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로 살아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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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치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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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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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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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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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DUMMY

《 ‘바모르 산 차원의 문’이 관념의 지도에 각인 됩니다. 》


안내와 동시에 울창하고 음습한 숲 풍경이 펼쳐졌다.

녹음은 짙다 못해 거무죽죽했다. 회색빛 거친 피부를 가진 못난이 트롤들의 서식지다운 그림이었다.


일대에는 트롤 잡이를 하고 있는 테라리언보다 약초 채집을 하고 있는 테라리언이 더 많았다. 대부분 힐러였고, 자신의 특성을 강화하기 위해 약초학을 배운 이들이었다.


이곳은 약초학의 성지였다. 특히 ‘바모르 숲의 약초’는 포션 제조의 꽃과 같은 아이템이었다. 그것으로 100배 빠른 회복 속도 효과를 내는 ‘재생의 포션’을 만들 수 있었다.

그건 트롤이 지닌 재생 능력의 비밀이기도 했다.


‘이곳에서도 숨어서 테라리언들을 죽이기도 했나?’

나는 내 뒤에서 천천히 따라오고 있는 고블린을 향해 물었다.


‘이곳에선 생각보다 소득을 얻기 쉽지 않아서 포기했어요. 채집하는 놈들은 무조건 무리지어 다니더라고요. 그리고 트롤의 급습을 막기 위해 상시 보초를 서는 놈도 있죠.’


고블린의 말대로 무리 지은 테라리언들 앞엔 꼭 원거리 공격에 능한 이들이 인근을 경계하며 서있었다. 대부분 레벨 80대에, 웬만큼 고수라 부를 수 있는 수준에 이른 이들이었다. 저들은 트롤이 자신을 재생할 겨를도 없도록, 단박에 목숨을 앗아갈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저 보초일은 게임에서 돈 몇 푼 빨리 벌어보겠다고 나도 한 적 있는 일이었다.


정반대의 입장에 놓인 지금, 왠지 모르게 언짢은 기분이 들었다.

저들은 모험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살아가는 테라리언들이었다.

모험보단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지금은 그런 기분에 몰두할 때가 아니었다.


나는 걸음을 빨리하며, 산의 출구를 향해 갔다.

고블린 또한 걸음을 빨리하며 내 뒤를 따라왔다.


우리는 바모르 산 입구에서 ‘사냥꾼 마을’로 이어지는 길로 접어들었다.


그 길은 바모르 산을 빙 둘러가는 황무지 길이었다.

산을 넘어가는 길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또 다른 산인 ‘하함 산’과 이어질 뿐이었다.


산 하나를 애써 둘러가야 하는 만큼, 길은 길었다.

듬성듬성한 마른 풀이 광풍에 휘날리는 메마른 길이었다.

이 길은 몬스터도, 테라리언도 없었다.


앞서 고블린이 ‘사냥꾼 마을’에 대한 두려움을 토로했는데···

사실 그곳은 테라리언 사이에서도 평가가 좋지 않은 곳이었다.


마을 이름의 ‘사냥꾼’은 야생동물 잡이를 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다.

그들은 돈에 의해 살고, 돈에 의해 움직이는 이들이었다.


공성전에서 용병으로 뛰거나, 엄청난 보상을 전제로 하는 의뢰를 받으며 돈을 벌었다.

나쁜 의미로 법 없이 살았고, 돈만 준다면 테라리언을 죽이는 일도 서슴없이 하는 놈들이었다. 돈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사냥하는 놈들.

그런 놈들이 유일하게 소속감을 느끼는 장소가 바로 ‘사냥꾼 마을’이었다.


게임에선 비매너 유저로 이름난 놈들이 이곳에 적을 두었다.

마을의 NPC들이 호전적인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온갖 살해 의뢰가 이곳에 모여 들었고, 그것을 퀘스트로 받아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장소로 이어지는 길인만큼, 이 길을 이용하는 테라리언은 극히 드물 수밖에.


고블린과 나는 하염없이 직진으로 뻗어나가는 길을 꽤 오래 걸었다.

어느새 ‘사냥꾼 마을’의 모습이 어슴푸레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종말극의 풍경 속에 갑자기 나타난 거주지처럼 시꺼먼 음흉함을 품고 있는 듯했다.


그때였다.


‘기사님. 하늘을 보세요!’

옆에서 걷던 고블린이 소리치듯 귓속말을 걸어왔다.


나는 고개를 들어보았다.

대낮의 하늘 속에 느닷없이 흰 새가 떼 지어 날고 있었다.

저놈들은 테라리언에게 퀘스트를 전달하는 새였다.


수백의 새들이 사냥꾼 마을로 향하고 있었고, 수십의 새들이 무리에서 분리되어 우리가 왔던 바모르 산을 향해 날아갔다.


나는 그 괴이한 풍경을 보며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퀘스트가 저런 식으로 전달되는 경우는 없었다.


