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로 살아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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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치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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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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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DUMMY

아이의 말에 담긴 저의를 판단할 겨를 따윈 없었다.


쇄애액.

나는 비에르카를 향해 재빠르게 지팡이를 뻗었다.

찰나의 경악을 담은 거친 일격이었다.


《 ‘마법사 비에르카’가 스킬 ‘절대 방벽’을 발동합니다! 》


콰아아앙!!!!

순간, 비에르카의 몸 앞으로 빛을 두른 투명한 벽이 우뚝 서더니, 날아드는 지팡이를 막았다.

지팡이와 벽 사이, 뇌전이 크게 번쩍였다.


지팡이를 통해 전해져오는 엄청난 힘에 팔이 저릴 지경이었다.


“내 뒤에 누군가 있다는 걸 어떻게 안 거지?”


나는 여전히 비에르카를 향해 뻗은 지팡이를 거두지 않고 말했다.

비에르카는 내 공격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여전히 무미건조한 얼굴로 고블린이 서있는 방향을 향해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으음···.’

고블린은 조금 당혹스러운 듯, 신음을 흘렸다.


“그야 내 스승님의 망토를 두르고 있으니까. 못 알아볼 리가 없잖아?”

비에르카가 침묵을 멈추고, 퉁명스럽게 중얼댔다.


‘이 아이의 말이 사실이냐?’

나는 고블린을 향해 귓속말을 했다.


‘음··· 전 이게 ‘망각의 감옥’에 있던 물건이란 것만 알아요···.’

고블린이 자신 없는 투로 속삭였다.


비에르카의 스승이라.

내가 전혀 모르는 존재는 아니었다.


테르에서 가장 전설적인 현자.

대마법사들의 영웅이자, 스승인 대현자 ‘오론’.

회색빛 긴 머리에, 소박한 마법사 모자를 쓴 노인으로 묘사되어있을 뿐.

앞서 내가 마주쳤던 ‘요정 오벨’처럼, 이 세계에 실재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고블린의 말을 통해 유추하자면, 그 대현자는 지금 ‘망각의 감옥’에 갇혀있는 건가···?

그렇다면··· 오벨도···.


내 생각의 이음새를 끊어낸 것은 비에르카였다.


“망토 안은 보이지 않아. 어떤 놈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뭐, 대단한 놈이네.”

비에르카는 그렇게 말하며, 방벽 스킬을 거두었다.


보아하니, 아이는 투명 망토의 존재만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뿐, 그 속에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아챌 수 없는 모양이었다.


나 역시 비에르카를 따라서 지팡이를 거두었다.


내가 섣불리 선공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에게선 아직도 적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는 도리어 말똥말똥하게 두 눈을 뜬 채,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호의도 적의도 없는, 어린 짐승 같은 얼굴. 그런 비에르카의 표정을 보니, 이제야 좀 아이답다 싶다.


“그리고 궁금한 거 아니었어? 저놈도 같이 올라갈 수 있는 지, 없는 지.”

내 침묵이 답답했던 건지, 비에르카가 재차 말을 이었다.


“난 그걸 알려준 것일 뿐이야. 아저씨.”


아이의 말은 일부분 사실이었다. 머드맨을 쓰러트리는 업적을 완수한 건 나뿐이니, 고블린이 함께 올라갈 수 있는 지 없는 지 확실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꼭 놈을 데리고 갈 생각이었던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오벨의 눈’만 뜯어오면 될 일이니···.


“망루를 들어갈 수 있는 권한을 얻었으면··· 그냥 들어가라고. 정해진 절차를 따른 거잖아.”

비에르카의 말투는 여전히 퉁명했지만, 왠지 모르게 좀 슬프게 들렸다.

어린 나이에 이 지독하게 안락한 성 안에 갇히고, 일찌감치 고독이나 씹어야했던 존재의 자포자기가 담긴 것 같은 말투라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사실 이 아이는 앞선 싸움에서 일부러 진 것일지도 몰랐다.

권태는 삶을 애쓰지 않게 하기 마련이니까.

비에르카의 표정이 왜 이렇게 심드렁한 건지 순식간에 이해가 되었다.


“네 말을 받아들이지.”

나는 비에르카에게 말하며, 이내 망루의 입구 앞에 섰다.


‘올라가자.’

그리곤 고블린을 불러, 함께 입구로 들어섰다.


망루의 꼭대기에서 이놈이 꼭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스쳤기 때문이었다.



* * *



망루의 내부에는 오로지 나선형 계단밖에 없었다.

철제 계단을 빙글빙글 돌아 올라가면, 중간 중간 벽면에 손바닥만 한 구멍이 있었다.

틈틈이 바깥을 살피도록 뚫어놓은 구멍인 듯했다.


그야말로 사소한 장치도, 장식도 없는 수수한 망루였다.

