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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했던 쓰레기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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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실험쥐
작품등록일 :
2020.12.28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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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31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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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트라우마 (2)

DUMMY

11. 트라우마 (2)


우리는 미리나를 따라 요정 숲의 깊은 곳으로 향했다.


커다란 잎사귀를 가진 나무들이 여기저기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자 숲은 낮임에도 불구하고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나는 눈물을 닦아낸 채 유라의 뒤를 따라 천천히 미리나를 쫓아갔다.


사실, 이렇게 울어보니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그래도 후련하다고 해야할까. 가슴 속의 응어리가 아주 조금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여기야.”


미리나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한 뼘 너머에 있는 언덕을 가리켰다. 언덕 위에는 은빛의 관이 갓 태어난 꽃들 사이에 파묻혀있었다.


“이게, 소생의 관인가요?”


유라가 소생의 관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성인 남성의 두 배에 가까운 크기, 무게만 따져도 100kg는 넘을 거 같은 두께의 관.


게임에서는 항상 인벤토리에 넣고 다녔기에 크기를 잘 가늠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보니 역시 크긴 크다는 것이 실감났다.


“꽤 무겁겠는데.”


카리나가 소생의 관을 손등으로 톡톡치며 소리를 냈다. 그러자 알 수 없는 금속음이 텅텅거리며 울려 퍼졌다.


이것으로 시니아를 부활시킬 수 있었다.

눈앞으로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 = = = = = = = = = = = = = = = =

소생의 관 #전설급

-죽음에서 일어나고, 생명을 다시 불어넣어주는 엘프들의 특별한 관입니다.

단, 망자의 저주가 부활한 자의 정신을 갉아먹을 수 있습니다.

= = = = = = = = = = = = = = = = =


망자의 저주, 플레이어는 따지고보면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속하지 않는 저주였다.

그러나 평범한 인간들을 소생의 관으로 부활시켰다가는 저승의 기억이 사람을 갉아먹으며 미쳐버리는 경우가 흔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로 죽고 싶지 않아 미쳐버린다나.


“바로 가져가도 되는 건가?”


미리나를 향해 묻자 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곧바로 인벤토리를 열어 큼직한 소생의 관을 집어넣었다.


“우와, 이게 다 들어가네요.”

“시스템의 힘이죠.”


소생의 관이 사라지자, 근처에 피어있던 꽃들이 점차 힘을 잃고 시들어갔다.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강력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었다.


“고맙다.”


미리나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보냈다. 그런 나를 향해 미리나는 피식 웃어 보일 뿐이었다.


*


“오, 드디어 그걸 가져왔구나.”


폴리에스의 등에서 시니아의 관을 내린 우리는 조심스럽게 관을 열고 시니아를 들여다보았다.


시니아의 시체는 그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우리는 차갑게 식은 그녀의 유체를 천천히 들어올려 소생의 관에 집어넣었다.


“저, 부활까지 시간이 얼마나 필요하죠?”


“6개월이요.”

“네에?”


놀란 유라가 벌어진 입을 가리며 소리쳤다.

소생의 관은 부활에 제한이 없는 대신 부활에 걸리는 시간이 꽤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에서도 6개월을 어떻게든 버텨야지만 캐릭터들을 부활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원래라면 말이다.


“우리는 이제 마법도시 엘레네르로 갈 겁니다.”


엘레네르에서 아이템을 하나 구해온다면 소생의 관의 디메리트를 순식간에 없앨 수 있었다.


바로 ‘가속의 버튼’이었다.


원래는 플레이어의 민첩성을 수십 배 늘려주는 특수한 아이템이었지만, 그걸 묘목에게 사용할 경우 곧바로 나무가 되고, 시체에 사용하면 바로 썩어버렸다.


마찬가지로 이것을 소생의 관에 사용한다면, 시니아의 부활 시간을 일주일로 줄일 수 있었다.


“아직 갈 길이 멀었네요.”


유라가 짧게 한숨을 쉬곤 소생의 관을 바라봤다.

소생의 관을 폴리에스가 머무는 공간 깊숙이 넣어두고는 엘레네르로 이동할 채비를 하였다.


