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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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씨
작품등록일 :
2020.12.29 19:26
최근연재일 :
2021.02.05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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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5,498

작성
20.12.30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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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8쪽

의문의 프로젝트(2)

DUMMY

“어떤 프로젝트인가요?”


스텔라의 물음에 부사장이 답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간단하고 단순하지만, 어려울 수도 있어요.”


“정말 기대되네요.”


“기대에 부흥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여러분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은 이 분에 대해서 알아봐주시는 거예요.”


부사장은 테이블에 놓인 파일철을 펼쳤다. 파일에는 중년의 대머리 사내의 사진과 이름, 생년월일이 적혀 있었다.


“이 사람은.”


곽가는 사진 속 사내를 가리켰다.


“왜요, 아시는 분인가요?”


“민머리이시군요. 대머리형 민머리. 민머리 중에는 대머리형 민머리와 독수리형 민머리가 있는데, 앞머리가 빠져서 자연스럽게 완성된 대머리형 민머리에요.”


“탈모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가요?”


“그럼요, 전 탈모가 찾아오지 않았지만 삼십 대 남성이라면 누구든 탈모에 관심을 갖기 마련이죠. 모두가 잠재적인 탈모환자거든요.”


“곽가씨는 참 웃겨요.”


부사장이 웃었다.


“하하,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 분은 누구이신가요?”


곽가의 물음에 부사장은 짧게 답했다.


“우리 오빠예요.”


“오빠요?”


“네. 돌아가신.”


“아, 아. 하하. 그렇군요.”


곽가는 마른 침을 삼켰다.


장호치는 점심을 먹지 않아서 졸음이 밀려왔다.

계속되는 대화들이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여겨졌는데,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이럴 때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을 연상하는 습관이 있었다.

오빠. 사장. 사망. 탈모. 민머리. 대머리. 독수리 그리고 꿈과 희망.

눈이 감기자 힘을 줘서 다시 떴다.


“여러분들은 이 분에 대해 알아봐주셔야 해요.

음, 그러니까 이 분이 어디서 태어났고 어떤 학교를 졸업하고, 어떤 일을 했는지부터 시작해서 사소한 것 하나까지 일대기처럼 최대한 자세하게 정리해서 주시는 게 프로젝트의 핵심이에요.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게 여러분이 해야 할 일입니다.”


“저,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곽가가 손을 들고 말했다.


“네, 해보세요.”


“이건 부사장님의 개인적인 일 아닌가요.”


“곽가씨.”


“네.”


“여러분의 일이 곧 내 일이고, 내 일이 곧 우리 조직의 일 아니겠어요?”


“맞습니다.”


스텔라는 가지고온 형광펜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쓰기 시작했다.

장호치는 형광펜의 삑삑거리는 소리 때문에 눈이 번쩍 떠졌다.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질 수 없는 소리였다.


“이분이 제 오빠이기는 하지만,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내가 어렸을 때 헤어졌다고 해요. 얼굴, 이름, 나이가 아는 것의 전부이니 여러분이 잘 알아봐주세요.”


“네. 언제까지 조사하면 될까요?”


곽가가 등을 약간 굽히고 물었다.


“기한은 정해드리지 않을게요. 최선을 다해서 임해주세요. 여러분들 셋이 힘을 합쳐서 멋진 결과를 도출해냈으면 하는 것이 제 개인적이 바람입니다. 부디 여러분이 이 프로젝트로 하여금 우리 조직에 도움이 되는 동시에 한층 성장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넵, 알겠습니다.”


스텔라가 힘차게 답했다.

그녀의 다이어리에는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밝은 형광색 메모들이 적혀있었다.

장호치는 그녀가 다시는 형광펜을 사용하지 않도록 감춰버리고 싶었다.


“오늘부터 바로 프로젝트를 진행해주세요. 궁금하거나 문의할 사항이 있으면 언제든 저를 찾아주시고요.”


“네.”


장호치도 네, 라고 말했지만 워낙 목소리가 작아서 부사장에게는 말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었다.


“그럼 다들 수고해주시고, 스텔라씨만 잠시 남아주세요.”


“저요?”


스텔라의 눈이 동그래졌다. 부사장은 미소로 답했다.


“알겠습니다.”


스텔라는 형광메모가 적힌 다이어리를 접고 펜을 끼었다.

그리고 뭘 해야할 지 모르겠다는 듯이 어딘가에도 시선을 고정하지 못한 채 앉아있었다.

그런 그녀를 뒤로 하고 곽가와 장호치는 차례로 일어나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이거, 똥 닦는 거 아니야?”


곽가는 자리에 앉자마자 말했다.

그러고서는 핸드폰을 켜 다시 지옥으로 들어갔다.


“똥을 닦는다니요? 누구 똥을 닦아요?”


“누구긴 누구야. 부사장이지.”


“무슨 말인가요.”


“별 시덥지도 않은 일을 시키는 거 봐. 어차피 월급은 부사장이 주는 게 아니라, 조직이 주는 거니까 할 일 없는 우리를 쓸모없는 일로 굴리는 거지.”