메인 시나리오의 진행은 테라리언 모두 제각각이다.

NPC나 몬스터를 통해 히든 퀘스트를 받는 일은 더더욱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나는 이것이 연금술사의 소행일 것이라 직감했다.

호피탈 밖을 벗어날 수 없는 놈들이니 저런 방법을 이용한 것이겠지.


‘호피탈 놈들이 본격적으로 날 쫓기 시작하나 보군.’

나는 고블린에게 덤덤히 일렀다.


때마침 멀리서 테라리언 하나가 우리 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무리에서 동떨어져 나온 새 한 마리가 그자에게 퀘스트를 안기는 게 보였다.


‘내용을 확인해보아야겠다. 너는 잠자코 따라와라.’

그렇게 말하고, 나는 빠르게 테라리언을 향해 다가갔다.


테라리언은 레벨 50대 수준의, 전형적인 상인 행색의 젊은 인간 남자였다.

사냥꾼 마을에 아이템을 팔러 들리는 용감한 종자들이 있긴 했는데, 이 테라리언도 그런 유형인 것 같았다. 퀘스트 공유 요청이 쉽지 않을 듯하지만, 시도는 해봐야했다.


“안녕하십니까. 제가 미처 퀘스트 내용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못하고 실수로 파기를 해버렸습니다. 아마 대륙 전역에 동시에 전달된 퀘스트인 것 같은데 공유 요청을 한번 드려도 되겠습니까?”

“예예. 그럼요.”

테라리언은 다행히 아량이 넓었다.


실상 퀘스트를 실수로 파기하면, 테라리언끼리의 공유를 통해 되받는 건 흔한 일이었다. 애먼 걸음을 반복해, 퀘스트를 다시 받는 일을 없애기 위한 제도였다.


《 ‘행상꾼 왈더’를 통해 ‘다크 나이트 척살령’ 퀘스트를 공유 받으시겠습니까? Y/N 》


음···. 아주 직관적이기 그지없는 이름이다.

나는 단박에 공유 승인을 떠올렸다.


----------


<특별 퀘스트: 다크 나이트 척살령>


등급: SSS


내용: 타탄 던전에서 다크 나이트가 탈주하였습니다. 현재 이덴 대륙 전역을 떠돌아다니며, 테라리언을 함부로 몰살 중입니다. 놈의 탈주로 인해, 타탄 던전은 일시 봉인됩니다.

다크 나이트를 추적하여, ‘속박의 검’을 이용해 척살하십시오.

척살 완료 시, 테르 전역에 안내가 갈 예정입니다.


특징: 2미터 넘는 장신. 먹색의 해진 로브 차림. 블랙 플레이트 아머. 투 핸디드 소드.


최근 목격지: 미드 헤임 일대.


제한 시간: 척살 완료까지.


보상: 푸른 심장.

실패 시: 없음.


----------


퀘스트 내용을 읽어 내려가는 내내, 나는 만감이 교차했다.


나 정도의 존재를 잡는 퀘스트의 등급이 고작 SSS급이라고?

보상 내용만 놓고 보면, SSSSS급의 퀘스트가 아닌가?


그리고 내가 아직도 같은 옷차림을 유지할 거라 생각하다니···

멍청하기 그지없는 연금술사 놈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조심할 필요가 없는 건 아니었다.

어쨌든 테르의 전 테라리언을 대상으로 뿌린 퀘스트였으니까.

어느 대단한 놈이 갑자기 내 뒷목을 찌를지 모를 일이었다.


‘생각보다 심각한 건 아니다. 내용 확인도 다 했으니, 다시 걸음을 옮기도록 하지.’

나는 고블린을 안심시키기 위해 넌지시 귓속말을 했다.

그리곤 자리를 뜨려는 기색을 풍기며, 상인에게 말을 건넸다.


“음··· 별로 구미가 당기는 퀘스트는 아니군요. ‘퀘스트 다시 받기’ 요청은 하지 말아야 겠습니다.”


내 말은 거짓말이었다.


《 ‘여행자’가 받을 수 없는 퀘스트입니다. 》


라는 안내문이 한도 끝도 없이 울려댔기 때문이다.


“그치요. 저는 본 적도 없는 몬스터인데··· 설명만으로도 아주 오금이 저립니다요. 로브를 뒤집어 쓴 2미터 장신의 몬스터가 지금 내 눈앞에 있다면, 전 바로 기절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테라리언은 그렇게 말하며 나를 잠깐 올려다보았다. 말을 잘못 뱉었다 싶은 표정이 일순 그의 얼굴 위로 스쳤다.


“허허허. 기사님도 자칫하면 오해받으시겠습니다. 아, 물론 로브 색도 다르고, 지팡이도 들고 계시니, 저처럼 바보 같은 오해는 하지 않는 이들이 더 많겠죠. 고 투 핸디드 소드만 해제하시면··· 오해 받을 일은 없으실 듯한데···.”


