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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사자, 계약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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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엔키유
작품등록일 :
2020.12.10 11:29
최근연재일 :
2021.04.2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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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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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04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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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99. 불의 성소

DUMMY

그곳은 이상한 장소였다.


마치 그 장소를 누군가로부터 숨겨 놓은 듯이,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막아 둔 듯이 보이기도 했다.


커다란 나무 뒤에 엉겨 붙은 나무덩굴과 풀 사이로 보이는 그것은 분명 제단이었다.


성벽 안쪽에 이질적으로 자리잡은 풀 숲과도 같은 공간에 마치 감춰지듯이 파묻혀 있는 제단.


이건 너무나도 쓸쓸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폴은 그저 가만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 지금 이 광경이 어떻게 비춰지는 것일까.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감히 그 마음속을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


“......”


우리들은 아무말도 하지 못한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지금 도대체 무슨 말을 꺼내야 하는지도 전혀 알 수 없었다.


“...안해?”


조용한 적막에 둘러싸여 있을 때, 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


그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쓸쓸함도, 원망이나 체념같은 것도 담겨있지 않았다. 다시 바라본 그의 얼굴은 이전 그대로의 조금은 장난기있고 밝은 그의 모습 그대로였다.


“축복말이야. 그게 목적이었잖아?”


“아~...아, 네! 네, 네! 물론이죠.”


오히려 당황하고 있는 것은 나였다.


그의 말에 대답을 하기는 했으나, 무슨 말인지는 바로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가 지금 뭐라고 했더라? 축복?


그제야 그는 내가 무언가 행동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쓸쓸한 제단의 모습을 보고 허망하게 서 있던 게 아니었던 걸까?



나는 조심히 그 제단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살짝 손으로 그 표면을 쓸어 내렸다. 멀리서 본 것처럼 그 제단은 대단히 차가운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불의 성소에 어울리지 않을 법한 대단히 차가운 금속은 야속하게도 이 쓸쓸한 분위기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고 있었다.


이대로 의식을 진행하는 것은 맞지 않을 것 같았다.


“...음, 일단 제단이니까...청소라도 할까요...?”


완벽하게 깔끔하게 정리할 수는 없다해도 신의 제단이었고, 의식을 치룰 장소였다.


조금은 청소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게 필요한가?

아~ 뭐, 윈프리드라면 그런거 신경쓸지도 모르겠네.”


폴은 툴툴거리면서도 청소를 도와주러 왔다.


우리는 제단을 중심으로 둥글게 모여 서 있었다. 이걸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청소해야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시간을 보낼 수도 없고.


“주위에 나무덩굴만이라도 치울까요...?”


“그러죠.”


“그래~ 대충하자고~”


드디어 우리는 제단 주위를 청소하기 시작했다.


설마 천 년 동안 방치되어 있던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주위의 풀은 난잡하게 엉켜 제대로 끊어 낼 수조차 없었다. 이 속에 파묻힌 제단을 발견했다는 사실이 기적이라고 느낄 정도다.


삭-


엘론은 자신의 검으로 가볍게 주위의 풀들을 쳐내고 있었다.


만든지 얼마 되지 않은 새검이라 그런지, 아니면 검자체가 좋기 때문인지 그 질겼던 풀들은 크게 힘을 주지 않아도 검날에 닿자마자 스르르 베어져 버렸다.


그리고 폴은,


“오, 폴도 검이 있었어요?”


그 역시 작은 단검으로 나무덩굴들을 잘라내고 있었다. 대장장이인 그의 검이 예리하다는 것은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으나, 지금껏 한번도 꺼낸 적이 없던 검이 도대체 어디에 있었는지가 궁금했다.


분명 검으로 보이는 물건은 보이지 않았는데.


“응? 대장장이는 언제나 연장을 갖고있어야 하는 법이지.”


“...연장이요?”


망치도 아니고 단검이 대장장이의 연장이 될 수 있던가?


아니 설령 망치가 있다하더라도 그것이외에 다른 물품들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게 아니던가.


‘뭐, 상관없나.’


나는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그라면 단검으로 다른 검을 고친다거나 하는 믿을 수 없는 일도 해낼 게 분명했다.


지금 내가 해야하는 일은 그걸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청소였다.


엘론과 폴은 풀을 베어내고, 나는 그 풀무더기들을 가져다가 한쪽으로 잘 쌓아놓기를 여러차례, 드디어 제단 주위는 제법 깨끗해졌다. 그렇다고해서 완벽하게 깔끔한 모습은 아니었으나, 어쨌든 그럭저럭 볼만해지긴 한 것이다.


폴은 조용히 정리된 제단을 매만지고 있었다.


성소가 황폐하든, 제단이 버려져있든 상관없어보이던 처음의 태도와는 다르게 그 손길은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 역시 그는 그저 강한척을 하고 있었을 뿐으로, 상당히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었다.


이제라도 조금 정리된 제단을 보며 그의 기분이 나아졌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럼, 이제 시작할게요!”


나는 일부러 그가 들으라는 듯이 밝은 목소리로 외친 후에 작은 상자를 꺼내 들었다.


“크리스탈...가져오셨었나요?”


“역시 놓고 오는 건 불안해서 말이야~”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인 이 크리스탈을 떼어 놓고 다닌다는 것은 역시 불안했다. 가지고 다닌다는 것 역시 불안하긴 마찬가지였으나, 어떻게 되든 일단 눈앞에 있는 게 더 좋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정답이었다.


그저 기분전환으로 검을 만들러 출발했다가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이 불의 성소일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제대로 제단 앞에 선 후, 상자에서 크리스탈을 꺼내어 그 위에 살포시 올려 놓았다.


