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신의 사자, 계약직입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엔키유
작품등록일 :
2020.12.10 11:29
최근연재일 :
2021.04.27 21:00
연재수 :
216 회
조회수 :
21,541
추천수 :
478
글자수 :
1,126,569

작성
21.03.02 00:17
조회
70
추천
3
글자
11쪽

127. 상담

DUMMY

“이 이야기를 하는 건, 두 분이 오스왈드 왕자님의 개인적인 일을 해주실 정도의 친분과 신용이 있으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앨리샤 왕녀의 시녀, 라오넬은 긴장을 감추려는 듯이 무표정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그녀의 긴장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해졌다.


지금 그녀가 하려는 말은 꽤 무거운 이야기일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라오넬이 우리를 이끌고 들어 온 곳은 그녀가 발을 멈췄던 그 복도의 벽에 연결된 작은 방이었다.


아는 사람만이 아는 비밀의 방.


그것이 이 방의 첫인상이었다.


벽의 한쪽에 은은하게 장식되어 있던 눈에 띄지 않던 무늬, 그 한쪽에 있던 비밀버튼을 누르자 아무것도 없던 벽에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비스듬히 문이 열렸다.


그리고 우리가 놀랄 틈도 주지않고 그녀는 내 손을 잡고 빠르게 안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이곳은 주점에서 비밀이야기를 했던 방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다른점이라면, 그저 이 방의 물품들이 조금은 더 밝은 색을 띠고 있다는 것과 좀 더 고급스러운 느낌이라는 것 뿐이었다.


라오넬은 우리에게 간단하게 차를 내어준 후,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우리에게 폭탄을 투하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로고 보니, 왕녀님은 차 한잔 주지 않았었네.’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리며 나는 현실도피를 하듯이 전혀 다른 내용을 떠올리고 있었다.


다일의 하나밖에 없는 왕녀라는 자가 치사하지 않은가, 생각할 때였다.


“혹시 두 분께서는 오스왈드 왕자님에게 다른 이야기를 듣지는 못하셨습니까?”


그것이 본론은 아닐 것이다.


라오넬은 본론을 꺼내기 전에 무언가 확인하려는 듯이 신중한 모습이었다.


“아니요. 저희는 귀걸이를 전달해달라는 말만 들었을 뿐입니다.

다른 이야기는 없으셨습니다.”


아직 찻잔을 입에 대고 있는 나를 대신하여 엘론이 대답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길래 이렇게 조심하는 거지?’


나는 곁눈질로 라오넬의 모습을 살폈다.


그녀의 안색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마치 지금부터 하려는 말을 꺼내는 순간 목이라도 날아갈 것처럼 창백했고, 입을 열었다가 금세 다시 닫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라오넬의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나는 차를 한모금 입에 머금고는 찻잔을 조심히 내려놓았다.


‘찻잎은 꽤 좋은 걸 쓰는 거 같네...’


이런 방에 비치되어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은 맛이었다.


그때,


“왕녀님께서 파혼을 생각하고 계십니다.”


“?!”


“쿨럭쿨럭!”


목으로 넘어가던 차는 엉뚱한 이야기와 함께 엉뚱한 곳으로 넘어가 버린 것인지, 목이 심하게 아프고 끊임없이 기침이 나왔다.


“클로이 님! 괜찮으세요?!”


그 이야기는 엘론에게도 꽤 충격적인 것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뒤늦게 내 이변을 눈치채고 등을 살살 토닥여주고 있었다.


‘파혼?!’


“쿨럭쿨럭”


기침을 안정시키며 나는 앨리샤 왕녀를 떠올려보았다.


그녀는 오스왈드의 뜬소문만으로도 상당히 불쾌해보이지 않았던가.


‘그런 모습으로 파혼을 이야기할 수 있는 건가?’


그게 파혼하는 사람의 자세라면, 이 세상엔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크흠...죄송합니다. 하지만 라오넬 님.”


“라오넬이라 불러주십시오.”


“...그럼 라오넬.

방금 전, 앨리샤 왕녀님의 모습에서는 전혀 파혼을 생각할 수 없지 않았나요?”


라오넬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그리고 불안한 것인지 하나로 모으고 있는 두 손을 계속 매만지고 있었다.


“네. 그래서 혹시 후버에서 무슨 이야기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버에서는 왕녀에게 선물을 보내며 약혼자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는 것이 그녀에게 혼란을 가져다 준 것 같았다.


