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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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588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2.05.04 01:42
조회
95
추천
1
글자
7쪽

제 4 부 개화(開花) (93)

DUMMY

이랑의 일섬이

자신의 인중을 노리고

찔러 들어오자,


구대성은

뒤로 한 발 가볍게 물러났다가

바로 앞을 향해

두 발 정도 재빨리 뛰어

순간적으로 거리를 좁혔다.


그와 동시에

구대성의 오른손이 쭉 뻗어나가면서,

이랑의 가슴팍을 향해

벽오의 칼날이 매섭게 날아갔다.




억,


순간 너무 놀란 이랑이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내질렀다.


공격을 마친 자신은

삼랑의 옆으로 재빨리 빠져나가

다음 공격을 준비해야할

순서였던 것이다.


본래대로라면,

삼랑이 자신의 앞으로 나아가

적의 무릎이나 어깨, 목 같은 곳을 향해

월참을 휘두르고 있어야 할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순간적으로 간격을 좁혀

지금 자신의 앞으로

훌쩍 뛰어 들어온 저 자가,


정권을 지르듯 칼로

자신의 명치를 노리고 있지 않은가.




갑작스런 구대성의 간격변화와 함께

곧바로 치고 들어온 엇갈린 찌르기에

이랑이 위험해지자,


삼랑이 둘 사이로 재빨리 뛰어들어

공격이 아닌 방어를 위해

월참을 휘둘러 구대성의 칼을 쳐냈다.


삼랑의 빠른 대처 덕에

이랑의 명치는 무사했으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구대성의 왼쪽 주먹이

그야말로 벼락처럼

삼랑의 턱을 향해 날아왔다.


이랑의 치명상을

막아야한다는 것에만 신경을 쓰느라

구대성의 손에 들린 칼을 쳐내는 것에

모든 것을 집중했던 삼랑은,


사각에서 날아온 구대성의 주먹을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었다.




뻑,


아주 둔탁한 타격음이 울렸고,

구대성의 주먹에 맞은

삼랑의 턱이 크게 돌아갔다.


치명적인 급소인 턱을

제대로 가격당한

삼랑의 두 다리가

순간적으로 확 풀리며

몸 전체가 마구 후들거렸다.


뇌에 충격을 받아

평형감각을 잃은 삼랑을 향해,


대비할 틈을 주지 않고 곧바로,

벽오의 시커먼 칼날이 날아갔다.


삼랑은 순간,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피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때,

삼랑의 뒷덜미를

이랑이 확 끌어당겼고,


벽오의 칼날은

실로 아슬아슬하게

삼랑의 목젖 부근을 스치며

아깝게 빗나갔다.




"네놈들...오늘 운이 좋구나."


뒤로 한참을 물러나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호흡을 가다듬는 둘을 향해,


구대성이 가볍게 한 마디를 던지며

적들의 신경을 긁어내듯

은근히 도발했다.


이랑에게 처음 날린 공격은

허수에 변초(變招),


삼랑에게 날린 공격이

정석이자 살초였다.


처음부터 구대성의 목표는

이랑이 아닌 삼랑이었고,


빈틈을 노려 치고 들어간

회심의 일격으로

거의 성공할 뻔 했었으나,


간발의 차로

삼랑의 목숨을 거두지 못했다.


무척이나 아쉬운 듯

입맛을 다진 구대성이

달빛을 등지고 서서


다시금 자신의 애도를

천천히 들어 올려

공격의 자세를 잡았다.


다른 칼과는 확연히 다른,

벽오의 칼날이

달빛을 받아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구대성의 애도인 벽오(劈烏)는,


시커먼 칼날의 색이

매우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창포검으로


코등이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특색이었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검의 손잡이 부분과

같은 재질의 나무로 만든 칼집에

칼날을 숨겨,

어딜 가든 항시 들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구대성의 벽오는

칼집에서 칼을 뽑기 전까지


이것이 도대체

칼인지 봉인지 지팡이인지

육안으로는 도통 구분이 가지 않는

특이한 모양의 검이었다.




사실 구대성의 특기이자

가장 무서운 공격법은

흑호와 비슷한 암살검이었다.


나무로 만든 손잡이에

코등이마저 없는 그의 벽오는,


빛이 없는 어두운 곳에서

최고의 위력을 발휘하는 칼이었다.


암흑 속에서 빠르게 날아오는

벽오의 시커먼 칼날은

일단 잘 보이지가 않았고,


눈이 제법 좋은 고수들도

구대성이

주먹질이나 발차기를

찌르기나 베기 사이에 섞어 넣은

'변초'로 공격하면

대부분 당해내질 못했다.