유라와 함께 폴리에스에 올라탄 찰나, 미리나와 카리나가 우리를 반겼다.


“뭐해. 빨리 말해.”


“으으···”


카리나는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나를 바라봤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미리나가 카리나의 등을 밀어냈다.


“아앗! 미리나! 제발!”


“뭐해? 빨리 말하라니까.”


“우으으···”


꼼지락꼼지락, 새빨개진 얼굴로 주저하듯 나와 미리나를 번갈아 바라보는 카리나.


카리나는 결심을 한 듯 표정을 고치고는 나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나도 같이 갈래!”


“안 돼.”


“에···”


미리나가 머리를 긁적였다. 카리나는 울 거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카리나에게는 미안하지만 카리나는 우리 일행의 전력이 되기 적합하지 않았다.

일단 플레이어가 아니라 NPC라는 점에서 그다지 달가운 느낌도 들지 않았고, 무엇보다 나는 카리나의 게임 속 성능을 잘 알고 있었다.


카리나는 활 밖에 못 쏘는 바보다. 나중에 여러 사건을 겪으며 각성을 하게 된다면 조금 다르긴 하겠지만, 그렇게까지 오랜 시간을 같이 다닐 만큼 가성비가 좋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나 하나 지키기도 벅찬 상황인데 카리나가 있으면 계속 카리나를 보조해줘야했다.


전투에 있어서 메리트보다 디메리트가 더 크다는 의미였다.


그런고로 카리나를 일행에 합류시키는 것은 그다지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미리나라면 모를까.


“제발 가게 해줘! 나 활 잘 쏜단 말이야!”


“으음···”


미리나는 카리나를 보며 짧게 한숨을 쉬더니 카리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에게 말했다.


“이왕이면 그냥 같이 가는 게 어때? 나도 같이 가려고 하는데.”


응? 미리나가 일행으로 합류한다고? 그건 의외였다. 미리나를 영입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미리나를 감옥에서 구출하고 꿈의 숲까지 클리어한 것이 좋은 영향으로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뭐, 전쟁도 당분간은 없어 보이고. 무엇보다 너희가 어떤 짓을 벌일지 기대가 되거든.”


미리나는 그렇게 말하며 폴리에스의 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미리나가 폴리에스를 만져주자 폴리에스는 기분이 좋은 듯 꼬리를 살살 흔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카리나가 그런 미리나의 뒤를 따라 나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올라탔다.


“······”


“뭐? 왜! 갈거야!”


“알았어.”


한숨을 한 번 내쉬자, 폴리에스가 힘껏 날개를 펼쳤다. 하늘 위로 바람을 가르며 날아든 우리는 마법도시 엘레네르를 향해 힘차게 나아갔다.


*****


마법도시 엘레네르, 제 3 스테이지에서 가장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는 곳.


신비한 아이템들이 가득한 곳이기에 원래라면 그곳에서 여러 퀘스트를 깰 생각이었지만, 시니아를 구하기 위해선 생략할 필요가 있었다.


“여기 냄새가 심해.”

엘레네르에 가까워지자 폴리에스가 표정을 찡그렸다.

여러 약품 냄새가 공기 중으로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현실로 따지면 공장이 천지에 있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폴리에스는 엘레네르의 건너편 골짜기에 도착하자 날개를 접고 내려왔다. 땅에 발이 닿자마자 졸린 듯이 몸을 웅크리는 폴리에스.


“난 그럼 잘게.”


그런 폴리에스를 내버려두고 우리는 엘레네르로 향했다.


“건물들이 진짜 예뻐요,”


유라가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감탄을 자아냈다. 엘레네르는 예술적인 감각이 뛰어난 도시였다. 예술과 공업이 한곳에 모인 그곳은 언제나 젊은 예술가들로 가득했다.


“사람이 진짜 많네. 여기, 나 있어도 괜찮은 거 맞아?”


“괜찮아. 여긴 중립지역이니까.”


엘레네르는 제 3 스테이지에서 몇 없는 다종족들을 위한 곳이기도 했다. 주변을 둘러봐도 다양한 종족들이 서로 대화를 하며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선 방부터 잡을까요.”