“파혼의 이야기는 공식적으로 의논되고 있는 겁니까?”


“...아니요. 왕녀님께서 잠시 저희에게만 언급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꽤 고뇌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후버에서도 두 사람의 결혼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파혼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두 사람은 ‘정략 결혼’이었을 터.


그게 그렇게 쉽게 깰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도대체 무엇이 왕녀의 마음을 바꿔버린 걸까?


“혹시 왕녀님에게 따로 좋아하시는 분이...”


“그건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혹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면 충분히 고뇌할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확고한 라오넬의 말을 들으니, 그 가능성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남은 건,


“그럼, 앨리샤 왕녀님은 언제 그런 말씀을 꺼내셨습니까?”


“그건...”


라오넬은 먼 기억을 떠올리려는 듯이 눈을 내리깔고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오래된 일이야!?’


이미 오래전부터 파혼을 생각했다는 것은 꽤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결혼식에 꼭 초대하겠다던 오스왈드의 얼굴이 떠올랐다.


설마 하급귀족이라는 이유로 참석하지 못한다는 것이외에 다른 불참 사유가 생겨버릴지도 모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아!”


마침내 떠올랐는지 라오넬은 작은 탄성을 지르며 고개를 들었다.


“하늘에 밝은 빛이...한낮의 별같은 빛이 떠오르고 얼마 안지났을 무렵입니다.

그런 빛은 처음보는 거라 확실하게 기억이 납니다.”


“...!”


나와 엘론은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늘에 떠오른 밝은 빛.


그것은 분명 레이엔에서 뻗어나온 축복의 빛이다. 그리고 폴의 말에 의하면, 그 빛을 본 순간 자신의 모든 전생의 기억이 떠올랐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이 한가지 있었다.


“혹시, 앨리샤 왕녀님께서 최근 가까이 지내시는 분들이 계신가요?”


“최근...이라고 해야할지, 평소에 가까이 지내시는 분은 왕궁 마법사님과 치유사님이십니다.”


“두 분 중 어느분이 앨리샤 왕녀님과 더 친분이 있으십니까?”


“...그건 아마도 왕궁 마법사이신 로센 님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녀의 한마디에 우리의 조사 방향이 결정되었다.


폴의 힌트 중 하나.


신의 환생자는 언제나 왕족과의 연결고리가 있다.


‘가장 친한’이라고는 확신할 수 없지만, 어느정도의 친분이 있는 것은 확실했다. 실제로 오스왈드 역시 일부러 폴을 방문하여 음식을 전해주지 않던가.


“알겠습니다. 이번 일은 저희가 한번 조사해 보겠습니다.”


“...정말입니까!”


“네, 걱정마세요. 양국의 평화는 저희도 바라는 바입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라오넬에게 최대한 상냥해보이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내가 이 일을 하면서 늘어난 기술은 마법뿐만이 아니었다.


어쩌다가 이런 가식적인 말을 술술 내뱉게 되었을까?


“일단은 그분의 말을 들어봐야겠군요.”


“그렇겠네. 무슨 말을 했는지 좀 들어봐야하고...”


“후후.”


그때 라오넬이 밝게 미소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얼굴에는 이미 이전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우리와의 대화로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 걸까?


“두 분은 정말 사이가 좋으십니다.”


“네?”


“왕녀님께 ‘미래를 약속한 사이’라고 했을 때는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일거라 생각했습니다만,”


‘윽..’


순간적으로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만약 소리가 밖으로 전해졌다면 ‘덜컹!’하고 큰 소리가 울려 퍼졌을 것이 분명했다.


이미 그들은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인가?


“지금, 안심했습니다.”


“안심이요...?”


“네, 왕녀님은 이 결혼을 꽤 기대하고 계셨었으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라오넬은 들어왔던 방향과는 반대되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것도 없는 벽을 손으로 잡는 듯하더니, 힘을 주어 밖으로 밀어냈다.


-스르륵


“오...”


분명 아무런 표시도 없던 벽이 마치 문처럼 사각의 형태로 비스듬히 밖으로 밀려났다.


“이쪽으로 나가시면 됩니다.”


“...여기는 어딘가요?”


“도서관입니다.”


밖으로 걸음을 옮기자, 그곳은 라이넬의 말대로 책으로 빽빽하게 채워진 도서관이었다.


넓고 둥근 형태의 이 도서관은 어떻게 꺼내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벽을 따라 수많은 책들이 꽂혀있었고, 그 가운데로 또다시 둥근 형태의 기둥을 따라 책들이 늘어서 있었다.