장호치는 곽가가 하는 핸드폰 게임을 구경했다.

그는 아직 자신이 모르는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에 비해 곽가는 아는 것이 많았다. 단지 그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텔라씨를 왜 남게 했을까.”


“그러게요.”


“의심할 필요가 있어.”


장호치가 늘 난처해지는 순간은 대화 도중 딱히 할 말이 없어질 때였는데, 이 회사에 들어온 뒤로는 익숙해지기로 노력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특별히 말을 더 하려 하지 않았다.

곧이어 스텔라가 집무실에서 나왔다.

그녀는 가슴팍에 형광펜이 꽂힌 다이어리와 파일철을 품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녀가 앉기도 전에 곽가는 물었다.


“무슨 얘기를 했지?”


“이걸 주셨어요.”


“뭐야?”


스텔라는 흰색 약통을 들어 보였다.


“붉은기가 도는 피부트러블을 완화시켜주는 약이래요. 하루에 한 알씩 먹으라고 하시네요. 이 상태로 그대로 두면 트러블이 심해져서 좁쌀여드름이 심하게 올라오거나, 가려움증에 시달릴 수도 있다고 하셨거든요. 미연에 대처를 해야 한다고 해요.”


“오.”


“그리고.”


스텔라가 자리에 앉아서 말을 이었다.


“앞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인 활동을 해도 좋다고 하셨어요. 경비는 영수증 처리 하라고 하셨고요.”


곽가는 그 말은 가만히 앉아있지 말고 직접 발품 팔아서 조사하라는 뜻으로 이해해도 되냐고 물었다.


“아마도요.”


스텔라는 집무실 문이 닫혀있는지 확인했다.


“알겠어.”


“우리, 잠깐 모여 볼까요.”


“좋아.”


가운데 자리에 앉은 장호치는 그들을 위해 의자를 조금 뒤로 뺄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는 스텔라가 행여나 다이어리를 열어 다시 형광펜으로 글을 쓰지 않을까 걱정했다.

만일 그녀가 형광펜을 사용한다면 이번만은 일반 볼펜으로 작성해달라고 용기내어 말할 생각이었다.


“일대기이니까 일단 체계적으로 이 사람의 처음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 같은데.”


곽가의 의견이었다.


“찬성이에요.”


스텔라는 파일 철을 펼쳐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분의 고향은···, 궁륭출신이네요.”


“궁륭이라면 어디야?”


“도시는 아닌 것 같네요.”


“경비를 지원해준다는 이유가 다 있었군. 설마 거길 가보자는 건 아니지?”


“당연히 가야죠.”


“가서 뭐하지?”


“이 분에 대해 알아내야죠.”


“이봐.”


곽가는 답답한 듯 고개를 저었다.


“세월이 흘렀어. 많은 게 변했다고. 지금은 오락실에 가지 않아도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복권집을 가지 않아도 복권을 살 수 있는 시대라고.”


“이분은 여기서 태어나서 유년시절을 보냈어요. 아무리 시간이 많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시골은 대부분 평생을 같은 장소에서 보내시는 분들이 많아요. 분명히 정보를 얻어낼 수 있을 거라고 봐요. 이분을 아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그리고 우리에게는 손쉽게 채집할 수 있는 객관적인 정보 뿐 만이 아니라 주관적인 정보도 필요해요.”


“호치씨는 어떻게 생각해?”


두 사람 모두 장호치를 쳐다봤다.


작가의말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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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아무개 - 위키 21.02.01 12 0 10쪽
34 사라진 시신(2) 21.01.31 9 0 4쪽
33 사라진 시신 21.01.30 13 0 8쪽
32 사람들이 모여드는 양배추 농장 21.01.29 12 1 8쪽
31 감바의 쓰레기처리장 21.01.28 12 1 7쪽
30 무채색의 영원한 여름 21.01.27 12 0 7쪽
29 내 사랑, 당신에게 21.01.26 19 0 9쪽
28 그녀의 편지 21.01.25 13 0 8쪽
27 애송이 21.01.24 14 0 7쪽
26 프로젝트 재개 21.01.23 17 0 7쪽
25 회식(2) 21.01.22 15 0 8쪽
24 회식(1) 21.01.21 14 0 7쪽
23 장호치의 우주 21.01.20 11 0 7쪽
22 출소 후의 삶 21.01.19 12 0 7쪽
21 소란을 향하여 21.01.18 12 0 10쪽
20 밝혀지는 그의 유년시절 21.01.17 13 0 9쪽
19 누나를 찾아서 21.01.16 15 0 7쪽
18 프로젝트 중단 21.01.15 12 0 9쪽
17 노인과의 재회(2) 21.01.14 11 0 7쪽
16 노인과의 재회 21.01.13 9 0 8쪽
15 중간보고 21.01.12 12 0 9쪽
14 접촉(4) 21.01.11 13 0 7쪽
13 접촉(3) 21.01.10 12 0 7쪽
12 접촉(2) 21.01.09 28 0 8쪽
11 접촉 21.01.08 14 0 8쪽
10 중간 회의 21.01.07 19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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