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장 Vitadream
2109년 12월 12일
젠장.
졸려 죽을 것 같다.
정말 문장 그대로 자지 못한다면 나는 아마 죽을 것이다. 아주 희귀하기는 하지만 수면 장애 유전병 때문에 일이 년 가까이 잠들지 못하고 죽는 사람도 있다는 기사를 읽은 것 같다. 뭐 그건 최소한 일 년이니 내가 엄살을 부리는 건가?
지금은 그냥 며칠 동안 정말 잠만 자보고 싶다. 바이타드림(Vitadream) 안에 무슨 성분이라고 했더라. 그게 있으면 정말 꿀 같은 잠에 들겠지? 아니다, 지금은 그게 없어도 기절하듯 잠이 들겠지. 그게 뭐였는지 이름조차 기억이 나질 않는다. 멜라토닌이라도 한 사발 들이켜고 싶다. 누가 멜라토닌은 수면 보조제가 아니라 수면에 필요한 신호를 전달하는 호르몬일 뿐이라고 했던 것 같지만. 어쨌든 잠이 정말 필요해 죽어버릴 것 같다. 내가 오늘부터 죽기 전까지 자게 될 잠의 조금만이라도 미리 빌려서 자고 싶을 지경이다. 아니, 그냥 이런 생각 자체를 하고 싶지 않고 내 안의 목소리를 음소거 하고 싶다. 제발. 음소거 하고 싶다는 이 생각도 음소거······.
“준, 면회다. 나와!”
면회? 누가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발 내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샘이야? 아니면 메이슨인가?
닫혀 있던 문이 열린다. 길은 하나라서 쭉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넘어질 듯 말 듯 신체 균형을 컨트롤하기 쉽지가 않지만 온 힘을 다해 균형을 맞추며 발걸음을 앞으로 옮긴다. 누가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선택의 여지 같은 건 없다. 일단 가봐야 한다. 먼발치에 사람이 테이블 앞에 앉아 있는 게 보인다. 테이블 위에는 뭔가 놓여 있다. 어디선가 많이 봤던 포장지다. 내 머릿속이 왜 이렇게 이틀 만에 쓰레기통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안을 뒤져 저 포장지에 담겨 있는 게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초콜릿이 아니라 바이타드림이라는 사실을 가까스로 기억해 낸다. 그 앞에는 네이비색 정장을 멋스럽게 갖춰 입은 남자가 나를 보고 웃고 있다. 50%의 확률을 멋지게 빗나갔군. 메이슨이다. 얼굴 더럽게 좋아 보이네.
“어서 오게, 준. 혈색이 영 좋질 않군그래. 잠을 못 잤나 보지?”
아, 저 악랄한 자식의 미소가 나를 야금야금 파먹는 게 느껴진다. 나는 쓰러지듯이 그의 앞에 주저앉는다. 예전처럼 빈정거리면서 대답할 힘도 없다. 누가 내가 생각하는 걸 대신 말로 해줬으면 좋겠다.
“저번에 얘기했던 것처럼 네가 아주 좋아할 만한 바이타드림을 가져왔어. 딱 네가 내보낸 방송부터 다시 디자인된 버전이지. 어때, 이것 하나만 먹는다면 잠을 자게 해주지. 중독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디-벤조아핀 바이타드림이라고. 벤조아핀을 최대한 적게 넣어서 만들었으니까 말이야. 고작 0.0003%밖에 안 들어 있다고.”
기억났다. 변태 같은 새끼. 자존심 싸움이다. 피곤하다. 젠장. 알 게 뭐람. 그냥 손을 내밀었다. 잠깐만. 내가 뭘 한 거야?
“좋은 선택이야.”
기다렸다는 듯이 메이슨이 일어나 내 손바닥 위에 바이타드림 한 알을 떨어뜨린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입에 가볍게 바이타드림을 털어 넣자 그가 일어서서 점점 다가와 내 얼굴을 가까이 쳐다보고는 미소를 짓더니 탁 소리가 나게 손가락을 튕긴다. 긴장이 풀린 순간 눈이 감김과 동시에 내 이마가 앞으로 고꾸라지며 테이블에 부딪히는 쿵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이내 세상이 새까매지며 어딘가에 있을 내 정신이 깊은 구덩이 속으로 번지점프를 시작한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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