테라리언은 적잖이 당황한 듯, 횡설수설 되도 않는 말을 자꾸 늘어놓았다.

나를 다크 나이트라고 생각하기보단, 내게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에 쩔쩔 매는 듯했다.

아무래도 나는 지금 ‘사냥꾼 마을’로 향하는 악한처럼 보일 테니까.


“허허···. 저도 기사님처럼 퀘스트 파기나 해야겠습니다. 기사님처럼 뛰어난 분께서도 파기하는 마당에 저 같은 행상꾼이 성취할 수 있는 게 아닙지요. ‘속박의 검’이니 뭐니···. 안 그래도 인벤토리 부족한 장사꾼에겐 괜히 자리만 차지하고요.”


테라리언이 더 당황해서 이상한 말을 늘어놓기 전에 자리를 떠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제 자릴 뜨는 게 좋겠다.’

나는 루피에게 귓속말을 하며, 테라리언으로부터 돌아섰다.


그리고 걸음을 재차 떼려는 순간이었다.


“어···? 이게 왜 파기가 안 되지···?”

의구심으로 가득한 테라리언의 목소리가 뒤편에서 들려왔다.


“설마···.”

그리고 놈의 의구심은 너무나도 쉽게 확신으로 번졌다.


휘리릭.

나는 빠르게 뒤돌아, 테라리언을 향해 지팡이를 길게 뻗었다.


콰아앙!!

지팡이가 테라리언의 머리를 정확히 가격했다. 별다른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지팡이 끝에 검은 빛줄기가 따라 붙었다. 어마어마한 힘이었다.


테라리언은 메마른 평지를 얼마간 날아갔다.

무거운 몸이 바닥을 길게 쓸었다.

즉사였다.


놈의 손에는 부연 빛을 뿜어대는 ‘속박의 검’이 들려있었다.

검의 냉기를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으므로, 놈의 손은 거뭇하게 얼어붙어있었다.


나 하나 잡기 위해 이 따위 위험한 물건을 테르 전역에 뿌리다니···.

연금술사 놈들도 어지간하다 싶다.


‘이제 가자.’

나는 다시 사냥꾼 마을을 향해 돌아서며 고블린에게 귓속말했다.

‘겸사겸사 저 인간 인벤토리 좀 열어봐도 되요?’

‘일을 망치고 싶으면 그렇게 해.’

‘······.’

고블린은 결국 조용히 내 뒤를 따라왔다.


수습을 위해 검은 사자들이 이곳에 도착해도, 의심은 사지 않을 수 있었다. 사냥꾼 마을의 영역은 어느 곳보다 테라리언 살해가 빈번한 곳이니까.

하지만 저 자의 아이템이 이유 없이 사라진다면 상황은 달라질지도 모른다.


‘망토를 잘 여며. 이제 곧 도착이다.’

그렇게 속삭이며, 나는 재차 걸음을 뗐다.



* * *



대낮의 사냥꾼 마을은 아주 고요했다.

이곳의 건물들은 대부분 숙박을 겸하는 주점이었다.

그리고 낮에는 문을 열지 않았다.


이곳은 사실 마을이라고 부르기보단, 휴게소라고 부르는 게 맞았다.


의뢰를 마친 사냥꾼들이 낮의 휴식을 청하기 위해 오는 곳.

피에 젖은 몸을 술로 씻기고, 숱한 죽음으로 마비된 머리를 잠시 풀어놓는 곳.


이곳은 그야말로 대화보다 싸움이 편한 마초들의 집결지였다.


나는 고블린과 함께 광장 역할을 하는 협소한 공터에 우뚝 섰다.

그곳을 중심으로 온갖 여관과 주점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엔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테라리언도, NPC도 없었다.

한낮에는 마을 전체가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기사님. 이거··· 괜찮은 계획일까요···? 안 그래도 수배령까지 떨어진 마당에···.’

고블린이 두려움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최선의 방법이다.’

그렇게 말한 후, 나는 목소릴 가다듬었다.


이제 귓속말이 아닌, 입을 열어 소리칠 순간이었다.


“사냥꾼의 우두머리는 들어라. ‘오벨의 미로’를 두고, 쟁탈전을 신청한다.”

내 목소리가 마을 전역을 쩌렁쩌렁 울렸다.

여관 창이 흔들린다는 착각이 들만큼, 살벌하고 커다란 목소리였다.


‘오벨의 미로’란 사냥꾼 마을 영역에 속한 유적지였다.


그리고 내가 지금 찾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 유적지의 보물이었다.


쾅. 콰앙. 덜컹.

과연 사냥꾼들의 몸놀림은 빨랐다.

여관과 주점의 문들이 성급하게 열렸고···


무기를 갖춰 든 사냥꾼들이 순식간에 내 주변을 에워쌌다.

날카로운 검 날과 무거운 철추들이 내 몸을 향하고 있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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