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 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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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alanche
작품등록일 :
2021.01.04 00:32
최근연재일 :
2021.02.2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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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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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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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31

DUMMY

우중충한 하늘에서는 비가 한 두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무언가가 쏟아질 것 같았다.


인영과 진철은 창문 너머로 하늘을 바라봤다. 창문에 빗방울들이 하나 둘씩 묻어 떨어지고 있었다.


좁은 골목들을 타고 들어간 곳, 그곳에는 사람들의 아우성이 들렸다.


창문은 굳게 닫힌 채였고, 쇠창살을 달아둔 곳도 군데군데 보였다.


조수석에서 주소를 살피던 윤창은, 한 골목 앞을 지나갈때 인섭의 어깨를 툭툭 쳤다.


인섭은 그의 신호에 맞춰 차를 천천히 세웠다. 봉고의 오른쪽으로 긴 오르막이 펼쳐져 있었다.


사람 두명이 간신히 지나갈만한 좁은 골목 양 옆으로 집들로 들어가는 입구가 빼곡히 들어차 답답한 느낌을 주었다.


조사반의 인원들은 차에서 내려, 윤창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주소를 대조하며 벽을 짚어 나가던 윤창은, 짙은 갈색의 철문 앞에 섰다. 철문 여기저기에는 녹이 슬어 있었다.


뒤쪽에 서있던 사람들을 둘러본 윤창은 천천히 문을 두드렸다.


속이 빈 철문에서 울리는 텅텅 소리가 고요한 골목길을 울려댔다.


“계십니까?”


안에서 아무런 응답도 들리지 않았다.


윤창은 한번더 문을 두드렸다. 살짝 두드렸는데도, 쇠가 울리는 소리는 골목의 모두를 깨울 기세로 퍼져나갔다.


“반형식 선생님 댁 맞습니까?”


집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윤창은 주먹을 쥔 채로 문을 한번 더 두드리려 했지만, 소득이 없을 것 같았다.


어쩔수 없다는 듯 쩝 소리를 내고 돌아서려던 찰나, 문에서 잠금을 푸는 소리가 들렸다.


굳게 닫혀있던 문이 천천히 열리고, 작게 열린 틈 안에서 사람 머리가 쑥 빠져나왔다.


수염마저도 군데군데 하얗게 새어버린 남성이 고개를 내밀었다.


“누구요...? 나가 반형식인데...”


“아, 선생님... 음... 저희 시청에서 나왔습니다.”


고개를 조금 더 빼 집앞에 있던 사람들을 슥 둘러본 형식은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고개만 절레절레 젓고는 시선을 거뒀다.


“거 너무 늦었소. 가시요.”


그는 다시 문을 닫으려 머리를 쏙 집어넣고는 철문을 잡았다.


“자... 잠시만요 선생님!”


윤창이 손을 불쑥 넣어 문을 잡았다. 형식은 당황한 듯, 윤창의 손과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이런... 문디 싸가지 없는... 이 뭐요 이거!”


“잠깐만... 잠깐만 대화 나누면 안되겠습니까 선생님?”


형식은 윤창의 말에 이를 뿌득 갈았다.


“그렇게 도와달라고 헐때는 눈하나 까딱 안허고 있다가 이제 와서 뭔 대화. 꺼져부러. 너무 늦었응께.”


“선생님, 저희가요... 저희가 선생님 이야기가 꼭 듣고싶어서...”


“그러면 진즉에 왔었어야제. 아덜 뒤져불고 뭐하러 왔당가? 느덜이 약만 빨리 줬어도 이런일은 안생겼을건디. 이제와서. 이제와서 이야기를 듣것다고?”


그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서슬퍼런 날이 선 그의 말은 낮게 깔려있었다. 속에서 터져나오는 울분을 간신히 눌러 담고 있는지, 형식의 말은 느리고 조곤조곤 했지만 짐승이 으르렁거리듯 낮게 깔려 있었다.


“소금 뿌리기 전에 가씨요. 할말 없으니께.”


“선생님!”


쾅. 굳게 닫힌 문은 다시 열리지 않을 것 같았다. 문 너머로 희미하게 저벅거리는 소리가 전해졌다.