높은 천장은 아치형으로 된 유리로, 그 사이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빛이 도서관을 비추고 있었다.


“지금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아무래도 아무나 쓸 수 있는 공간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비밀 방으로 이어지는 문이 이쪽으로 나 있는 거겠지.


“두 분은 로센 님을 만나실 예정입니까?”


로센이라면 분명, 방금 이야기했던 다일의 왕궁 마법사의 이름이었다.


“네. 확인해야할 일이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그렇게 전달해드리겠습니다.

혹시 바로 오실 수도 있으니 잠시 이곳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내 인사에 라오넬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머뭇거리며 쉽게 발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그렇게 서 있던 라오넬은 진지한 표정으로 자세를 바로 잡더니, 다짐하듯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두 분께는 협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왕녀님에 관한 일, 잘 부탁드립니다.”


말을 마친 그녀는 대단히 정중하게 인사를 한 후, 도서관을 나섰다.


“......”


어쩐지 마음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내 일을 위해 조사를 하는 것뿐인데, 굉장히 은혜를 입은 듯한 태도도 불편했고, 어쩐지 부담스럽기도 했다.


“‘미래를 약속한 사이’요?”


복잡한 마음으로 문을 바라보고 있을 때, 뒤에서 웃음을 참는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뒤를 돌아보기 민망해졌다.


아무말없이 내 말에 맞춰준다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그는 그 말에 앙심을 품고 있었던 건가!


‘크흠...’


뒤를 돌아보기 전에, 괜찮은 변명을 떠올려야한다.


이런저런 변명거리들이 머리에 떠올랐다 가라앉기를 수백 번.


드디어 마음을 정하고 뒤를 돌았다.


그리고 최대한 밝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그야, 내 호위인 엘론에게 내 목숨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내 미래는 엘론에게 약속받은 셈이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떳떳하게 말하고 있었으나, 속으로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얼핏 듣기로는 대단히 그럴싸한 말이었다.


하지만 따지고 들면, ‘지금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싶을 정도로 엉터리라는 것을 아마도 엘론은 눈치채고 있을 것이었다.


과연 엘론은 무슨 반응을 보일까?


나는 조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두죠.”


그는 작게 미소지으며 담백하게 대답했다.


아마도 엘론은 속아주는 것을 택한 모양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신의 사자, 계약직입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127. 상담 21.03.02 71 3 11쪽
126 126. 알현 21.03.01 71 1 11쪽
125 125. 스승과 제자(3) 21.02.28 88 2 12쪽
124 124. 스승과 제자(2) 21.02.27 85 2 11쪽
123 123. 스승과 제자(1) 21.02.26 75 1 11쪽
122 122. 다일의 수도로 21.02.25 78 3 11쪽
121 121. 제자리 21.02.24 75 2 12쪽
120 120. 로즈마리(3) 21.02.23 71 2 11쪽
119 119. 로즈마리(2) 21.02.22 71 2 11쪽
118 118. 로즈마리(1) 21.02.21 70 2 11쪽
117 117. 본거지(3) 21.02.20 72 2 11쪽
116 116. 본거지(2) 21.02.20 74 2 11쪽
115 115. 본거지(1) 21.02.19 75 2 11쪽
114 114. 협상 +1 21.02.18 77 3 11쪽
113 113. 의외의 활약 21.02.17 76 2 11쪽
112 112. 술 대결(2) 21.02.16 70 2 11쪽
111 111. 술 대결(1) 21.02.15 78 2 11쪽
110 110. 주점 21.02.14 72 2 12쪽
109 109. 소매치기 21.02.13 77 2 11쪽
108 108. 대지의 왕국 21.02.12 75 2 11쪽
107 107. 순항 21.02.11 76 2 11쪽
106 106. 힌트 21.02.10 76 2 12쪽
105 105. 배웅 21.02.09 72 2 11쪽
104 104. 준비시간 21.02.08 79 2 11쪽
103 103. 오스왈드의 부탁 21.02.07 75 2 11쪽
102 102. 빚 21.02.06 73 2 11쪽
101 101. 그 이후 21.02.06 73 2 11쪽
100 100. 후버의 축복 21.02.05 74 2 11쪽
99 99. 불의 성소 21.02.04 69 2 11쪽
98 98. 불의 성소로(3) 21.02.03 76 2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엔키유'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