크리스탈은 마지막으로 축복을 받았을 때, 활짝 폈던 꽃모양 그대로였으며 은은한 빛마저 머금고 있었다. 상태를 잠시 살핀 후에 제단에서 살짝 뒤로 물러나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미 다른 사람 앞에서 했던 경험도 있었고, 주인공은 아니었으나 나라의 주요 인물들이 모인 곳에서 의식을 진행했던 일도 있었기에 부끄러움이나 긴장은 없었다.


단지,


“......”


“......”


“......”


잠시 우리들 사이로 침묵이 지나갔다.


엘론과 폴은 나를 보고 있었고, 나는 그저 무릎을 꿇은 채로 굳어져 있었다.


그대로 패닉이 왔다고 해도 좋을만큼 그 자세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꼼짝도 하지 않은 것이다.


“...왜?”


그 침묵을 가장 먼저 깬 것은 역시 폴이었다.


그는 내 눈앞으로 손을 휘휘 저으며, 혹시 내가 그대로 기절해버린 것은 아닌지 확인까지 하고 있었다.


“클로이 님,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엘론도 슬슬 내가 걱정된 것인지 가까이 다가와 안색을 살폈다. 그들은 그대로 굳어버린 내 상태가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아 아연실색하고 있었다.


“뭐...”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뭐라고 말해야할지 모르겠어...”


“...네?”


“뭐?”


그랬다. 뭐라고 해야하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게 문제였다.


레이엔에서 순례를 다닐 때에는 교단에서 정해 준 예법과 축복을 받을 때의 말과 유의사항을 눈을 감고도 할 수 있도록 훈련받은 뒤에 실행했기에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바람의 신에게 충격적인 임무를 내려받은 직후는 모두들 정신이 없었다.


교단에서는 그저 내가 떠날 수 있게 설득과 준비를 서둘렀을 뿐, 다른 신의 성소에서의 예법이나 말에 대한 것은 하나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들도 모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른 신들이 존재했던 것은 이미 천 년 전의 일. 다른 성소의 예법같은 것이 우리에게 전해질리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다른 신의 성소에 축복을 전해주는 일은 아마도 내가 최초일 것이다. 천 년 전에도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있었을리가 없지.


‘자칫잘못했다가는 천벌이...’


거기에 생각이 이르자, 내 머리에 번쩍이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정답을 알려줄만한 사람이 있었잖아?!’


그것도 바로 옆에.


나는 폴을 올려다 보았다. 그는 갑자기 자신을 보는 나에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내가 ‘무슨 말을 해야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는 것을 떠올린 듯,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난 형식에 얽매이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라 뭐라고 말해도 상관없는데.”


그는 골똘히 생각하더니 “윈프리드는 좀 다를지도 모르겠고...”라고 덧붙였다. 잠시 말없이 가만히 제단을 응시하던 폴은, 그대로 허리를 펴고 일어나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어차피 급한 건 윈프리드겠지?

지금 중요한건 너라는 매개체와 그 크리스탈이 이곳, 나의 제단 앞에 있다는 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집중했다.


그는 어쩌면 나에게 중요한 답을 전해주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대단해보이는 어려운 표현이나 시인같은 감성도 필요가 없지.

그저 너라는 매개체가 마음으로 부르고 신이 그것에 응답한다.

적어도 나는 그게 우리가 바라는 축복의 형태라고 생각하는데?”


‘신에게 듣는 축복의 정의!’


라고 감탄할 때가 아니다. 지금 그런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바람의 신께서도 같은 생각일까요...?”


“글쎄? 방금도 말했지만, 다른 때면 몰라도 지금 급한건 윈프리드잖아?

‘윈프리드야, 축복 좀 내려줘.’라고해도 응해야할 상황이 아닐까?”


그의 예시는 비약이 심하긴 했으나, 맞는 구석도 있었다.


지난번 폴의 설명에 의하면 바람의 신은 다른 신들의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어쨌든 나라를 돌아다니며 빠르게 축복을 내려주는 편이 더 좋을 테고.


“...알겠어요!”


그렇다면 고민할 필요없는 일이다.


나는 다시 자세를 바로잡고 기도를 올릴 준비를 했다.


“바람의 신이신 윈프리드 님.

지금 이곳에 당신의 축복을 내려주시기를 청합니다.”


나는 그동안 레이엔에서 했던 말들을 참고하여 간단하게 기도를 올려보았다.


폴의 말대로하면 어떻게 될까 궁금한 마음도 들었으나, 나에게는 그정도의 대담함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이었다면 한번쯤은 해보라고 부추겼을지도 모르지만.


잠시 후,


주위의 공기들이 둥실둥실 떠오르는 듯이 가벼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실제로 그랬다. 내 머리카락이나 옷자락들이 가볍게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은은하게 빛나던 크리스탈의 빛이 서서히 그 빛을 더해갔다.


하늘에서 은빛의 물방울이 떨어지던 레이엔의 모습과는 대조되는 광경이었다.


휘이잉~


“앗!?”


그 순간, 밝은 빛을 내던 크리스탈로부터 갑자기 강한 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반짝반짝 빛나는 은빛을 품은 그 바람이 닿은 나무는 새싹이 돋아났고, 풀은 꽃봉오리를 품었다가 곧바로 활짝 피어났다.


급한건 바람의 신이라고 말했던 폴의 말은 사실이었다.


정말로 그녀는 별거 아닌 말 한마디에 축복을 내려준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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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101. 그 이후 21.02.06 72 2 11쪽
100 100. 후버의 축복 21.02.05 73 2 11쪽
» 99. 불의 성소 21.02.04 69 2 11쪽
98 98. 불의 성소로(3) 21.02.03 75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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