“하이씨... 미치겠네...”


윤창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쪼그려 앉았다.


“하고 많은데 중에 여기를 왜 찾아 오셨어요?”


인섭은 문에 눈길을 한번 주며 물었다. 윤창은 그의 말에 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제일 최근에 신청했던 집이에요. 자활급여 받던 아들이 감염되서... 긴급 지원 두번이나 받고 병원 연계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게 한달 반 전이었어요. 그래서 혹시나 해서... 왔는데...”


“아니 거기에 아들 죽었다고는 안써있었어요?”


진철이 어이가 없다는듯 물었다. 윤창은 살짝 고개를 들었다.


“신청서만 모여 있으니까 그런 정보가 하나도 없죠... 하...”


“반씨 아저씨 보러 온깁니까?”


골목 안쪽에서 사람 한명이 슬그머니 걸어나왔다. 남성은 검정색 츄리닝에 삼선 슬리퍼를 신고 있었고, 얼굴에 수염이 덥수룩했다.


“머... 시청에서 나온거 맞지요?”


인영은 그를 보고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네. 감염대응국에서 나왔어요.”


그녀의 말을 들은 남성은 피식 콧방귀를 꼈다.


“하이고... 빨리도 나온다... 참...”


침을 카악 하며 모은 그는 바닥에 큰 가래 덩어리를 뱉었다.


“고마 됐습니다. 인제 와가꼬 뭘 우짜겠다는긴데.”


그는 손가락으로 형식이 사라진 문을 가리켰다.


“감염 대응국이라 캐놓고 대응도 제대로 안해가 사람이 저래 죽어삣는데. 무슨 대응을 한단 말입니까? 돌아가이소.”


그의 말에 인섭은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반박했다.


“선생님, 저희 시청에서 나왔습니다. 지금 막 여기 도착했는데 가라뇨?”


“아니 지원을 해줄끄면 지원만 해주믄 되는기지 뭘 이리 와가 또 뭐, 뭘 할라고예? 머. 어? 머. 조리돌림 하러 온깁니까?”


“조리돌림이라뇨, 그게 무슨말씀입니까?”


인섭의 질문에 남성은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넣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 이라는게 조리돌림이 아니면 뭔데예?”


그의 말에 진철이 천천히 주먹을 말아쥐기 시작했다.


손이 천천히 말리는 걸 본 윤창은, 진철을 살짝 뒤로 밀고는 자신이 앞쪽에 섰다.


“선생님, 저희는 선생님들 상황을 모릅니다. 지금 감염 관련된 조사를 하는 중에 저희는 여길 온거구요.”


“아, 모른다꼬요?”


“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야기를 듣고 싶구요.”


“허... 참...”


남성은 바닥에 침을 퉤 뱉었다. 그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미간은 잔뜩 찌푸리고 있었고, 곁눈질로 네 사람을 흘겨보기만 했다.


“아니, 시청에서 왔음서 그걸 모르면 됩니까? 다 같은 공무원 아입니까?”


“선생님, 시청에 얼마나 과가 많은데요... 각자 하는 일이 다 다르다보니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합니다.”


윤창이 항변하듯 앞에 나서서 이야기 했다.


“아니, 감염 뭐시기라믄서요. 같은 지붕 밑에 있는거 아입니까? 그러면 우예 됐는지 알아야지...”


가슴에 비수가 박혀드는 느낌이 들었다. 윤창은 어금니를 악물고는 살짝 목례를 했다.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잘못이 뭔지 알고 싶습니다. “


“허...”


남성은 어이가 없다는 듯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는 팔짱을 꼈다. 몸을 살짝 뒤로 뺀 그는 고래를 절레절레 저었다.


“잘못... 머, 잘못 했지... 그리 무슨 개새끼마냥 여 가따가 저 가따가 뺑뺑이 굴리드만 결국은 안된다고 카고. 그라다가 디진거 아입니까.”


“반 선생님 자녀분 말씀이십니까?”


“누굴 이야기 하는거 같은데요 그럼?”


윤창은 한숨을 쉬었다. 벽을 두고 이야기하는 느낌이 들었다.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던겁니까, 그럼?”