하기야 꼭대기에 ‘오벨의 눈’이 있는 마당에, 무슨 장치를 덧댄들 지금보다 더 대단한 망루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망루의 꼭대기까지 오르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나는 일찍이 느끼고 있던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고블린에게 말을 걸었다.


‘그 망토는 네가 직접 ‘망각의 감옥’에 가서 구해온 거냐.’

‘아뇨오···.’

고블린은 살짝 머뭇거리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이내 해맑게 말을 이었다. 오히려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게 후련하단 투였다.


‘운이 좋았던 거죠.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졌거든요. 일종의 보상처럼 말이에요.’

‘보상?’

‘네. 테라리언들도 업적이나 퀘스트를 완수하면 보상을 받잖아요. 이건 제가 두 번째로 테라리언의 물건을 훔쳤을 때, 받은 거예요. ‘망각의 감옥’에서 온 아이템이라는 건, 물건을 받으면서 알게 된 거고요. 보상을 보내온 곳이 어딘지··· 밝히는 소리가 들리면서, 이게 떨어진 거죠.’


조금 어이가 없긴 했지만, 말이 안 될 것도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놈의 말처럼 테라리언들은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마다, 하늘로부터(?) 보상을 받으니까.

그리고 몬스터인 놈이 테라리언처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마 놈의 타고난 행운 덕분인 것 같았다. 이제야 그토록 미친 듯이 높던 행운의 수치가 이해되었다.


‘그럼 처음 물건을 훔쳤을 때 받은 보상은 뭐지?’

놈의 말을 듣다보니 궁금증이 일어, 나는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뭐겠어요. 바로 이 가방이지요. 이 아이템 하나로 인해 제 도둑 외길이 본격 시작되었다고 봐도 무방하거든요. 이 아이템 덕분에 새로운 스킬도 배울 수 있었으니까요.’

고블린이 제 등 뒤에 걸린 가방을 팡팡 두드리며 말했다.

귓속말임에도 불구하고, 고블린의 뿌듯함이 온전히 다 느껴질 정도였다.


새로운 스킬이라는 건, ‘행동불능자 인벤토리 오픈’을 말하는 것이겠지.

저 얘기까지 듣고 보니, 놈이 정말 대도가 될 운명이라도 가진 것만 같다.


그렇게 대화를 이어가다보니, 어느새 망루의 꼭대기였다.


망루의 꼭대기는 지붕도, 담도 없는 휑한 절벽이나 매한가지였다.


높고 가파른 곳답게 세찬 바람이 쉼 없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두 눈이 검은 오라를 두르고 허공에 붙박여 있었다.

네모난 동공을 가진, 금빛의 눈동자.

오벨의 눈이었다.


고블린과 나는 잠시간 그 앞에 멈춰서있었다. 몸통만 한 두 눈의 크기도 압도적이었지만, 가로로 길쭉한 그 동공의 모습도 아주 낯설었다. 과연, 전 대륙을 너르게 조망할 수 있는 두 눈다운 외양이었다.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나는 ‘기억이 깃든 검’을 장착할 수도 없는데···.


생각하며 오벨의 눈 가까이 다가선 순간이었다.


《 ‘오벨의 눈’에 ‘기억이 깃든 단검’을 사용하시겠습니까? Y/N 》


내 속을 알아채기라도 한 건지, 친절한 안내가 곧바로 흘러들었다.

나는 당연히 긍정을 표했다.


《 ‘절대 망루’에서 ‘오벨의 눈’을 분리합니다. 》


지이이이잉-


안내와 동시에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로 머릿속을 뒤흔드는 음파가 사방을 가득 채웠다.

고블린도 괴로운 모양인지 두 귀를 손으로 막고 얼굴을 찡그렸다.


파직. 파직.

이어서, 오벨의 눈을 감싸고 있던 검은 빛에 서서히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섬광 같은 불빛이 두 눈 주변으로 혈관처럼 도드라졌다.


분리의 과정은 더뎠다.

하지만 강렬했다.


쿠와아아아!!!

두 눈에서 시작된 굉음이 하늘을 쪼개기라도 할 것처럼 멀리멀리 뻗어나갔다.

두 눈은 좌우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얄팍한 떨림이 아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동이었다.


쩌적. 쩌적.

곧이어 장성한 고목을 대지에서 뜯어내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 ‘오벨의 눈’이 ‘절대 망루’의 구속에서 해방되었습니다. 》


안내문과 동시에, 큼직한 두 눈이 서서히 크기를 줄이며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홀린 듯 두 손을 들어 눈을 받아들었다.


《 ‘오벨의 눈’은 인벤토리 보관이 불가합니다. 》

《 ‘오벨의 눈’은 인벤토리 보관이 불가합니다. 》


······?


하지만 어떤 깨달음이 곧장 내 머릿속을 강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가방을 열어!”

나는 고블린을 향해 돌아서며 소리쳤다.


