아서 평생 헤매겠죠.”


쿵-.


심장이 내려앉았다. 백영미가 귀 가까이에 소곤거렸다.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줄 때 내던 그 목소리였다.


“교육은 가장 좋은 복수고, 복수는 가장 큰 보은報恩이죠. 난 그렇게 생각해요. 아빠가 있던 선정고등학교 교지팀 애들과…… 윤신지를 뺀 나머지 애들과 꿩 설화에 대해 다시 쓰면서 생각할 때……, 뱀에게, 뱀의 영혼을 가진 자에게 가장 큰 복수가 뭘까 생각했어요.”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도, 전언傳言은 선명했다.


“우리 승지는 제 엄마를 살리지 못했다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살아야죠. 저는 애들에게 꼭 엄마나 아빠를 살려놓아야 한다고 말했거든요. 그래야죠. 살아서…… 자기가 낳은 아이들이 어떻게 괴물이 되는지 봐야죠. 뱀의 영혼을 가진 사람들에게 설득은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음……, 아이들을 납치하거나 괴롭히는 것도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17년 전, 그때 그 동화를 마무리하기 직전까지 계속 생각했죠.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요. 뱀들에게 가장 큰 복수는 뭘까. 뱀의 우두머리에게 가장 큰 복수는 뭘까……, 자기의 식량인 쥐를 먹을 생각도 없이 그냥 어떻게 죽는지 보고 싶어 해서 그렇게 죽인 뱀들에게 가장 큰 복수는 뭘까……, 아이를 납치하는 거? 아이를 없애는 거? 아니면 내가 뱀을 죽이는 거? 혹은 아이가 뱀을 직접 죽이는 거?”


음성에 웃음이 담겼다.


“……아니죠. 당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대상을 만드는 거겠죠. 사람을 실험에 대한 쾌감으로, 욕구의 해결 수단으로 죽이는 살인자로 만드는 거겠죠. 잘 들으세요, 김선윤 씨. 당신은 ‘꼭’ 살아남을 겁니다. 독성이 죽일 정도까지는 아니고, 지금 당신 아들이 당신을 ‘살려놓기’ 위해 의사를 부르러 갔거든요. 당신은 그냥 실명한 채로, 계속, 계속 살아서……, 지능이 높은 당신의 아들이 동족을 골라서 죽이는, 그런 살인자가 되는 걸 꼭 지켜보세요. 아니면 이후에 어떤 식으로 교정이 되더라도, 당신의 아이가 자기 엄마와 엄마의 친구들을 어떻게 죽이려 했는지, 혹은 그런 사냥을 할 때의 기분이 어떤지, 그것을 하나의 포상과 성취로 기억하고 또 기억하며 만족해하는 뱀의 인격이 되는 걸 평생 지켜보세요. 당신의 자식은 이제, 아주 어릴 때 무의식에 남은 이 살인의 권력, 이 쾌감과 지배력을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그리고 언제든 때가 되면 다시 시도하려 하겠죠.

아셨죠? 당신은 평생 그것을 볼 거고요. 스스로 죽지도 못할 테죠. 아, …… 이런 게 바로 저렴한 내 삶에서 가장 뜻 깊은 복수가 될 겁니다

마음에 들지 않나요, 이사님? 천재의 씨앗을 쥔 아이들을 진짜 천재로 교육시키는 이 캠프의 정신과도 이렇게 맞아떨어지는 걸요.”


시야가 완전히 검어졌다. 빛이 차단된 세상, 상영의 경고가 뒤늦게 돌아왔다.


‘……아직도 모르겠습니까, 선배. 선배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진짜 이유가 뭔지?’


놈의 말이 맞았다. 경찰을 따라 갔어야 했다. 그냥 자수해야 했다.


고신우도 경고했다.


부메랑, 이라고.


딩동, 만찬을 의미하는 종이 울렸다. 아이들이 부르는 캠프의 주제곡이 밝고 명랑한 음색으로 흘러나왔다.


「Global Advanced Education」


「Global Advanced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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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Chapter 4. Epilogue (완결) +17 14.09.04 918 39 27쪽
» Chapter 3. 꿩은 알고 있다 (10) +2 14.09.04 520 25 12쪽
23 Chapter 3. 꿩은 알고 있다 (9) +2 14.09.04 647 24 28쪽
22 Chapter 3. 꿩은 알고 있다 (8) +2 14.09.04 653 25 52쪽
21 Chapter 3. 꿩은 알고 있다 (7) +2 14.09.04 571 26 27쪽
20 Chapter 3. 꿩은 알고 있다 (6) +3 14.09.04 676 22 19쪽
19 Chapter 3. 꿩은 알고 있다 (5) +9 14.09.04 489 25 16쪽
18 Chapter 3. 꿩은 알고 있다 (4) +2 14.09.04 641 25 14쪽
17 Chapter 3. 꿩은 알고 있다 (3) +2 14.09.04 537 25 10쪽
16 Chapter 3. 꿩은 알고 있다 (2) +4 14.09.04 477 23 16쪽
15 Chapter 3. 꿩은 알고 있다 (1) +3 14.09.04 594 25 24쪽
14 Chapter 2. 선비는 죽었다 (10) +4 14.09.04 774 25 25쪽
13 Chapter 2. 선비는 죽었다 (9) +4 14.09.04 1,111 28 18쪽
12 Chapter 2. 선비는 죽었다 (8) +3 14.09.04 511 24 14쪽
11 Chapter 2. 선비는 죽었다 (7) +3 14.09.04 796 29 33쪽
10 Chapter 2. 선비는 죽었다 (6) +4 14.09.04 674 25 14쪽
9 Chapter 2. 선비는 죽었다 (5) +4 14.09.04 668 25 20쪽
8 Chapter 2. 선비는 죽었다 (4) +7 14.09.04 619 29 30쪽
7 Chapter 2. 선비는 죽었다 (3) (수정) +6 14.09.04 857 26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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