윤창이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남성은 그의 질문에 코를 살짝 후비고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기 아마... 한 두달 전인가... 원래 그집 아가 다시 일해볼끼라꼬 이래저래 막 다니다가, 굴다리 밑 가서 이 발목을 물리가 왔지요. 그래서 급하게 병원을 갔는데, 아 이게 그... 무조건 입원을 해야한다 그캐가지고 일단은 집에 왔지.”


“그냥 데리고 왔다구요?”


“그라면 우얍니까. 밥 묵을 돈도 읎는데 병원비는 뭐가꼬 내라꼬요?”


“원래 차상위셨으면 지원 받을 방법이 없는건 아닐건데요.”


“그래서 저 아즈씨하고 아하고 같이 보건소도 가고 막 그캤다 아입니까. 근데 우얍니까. 약 몇개 뜩 손에 들리가꼬 집에 보내고 기다리라카고.”


인영이 남성의 말을 듣고는 난간에 걸터 앉아있다 이야기로 끼어들었다.


“보건소랑 동사무소에서 병원 연계를 안해줬다구요?”


“보건소 자리가 없다 캐가지고 못드갔다 카대요. 그래서 약만 받아가 와가꼬 그거 맞으면서 기다맀그든. 아는 살리고 싶으니까 동사무소 가가지고 그... 서류 있다아입니까. 신청서. 그거 쓰고 와서는...”


남성이 말을 이어나가고 있을때, 철문이 다시 서서히 열렸다.


반쯤은 시체처럼 눈이 푹 들어간 형식이 문을 활짝 열고는 집 밖으로 나왔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거 거기까지 혀. 재선이 넌 시방 뭐하러 나온거여.”


“아, 거 밖에서 문을 뽀사뿔라꼬 쳐 두드리고 앉았는데 우예 안나옵니까.”


“퍼뜩 들어가야. 부정타니께.”


형식의 한마디에 남성은 어깨를 으쓱 했다. 그는 코를 후비적거리며 골목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거, 너무 무리하지 마쏘. 철밥통 아새끼들한테 뭐가 좋아서 말을 해줄낍니까.”


그는 위쪽에 있는 철문을 열고는 집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골목에는 철문 닫는 소리가 퍼져나가고 다시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형식은 숨을 고르곤 네 사람을 둘러봤다.


“내가 말헌다고, 뭐가 달라지기나 혀요.”


인영은 그의 손을 살짝 잡았다.


“달라지진 않더라도, 선생님 말씀이 중요해요. 그래야 저희가 뭐가 잘못됐는지 알죠.”


그는 인영의 한마디에 눈물이 가득 고이고 있었다. 눈매에 맺힌 눈물은 당장이라도 흘러내릴것 같았다.


“미안하기는 한거여?”


윤창은 그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


“네. 정말 죄송합니다 선생님. 저희가 더 발로 뛰고 해서 선생님 손 잡아드렸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어디서 잘못됐는지 알고 싶은겁니다.”


윤창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형식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인영의 손을 잡고 있던 형식의 덥수룩한 수염 사이를 지난 눈물은 인영의 손에 떨어지고 있었다.


“왜 지금이여. 아들내미 뒤진지 이제 일주일 이여. 일주일만 빨리 왔었으면 안뒤졌을거 아녀.”


그는 훌쩍거리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자리에 주저 앉을 것처럼, 그의 다리는 후들거렸다.


“동사무소 가서 떼오라는거 다 떼왔는디, 거 머땀시 이렇게 오래 걸린거인지도 나는 몰러. 아들내미 살리고 싶어서... 발로 뛴게 죄여?”


“선생님... 그건 죄가 아닙니...”


“근데 뭐시... 뭐가안되는건디. 뭐땜시 된거냐고. 뭐땜시”


인영의 손을 부여잡은 그는 그대로 주저앉아 소리없이 울기 시작했다.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가슴을 부여잡은 그는, 소리없는 아우성을 지르고 있었다.


우는 소리를 들려주지 않으려 소리를 꾹 참고 있는 그는 가슴을 퍽퍽 두드려댔다.


“병원만 가면 된다고 그랬는디, 뭐땜시... 뭐땜시 우리 아들이 죽은거여 뭐땜시...”