그래서

밤이라는 특화된 무대에서

구대성과 상대한 적들은,


마치 사각에서 튀어나오는 듯이

잘 보이질 않는 그 시커먼 칼날에

상당히 애를 먹다가

결국 수세에 몰려

패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듯 구대성의 가장 큰 강점은

변화가 자유로운 초식에 있었다.


검법이나 권술에 있어 그의 초식들은,


'정석'이라는

얽매인 틀을 아예 가지고 있지 않은,


타고난 감각에 의지해 그 상황에 맞춘

즉각적인 살법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 구대성의 싸움은,

화려하거나 웅장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효율적이고 간결했으며,

임기응변에도 매우 강했다.


구대성의 무술이

그런 방향으로 진화한 것은 아마도,


한용덕처럼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무술을 배운 것이 아니라,


거리를 떠돌며 수많은 실전을 통해

마치 본능처럼 몸에 익힌

싸움법이었기 때문이리라.




지금 이 순간에도

흑호가 자신의 상대로

한용덕을 먼저 선택한 것은,


이런 구대성의 싸움법이

자신의 싸움법과

공통점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한용덕이든 구대성이든

누가 더 우위라고 말할 수 없이

둘 다 상대하기 어려운

고수들인 것은 분명하지만,


흑호의 입장에서

싸울 상대를 굳이 골라야 한다면,


자신과 비슷한 느낌의 구대성보다는

무(武)의 뿌리부터

철저하게 다른 한용덕이


그나마 상대하기 덜 까다로울 것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밤의 크고 밝은 달이,


구대성과 흑호 둘 모두에게

큰 불리함을 던져주고 말았다.


벽오의 시커먼 칼날은

달빛을 받아 반짝이며

그 독특한 형태가

유난히 도드라져보였고,


비차의 검은 가죽 끈과 쇠로 된 추는

환한 달빛 아래에서

그 속도와 궤적을 숨길 수가 없었다.


이렇듯

자신의 특기를 살릴 수가 없는

큰 불리함을 안았지만,


어쨌든 한 번 큰 승기를 잡은 구대성도,


흑호처럼 신중하게

간격을 적절히 유지하며,


자신을 노리는 두 명의 살수들과

긴장감 가득한 두 번째 충돌을

차분히 준비했다.




차가운 밤바람이

사내들의 온몸을 둘러싼 예리한 살기를

가볍게 훑고 지나갔다.


양쪽 모두의

호흡을 가다듬는 숨소리가

서서히 안정되어가며

작아지고 있었다.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밤하늘을 가득 메운

커더란 보름달은

그저 평안하게

세상을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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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제 4 부 개화(開花) (115) 22.07.06 84 1 13쪽
220 제 4 부 개화(開花) (114) +1 22.07.04 61 1 10쪽
219 제 4 부 개화(開花) (113) 22.07.01 61 1 11쪽
218 제 4 부 개화(開花) (112) 22.06.29 57 1 15쪽
217 제 4 부 개화(開花) (111) 22.06.27 66 1 13쪽
216 제 4 부 개화(開花) (110) 22.06.14 70 1 14쪽
215 제 4 부 개화(開花) (109) 22.06.10 70 1 9쪽
214 제 4 부 개화(開花) (108) 22.06.08 68 1 10쪽
213 제 4 부 개화(開花) (107) 22.06.06 81 1 11쪽
212 제 4 부 개화(開花) (106) 22.06.03 85 1 9쪽
211 제 4 부 개화(開花) (105) 22.06.01 74 1 7쪽
210 제 4 부 개화(開花) (104) 22.05.30 67 1 8쪽
209 제 4 부 개화(開花) (103) +1 22.05.27 89 1 7쪽
208 제 4 부 개화(開花) (102) 22.05.25 69 1 7쪽
207 제 4 부 개화(開花) (101) 22.05.23 74 1 7쪽
206 제 4 부 개화(開花) (100) 22.05.20 76 1 13쪽
205 제 4 부 개화(開花) (99) 22.05.18 69 1 7쪽
204 제 4 부 개화(開花) (98) 22.05.16 68 0 7쪽
203 제 4 부 개화(開花) (97) 22.05.13 70 1 8쪽
202 제 4 부 개화(開花) (96) 22.05.11 88 1 6쪽
201 제 4 부 개화(開花) (95) 22.05.09 90 1 6쪽
200 제 4 부 개화(開花) (94) 22.05.06 91 1 9쪽
» 제 4 부 개화(開花) (93) 22.05.04 96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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