우리는 화려한 색채가 가득한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방을 잡고 식사를 하기 위해 나오자, 드워프 하나가 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 아름다운 여인분.”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워프의 손에는 거대한 스케치북 하나가 들려있었다.

그것을 보자마자 드워프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엘레네르의 떠돌이 화가, 루넹이었다.


“저요?”


나는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당신. 너무 아름다워서 눈이 부셔올 지경이에요. 혹시 시간이 괜찮다면 스케치를 해드려도 괜찮을까요?”


루넹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것만 봤을 때는 그냥 평범한 화가가 아닌가 싶었지만, 루넹은 바가지 씌우기를 좋아하는 못난이 화가이기도 했다.


그리고, 가속의 버튼을 얻기 위한 첫 번째 과정이기도 했고 말이다.


“제가요?”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루넹을 바라봤다. 루넹은 호구를 잡은 듯이 튀어나올 거 같은 미소를 감추며 스케치북을 펼쳤다.


그리곤 말도 하지 않고 쓱쓱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루넹.


나는 조용히 루넹에게서 벗어나려는 시늉을 했지만, 루넹은 그런 나의 뒤를 졸졸 따라오며 열심히 그림을 그릴 뿐이었다.


“저, 돈 없는데요.”


“괜찮습니다! 그쪽이 정말 아름다워서 그런 거니까요.”


그러는 사이 여관에서 나온 유라와 카리나가 멍하니 그런 루넹을 바라봤다.


나에게 말을 걸려는 유라와 카리나를 눈빛으로 물러내고 루넹을 향해 어리바리한 표정을 지었다.


“다 그렸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루넹은 자신이 그린 그림을 나에게 보여주며 씩하고 웃어보였다.


스케치북 안에는 사람인지 너구리인지 알 수 없는 기괴한 생김새의 무언가가 그려져 있었다.


“이게, 저라고요?”


“네! 저만의 화법으로 표현해보았습니다. 어떤가요?”


“······”


게임 속에서도 몇 번이나 경험한 루넹의 그림이었지만 실제로 나의 얼굴을 그린다는 느낌이 드니 뭔가 기분이 나빴다.


“와, 진짜 못그렸다.”


나의 뒤를 졸졸 따라오던 카리나가 웃음을 숨기며 소리쳤다.


이에 루넹이 귀를 쫑긋 세우곤 카리나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만하죠. 엘프들은 이런 미술 감각이 없으니까요.”


“뭐, 뭣!”


고개를 젓는 루넹. 이를 바라본 카리나가 화가 난 듯 눈썹을 찡그렸다.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떠오르는 단어가 없는 거 같았다.


저저, 거리기만 할 뿐 제대로 된 단어를 사용하지 못해하는 카리나를 바라보며 루넹은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그래서, 아름다운 분. 어떤가요?”


스케치를 들고 나를 향해 묻는 루넹. 나는 할 말을 잃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쁘네요.”


“그렇죠?”


참고로 예쁘다고 하면 루넹은 플레이어가 가지고 있는 돈의 일부를 퍼센트 단위로 떼서 달라고 요청한다.

그걸 거절할 경우 루넹과 전투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지금의 경우에는 루넹에게 돈을 주는 게 맞았다.


“그럼 이 그림, 가지시겠어요? 단돈 525골드에 드리겠습니다.”


“에엑? 525골드나요?”


카리나의 옆에서 조용히 나를 지켜보던 유라가 금액에 놀라 입을 벌렸다.


확실히 그림 한 장으로 따지기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주고 싶지 않았지만, 다음 퀘스트를 받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절차였다.


나는 아까운 듯한 표정으로 인벤토리에서 백금화 5장을 꺼냈다. 손을 덜덜 떨며 루넹에게 금화를 건네자, 루넹은 씩 웃으며 금화를 받고는 나에게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소중한 후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저희 루넹 재단을 애용해주시길.”


“그 전에.”


“네?”


“라비안을 만나고 싶습니다.”


나는 호구 같던 표정을 감추고 미소를 지으며 루넹을 바라봤다.


“라비안을요?”


루넹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진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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