고블린은 빠릿빠릿하게 가방의 입구를 열었다.


나는 그 안으로 재빠르게 두 손을 넣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속으로 ‘오벨의 눈’이 매끄럽게 흘러들어갔다.


《 ‘여행자의 업적’ 두 번째 퀘스트, ‘세계를 응시하는 두 눈’ 퀘스트를 완수하였습니다! 》

《 ‘오벨의 눈’과 100,000G를 획득하였습니다! 》

《 경험치가 누적되어 전체 LV. 208로 레벨 업 합니다! 》

《 모든 능력치 포인트가 +5 상승합니다! 》

《 경험치가 누적되어 ‘이졸데의 속삭임’이 LV.21로 레벨 업 합니다! 》


오벨의 눈이 가방 안에 담기자마자, 안내문이 우르르 쏟아졌다.

확실히 연금술사 놈들이 주던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풍성한 수확이었다.


그리고 어림짐작 했던 내 추측 역시 맞아떨어졌다.

망루를 오르기에 앞서 나는 내 옆의 고블린과 함께 꼭대기에 가야할 것만 같은 예감에 휩싸였었다. 퀘스트의 정확한 내용이 다시금 떠올랐었기 때문이다.


‘절대 망루’에서 ‘오벨의 눈’을 훔치십시오, 라고 했던 게 기억이 났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블린이 ‘클라우스의 가방’에 대해 했던 설명은 내게 확신을 실어 주었다. 한낱 몬스터에게 진짜 도적의 길을 안내해준 아이템. 그 정도 아이템이라면, ‘오벨의 눈’이라는 전설 속의 상징물을 담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구구구구궁-


그때였다.

갑자기 무언가 거대한 것이 무너지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렸다.


기이이이익-

그와 동시에 망루가 느리게 기울기 시작했다.


‘저어··· 기사님? 망루가 조금 이상한데요?’

고블린이 겁먹은 얼굴을 하고 내 로브를 붙잡았다.

나는 기울어진 지면에 중심을 잡고 섰다.


《 테르의 세계에 첫 번째 균열이 생성되었습니다! 》

《 ‘절대 망루’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


“아아···. 어떡하죠. 기사님.”

고블린은 결국 입 밖으로 울먹이는 소리를 냈다.


하여간, 정말이지 친절한 안내문이군.

어쩐지 일이 너무 일사천리로 풀려간다 했다.


나는 기우뚱하게 버티고 선채로, 망루 너머를 내다보았다.

망망한 대지가 드넓게 펼쳐져있는 게 보였다.

족히 200미터는 될 높이였다.


아무리 판타지 세계라지만··· 여기서 곧장 떨어지면 즉사할 지도 모른다.


기이이이이익-


상황 판단을 하며 망설이는 동안, 망루의 꼭대기는 더 가파르게 기울기 시작했다.

담도, 기둥도 없는 꼭대기였다.

나는 고블린의 몸을 들쳐 메고, 지면이 더 높은 쪽을 향해 달려갔다.

그나마 몸을 가눌 수 있을 때, 붙잡을 것을 잡아야했다.


쾅, 쾅, 쾅, 쾅.

나도 모르게 무겁게 힘을 실어 내달렸다.

그 사이 망루의 꼭대기는 더 기울어 거의 지면이 대각선 형태에 가까웠다.

이 상태로 바로 무너지지 않은 게 다행일 뿐이다.


나는 꼭대기 땅의 가장 끝머리까지 뛰어서, 그 테두리를 손으로 붙잡았다.

고블린도 날 따라 붙잡고 매달렸다.


기이이이이익-


망루는 다시 한 번 기울었고···

꼭대기의 지면은 거의 수직이 되었다.

발아래 아득한 허공이 보였다.


쾅! 콰쾅! 쾅!

꼭대기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서지는 망루의 벽돌들이···

우리의 어두운 미래를 암시하고 있었다.


“기사님. 우리··· 여기서 죽는 건 아니겠죠?”

고블린은 이제 겁에 질리다 못해, 완전히 사색이 되어있었다.


이를 어쩐다.

나는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떨어질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지 찾기 위해, 발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발 디딜 구석 하나 없는 망연한 허공뿐이었다.


기이이이익-

그 사이 망루는 더욱 기울었고,


“으아아···.”

고블린은 옆에서 신음을 흘리며, 거의 혼절할 것만 같은 얼굴이 되었다.


그때였다.


“아저씨!”

우리가 매달린 자리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팔에 더욱 힘을 주어, 몸을 위로 끌어올렸다.

불끈 솟은 힘에 터질 것만 같은 감각이 내 팔뚝에 휘감겨 들어왔다.


곧이어 테두리 밖으로 내 머리가 솟아올랐고,

눈앞에 보인 것은···


거대한 독수리 위에 올라탄 채, 하늘 위에 떠올라 있는 마법사 비에르카였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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