인영은 형식의 옆에 쪼그려 앉아 형식의 등을 천천히 두드려줬다.


“다 혔자너. 서륜지 뭐시깽인지 다 줬잖여. 고로코롬 다 줬으면 뭐든 돌아와야 하는거 아닌가. 뭐땜시 아무것도 안한거여 뭐땜시...”


그는 소리를 참다참다 못해 흑흑 소리를 힘겹게나마 뱉고 있었다.


윤창은 조심스레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는 형식의 손을 잡았다.


“선생님... 그때 혹시 보건소에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아들 단도리 잘 허라고 혔쟤. 꼭 약 먹이라고. 안그러면 디져분다고. 약까지 싹 챙겨 줬는디... 그거이... 후...”


“약이... 부족했었죠...?”


형식은 윤창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 져 뜯고 그럴때마다 하나씩 주라고 허더라고. 일주일, 이주 안에는 병원 갈수 있게 도와 준다고 혔는디, 응답이 안오는겨. 근디 아들은 아파허고 있제, 동사무소 가서 도와달라고 혀도 구청에다가 전부 요청해놨다고만 말허제, 나는 워떠케 혀야 하는거여?”


“기다리는 동안... 어떻게 하셨나요...?”


“난들 방법 있는거 같혀? 있는 돈, 없는 돈... 우리 민기 학교 갈때 쓰라고 냄겨뒀던 비상금 싸그리 털어가지고 약국에서 약을 사왔는디, 허벌나게 비싸서 몇개를 못구한거여. 그라서... 나가 말여... 나가... 이 나이에 뭐를 하것어... 노가다판으로 갔다 왔는디...”


형식은 훌쩍거리고 있었다. 윤창과 인영은 아무런 말 없이 그의 손만을 꼬옥 쥐고 있을수 밖에 없었다.


“끼니 싸그리 거르고... 돈 받아서 바로... 바로 약 사서 왔는디... 근디... 나를 물라고 허더라고... 집 문 열자마자 민기 어디있는겨, 어디여 하고 불렀는디... 불렀는디...”


그는 기도하듯 손을 모으고는 손을 덜덜 떨어댔다. 먼지가 가득 쌓인 땅 위로 눈물이 흘러 떨어지고, 먼지와 엉겨붙은 눈물 방울들은 작은 돌맹이처럼 변했다.


“쬐깨만 빨리 연락만 줬어도 이럴 일은 없었을거여. 고로코롬 강생이처럼 요리 가따 저리 가따 허면서 고상시켰으믄, 내 몸은 가부리더라도 아들만은 살렸어야 할거 아녀. 아들만은. 아들만은...”


“선생님...”


“워쩔거여... 워떡헐거여 이제... 내 아들내미는 뒤져부렸는디. 이제 안에 없는디 워떡헐거냐고...”


땅에 털썩 주저 앉은 형식은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민기야... 민기야... 아부지가 미안혀... 아부지가 미안허다... 아부지가 겁나게부족혀서 그려... 아부지가 미안혀... 아부지가...”


그는 흘릴 눈물마저 모두 말라버렸는지, 마른 울음만을 내뱉고 있었다. 눈물이 말라붙은 얼굴 위로 형식의 아들 이름 두글자, 민기라는 이름만이 흘러나왔다.


윤창은 형식을 살짝 안아서는 등을 토닥여줬다. 그는 눈물을 삼키려고 하는지 코를 살짝 훌쩍이고 하늘을 쳐다봤다.


인영은 눈을 꾹 감고는 형식의 손을 놨다. 그녀는 착잡한지, 머리만 쓸어넘겼다.


“우리... 다시 돌아갑시다...”


인영은 힘빠진 말투로 말했다.


“아버님처럼... 혜택 못받으신 분들이 얼마나 되는지... 누락이나 반려가 얼마나 생겼는지... 그리고...”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인섭과 진철을 바라본 그녀는 답답한 마음에 눈을 부비적거렸다.


“왜 누락된 케이스들이 생기고 있는건지... 다 조사해야해요...”


그녀는 자신의 팔에 떨어진 물방울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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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29 21.02.01 24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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